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시간선
* * *
서아의 머리 위에서 결사단이 사후처리를 하는 걸 구경하던 와중, 제임스에게 걸어뒀던 마법이 해제된 게 느껴졌다.
'흠? 그걸 빠져나왔다고?'
그의 힘으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할 난이도였을 텐데, 이브나 에반이 개입이라도 한 걸까.
'뭐, 발버둥치는 모습이 재밌어서 그랬지만 너무하긴 했지.'
마법 없이는 결코 상대할 수 없을 괴물을 풀어두었으니 누가 개입했던 간에 용서해주도록 하자.
"서아야. 난 먼저 가 봐야겠구나."
"네, 뭐. 어차피 하는 것도 없으셨잖아요."
"요게."
나는 꼬리를 붕붕 휘둘러 서아의 뺨을 톡톡 치고는 화신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눈을 뜨자 익숙한 우주 공간이 날 반겼다.
"어디 보자…. 시간선이… 여기 있군.."
남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내가 풀어둔 괴물이 아니었다면 언젠가 제임스가 해결했을 테니 그의 동료들이나 살려야겠다.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을 더욱 높은 차원으로 향하자 다섯 줄기의 시간선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것부터 여러 신화 속 괴물들이 숨어사는 지금의 것까지.
"일단 여기다가 쐐기를 박고, 이걸 이렇게 이어서…."
나는 그것들을 손보며 제임스의 동료들이 살아있는 현재를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응? 저건 뭐지?"
그러던 와중, 나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익숙한 마력에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누가 일부러 숨겨뒀던 것처럼 보이지 않던 시간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서아의 마력인데."
방금 저곳에서 마법이라도 사용했던 것인지, 뚜렷하게 남아있는 마력흔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뭐. 제임스가 금방 지구로 갈 것도 아닌데, 잠깐 정도만 구경하는 건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 하던 작업을 내팽겨치고는 숨겨져 있던 시간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의 역사를 천천히 읽어가면서 집중하는 동안, 어디선가 조용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푸흐흐."
그러더니 내가 작업하던 시간선이 점점 꼬이면서 엉키기 시작했다.
"자아, 마지막을 장식할 모두를 위한 무대는 완성되었다."
하지만 시간선을 읽느라 집중하고 있던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
"무,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루한 수업 시간을 어떻게든 넘기고 하교하던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혼란스러운 목소리에 빠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러다간 인명 피해가 발생할 거 같아 남들 모르게 마법을 사용하려던 나는 건물의 모서리에서 꿈틀거리는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림자를 그러모은 듯한 안개로 둘러싸인 괴물이 튀어나와서는 그 군인들을 물어 뜯었다.
"꺄아악! 피, 피가…!"
"영화 찍는 거 아니였어?!"
"도망쳐!"
그들의 머리나 팔이 뜯겨져 나가며 뿜어져 나온 피를 맞은 사람들은 이게 실제 상황이란 사실을 깨달았는지 곧장 도망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뒤에 있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다가 도망치는 사람과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순식간에 거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밟혀서 압사당하기 직전인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어서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렇게 천천히 전진하다 보니 핏자국만 남은 보도블록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의 괴물은 군인들만 노렸던 건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있었다.
"불길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잠시 기감을 넓혀 도시 전역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자 곳곳에서 비명 소리나 두두두하며 땅이 진동하는 소리,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등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방금 느꼈던 끔찍한 악의 또한 이곳 저곳에서 느껴졌다.
어딜 먼저 가야할지 갈팡질팡하던 나는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건물 옥상을 향해 도약했다.
"저게 뭐야…?"
그곳에서 내려다 본 도시는 혼돈 그 자체였다.
어느 곳에서는 말을 타고 갑옷을 입은 이들이 괴물에게 활을 쏘며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화살은 검은 안개를 그대로 통과했고, 곧이어 말의 하반신이 잡아먹히며 타고 있던 사람이 떨어졌다.
그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목부터 떨어지면서 즉사해 괴물에게 뜯어먹히는 고통은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팔이나 다리가 먹히며 비명을 지르더니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죽었다.
다른 곳에는 탱크가 한 대 있었는데, 잠깐 덜컹거리다가 멈춘 걸 보면 안에서 나타난 괴물에게 조종사가 죽은 모양이었다.
또다른 곳에는 무슨 돌창을 들고 가죽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보호하며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에 화려하게 염색된 직물 옷을 입은 사람은 괴물이 몰려들자 익숙해 보이는 청동 단검으로 손바닥을 긋더니 그것들을 향해 피를 뿌렸다.
그러자 치이익하며 산성 용액이 무언가 녹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괴물들이 괴로워하며 모서리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운데의 마법사가 명령을 내리더니 그들은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눈을 마주쳤고, 서로 깜짝 놀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심장에 새겨진 문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당황하며 내려가려고 할 때, 갑자기 앞의 화분과 바닥이 맞닿은 모서리에서 어둠이 들끓더니 악의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튀어나온 괴물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괴물의 머리를 잡고 터뜨리려다가 방금 녀석이 화살을 통과했던 걸 기억해냈다.
급히 마력을 끌어올리며 손을 보호하려는 찰나, 녀석의 주둥이는 날 지나 뒤쪽으로 향했다.
"어이쿠, 어림도 없지."
그러나 가냘픈 손에 잡힌 괴물의 머리는 엄청난 괴력에 으깨지고 말았다.
뒤에 있던 누군가가 그걸 대충 던지자 구정물처럼 바닥을 흐른 괴물의 사체는 모서리로 스며들어가듯이 사라졌다.
"누구… 어?"
나는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뒤로 돌았다가 충격적인 인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 과거의 나."
약간 키가 크고 한복을 입은 것만 빼면 나와 똑 닮은 사람이 거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식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난 이유는 시간이 뒤죽박죽 꼬여서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이 현재로 불시착했기 때문이라고.
이런 걸 벌일 만한 존재라면—
"에고, 오랜만의 휴가였는데. 그 망할 꼬맹이 때문에 이런 곳으로 떨어지고."
"꼬맹이…요?"
미래의 나는 뭔가 알고 있는 걸까?
"그래. 게다가 이런 기분 나쁜 마력이라면 암만 봐도—"
"푸흐흐. 누굴 얘기하는 걸까?"
"당연히 너지. 이 기분 나쁜 새끼야."
"어머. 그렇게 말하면 상처에요."
"하, 인간도 아니면서 상처는 무슨."
그리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만 같은 웃음 소리와 함께 검은색 일색인 소녀가 나타났다.
"미안하지만, 잡담하고 있을 시간 없어."
"어머.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미래의 나는 주변에 수많은 마법진을 전개시키며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소녀가 들고 있던 양산을 바닥에 내려치자 마법진이 모두 깨져나가며 미래의 나는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고정됐다.
"세상이 점점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은 빨리 이 시나리오를 해결하면 돼."
"끝?"
"알을 집어삼킨 새가 제 어버이를 찾아갈 시간이라는 거지."
소녀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늘여놓더니 점차 흐릿해져갔다.
"시간선을 한 곳으로 묶은 쐐기는 알아서 찾아보렴. 그럼 안녕!"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폰을 꺼내서 확인하자 서아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하윤아! 혹시 바쁘니?"
"아뇨. 언니도 만났죠?"
"어? 너도 이상한 여자애 만났구나!"
"네, 그렇죠. 아무래도 결사단의 정보력이 필요할 거 같은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일단 정보부에서 최대한 노력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일단 네 쪽에서 독자적으로 조사해야 할 거 같아."
"네. 그럼 뭔가 찾으면 연락할게요."
통화를 끊은 나는 미래의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미래에서 왔으니 뭔가 아는 거라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질문하기도 전에, 사방의 모서리에서 어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쯧. 역시 사냥개처럼 끈질기구나."
"저 괴물들이 뭔지 알아요?"
"시간의 모서리에서 사는 것들. 시간 여행을 잘못 하면 만나는 것들이지."
미래의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껴안고 높이 뛰었다.
그러며 소매에 있던 별들을 뿌려 터뜨린 후, 그 폭발력을 이용해 멀리 이동했다.
"한 번이라도 냄새를 맡으면 대상을 잡아먹을 때까지 추적해. 물론 세상에 시간 여행을 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별 일 없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거죠?"
"일단 지금은 쐐기를 찾아서 없애는게 최우선이야."
금방 옆 건물로 이동한 미래의 나는 나를 내려주더니 따라오라는 것처럼 손짓했다.
하지만 나는 방금부터 계속 이어지던 고민이 있어서 나를 멈춰 세웠다.
"일단 저희 호칭부터 정하죠. 계속해서 미래의 나, 과거의 나. 이렇게 부를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럼 네가 하, 나는 윤. 어때?"
"그냥 하윤 1, 하윤 2로 해요."
"너도 그 영화 봤구나. 하긴, 과거의 나니까 당연하겠네."
"빨리 가기나 해요."
이후, 우리들은 쐐기를 찾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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