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쉬는 시간.
* * *
헤벌레 웃으며 리리에의 사진첩을 보고 있던 스카지나가 문득 나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에는 왜 있는 거냐? 아까 정문에서 메이드한테 너 만나러 왔다고 하니깐 총괄 선생? 뭐 그런 거라고 말하던데.”
“그 말대로 취직했으니까 여기 있는 거지. 나도 언제까지 백수로 살 수는 없잖아.”
스카지나는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리는 듯 큭큭대며 웃었다.
“오랜만에 봤더니 농담이 늘었네. 네가 고작 돈 때문에 귀족 아가씨들을 돌보는 귀찮은 일을 맡는다고? 차라리 여기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서. 라고 하는 게 더 현실성 있겠다.”
거기까지 말한 스카지나는 설마! 하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역시 그거밖에 없군.’ 하고 중얼거리던 스카지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간 귀족 아가씨한테 관심이 있는 거구나?”
“...뭐?”
나는 방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내 귀를 의심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어이없어 하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카지나는 말을 이어갔다.
“역시 그런 거였어. 그게 아니라면 네가 이런 귀찮을 일을 맡을 이유가 없지.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도 그녀에게 나 이정도의 사람이야~ 하고 어필하려는 큰 그림이었던 거지?”
“...”
“진작 말을 하지! 그랬으면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녀 앞에서 얘기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스카지나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스카지나를 보며 나도 같이 손가락을 딱. 튕겨주었다.
쿵!
스카지나의 얼굴이 책상에 쳐박혔다.
“뭐, 뭐야?!”
스카지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야... 너 설마 강제 명령을...”
쿵.
“너무ㅎ...”
쿵.
“소환수를 존중...”
쿵. 쿵. 쿵. 쿵. 쿵. 쿵...
잠시 후.
“계속 할까?”
소환수의 몸을 소환사의 맘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인 ‘강제 명령’에 의해 책상에 얼굴을 계속 박아 만화에서 나올 법한 퉁퉁 부어오른 얼굴이 된 스카지나가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아닙니다! 다시는 안 까불겠습니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씨... 농담좀 한 거 가지고..."
나는 투덜거리는 스카지나를 무시하며 소파에 누웠다. 세레나가 돌아올 때까지 눈이나 붙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둘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여기에는 왜 있는 거야?”
어느새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온 스카지나가 다시 내게 물었다. 질리지도 않나보다.
“...왕성 귀족하고 거래를 했어.”
얘기를 안 해주면 계속 물어볼 것 같았기에 나는 스카지나에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말해주었다.
* * *
“사랑이다, 사랑. 이런 귀찮은 일까지 맡아가며 찾을 정도면.”
내 얘기를 다 들은 스카지나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어 스카지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해준 거야? 말만 했으면 내가 애들 풀어서 이잡듯이 뒤지고 다닐 텐데.”
“그럴 것 같아서 말 안 한 거다.”
스카지나 녀석이 말하는 애들이란 그의 수하인 아이스 드래곤과 아이스 와이번을 뜻할 터. 인간형태로 변하는 ‘폴리모프’도 배우지 않은 녀석들이 수두룩할 텐데 그런 놈들이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리고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계속 저택에만 있는 것도 좀 그랬거든.”
스카지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얘는 언제온데?”
스카지나는 기다림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몇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녀석이 고작 몇 분의 기다림을 지루해하다니. 나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금방 오겠지. 몇 천 년이나 살아온 녀석이 몇 분의 기다림을 지루해하냐?”
“몇 천 년이든 몇 분이든 간에 기다리는 건 항상 지루한 법이거든?”
“몇 천 년을 안 살아봐서 모르겠는데?”
“하하하,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서억.”
등등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똑똑.
“선생님? 아직 계신가요?”
노크소리와 함께 세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과회가 끝났나보다.
“그래, 아직 있으니까 들어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레나는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내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성공하셨나요?’ 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스카지나를 향해 고개를 까닥. 흔들었다. 나 대신 대답해주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스카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당분간 잘 부탁한다.”
“네, 네!”
세레나는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런 세레나를 보며 스카지나는 눈을 반쯤 감으며 두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네!”
“어째서 엘리멘탈 마스터인 거지?”
“네?”
세레나는 그가 한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클래스 말이야, 클래스. 인간들이 마법에 따라 분류해두는 거. 내가 보기엔 넌 엘리멘탈 마스터보다는 빙결사가 어울릴 것 같은데.”
움찔. 순간, 세레나의 몸이 떨린 것 같이 보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보이니까. 네 재능이.”
그렇게 말하는 스카지나의 왼쪽 눈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용안(?)을 쓰고 있는 상태로 보였다.
“다른 원소마법을 쓰는 게 시간낭비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얼음 마법의 재능이야. 얼음 마법 한 우물만 팠다면 분명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왜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거지?”
“스카지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세레나는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모르는 거 아니야?”
중간에 끼어든 내 말에 스카지나가 의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애매하게 여러 우물을 파기보다 확실한 하나의 우물을 파는 게 나은 거 아니야?”
스카지나의 말도 일리는 있다. 만 가지를 한 번씩 하는 것보다 한 가지를 만 번 하는 게 더 효율이 좋다고 하니까. 그 한 가지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여러 우물이 애매하다는 걸 어떻게 단정 짓는데?”
“뭐?”
“너, 나 처음 만났을 때 뭐라고 했어? 재능이 없군, 모든 것에. 분명 이랬지? 그리고 하찮은 목숨 낭비하지 말고 꺼지라고 했잖아. 하지만 1년 후에 어떻게 됐어? 나한테 졌지?”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냐? 그리고 너는 특수한 상황이잖아.”
“그러니까. 그런 특수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단정 짓지 말라는 거지. 너무 특출난 재능에 가려서 다른 것들도 보통 이상의 재능인데 썩히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쟤네 부모가 그런 것도 모르고 클래스를 정했겠냐?”
“그거야 그렇긴 하다만...”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홍차를 마저 마셨다. 이상하게 요즘 홍차가 잘 들어가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써서 못 마셨는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봐.
“여하튼. 남 신경 쓰지 말고 마법이나 잘 가르쳐줘.”
“네~ 네. 알겠습니다요. 그러니 연무장으로 가는 길이나 알려주십쇼.”
나는 연무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스카지나는 확인할 게 있으니 먼저 가 있겠다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나도 총괄로서 해야 될 일과가 있었기에 그를 따라 방을 나가려 했다.
“저... 선생님!”
세레나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나는 뒤를 돌아봤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왜인지 내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세레나는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마법을 배우고 나면, 다시 대련을 신청해도 될까요?”
“너희 다섯 명이랑?”
아무리 나라도 다시 그녀들과 싸우는 건 사양인데.
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혼자서요!”
고대룡의 마법을 배우면 비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순수하게 강자와의 싸움으로 얻어가는 경험을 원하는 건지.
뭐, 어느 것이든 걸어오는 도전은 피하지 않는 게 내 신조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세레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너와의 재대결. 기다리고 있을게.”
"네...!"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맞잡는 세레나였다.
부드럽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