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시간선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간선을 하나로 묶었다는 쐐기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저렇게 눈에 띄도록 거대한 기둥을 떡하니 두면 그 누가 모르겠는가.
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는 시민들을 지나 저 쐐기를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중심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급격한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처럼 융기된 땅이 고층 건물을 아예 관통하고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옛 건물이 콘크리트 건물과 하나로 합쳐진 모습은 기괴했다.
그리고 강제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한 환경에 당황해하며 주변에 있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모서리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이 빈틈을 노려 하나둘씩 물어가니, 현세에 나타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가까이 오니까 더 장관이네."
"그래서 저건 어떻게 부술까요?"
"일단 큰 거로 한 방 날려봐야지."
미래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옷소매에서 별을 여러 개 꺼냈다.
그러더니 그것들을 하나로 합쳐 야구공만한 크기로 만들어내고는 투수처럼 자세를 잡았다.
"흐읍…!"
한껏 긴장된 근육들이 비틀리며 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미래의 내가 움직였다.
커다란 궤적을 그린 그녀의 팔의 끝에 있는 별이 일직선으로 날아가며 쐐기를 향해 나아가 한순간 쏟아지는 엄청난 광량에 눈을 찡그리며 마력으로 주변에다가 차음벽을 만들었다.
직후, 엄청난 열로 공기가 팽창하며 불어오는 폭풍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다시 눈을 뜨자 멀쩡한 쐐기가 보였다.
"역시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모양이네."
"게다가 저기서 느껴지는 느낌은…."
"옛 존재구만. 게다가 점점 강해지는 걸 보면 무슨 공격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힐 테고."
"그럼 괴물이나 막고 있어야겠네요. 전 서아 언니한테 통화 좀 하고 올게요."
"그래."
하지만 아무리 서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도 신호음은 전혀 닿지 않았다.
***
수평선 밖엔 보이지 않는 바다의 한가운데를 어떤 배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선체에 그려진 복잡한 선들을 따라 움직이는 마력은 주변의 해류를 조종하며 일반적으론 내기 힘든 속도로 항해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조타실에서 파도가 갈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야 태평양 한가운데로 가는 시간이 며칠이나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나 멀리 떨어졌는데도 느껴지는 진득한 마력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가 깨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일러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부를 찌르는 마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으로 보아 지금 속도로 간다면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을 게 분명했다.
"무슨 방법이 없으려나…."
"서아 너는 그거 못 써?"
"어떤 거?"
"그, 저번에 미국에서 있잖아. 심해인 찾으러 다닐 때였나?"
"아아, 공간 이동 말이구나. 사람 두 명까지는 어제도 써봤으니까 괜찮지만, 이 배 전체를 옮기는 건 힘들겠지."
"역시 그런가…."
확실히 공간 이동이라면 순식간에 원하는 좌표로 이동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거기에 드는 마력량은 거리와 이동 대상의 부피에 비례하기에 지금 배에 탄 모두의 마력을 쏟아부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뭐가 있을까…. 아!"
어떤 방법이 없을까 기억 속을 찬찬히 뒤적이던 가운데, 그나마 괜찮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그건 바로 내가 아직 결사단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연구를 완료하고나서 토사구팽을 당할 뻔했을 때의 일이었다.
나와 친구를 죽이려고 녀석들이 총을 겨눴던 위기의 순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마법으로 생긴 공간의 균열로 녀석들을 찢어발겼었지.
하지만 이후 도착한 후발대에 다시 위기에 빠졌다가 균열 속에서 나타난 하윤이가 그들을 모두 순식간에 처리해버렸다.
총을 든 경호원들을 여럿 쓰러뜨려 놓고서 평범한 여고생이라고 자칭했을 땐 잠시 머리가 멍해졌었고.
아니, 그건 마력 탈진 때문에 그랬던가?
아무튼 중요한 내용은 그게 아니다.
바로 공간의 균열 너머로 오갔다는 것.
잘못했다간 배도 잃고 몇몇은 아예 시신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도박수였지만, 태평양 아래에서 잠들었던 존재가 깨어난다면 더욱 끔찍한 결말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수현 씨, 잠시 이야기 좀."
"예? 무슨 일이라도…?"
나는 곧바로 수현 씨에게 다가가 내가 세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걸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금방 전투부장을 불러 아래층에 있을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체를 전부 감싸는 보호막이 두껍게 전개되었고, 이제 시작해도 되겠다며 수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전에 느꼈던 감각을 되살리며 양팔에다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허공에 보이지 않는 미닫이문이 있다고 상상하며 자세를 잡았다.
"끄으읏…!"
그러자 손가락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저항감이 느껴지며 급격하게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동시에 푸른 하늘에 커다랗게 세로로 균열이 생겼고, 내가 손을 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점점 넓어졌다.
하지만 배가 지나가기에는 아직 부족했고, 벌써부터 내 마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서서히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균열의 확장이 느려지던 찰나, 옆에 있던 수현 씨가 등에다가 손을 갖다대며 마력을 전달해줬다.
나는 그의, 아니, 여기 있을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모아 팔을 움직였다.
"으아아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파들거리는 팔을 간신히 멈추고는 눈앞의 거대한 균열을 바라봤다.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심연처럼 어두우면서 별이 빛나고 있는 균열 너머.
그곳을 향해 배가 나아가다가 보호막부터 천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끄기기기긱!
그러자 철판을 송곳으로 긁어내는 것처럼 불쾌한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갉아먹히고 있었다.
"이런…!"
아래에 있는 마법사들은 그걸 보강하기 위해 마력을 계속 보내고 있었지만, 재생되는 속도보다 무너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옆에 있던 수현 씨도 가세하자 두 속도가 평형을 이루었지만 그건 잠시일 뿐.
그의 마력이 모두 고갈된다면 다시 갉아먹힐 미래가 눈에 선했다.
일단 지금의 계획은 내가 제안했으므로 나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는 바, 보호막에다가 마력을 조금 보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외지인을 보고 짖던 개가 주인을 반기는 것처럼 보호막을 갉아먹던 것이 갑자기 멈추는 거 아닌가.
'내 마력에 반응한 건가?'
하긴, 이 공간의 주인을 생각한다면 문장을 가진 날 제외한 모든 이가 불청객이겠지.
'그래도 보호막 전체를 내 마력으로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모양이네.'
만일 그랬더라면 탈진하다 못해 죽지 않았을까.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배가 전부 통과하고 균열이 완전히 닫히는 걸 구경하고는 앞을 바라봤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공간.
이곳을 부유하고 있던 배는 어떤 흐름에 탑승하여 어딘가로 향했다.
저기 멀리서 어둠과 불이 싸우는 것처럼 뒤섞이는 걸 구경하던 나는 이 흐름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해하며 바깥을 둘러봤다.
그러자 이전에 봤던 소녀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레가 들려서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너, 너어…!"
"아핫, 역시 너라면 이럴 줄 알았어."
소녀는 나를 조롱하듯이 칭찬하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는 창문이 없다는 것처럼 다가온 손은 내 머리에 닿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왓슨 씨가 내 어깨를 뒤로 끌어당긴 덕분이었다.
그는 총을 꺼내서 소녀를 향해 겨눴지만, 창문이 깨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방아쇠를 당기는 걸 망설였다.
그러는 사이 소녀는 손가락을 한 번 튕기더니 어둠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모두 아무거나 잡으세요!"
"엥?"
내가 당황해할 시간도 없이 수현 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에 의아해하며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균열.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암청색에 가까운 어두운 바다였다.
'눈 깜빡할 사이에 저걸 만들었다고?'
"무슨, 우와앗!"
나는 엄청난 마법 실력에 감탄할 틈도 없이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에 균형을 잃고 말았다.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벽에 부딪혔지만 팔로 머리를 감싸서 멀쩡했던 나는 바다로 추락하며 흔들리는 선체를 따라 같이 움직였다.
"윽! 악! 좀!"
보호막을 만들어서 상처가 생기진 않았지만, 이리저리 흔들린 탓에 생긴 어지럼증이 날 괴롭혔다.
잠시 후, 드디어 잠잠해진 배에서 일어선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모두 괜찮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딘가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뜬 모습이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눈 여러 쌍과 마주칠 수 있었다.
마치 문어처럼 자라난 촉수들이 얼굴에 늘어져 있었고, 그 뒤로는 날개처럼 보이는 피막이 한 쌍 있었다.
그레이트 올드 원, 르뤼에에 잠든 자, 지구의 옛 지배자, 크툴루가 잠에서 깨어나 모든 것들의 종말을 불러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