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5화 (5/146)

〈 5화 〉 대련.(1)

* * *

내가 신호를 보내자 메이드중 한 명이 우리에게 와서 말했다.

저 많은 메이드들 중에 대표로 나오는 사람이니 아마 메이드장일 것이다.

“그러면, 대련 방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가 대답하려고 입을 떼기도 전에 레이는 아까 내가 한 도발을 그대로 돌려준다는 듯이 비웃음을 살짝 섞어가며 물었다.

“어라, 설마 1대1로 한 명씩 상대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그 말에 동조하듯 라네즈와 라헨느가 말했다.

“겁쟁이! 겁쟁이!”

“빼면... 겁쟁이...”

귀여워. 도발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저 표정이 너무 귀여워.

어차피 5대1로 싸우든 1대1로 5번 싸우든 나는 이겨야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녀들의 도발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래 알겠다. 5대1로 싸우는 걸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련 방식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결계를 펼치는 매개체인 결계석에 손을 댔고 나와 그녀들의 머리 위에는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HP바가 생겨났다.

“머리 위에 보이는 생명이 다 없어지면 패배입니다. 투기장 밖으로 나가도 패배. 그 외에는 전부 허용됩니다. 생명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죽는 게 아닌 회복실로 자동텔레포트 되는 것이니 마음껏 싸워주시길. 그럼, 자리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투기장의 왼쪽 끝에 가서 섰고, 그녀들은 내 반대쪽 끝으로 갔다.

“그럼... 시작!”

* * *

시작신호와 동시에 레이가 검을 빼들고 화살처럼 내게 돌진했다. 소환마법을 영창 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게 그녀의 표정에서 보였다.

나는 일단 뒤로 물려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듯 내 등 뒤에 거대한 얼음벽이 올라와 내 퇴로를 막았다. 아마 세레나의 얼음 마법이겠지.

그렇다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피한다는 선택지도 고를 수 없었다. 왼쪽에서는 라네즈, 라헨느 자매의 인형들이 창을 내게 향한 채로 날아오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루아가 던진 단검들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나는 딱­하고 손가락을 튕기며 살짝 점프했다. 빛이 번쩍이며 내 발 아래에 둥근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강력하지만 내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바람이 솟아올라 내 몸을 공중으로 띄워주었다.

“읏?!”

“꺅!”

관중석의 소녀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강력한 바람에 투기장에 있던 다른 소녀들은 한 발씩 물러났다. 하지만 레이는 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위치를 확인하더니 마법을 영창했다.

화르륵­

그녀의 검에 불이 붙었다. 아니, 붙었다기보다는 휘감았다라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 바람을 이용할 생각인가 보군.

확실히 그녀가 불의 마력을 담아 이 바람에 보낸다면 그대로 불이 바람을 타고 올라와 내게 닿겠지. 내가 일으킨 바람이아니라 바람을 조종해서 피할 수도 없고.

하지만, 그걸 내가 생각 안 했을 리가 없잖아?

나는 공중에서 레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계속 서있으면 휘말린다?”

“...!”

내 경고에 레이는 그녀의 발밑을 보았다. 내 몸을 띄울 때만 하더라도 작았던 마법진이 어느새 그녀의 투기장의 반을 덮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나는 공중에서 마법진을 향해 손을 피며 외쳤다.

“나와라. 고대풍룡(風?) 실레스틴!”

* * *

“피해!”

레이는 다급하게 다른 소녀들에게 외쳤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게 저 마법진에서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외침에 다른 소녀들은 제각각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라네즈, 라헨느 자매는 인형들을 한 곳에 모아 방패를 든 거대한 곰인형을 만들었으며 세레나는 얼음 마법을 영창해 그녀의 주위에 둘렀다. 루아는 빠른 속도로 투기장의 끝까지 물러났고, 레이는 현성이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소환하기 전에 막겠다는 듯 마법진에서 올라오고 있는 바람을 향해 불꽃을 담은 검을 휘둘렀다.

불꽃은 곧 용의 형상으로 변해 솟구치는 바람을 향해 날아갔다.

슈아아악!

하지만 그녀의 불꽃이 바람에 닿는 일은 없었다. 바람에 닿기도 전에 마법진에서 나온 연두색의 물체에 의해 그대로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마법진에서 나온 ‘그것’은 그대로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고 공중에 떠있던 현성을 자신의 머리 위에 안착시켰다.

‘그것’이 마법진에서 나올 때 강한 바람을 일으켰으나 레이의 외침에 방어태세를 갖춘 다른 소녀들은 무사했다. 하지만 정작 바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레이는 미처 방어하지 못했고 그대로 바람에 밀려 뒤로 날아갔다. 그대로 날아간다면 투기장의 벽에 부딪혀 큰 데미지를 입을 수도 있던 상황.

“언니!”

다행이 세레나가 바람 마법으로 레이를 감싸 안아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주었기에 그녀가 벽에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휴~ 하마터면 그대로 불 탈 뻔했네.”

밑의 상황이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는지 불이 자신에게까지 닿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뱉었지만 표정은 여유로운 현성과 달리 관중석에 있는 소녀들. 아니, 방금까지 현성을 공격하던 왕성귀족 소녀들까지 투기장안의 모든 소녀들은 현성이 타고 있는 ‘그것’의 위용에 그저 입을 벌리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니, 소녀들뿐 아니라 현성이 타고 있는 ‘저것’을 직접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녀들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성이 소환한 것은 최상위 종족 중 하나, 고대룡이었기 때문이다.

* * *

(대충 고대룡들의 사진)

고대룡.

와이번보다 상위 종족인 드래곤. 그런 드래곤보다 상위 종족인 그들은 세상에 단 9마리뿐이다. 알려진 게 거의 없으며 인간에게 적대적인 생물을 위험도에 따라 나누는 기준으로 봤을 때 최고 등급인 재앙급이다. 하지만 세계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각자의 속성의 와이번, 드래곤들을 이끌며 살아가고 있다.

­아벨 왕국 생물도감 최상위 종족 편. 중­

* * *

“저게... 책으로만 보던...”

“시, 실제로 처음 봐...”

몰아치던 바람이 그치자 관중석의 소녀들은 하나같이 그 위용에 탄성을 내둘렀다.

현성을 태운 고대룡, 실레스틴은 투기장을 한 바퀴 돌더니 투기장의 가운데에 멈춰 서서 바닥의 그녀들을 보며 포효했다.

“­­­!!!”

“꺅!!”

모든 소녀들의 귀를 막게 할 만큼 커다란 포효소리. 마력이 담겨있어 상대의 전의를 잃게 하는 그 소리에 몇몇 소녀는 그대로 기절하기까지 하였다. 계속 듣고 있다가는 레이 일행도 저 소녀들처럼 될 것이 뻔했다.

“시끄러!”

“꺄악!”

퍽! 하고 뭔가를 때리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고대룡의 포효가 멈췄고, 들려온 건 귀여운 비명소리였다.

“”“...응?”“”

그 소리에 소녀들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라는 표정으로 공중을 쳐다보았다.

“머리 때리지 말라니까! 너 때문에 머리 나빠지면 책임질 거야?”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 그녀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 그 목소리는 공중에서 날고 있는 고대룡에게서 나오는 소리였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너 있던 곳처럼. 소리 지르지. 말라고.”

퍽. 퍽. 퍽. 퍽. 퍽.

“아! 아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때리라구! 아퍼!”

“내려가.”

“씨이... 레이디에 대한 배려가 없어...”

실레스틴은 투덜거리며 투기장의 중앙으로 내려왔다.

“읏차.”

실레스틴의 머리에서 내린 현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녀들은 그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야, 네가 너무 커서 무섭나보다. 크기 좀 줄여봐.”

현성의 말에 실레스틴은 한숨을 내쉬며 마법을 영창했다. 잠깐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그녀들의 눈앞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14세 정도로 보이는 키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연두색의 머리칼.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녀는 흰색의 롱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 챙모자를 쓰고 있던 걸로 봐서는 소풍이라도 갈 모양이었던 것 같았다.

“웬 원피스? 너 어디 소풍갔다 왔냐?”

“갈려고 했는데 네가 불렀잖아! 씨이... 오늘은 모처럼 날이 좋아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따스한 바람을 만끽하려고 했는데... 지가 불러놓고 시끄럽다고 때리기나 하구...”

울상을 짓는 실레스틴을 보며 현성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대신 내가 다음에 더 좋은데 데리고 가 줄게. 그러니까 뚝해. 고대룡이 한참 어린 여자애들 앞에서 울면 쓰나.”

“킁... 흥...! 안 울거든! 그래서, 날 소환한 이유가 뭔데? 나 지금 못 싸우는 건 알... 읍?!”

현성은 황급히 실레스틴의 입을 막았다.

“읍? 으브븝! 으브브브브!!”

“가만히 있어 봐.”

버둥거리는 실레스틴을 겨우 잡아두며 현성은 아직도 멍하니 서있는 레이 일행에게 물었다.

“어때, 계속 할래?”

* * *

“어때, 계속 할래?”

내 질문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통했나...?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하려는 실레스틴을 잡아두며 내 플랜 1이 잘 통하기를 바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투기장에 들어와 세운 플랜 1. 그것은 강한 소환수를 이용한 충격요법. 내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중에서 적당히 강한 녀석을 꺼내 그녀들에게 ‘내가 이걸 어떻게 이겨...’ 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왜, 인간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공포란 말도 있잖아.

실레스틴은 현재 모종의 이유로 싸울 수 없는 몸. 하지만 그녀들은 그것을 모른다. 고로 실레스틴이 용 형상일 때 내뿜는 위용을 보면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을 받아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그녀를 소환한 것이다. 포효를 내지르는 건 좀 심하다고 생각했기에 멈추게 한 거지만.

“네, 당연하죠. 아뇨, 오히려 잘 됐어요. 고대룡을 상대할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응! 조금 무서웠지만, 이젠 괜찮아!”

“언니... 몸... 덜덜 떨려...”

“이, 이건 싸움의 희열 때문에 떠, 떠는 거라구!”

하지만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짓을 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실레스틴에게 말했다.

“에이씨. 안 통하네. 야, 들켰다. 다시 들어가.”

“에휴.”

실레스틴은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는 손가락을 튕겼고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우리들의 눈 앞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역시 허세셨군요.”

레이의 말에 나는 대충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관중석을 가리켰다.

“어떻게 알았어? 저기 진짜로 기절해 있는 녀석들도 있는데.”

“허세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으니까요.”

그럼 그 멍하니 있던 게 전의를 상실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그녀를 상대할 계획을 짜고 있었던 거라는 뜻인가. 무섭다, 무서워. 도대체 누가 그녀들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더 강한 녀석을 소환해 보겠다는 의미로 손을 펼쳤지만­

“소용없습니다. 소환사가 소환을 한 번 끝내고 나면 다음 소환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라는 레이의 말에 손을 내렸다.

...쳇.

“확실히 지금까지 오셨던 분들과는 다른 강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이가 마법을 영창하자 그녀의 주위에 각각 속성 마법을 걸어둔 검들이 총 7자루 생성되었다.

“이제 끝입니다.”

“가자, 라헨느!”

“응...!”

라네즈, 라헨느 자매가 방어용으로 썼던 건물 1층 높이 정도였던 곰인형은 이젠 공격형으로 바뀐 듯 방패대신 주먹을 들었다. 겉보기에는 푹신해 보였지만 느껴지는 마력상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온몸의 뼈가 박살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으, 은신!”

루아는 암살자의 마법 중 하나를 사용했는지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얼음의 파도여...”

세레나는 무언가 큰 마법을 쓰려는 듯 길게 영창중인 상태였다.

소환사가 인기 없는 이유 4번째. 레이의 말처럼 소환수의 강함, 소환된 수에 비례하여 다음 소환마법까지 쿨타임이 있다.

나는 그것을 극복해보이기 위해 몇 년을 수련했다. 전투 중에 소환한 소환수가 쓰러졌을 경우에 바로 다음 수를 준비하지 못하면 그건 그대로 패배를 뜻했으니까.

그렇게 수련한 끝에 쿨타임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강함, 소환된 수에 상관없이 모든 소환의 쿨타임을 30초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전투가 끝나면 다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30초는 보통 인간이라는 소리다.

전투에서 30초의 공백이란 어떤 클래스던 평범한 인간 한 명을 처리하기엔 충분한 시간일 터.

물론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놨다. 하지만...

나는 곧 내게로 날아들 마법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패배를 직감해서가 아닌 그녀들을 너무 얕봐 다음 수를 써야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아니지. 고대룡의 위압을 버티는 저 애들이 이상한 거 아니야...?관중석엔 아직도 기절해있는 녀석들이 많다고? 아, 슬슬 깨어나고 있네.

나는 하나 둘 깨어나는 소녀들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방금의 생각을 부정했다. 만약그렇다고 해도 잘못은 내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음 수까지 봐서 위압도 넘치고 싸움도 가능한 녀석을 소환했으면 끝났을 일이었다.

나는 내 앞에서 날아드는 레이의 7속성 검격. 위에서 내려오는 라네즈, 라헨느 자매의 거대한 인형 주먹. 뒤에서 느껴지는 내 목을 노리고 다가오는 루아의 단검. 양 옆에서 나를 덮치는 세레나의 얼음의 파도를 보며 그저 가만히, 가만히 그 자리에 선 채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내게 와라. 고대빙룡(?) 스카지나의 힘이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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