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6화 (16/146)

〈 16화 〉 왕녀의 방문.(1)

* * *

3일 후, 아이리스 왕녀가 학교를 방문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이 학교의 총괄로서 왕녀를 맞이해야 했기에 나는 비몽사몽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나려했다.

“...”

양 팔에 느껴지는 이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구만.

상반신만 살며시 일으키며 발로 천천히 이불을 걷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라네즈 라헨느 쌍둥이 자매가 내 양팔을 차지하고 자고 있었다.

얘들은 자기 방도 버젓하게 있는데 왜 자꾸 기어들어 오는 걸까.

아무리 왕성 귀족이라고는 해도 10살이라는 어린 나이라 무의식적으로 의존할 상대를 찾는 걸까?

...일단은 깨울까.

나는 일단 지난번처럼 팔을 빼낸 다음 그녀들을 깨우려 했다.

“...”

내가 팔을 빼자 이번엔 내 품으로 파고들어 내 몸을 양 옆으로 껴안았다.

우뚝. 내 몸은 팔을 빼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애들이 진화했어!

내면에서 ‘귀여운 애들을 깨울 셈이야? 그냥 가만히 지금을 느껴!’ 라는 생각과 ‘안 돼! 침대로 끌어들이는 건 성숙한 여성이어야 된다고!’ 라는 생각이 충돌하는 가운데 내 눈에 그녀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저 볼... 말랑말랑해 보인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들의 볼로 향하는 내 손가락.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뒀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니 메이드장인 리엘씨가 나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언제부터...?”

“삼십분 전 부터일까요.”

“왜 오셨...”

“왕녀님의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 안 깨우...”

“행복한 표정으로 주무시고 계셨으니까요. 십 분 정도 뒤에 깨울 생각이었습니다만...”

“다 보신 건...”

리엘씨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싱긋 웃는 리엘씨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매도를 해주세요... 이해한다는 투로 말하시면 더 비참해지지 않습니까...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자매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들은 나와 리엘씨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그대로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쿨...”

“쿨...”

그녀들의 방이 아닌 내 방에서 자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건지 세상 편한 표정으로 다시 잠에 드는 그녀들이었다.

팔자 좋은 녀석들.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네.”

내 말에 리엘씨는 후훗. 하며 작게 웃었다.

“그만큼 현성님을 믿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저를요? 왜요?”

“소녀의 본능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뭐야 그게.

연약한 소녀의 보호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내게 향했다. 이런 소린가?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굳이 태클 걸 이유는 없었기에 문득 뇌리에 떠오른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리엘씨.”

“네?”

“그녀들은 잘 일하고 있나요?”

리엘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오히려 너무 잘해서 저희 메이드들이 할 일이 없어질 정도라니까요. 오랜만에 쉴 수 있어서 좋다는 메이드들이 많아요.”

“그거 다행이네요.”

취임식 때, 리엘씨와 걸어가면서 메이드들의 고충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한테 얻어온 소위 ‘자동인형’이라고 불리는 내 소환수들에게 그녀들을 도우라고 했었다.

리엘씨의 말을 들어보니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전투용을 가사용으로 바꾼 거라 좀 걱정했는데.

그 녀석이 들으면 기껏 전투용으로 만들어 준 것을 가사용으로 사용하냐며 아쉬워하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왕녀님께서는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실 겁니다.”

“아. 네.”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곧 대규모 장보기가 예정되어 있거든요.”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꾸벅. 인사를 하며 물러갔다.

그나저나 리엘씨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항상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어서 기계적인 메이드인줄 알았는데.

“자, 그럼...”

일단 이 꼬맹이들부터 깨워볼까.

“...”

...볼 한 번만 만지고.

* * *

쿵!

큰 바람을 일으키며 붉은색 비늘의 레드 드래곤이 땅으로 내려앉았다.

나와 레이를 비롯한 ‘왕녀를 맞이하는 모임’은 바람의 여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다시 정돈해야 했다. 정문 한쪽이 날아간 건 덤.

쓸데없이 요란하게도 오네.

“너무 요란하게 등장하는 거 아니냐.”

루아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듯,

“오, 오라버니..! 다른 분들이 무서워하시니까 용은 타고 오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라며 안절부절하는 듯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하하하! 미안 미안! 그녀가 나와 떨어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호탕하게 웃으며 용의 등에서 내리는 가벼운 갑옷 차림의 붉은 머리 청년.

드래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그녀의 턱을 긁어주는 그는 나이는 스물넷으로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아르테미아 가문의 장남인 리안 아르테미아였다.

어렸을 때 우연히 상처입은 용을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계약을 맺어 용기사 클래스가 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데리고 있는 고대룡들 때문인지 예전부터 나를 선망의 눈으로 보며 귀찮게 구는 녀석이다.

“다른 녀석들은?”

“아, 한 명은 금방 도착할 겁니다. 제 뒤에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요.”

“날아와?”

리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히히힝~! 거리는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얀색의 날개달린 말이 우리를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드래곤 다음엔 페가수스야..?

분명 아이리스의 편지에는 눈에 띌 것 같다고 따로 온다고 하지 않았어?

레드 드래곤과 페가수스로 하늘을 날아오면서 잘도 눈에 안 띄겠다? 어?

“자자, 여기서 멈춰주렴.”

다각. 다각.

날개를 접으며 천천히 걸어오던 페가수스가 우리들의 앞에서 멈추더니 한 여자가 페가수스의 등에서 내렸다.

“언니~!”

“언니..!”

그녀를 보자마자 라네즈와 라헨느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달려 나갔다.

그녀또한 반가운 얼굴로 자매를 껴안아주며 반가움을 표했다.

“잘 있었니?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고?”

“응!”

“응..!”

자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요 현성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네 동생들 때문에 못 지낸다.”

“네?”

“농담이야.”

반은 진담이지만.

루이네 아리아.

클래스는 소드 마스터. 검술에 관해선 이 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흰 피부에 엉덩이를 넘어가는 긴 백발. 팔랑거리는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차고 있는 검집까지 하얀색인, 검은색의 눈동자를 제외하면 ‘순백의 백합’ 이라는 이명에 맞게 모든 것이 흰색으로 이루어진 그녀였다.

“그나저나 폐가 됐을까요?”

“뭐가?”

“이 아이를 타고 온 거 말이에요.”

루이네는 페가수스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

페가수스를 타고 날아 들어와서 폐를 끼친 게 아니냐. 는 뜻인가.

나는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리안이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용타고 요란하게 등장한 녀석에 비하면 몇 백배 나으니까 신경 쓰지 마.”

“아... 용은 타고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루이네가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나는 어차피 내 돈 들여서 지은 곳도 아니니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 다음에 아직 안 온 녀석들의 행방을 물었다.

“아이리스 왕녀랑 프리무스와 하이네는?”

“왕녀님께서는 프리무스와 마차를 타고 오시고 계시고 하이네는...”

그때, 루이네의 허리쪽에서 초록빛이 번쩍이더니 그녀의 옆에 초록색의 포탈이 생성되었다.

“벌써 도착했어..?”

그 안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세레나와 같은 보라색의 곱슬머리에 연두색과 하얀색이 섞인 평상복을 입은 나긋나긋해 보이는 얼굴의 청년.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 현성님.”

하이네 크리샤.

크리샤 가문의 장남으로 클래스는 정령술사. 나와 같은 무지개 정령의 소유자로 귀족답지 않게 언제나 느긋한 녀석이다.

“프리무스는..?”

하이네의 물음에 루이네가 대답해주었다.

“금방 올 거야. 아까 날아오면서 뒤에서 오고 있는 걸 봤거든.”

잠시 후, 높은 사람이 타고 있을 것 같은 고급스런 마차가 우리들의 앞에 멈춰섰다.

문이 열리고, 금발의 청년이 마차에서 내리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하하하! 현성님! 오랜만이네요!”

내 손을 힘차게 위아래로 흔들며 격한 인사를 하는 금발의 훈훈한 인상의 청년, 르니아 가문의 장남. 프리무스 데 르니아였다.

클래스는 아버지인 아이테르 데 르니아와 같은 크루세이더.

젊은 나이에 왕국 기사단의 단장을 맡을 정도로 대단한 녀석으로 본인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겸손함까지 겸비한 사기적인 녀석이다.

그나저나 한 명이 안 보이는데?

“아이리스는? 너랑 같은 마차를 타고 온 거 아니었어?”

프리무스에게 묻자 그는 내리신다고 하셨는데? 라고 말한 뒤에 확인해보겠다고 말하며 마차로 향했다.

* * *

‘후우...’

마차의 안. 아이리스는 긴장한 탓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6년 만에 보는 현성이었다.

그의 이상의 여인의 모습이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하지만 6년이나 지났으면 취향이 바뀌었을 법도 했다.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아이리스는 휙휙,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시 바꿀 뿐이야.’

“아이리스님. 괜찮으십니까?”

똑똑. 마차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프리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자빠질 뻔한 몸을 겨우 추스르고, 아이리스는 프리무스에게 말했다.

“괘, 괜찮아요! 지금 가요!”

가슴에 손을 대며 심호흡을 한 아이리스는 마차의 문을 열며 햇빛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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