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대련.(2)
* * *
“소환수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환사니라.”
내게 소환마법을 가르쳐준 스승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나는 그게 소환수의 인맥이나 명성. 뭐 이런 걸 뜻하는 줄 알았다.
스승이 ‘합일’이라고 이름 붙인, 소환수의 마력을 내 몸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떠오르는 그날의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애초에 그런 걸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냥 무식하게 마력을 넣었다 뺐다 하며 적응할 때까지 반복하는 게?
소환수의 마력에 적응하지 못해 몸이 터지기 직전까지 갔던 게 몇 번인지 기억도 안 난다.
...됐다.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서 뭐하냐. 지금은 일단 눈앞의 대련에 집중해야지.
나는 사방에서 나를 덮치는 공격을 보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왕 막을 거, 조금이라도 멋있게 막아보자, 라고 생각해서였다.
“내게 와라. 고대빙룡(?) 스카지나의 힘이여.”
내가 마법을 영창하자 내 몸에 스카지나의 마력이 깃드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느낌이 온 몸을 훑으며 지나갔다.
...몇 년이 지나도 이 느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니까.
* * *
쾅!!!
레이 일행의 공격이 현성에게 직격했다. 그 여파로 인해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를 보며 관중석의 소녀들은 생각했다. 끝났다. 라고. 잠깐의 위험은 있었지만 결국 승리한 건 이번에도 레이 일행 쪽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흙먼지가 걷힘과 동시에 날아가 버렸다.
“...어?‘
흙먼지가 걷히자 그녀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사방에서 공격을 맞았음에도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의 현성이었다. 그는 ‘피할 필요가 없었다.’는 듯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음으로 그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투기장에서 현성과 싸우고 있던 레이 일행의 모습이었다.
꽈득... 꽈드드득...
현성의 머리를 노리던 거대한 곰인형은 머리에 닿은 주먹부터 얼어가고 있었다. 현성의 목과 심장 부분에 닿아있는 루아의 단검과 레이의 검 또한 마찬가지로 현성의 몸에 닿은 부분부터 얼어가고 있었다.
“계속 잡고 있으면 너도 언다?”
현성의 말에 레이와 루아는 황급히 무기를 버리고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파캉!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날 부분과 단검이 산산조각났다. 그대로 잡고 있었으면 무기뿐만 아니라 그녀들도 저렇게 됐을 거란 생각에 몸을 흠칫, 떠는 레이와 루아였다.
“이제 내 차례지?”
현성이 손을 들자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에 나타났다. 이어 마법진에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용의 머리가 입을 벌리며 나왔다.
“아이스 브레스.”
얼음으로 만들어진 용이 그녀들을 향해 얼음의 숨결을 내뱉었다.
* * *
콰과과과광!!
나는 초토화된 주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원래 저 정도로 위력이 강했나? 지난번에 썼을 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저 애들 살아있기는 한 거지...?
아, 맞다. 이거 대련이라 죽지 않고 회복실로 이동한다고 했지.
나는 이제 끝난 건가싶어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라네즈 라헨느 자매와 세레나의 생명바의 수치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이의 생명바는 1에서 깜빡이고 있는 걸 보니 거의 빈사상태인 듯 보였다. 그리고 루아의 생명바는...
“어라?”
전혀 달지 않은 상태였다.
...피한 건가?
방향 상 아이스 브레스의 반대 방향에 있었다고는 해도 후폭풍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생명이 닳았어야 정상인데.
“궁금해?”
흠칫!
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굴렀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가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것을 보며 침을 삼켰다.
그대로 있었으면 저렇게 갈라지는 게 나였을지도...
“흐응~? 그걸 피해? 역시 오빠는 강하구나? 하긴~ 내가 마력에 반응해 나올 정도니 안 강할 리가 없겠구나~”
여유롭게 말하며 내 앞에 사뿐히 착지한 그녀는
“넌... 루아?”
부끄러워하면서 죄송해요!를 남발하던 아까의 루아와는 180도 다른 느낌의 루아였다.
* * *
루아는 부끄러워하며 낯설어하던 아까와는 달리 밝지만 나이에 안 어울리는 매혹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서큐버스가 눈앞에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였다.
아까까지 쓰던 단검은 어디 갔는지 지금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거대한 낫이었다. 그것은 흡사 사신이 쓸 것 같이 생겨 보는 것만으로도 삼켜질 것 같은 어두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정답! 이지만 조금 다르려나?”
“뭐?”
“나는 루아의 안에 있는 또 다른 루아야. 부끄러움을 잘 타고 여린 루아가 죽이고 사는 감정들이 모여 탄생한 다른 내면이랄까?”
...요컨대 이중인격이란 거지?
지킬 앤 하이드 같이.
“그런데 그런 얘기를 다른 애들 앞에서 해도 괜찮아? 왕성 귀족 애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만났을 테니 지금 너의 상태에 대해 모를 리는 없고...”
“걱정해주는 거야? 친절해라~ 하지만 걱정 마~ 지금 여기서 하는 얘기는 안 들릴 테고, 전투가 지속됨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봐봐~ 라며 관중석을 가리키는 루아. 루아의 말처럼 관중석의 소녀들은
“드디어 나왔어! 루아님의 본모습!”
“어떡해! 나 처음 봐!”
라며 마치 유명 아이돌을 본 것 같은 소녀들처럼 꺅꺅대고 있었다.
“그럼~ 놀아줘!”
다음 순간, 내 시야에서 루아가 사라졌다.
“...!”
서걱.
내가 당황하고 있을 틈도 없이 바로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루아가 휘두르는 낫은 공격을 한 번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공격의 잔해에서 또 다른 공격이 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점점 더 빨라지는 루아의 공격에 나는 반격은커녕 그녀의 공격을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벅차했다.
“흐음~ 간 보기는 이 정도로 할까?”
...지금까지 간 보기였다고? 이게?
루아는 뒤로 크게 물러나더니 나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그럼 제대로 간다~♥”
무섭게 뒤에 하트는 왜 붙는데! 하트는!
루아는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올랐다. 위에서 내리꽂는 공격을 위한 준비로 보였다.
“간다~!”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
“...잡았다.”
루아의 낫이 내 이마에 직격함과 동시에 나는 낫을 휘두른 루아의 팔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그녀를 땅에 메다꽂았다.
콰앙!
“커흑..! 쿨럭! 쿨럭! 어, 어라...?”
루아는 공격을 했을 그녀가 어째서 바닥에 누워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방어를 선택했다면 땅에 누워있던 건 내 쪽이 됐겠지...
나는 루아를 잡고 있지 않은 반대쪽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헤, 헤헤...”
아까까지 의기양양하게 내게 달려들던 루아는 어디 갔는지, 내 손에 팔이 잡혀있는 루아는 머쓱해하며 헤헤 거리고 웃을 뿐이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챘는지 루아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나는 덜덜 떨고 있는 루아를 때리는 대신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먹여주었다.
“아얏!”
“...진짜 때리겠냐.”
“아, 아?”
루아는 딱밤을 맞은 이마를 만지며 당황한 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진짜 때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나는 잡고 있던 루아의 팔을 놓아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계속 할 거야?”
내가 내민 손을 잡으며 몸을 일으킨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엔 내 패배야!”
“이번엔?”
“어차피 오빠가 이기면 계속 여기 있게 되는 거잖아? 그러면 얼마든지 다시 싸울 수 있잖아? 굳이 여기서 힘을 다 뺄 필요는 없지 않겠어?”
“그래...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이제 그만 평소의 루아로 돌아와 주겠어? 이 대련을 끝내야 되니깐.”
루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 어라? 제가 지금 뭘 하고 있었죠?”
돌아왔군.
눈 하나 깜빡하면 인격이 바뀐다니 편리하네.
루아는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고는 뭔가 생각난 듯이 흠칫!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저기 서, 설마 그녀가 나온 건가요?”
루아는 아와와와 거리더니 나에게 달려와서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뭐해?”
“죄, 죄송해요! 그녀가 나왔으면 분명 다치셨을 거라 생각해서...”
방금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인격의 전환은 루아 안의 루아가 쥐고 있나보네. 보통은 반대 아닌가?
“안 다쳤으니 걱정 말아. 그보다 대련 결과 말인데...”
나는 레이가 쓰러져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본 루아는 일어나 있는 사람이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저 밖에 안 남은 건가요...?”
“응. 그래서 말인데, 계속할래?”
루아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즉시 답했다.
“아, 아뇨! 포기할게요!”
루아가 포기선언을 하자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메이드장이 나타나 내 쪽으로 손을 들면서 승리 선언을 했다.
“레이님 행동 불능! 루아님의 기권으로 대련의 결과는 진현성님의 승리입니다!”
그녀의 승리 선언에도 관중석은 환호없이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한 명의 소녀로부터 시작된 박수의 물결이 관중석 전체를 뒤덮었다.
내가 내 몸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자 메이드장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그럼 레이님은 저희가 회복실로 데려갈 테니 현성님께서는 총괄실로 가 계셔 주세요. 앞으로 하셔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해 드려야 하니까요.”
나는 고개를 젓고 쓰러져 있는 레이를 안아 올렸다.
“아뇨, 설명은 나중에 듣도록 하고 레이는 제가 직접 옮길게요. 그보다 어...”
“리엘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 그럼 리엘씨는 관중석에 있는 학생들을 인솔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현성님의 총괄 수속을 밟고 있겠습니다. 그럼 총괄실에서 뵙겠습니다.”
리엘씨가 투기장을 나서는 것을 보며 나도 반대쪽 문으로 나가 회복실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