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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P.R 끝, 그리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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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전쟁으로 얼룩진 모든 것을 덮겠다는 듯 흰 눈이 펑펑 내린다.
분위기상이나 우리들이 있는 장소로나 흰 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비가 와서 젖는 것보단 나을 듯 했다.
“후... 춥다 추워.”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사실 하나도 춥지 않았다. 오히려 이불을 덮어주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누군가가 내 옆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누군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아리아 가문의 가주가 아니었을까. 마왕과의 최후의 결전을 펼친 직후라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기운이 남아있었을 테니까.
“그냥... 정말 끝난 게 맞는지 생각 중이었습니다.”
또 뭐가 막 튀어나온다던가 하지는 않겠지? 그 녀석은 우리 중 최약체... 이러면서. 아, 맞다. 그건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겪었지. 쓰러뜨린 상대를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리는 그럴 기운이 없는 듯 했다.
“하하, 마왕이 쓰러진 거니 당연하죠. 슬슬 최전선에도 영향이 갈 겁니다. 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네요. 그건 그렇고, 괜찮겠어요?”
나는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 지 잘 알고 있었기에 담담하게 말했다.
“꼬우면 찾아오라고 전해주세요.”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은 다음 나지막이 말했다.
“누가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모를 걸요. 그저 마왕 토벌단... 세간에서는 ‘백야’라고 불렀던가요. 하여튼 저희가 마왕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왔다. 정도로만 알려지겠죠. 어쩌면 그것마저도 믿지 못 할지도요.”
“당신이 없었으면 저희 모두 전멸했을 겁니다.”
“뭘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은 다음 허리를 숙이며 정중한 인사를 하고는 부르는 소리에 답하며 내게서 등을 돌려 떠나갔다.
잠시 구석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을 때, 위에서 하얀 날개를 접으며 내 옆에 내려앉은 황금색 갑옷의 소녀가 내게 물었다.
“마스터, 괜찮으신가요?”
“그래, 괜찮아. 너야말로 괜찮아?”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떤 걸 말씀이신가요?”
“우리가 상대한 마왕보다 강한 녀석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내 물음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마 없을 거예요. 저희 전부를 상대하면서 고대룡을 두 마리나 쓰러뜨렸는걸요.”
“역시 그런가.”
“아! 존재하긴 하네요!”
“응?”
그녀는 나를 가리켰다.
“마스터 있잖아요! 마스터!”
순수 그 자체인 그녀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질문인데 당연히 나는 빼고 아니겠니.”
“음... 그러면 없는 것 같아요!”
“역시 그렇구나. 그럼, 우리도 도우러 갈까?”
“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인과 마. 세상이 두 편으로 갈라져 한 쪽은 세상을 삼키기 위해, 다른 한쪽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대전쟁이 인간 측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
“...그게 벌써 4년 전인가.”
나는 잠시 과거 회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도 소녀, 저기도 소녀. 눈이 가는 모든 곳에 소녀가 있었다.
나 귀족이오~ 라고 말하는 듯 딱 봐도 고급지게 보이는 옷감으로 만든 옷을 차려입고, 나 귀하게 자랐소~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앳된 미모의 소녀들이 내 시야에 가득 차있는 진귀한 현상.
오기 전에 들은 바로는 100명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200개의 눈동자의 안에 들어가 있는 셈이군.
4년 전 마왕을 상대했을 때도 이 정도 중압감은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찾는 다고 할 걸 그랬나...?”
나는 나를 바라보는 200개의 눈동자를 보며 한숨을 쉬며 떠올려 보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날의 아침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