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4화 (4/146)

〈 4화 〉 선전포고.

* * *

학교 안, 대강당.

잠깐의 과거회상을 끝낸 내가 단상에 올라서자 200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100명이나 있는 것 치고는 숨 쉬는 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한 모습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괜히 귀족의 딸들이 아니군. 내가 학교 다닐 시절엔 항상 애들을 조용하게 시키는 게 먼저였는데.

아. 나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여기에 왔지...

그때를 생각하면 또 이가 갈릴 것 같았기에 고개를 휙휙 저으며 나쁜 기억들을 털어냈고, 일단 처음 본 사이니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이곳의 총괄을 맡게 된 진현성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너무 짧았나?

맞선보는 것도 아니고 곧 싸울 예정인데 정보를 많이 흘리면 불리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말한건데.

내 자기소개에 그녀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요했고, 다음에 뭐라고 더 말해야하나? 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소녀 무리의 중간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이 보였다.

“실례할게요.”

그녀가 다른 학생들의 앞으로 나오려 하자 학생들은 그녀가 누군지 확인하려는듯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흠칫, 하며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 옆으로 갈라섰다.

“아, 고마워요.”

그 사이로 한 소녀가 천천히 걸어와 단상 앞에 멈춰 서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183센티미터인 내 어깨정도 올 법한 키를 가진, 어깨를 덮는 연보랏빛의 머리에 자수정을 연관시키는 듯 보이는 반짝이는 보라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소녀였다.

“크리샤 가문의 세레나 크리샤입니다.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저 귀족 소녀들이 길을 비켜준다 했더니만... 왕성 귀족이었군?

크리샤 가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 애초에 정기적인 다과회 초대를 빼면 거의 집밖에 안 나가는 나이기도 하고. 그나마 아는 거라곤 가주가 엄청 차가운 사람이라는 정도려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레나는 학생들을 대변한다는 듯 앞에 서서 단상 위의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클래스가 어떻게 되시나요?”

호오, 처음부터 그걸 물어보시겠다?

클래스란, 게임으로 따지면 직업의 의미로 그 사람이 쓰는 마법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면 원소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법을 쓰면 엘리멘탈 마스터. 정령과 계약해서 정령의 힘을 쓸 수 있으면 정령술사. 라는 식으로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물어보는 게 맞기는 하지만 어디 출신인지, ‘왕가의 방패’나 ‘용살자’ 같은 이명이 있는지. 명성을 떨칠만한 큰 일을 한 적이 있는지. 등등을 제쳐두고 클래스를 먼저 물어본다는 건­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총괄후보로 왔던 놈들에게서 그런 건 질릴 만큼 들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얘기겠지.

나는 씩­ 웃으며 세레나에게 대답했다.

“소환사다.”

내가 소환사라는 것을 밝히자 조용하게 있던 소녀들의 무리에서 동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마 내 클래스에 대한 인식때문이겠지.

이 세계엔 무수하게 많은 클래스들이 있지만 내 클래스인 소환사는 인기도 별로 없고 인식이 거의 바닥수준이다.

그 이유는 소환사가 소환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어렵다는 것이 큰데, 소환사가 소환수를 얻으려면 샐러리맨마냥 직접 발로 뛰어야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만약에 내가 용을 소환하고 싶다. 그러면 용이 있는 곳으로 가서 용을 직접 만나서 싸우던가, 대화를 하던가 해서 마음을 얻고 계약을 맺어야 된다는 뜻이다.

‘내가 너를 소환했으니 계약에 따라 내 소환수가 되어라~’ 라는 마법을 이용해 부릴 수 있는 소환수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소환수들은 대게 약해빠진 것들뿐이며 그나마 강한 것이 골렘 정도다.

물론 위의 방법으로 강한 녀석들을 소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들을 힘으로 이기지 않으면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대다수이지. 그리고 까딱하다간 오히려 소환한 녀석에게 소환사 본인이 죽을 수도 있고.

그런 많은 이유로 소환사의 수가 적은 것이다.

소환마법을 아무리 익힌다고 한들 소환사 본인은 약하니까.

아무리 강대한 소환수를 불러낸다고 한들 소환사 본인이 쓰러지면 끝이니까.

배우기 쉬운 마법이 많으면서 조금만 익혀도 충분한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클래스가 많으니까.

몇 분이 지나도 웅성거림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고, 이내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그녀들에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너희들의 이런 반응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너희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잘 아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최약 클래스 중 하나인걸로 유명한 소환사가 자기들을 총괄한다니 참 웃기지도 않은 소리지. 그래서 증명해보일까 한다. 내가 마족같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너희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나는 세레나를 바라보며 동시에 강당의 가운데, 주변의 소녀들보다 현저히 튀어 보이는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들을 포함한 세레나, 너희들하고 다섯 명 대 나로 정식 대련을 신청한다.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따라오라고. 설마 소환사에게 겁먹고 안 오는 건 아니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강당을 나가 옆 건물, ‘투기장’이라고 적힌 곳으로 향했다.

* * *

현성의 지목에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전부 그녀들에게 향했고,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네 명의 소녀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 분홍머리의 소녀, 다른 소녀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성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흑발의 소녀, 재미있다는 듯 킥킥대며 웃고 있는 옆에 있는 소녀들보다 조금 작은 금발의 소녀, 그런 금발의 소녀와 비슷한 크기에 금발의 소녀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주변의 소녀들을 둘러보는 은발의 소녀.

그중 흑발의 소녀가 곁에 있던 다른 소녀들에게 말했다.

“가자.”

분홍머리의 소녀가 떨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 진짜 할 거에요?”

싸움을 싫어하는 듯 망설이는 그녀. 그녀가 그러는 이유를 잘 안다는 듯 금발의 소녀와 은발의 소녀가 분홍머리 소녀의 양 손을 잡으며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라헨느가 있으면 괜찮아...”

“라네즈가 있으면 괜찮아!”

“하, 하지만...”

분홍머리의 소녀가 여전히 내키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짓자 흑발의 소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니 지금까지처럼 하면 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곁에 있던 소녀들의 응원으로 용기를 얻었는지 분홍 머리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이 앞으로 나오려 하자 아까 세레나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양 옆으로 비켜서서 그녀들이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 * *

투기장에 먼저 도착한 나는 어떻게 그녀들을 상대할지 계산 중이었다.

“일단 클래스부터 들어봐야겠군.”

대충 계산이 다 끝났을 때, 5명의 소녀들이 걸어 들어와 내 앞에 나란히 섰고, 관중석은 95명의 소녀들로 가득 찼다.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야 오셨구만.”

흑발의 소녀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소환사에게 겁먹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안 되니까요. 애초에 겁먹지도 않았고.”

당돌한 아가씨로군. 덕분에 물어볼 명분이 생겼네.

“그럼 시작하기 전에 자기소개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소환사’에게 겁먹지 않았다면 말이야. 클래스까지.”

나는 분홍머리의 소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부터.”

내 지목을 받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잠시 우물쭈물대다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아, 아르테미아 가문의 루, 루아 라고 합니다! 나, 나이는 16살이고요! 크, 클래스는 암살자에요!”

풀었을 경우 등과 엉덩이의 중간까지 내려올 것 같은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양 옆으로 묶어 만든 트윈 테일에 머리색과 같은 분홍색 눈동자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지 얼굴의 홍조가 한곳에 어우러져 귀여운 느낌을 주는 소녀였다.

실수투성이에 마음이 여린 메이드의 느낌이랄까.

어딜 봐도 암살자라는 클래스에 어울리는 소녀는 아니었다. 특히 저 중간에 달려있는 커다란 게 말이지...

“다음.”

“라네즈 아리아! 나이 10살! 클래스는 인형술사!”

“라헨느 아리아... 나이는 10살... 클래스... 인형술사... 어, 언니... 손... 너무 흔들지 마...”

“아, 미안!”

딱 10살이라고 할 만한 키에 금발을 땋아 오른쪽 어깨에 올린 소녀가 활발하게 손을 흔들었고, 조금 내성적인 성격처럼 보이는, 언니와 똑같이 머리를 땋았지만 왼쪽 어깨에 올린 소녀가 활발하게 손을 흔드는 금발의 소녀를 말렸다.

귀여워. 저 말랑말랑한 볼 한번만 콕 찔러봤으면 좋겠다.

“흠흠. 다음.”

하마터면 속마음이 그대로 말로 나올 뻔했군.

“자기소개는 아까 했지만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크리샤 가문의 세레나 크리샤입니다. 클래스는 엘리멘탈 마스터입니다.”

“마지막~”

세레나보다 조금 더 큰 키에 엉덩이까지 내려올 것 같은 흑발을 오른쪽으로 묶은 사이드 테일. 블랙홀처럼 보는 것만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눈동자. 누가 봐도 맏언니 같은 느낌을 풍기는 도도한 표정의 소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 데 르니아. 나이는 18살이고 클래스는 마검사입니다.”

르니아라고? 아이테르가 귀 따갑게 자랑하던 딸이자 이곳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가 이 녀석이었군.

하급마족들을 혼자 베어버렸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옆에 서 있는 다른 소녀들보다 현저히 높아 보였다.

아무리 물려받은 마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녀 옆에 있는 다른 왕성귀족 소녀들도 마찬가지일 터. 도대체 얼마나 수련을 한 거야? 아이테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시작할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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