소설리스트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50화 (150/154)

〈 150화 〉 꿈속에서 꿈틀거리는 끔찍한 광기

* * *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제임스의 이마에다가 손을 갖다댄 후 정신력을 나눠주려고 하자 이변이 일어났다.

바닥에서 솟아난 거대한 발톱이 내 손목을 노리고 휘둘러졌기 때문이다.

저번과 똑같이 벽에서 튀어나올 줄 알아서 잠시 놀라긴 했지만, 계속해서 경계하고 있었기에 간단히 피할 수 있었다.

크게 뒤로 물러난 나는 괴물의 생김새를 찬찬히 뜯어보며 확인했다.

사람과 똑 닮은 얼굴을 가졌지만 송곳니만이 빽빽하게 나 있는 입이라던가 수십 개의 눈동자로 가득 찬 여섯 개의 눈이 끔찍하게 생겼다.

침을 뚝뚝 흘리면서도 제임스를 지키듯이 서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참 웃기기도 했다.

'어이가 없네.'

누가 보면 이쪽이 악당인 줄 알겠다.

나는 일단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녀석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물은 나를 쫓아오기는커녕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계속해서 시선을 녀석에게 붙이며 무슨 행동을 할지 생각했다.

'벽을 디딤판으로 삼아 도약해서 나를 공격하려는 건가?'

하지만 녀석이 보인 결과는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마치 저 벽이 환상이라는 것처럼 그대로 통과하더니 사라진 것이었다.

'뭐지? 도망친 건가?'

저쪽으로 가도 오직 컨테이너와 무슨 살아있는 듯한 고깃덩어리 뿐인데 말이다.

'아니, 바닥 쪽으로 이동해서 기습할 지도 몰라.'

나는 방금 제임스에게 정신력을 나눠주려 했을 때를 기억해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벽을 통과하며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에서도 튀어나온 걸 보면 어디서 나오더라도 이상할 건 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경계하려던 와중, 뒤쪽에서 소름이 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윽!"

망설임 없이 곧바로 앞쪽으로 피하자 서걱하며 옷자락이 잘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언제 저곳으로 이동한 건지 앞발에 찢긴 천쪼가리가 붙은 괴물이 있었다.

약간이라도 늦었더라면 에반에서 에/반이 되었을 거란 생각에 소름이 끼치기도 잠시,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진 않았는데 어떻게 저기서 나온 거지?'

녀석이 벽으로 들어간지 아직 십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방금 움직이던 몸놀림을 생각해보면 그 사이에 내 뒤쪽으로 이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면서도 녀석의 근처에 설치해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괴물도 빛이 나자 이상한 걸 느꼈는지 몸을 피하려 들었지만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불기둥에 직격했다.

"크랴아악—!"

뱃가죽이 타들어가자 매우 고통스러운지 녀석은 바닥을 뒹굴거렸다.

나는 재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다음 마법을 준비하려 했으나, 녀석이 갑자기 땅으로 녹아들어가듯이 사라지면서 잠시 멈췄다.

"…해치웠나?"

이브가 알려줬던 마법의 단어를 입에 담으며 잠시 기다려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나는 안심하고 제임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과 함께 오른팔이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는 팔의 절단면을 바라봤다.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있는지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다른 사람의 팔이 잘린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내게 다가오는 날카로운 발톱들이 반짝이는 걸 보자 무의식적으로 구른 나는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주변에 마구잡이로 불꽃을 흩날리며 접근을 막으려고 했지만, 분노에 찬 눈동자와 다시 내 목을 향해 휘둘러져 오는 거대한 앞발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시간이 점점 느리게 가는 것처럼 다가오던 발톱이 점점 느려지더니 내게 닿기 직전에 멈춰섰다.

'이건… 주마등?'

그리고 눈앞으로 인생에서 겪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갔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애매한 유년기는 나오지 않고, 어지러운 시야 속으로 보이는 수수께끼의 저택에서부터 이상한 그림 속 세계.

미국으로 여행을 가면서 겪었던 괴물들과 한국이란 나라의 불의 교단의 사건을 저지하던 것까지.

나는 그 기억들 사이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려 했다.

지금 이 주마등이 끝난다면 금방이라도 목이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에 금방이라도 패닉에 빠질 것만 같았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했다.

'잠깐, 불의 교단?'

그러던 와중에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내가 쓰러뜨렸던 불로 이루어진 사람을 떠올렸다.

나도 그렇게 변할 수 있다면 잘려나간 팔을 재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디 하나만 잘못되더라도 목숨을 잃을 도박수였으나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비밀 실험실에 있었던 사람들보단 내 형편이 더 낫겠지.

내가 가진 심장 속의 불꽃은 그래도 내 말에 잘 따르니까.

빠르게 결심을 내린 나는 전신에 불꽃을 퍼뜨렸다.

그러자 팔의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멈추다시피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발이 내 머리를 후려치며 풍선 터지듯이 펑 터졌지만 금방 재생되며 당황스러워하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더럽게 아프네."

하지만 어째선지 고통이 느껴져서 모든 공격을 맞아주면서 싸우는 건 어려울 듯했다.

나는 잘려나갔던 팔을 재생시킨 후 손가락을 까딱였다.

괴물은 이걸 도발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격노하며 다가왔다.

'그런 게 아닌데 말이지.'

벽에다가 설치해뒀던 마법진에서 빛이 나며 마법의 전조를 알렸다.

그러자 괴물의 눈동자들이 비눗방울이 하나로 뭉치는 것처럼 커다란 하나로 변하더니 벽쪽으로 빙그르르 돌아갔다.

그러더니 이번엔 불의 창이 여러 개 생겨나는 걸 보고는 바닥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전처럼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려서 근처에 나온다면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키햐아악—!"

"뒤에서 기습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그에 반응해 뒤를 돌자 온몸에 불이 붙어 괴로워하는 괴물이 보였다.

나는 주먹을 아예 불꽃으로 바꿔버리고는 녀석의 약점으로 보이는 눈을 향해 질렀다.

그러자 질긴 막을 뚫은 느낌과 함께 수증기와 타는 냄새가 맡아졌다.

안타깝게도 뇌에는 닿지 않은 것인지 나는 녀석이 고통에 허우적대는 팔을 피하기 위해 물러나야 했다.

나는 손에 묻은 수정체 같은 끈적한 액체를 털어내며 생각했다.

'혹시 뇌가 없는 건가? 팔꿈치까지 넣었는데 그다지 단단한 건 없네.'

그렇다면 저게 완전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소각해야 하는데, 내 마력이 그때까지 충분할지 모르겠다.

방금 내가 던진 도박수 덕분인지 화염 마법에 드는 마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0에 수렴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저러는 사이에 조금씩 갉아먹어야지.'

그리 생각하며 손을 비틀자 녀석에게 휘감긴 불길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가죽 안으로 파고든 불꽃이 근육과 힘줄을 태우며 더더욱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생존 본능이 고통을 뛰어넘었는지 녀석은 다시 벽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붙들어매서 태워 죽이고 싶었지만, 예상보다 더욱 강한 힘에 결국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혹시 들어가도 불꽃이 계속 붙어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벽의 안쪽을 감지하려 해도 느껴지는 건 없었다.

"쳇."

나는 혀를 차면서 전신을 불꽃으로 전환했다.

그러고는 주변 불꽃의 움직임에 주의하다가 뒤에서 크게 일렁이는 걸 느끼고는 뒤로 돌았다.

"크흑!"

그리고 심장이 있을 자리를 관통당하며 엄청난 격통이 뇌리에 때려박혔지만, 이걸 몇십 배로 되돌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참아냈다.

나는 불꽃의 올가미를 만들어 날 찌른 다리를 묶어버렸다.

그리고 그걸 서서히 조여가면서 풍겨오는 가죽 타는 냄새를 맡았다.

많이 매캐해서 기침이 나왔지만 녀석이 괴로워하니 기뻤다.

"콜록, 내 팔을 잘랐으면 너도 잘릴 거라고 생각했어야지."

어지간한 칼로는 썰리지 않겠다 싶은 근육을 지나 뼈까지 도달한 올가미를 세게 당기자 우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끼헤에엑—!"

"윽! 빼는 것도 존나 아프구만."

괴물이 뒤로 도망치는 걸 구경한 나는 기둥처럼 두꺼운 녀석의 앞다리를 가슴팍에서 빼냈다.

절단면이 완전히 타들어갔으니 재생할 수도 없으리라.

"이젠 뭐로 공격할 거냐? 남은 앞발? 아니면 그 이빨들로?"

내가 비웃어주자 녀석은 증오에 찬 눈으로 뛰어올랐다.

그걸 향해 수많은 불의 꼬챙이를 만들어 무방비한 복부에다가 쑤셔넣고는 폭발시키자 괴물은 괴로워하더니 힘을 잃고 추욱 쓰러졌다.

혹시 몰라서 불의 검으로 녀석의 목을 베어내자 커다란 머리가 떨어지고는 불이 붙었다.

그리고 육신이 모두 잿더미가 될 때까지 가만히 있던 나는 불의 장판을 해제했다.

"등장과는 다르게 초라한 퇴장이네."

나는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고는 제임스가 있을 곳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의 이마에디가 손바닥을 대고는 정신력을 나눠주자 점점 광기가 고개를 치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며칠만에 다시 만나서 그런지 괜찮았던 나는 새근새근 자는 제임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으음, 에반?"

"그래. 나다 이 친구야."

"여긴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일단 나가자고."

"잠깐! 데리고 나갈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그를 따라서 간 곳은 예전에도 왔었던 컨테이너였다.

이곳에는 꿈틀거리는 살덩어리 밖엔 없을 텐데.

하지만 문을 열자 그곳에는 밧줄에 묶인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악몽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풀어줬다.

그리고 심해인 주술사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흠, 역시 예상대로 순간 이동 마법진인가."

"에반 씨라고 하셨죠? 이걸 쓸 방법이 있습니까?"

내가 마법진을 살펴보던 와중에 어떤 동양인 남성이 내게 질문했다.

약간이지만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마법사일까.

"좌표만 고치면 가능합니다."

"다행이군요. 저는 이쪽으로는 지식이 부족해서."

"어디 보자. 여길 이렇게 하면... 됐다."

나는 마법진의 좌표를 수정하고는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걸 발동시키자 엄청난 빛이 우리들을 감쌌고, 내가 다시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익숙한 천장이다."

"그러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제임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으윽, 얼마나 잠들었으면 온몸이 뻐근하지?"

"글쎄. 대충 한 달은 지났을 걸."

"그런가."

나는 일어서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제임스는 그걸 맡잡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