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누가 이겼을까요? 글쎄요.
* * *
‘이 느낌은..?’
불꽃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세레나는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과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이것이 그녀가 추리해냈던 현성의 마법인 ‘합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지금까지 얼음 마법을 제외한 다른 마법들이 위력이 줄었던 이유와 몸이 이상하리만큼 무겁던 이유가...’
이질적인 마력이 그녀의 몸에 적응하기 위했던 것임을 깨달은 세레나. 현성에 대해 완전히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그녀의 몸을 휘감은 불꽃과 같이 붉어졌다.
‘대련이 끝나고 꼭 사과드려야지...’
불꽃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면서 세레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세레나는 그녀의 어깨부근에 떠 있는 붉은 구체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불꽃이 완전히 사그라지자 구체의 색깔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사용하는 원소마법에 의해 색깔이 변하는 건가?’
실험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세레나는 기초 원소마법 중 하나인, 불을 발화시키는 마법인 ‘파이어’를 하늘을 향해 영창했다.
화르륵!!
거대한 불꽃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꺄악?!”
평소에 사용하던 ‘파이어’와는 현저히 다른 위력.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저게 기초 원소마법이 맞는지 의심할 만한 위력이었다.
예상치 못한 위력에 세레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바로 시선을 돌려 구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예상대로 구체의 색깔은 붉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대체 이 힘은...’
“힘을 숨기고 있던 게냐? 라고 묻기에는 그대의 행동을 보니 아닌 것 같구나.”
들려오는 글라시아의 목소리에 세레나는 생각을 멈추고 공격에 대비해 자세를 다잡았다. 지금이라면, 이 강력한 힘이라면 그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라시아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있지 않고 관중석으로 가 있었다. 현성은 글라시아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회피하면서 휘파람을 부는 척을 했다.
‘뭔가 장치를 해놨었나 보군. 바로 발현하지 않은 걸 보니 서서히 몸에 적응하는 류의 장치인 듯하구나. 아마 원소마법을 증폭시켜주는...’
“...”
한창 세레나의 달라진 모습을 분석하던 글라시아는 문득 이런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 몸이 언제부터 적을 분석했는가?’
믿는 건 오직 자신의 힘뿐. 그 이상은 필요 없다. 상대를 분석하는 건 약자나 하는 짓이다.
‘오랜만의 싸움이라 물러졌나 보구나.’
그렇게 생각한 글라시아는 자세를 다잡으며 말했다.
“그럼.다시 시작하자꾸나. 이번엔 기대해 봐도 되겠지?”
세레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음 순간, 마법과 마법이 격돌했다.
* * *
쾅! 쾅!
마법이 격돌하는 것을 보면서 스카지나가 넌지시 물어왔다.
“그래서, 뭘 빌려준 거냐?”
“큰 나무에 가려진 새싹들을 키워줄 물뿌리개.”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겠어?”
“알아듣지 말라고 말하는 건데?”
“...”
스카지나의 어이없어하는 듯한 표정을 보며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고대룡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거다...”
그건 그렇긴 하지. 고대룡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칭송받을 텐데, 고대룡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이게 다 노력의 결과물이지.
“그래서, 뭘 빌려준 건데?”
“무지개 정령.”
“...뭐?!”
오늘따라 많이도 놀라네.
스카지나는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진짜 그의 귀로 들은 말이 맞는 건지 의심하는 듯 자신의 귀를 툭툭 두드렸다.
“귀에는 이상이 없는데... 내가 잘 못 들은 거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개 정령이란 정령술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세계에 몇 없는 희귀한 정령으로서 대신 싸워주는 다른 정령들과 달리 힘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버퍼라고 보면 되겠지.
나는 합일을 통해 세레나에게 무지개 정령의 마력을 빌려주었다.
직접 정령과 계약을 했으면 바로 증폭이 되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내가 그녀와 계약을 끊어야 되잖아. 버퍼가 얼마나 소중한데 그럴 수는 없지.
그렇기에 합일의 특성상 세레나의 몸에 그녀의 마력이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이고, 적응이 끝난 지금에 와서 그녀의 마력을 증폭시켜 준 것이다.
갑작스런 화염의 소용돌이와 구체에 관한 건... 나도 모르겠다. 내가 엘리멘탈 마스터가 아니니까. 나중에 물어봐야지.
“괜찮겠어?”
“뭐가.”
“아무리 합일이라고 해도 간접적으로 저 애랑 계약하게 한 거잖아. 그녀가 반발할 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걱정 마. 상호동의하에 빌려준 거니까.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그나저나 대련이 끝나면 어쩌게? 빌려준 그녀의 마력을 다시 돌려받아야 하잖아.”
“돌려받아야지. 위력은 줄겠지만 그래도 어떤 마법을 어떻게 썼는지는 감각이 남아있을 테니까, 나머지는 그녀에게 달렸어. 정령에 의한 증폭은 태생적 한계를 넘을 수는 없는데도 저 정도의 위력이 나올 수 있다는 건 꾸준히 연습하면 언젠간 닿는다는 뜻이니까.”
스카지나는 ‘오~ 선생 다 됐네.’ 라며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다시 싸움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창 대련이 진행되던 가운데 스카지나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결국 세레나의 승리인가?”
진득하게 끝까지 보고 한 번에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영화보면서 큰 장면마다 헉! 저게 뭐야! 저게 저렇게 되는 거야?! 하는 사람들 같아...
“뭔 소리냐. 당연히 글라시아가 이기지.”
“왜? 저렇게 되면 결국 얼음 대 나머지 원소 마법들이 되는 거잖아.”
“그럼 하나만 묻자. 너는 너 하나랑 나머지 다른 속성 드래곤들이 전부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고대룡 빼고.”
스카지나는 당연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내가 다 씹어 먹지!”
“잘 아네. 그런데도 세레나가 이길 것 같아?”
“응?”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스카지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글라시아와 세레나가 동일 선상에 있는 게 아니잖아. 아무리 증폭을 시켜줬다지만 경험의 차이도 있고, 마력의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글라시아가 이기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가...?”
콰과과광!!
스카지나가 멋쩍은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투기장 한 가운데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뭐야?! 끝난 건가? 누가 이긴 거지?!”
“아이씨! 네가 자꾸 말 걸어서 제대로 못 봤잖아!”
“바람이 이렇게 센데 뭐가 나 때문인데?!”
"네가 말 안 걸었으면 볼 수 있었잖... 우왁!"
둘 다 필살기라도 쓴 걸까. 우리에게까지 닿은 엄청난 풍압에 나와 스카지나는 흩날리는 머리를 잡으며 승자를 보기 위해 투기장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바람이 멈추자 자욱하게 흙먼지가 깔렸고, 그 속에서는 어떤 움직임이나 어떤 마법도 보이지 않았다.
“전광판! 전광판을 보자!”
황급히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꽤나 마법의 여파가 컸는지 전광판마저 지직. 거리며 부셔져 있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흙먼지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한없이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
그렇게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자 우리들의 눈에 들어온 광경에 나와 스카지나는 둘 다 감탄사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우.”
“...와우.”
이건 예상하지 못 했는데.
나는 의외의 결과에 그저 입을 벌리고 눈앞의 결과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글라시아와 세레나. 둘 다 투기장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러면... 무승부인가?”
“보통 둘 중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승자겠지만... 일단 지켜보자.”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둘 다 여전히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고 결계석 또한 부셔져 있어 그녀들이 회복실로 이동되지도 않았기에 나와 스카지나는 무승부로 합의,그녀들을 회복실로 옮기기 위해 관중석에서 투기장으로 내려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