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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7화 (17/146)

〈 17화 〉 왕녀의 방문.(2)

* * *

달칵.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아이리스 왕녀가 마차에서 내렸다.

“안녕하세요, 현성님.”

“...”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등과 엉덩이의 중간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 그런 금발과 어울리는 은빛의 티아라.

새하얀 피부에 발그레한 뺨, 앵두 같은 입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극상의 몸매까지.

고급스런 양복을 입어 귀여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잡은, 6년 전의 당돌한 꼬맹이일 때와는 천지차이였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키가 좀 큰 정도겠지 라고 했던 생각을 다시 뇌 속으로 집어넣는 느낌이었다.

“현성님?”

그녀의 미모에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자 어느새 내 앞까지 왔는지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두근!

갑작스런 미소녀의 비기, 밑에서 올려다보기에 흠칫 놀라며 뒤로 자빠질 뻔한 몸을 겨우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어. 그래... 어서 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인사하는 나를 보며 아이리스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넋이 나간 것 같은 얼굴이신데...”

“아, 괜찮아. 그냥 많이 달라졌다 싶어서.”

내 말에 아이리스는 걱정스럽다는 눈빛은 어디 갔는지 기쁘다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6년 전의 꼬마 왕녀가 아니랍니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다니까.”

“그 정도에요?!”

아이리스는 콰광. 이라는 효과음이 어울릴 것 같은 충격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야.”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다니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아이리스.

“일단은 올라가서 얘기하자. 언제까지 서서 얘기할 수는 없잖아?”

“네!”

아이리스가 활기차게 대답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응?”

내가 의문 섞인 목소리를 내자 아이리스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뒀다.

“아, 죄송해요! 무의식적으로 옛날 버릇이 나왔네요.”

내가 그녀의 전속 기사였던 시절의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가.

성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여기저기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잔재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해줘?”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리스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자.”

내가 손을 내밀자 아이리스는 활짝 웃으며 내 손 위에 그녀의 손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 * *

무수히 많은 귀족 소녀들의 시선을 느끼며 우리들은 내 방에 도착했다.

이 녀석들이 가고 난 뒤에 끊임없는 질문공세로 귀찮아지는 소리가 대뇌에 전두엽까지 전해지는구만.

“여기.”

내가 아이리스를 포함한 여자애들한테만 홍차를 내주자 남성진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저희는요!”

“남정네들은 알아서 타 먹도록.”

“우우~”

“하하하! 여전하시네요, 현성님!”

대충 흘려듣고, 나는 아이리스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에 온 정확한 이유가 뭐야?”

여기에 오기 전에 마차에서 꺼내진 그녀의 짐. 그리고 홍차를 받을 때부터 안절부절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할 수 있던 질문이었다.

“네?”

“시찰이라기에는 짐이 너무 많잖아. 마치 여기에 며칠 있을 사람처럼.”

아무리 이곳이 귀족 소녀들만이 모인 특수한 학교라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왕녀가 고작 시찰 때문에 이곳에 올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이리스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못하고 있자 프리무스가 우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에 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리스에게 찡긋. 윙크를 하며 자기들끼리만 아는 신호를 주고받은 후 입을 여는 프리무스.

“잠깐.”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하고는 내 방의 문을 열었다.

“뭐 하냐, 너네.”

“”“아...”“”

그곳에는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어떻게든 듣겠다는 듯 방 문에 귀를 대고 있던 귀족 소녀들이 있었다.

나 이 장면 일주일 전에 봤는데.

세레나가 내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며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저희도 대화 나누고 싶어요!”

“맞아요! 왕성 귀족 분들은 같은 집안 분들이라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저희는 이럴 때가 아니면 못 본다고요!”

조금이나마 프리무스 일행의 얼굴을 눈에 담기 위해 폴짝폴짝 뛰어대는 소녀들.

유명 아이돌의 매니저의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이 녀석들을 어떻게 조용히 돌려보낼까 생각했다.

“자자~ 아리따운 아가씨들! 금방 대화가 끝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들, 꽤 오래 있을 것이니 어디 갈 걱정 없이 모든 분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다고요?”

어느새 다가온 리안의 말과 미소에 그녀들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미남이라는 건가.

삽시간에 아무도 없게 된 내 방 앞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 * *

“그러니까, 그때 말했던 것을 실천하기 위해 너희들이 여기 남아서 애들을 돌볼 테니 나는 아이리스랑 여기 있는 애들을 데리고 놀다 오라?”

프리무스의 말을 다 들은 나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재확인 차 다시 물어봤다.

“맞습니다! 하루 정도 이곳에 없으시다고 해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큰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저희에게 맡기시면 되니까요!”

맡겨만 주세요! 라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는 프리무스.

나는 프리무스가 혼자서 저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 아이리스를 흘낏. 곁눈질로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리스는 흠칫. 놀라더니 한 방울도 안 남은 찻잔을 들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내 시선이 닿자 고개를 돌렸다.

...다 한 패였구나?

“그런데...”

“찬성!!”

나는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갑자기 라네즈가 손을 들며 격한 찬성의 표시를 하는 바람에 끊기게 되었다.

“두 달이 넘도록 여기 안에만 있으니 심심해! 그치 라헨느!”

“응..!”

라헨느도 고개를 끄덕이며 라네즈의 말에 동조했다.

라헨느의 동조에 힘을 더하겠다는 듯 라네즈가 다른 애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언니들! 언니들도 그렇지?”

“으, 응!”

“그러네. 오랜만에 숨 좀 돌리는 것도 괜찮을지도.”

대체로 라네즈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

한 명만 빼고.

고민하는 듯 말없이 가만히 있는 레이.

나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기에 아까 라네즈가 끼어들어 말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너희들. 일은 어쩌고?”

리안이나 하이네야 그렇다 쳐도 프리무스와 루이네는 기사단을 이끄는 몸들인 만큼 그에 관련한 일이 있을 터. 이곳에서 며칠이나 귀족 소녀들의 돌보미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랑 루이네. 둘 다 일주일 휴가를 내고 왔으니까요! 어차피 쓸 일도 없는 휴가였는데 왕녀님께서 자신 좀 도와달라고 하셨...”

“와! 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아이리스가 손을 휘저으며 프리무스의 말을 끊었다.

“하아... 이번만이야.”

동생들의 간절한 눈빛을 계속 받던 레이 또한 어쩔 수 없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마저 함락되자, 모두의 시선의 최후의 보루인 내게로 향했다.

여기서 거절하면 나만 나쁜 놈이 되는 건가.

...그래. 하루 정도 없다고 뭔 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저 녀석들, 저렇게 보여도 최정예인 놈들이니 네임드 마족급까지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지.

“그래... 하루 정도는 뭐 괜찮겠지.”

최후의 보루인 나까지 무너지자 리안과 프리무스는 성공을 자축하는 듯 짝! 하며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그럼 마차가 한 대 뿐이니 두 팀으로 나뉘어서 가면 되겠네요! 일단 아이리스님과 현성님이 먼저 가서 탐색을 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프리무스의 노골적인 제안에 나는 이것도 합의된 사항인가 하며 아이리스를 봤지만

“네?!”

놀라는 아이리스의 반응을 보아하니 미리 합의가 되지 않은 사항인 듯 했다.

여기서는 동참 좀 해줄까.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벌이다.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더 놀려주고 싶었기에 나는 아이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해? 안 가? 시간 끌면 놀 시간 다 지나간다고?”

아이리스는 이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된다는 듯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프리무스를 쳐다봤지만 내가 계속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내 손 위에 그녀의 손을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현성과 아이리스가 문을 넘어 사라지자 세레나가 기다렸다는 듯 프리무스에게 물었다.

“프리무스 오라버님.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때 말했던 것이 뭔가요?”

세레나의 질문에 프리무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거? 우리가 백야에 있었던 건 알지? 그때 현성님도 우리와 같은 40명의 백야 중 한 분이었는데 마지막 전투 때 우리가 은혜를 입어서...”

한참 말하던 프리무스는 문득 아. 하며 말을 멈췄다.

“아이고...”

리안은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고.

“...”

루이네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으며.

“하하~ 너 이제 큰일났다~”

하이네는 프리무스를 놀리듯 깔깔대며 웃었다.

다음 순간, 레이를 제외한 나머지 소녀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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