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8화 (18/146)

〈 18화 〉 백야.

* * *

‘백야.’

현재는 아벨 왕국 기사단의 명칭이지만 그 어원은 붉은 달이 지고 흰 태양이 뜬다는, 마왕 토벌단을 의미하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마왕 토벌단.’이란.

마족의 편과 인간의 편으로 나뉘어 수많은 목숨을 죽음으로 끌고 들어간 훗날, 인마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

더 이상 인명피해가 났다가는 밀릴 것이라고 판단한 인간 진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용사를 제외한 최정예 40명을 뽑아 마왕의 뒤를 노려 마왕을 직접 치자는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파티를 뜻했다.

강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얼음 여왕 글라시아가 다스리는 글라시아 설원부터 시작해 ‘고대 염룡 이그니타’의 화산까지, 당연하겠지만 마왕성까지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왕성에 도착한다고 끝나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마왕을 비롯한 간부들이 총집합해 있는 장소였기에 그들 전부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마왕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과 수뇌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장에 전해졌다.

머리를 잃은 마족들은 점점 무너졌고 마족들의 편이었던 종족들까지 마왕이 졌다는 소식에 빠르게 발을 빼면서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어 결국 전쟁은 인간 측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전쟁 승리의 가장 큰 공을 세운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보상이 주어졌다.

사망한 20명은 왕립 묘지에 묻혔으며 유가족에겐 전쟁 영웅으로서의 혜택이 돌아갔다.

살아남은 20명에겐 ‘이 사람은 마왕 토벌단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입니다.’ 라는 뜻을 지닌 펜던트와 귀족이 아닌 자에겐 귀족의 지위가 주어졌지만 대부분은 '유명해지거나 권력을 얻으려고 목숨을 건 게 아닙니다.' 라는 말로 거절하고 펜던트만 챙긴 다음 다시 그들만의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국왕은 그런 그들을 배려해 이름이 알려진 왕성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백야에 있었던 자들의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쓰여 널리 퍼졌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그들의 영웅담을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전설적인 인물 중 한 명이 그녀들을 관리하는 선생으로 이곳에 있다는 것을 듣게 된 그녀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상하리만큼 무덤덤한 레이를 제외한 나머지 소녀들이 자기들끼리 숙덕대는 가운데, 프리무스는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현성님이 어디 가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말하셨는데...”

그런 프리무스를 보면서 리안이 그를 위로한다는 듯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걱정 마... 푸흡..! 별 일 없을 거... 푸흐흡!”

하지만 간간이 새어 나오는 웃음은 막을 수 없었다.

“먼저 간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말하는 프리무스를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하이네와 리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하하!!!”

“하하하~”

“웃지 마... 난 심각하다고...”

리안은 뭘 그렇게 걱정하냐는 듯 다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야, 7년 전도 아니고 현성님이 그런 거 가지고 뭐라 하시겠냐?”

“그래~ 그러니 정신 차려~”

리안과 하이네의 말에 프리무스는 ‘그, 그렇겠지?’ 라며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건가요? 아니, 펜던트만 보여주셨어도 대련은 안 해도 됐을 텐데...”

세레나의 물음에 프리무스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희들이 알게 되면 이것저것 질문을 하느라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분은 뭐랄까, 관심받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거든.”

프리무스에게 거들 듯 리안이 덧붙였다.

“맞아, 귀족지위도 포기하시고 증표인 펜던트만 받아가셨을 정도니까.”

“솔직히 그분은 귀족지위가 필요 없지 않아?”

“그것도 그러네.”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하며 킥킥대는 그들을 보며 세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언니! 언니! 선생님에 대해 더 들려줘!”

“듣고 싶어...”

다른 한 쪽에서는 라네즈, 라헨느 자매가 루이네의 팔을 잡아끌며 현성의 얘기를 더 들려 달라며 그녀에게 졸랐다.

루이네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프리무스와 리안은 이때다 싶어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그녀의 실언을 유도하기로 했다.

“너라면 괜찮지 않아? 현성님은 미인에겐 관대하시잖아. 괜히 애인이 두 자릿수를 넘기시는 게 아니라고.”

“그래, 차라리 네가 말했다고 하면 두 대 맞을 거 한 대로 줄어들지 않을까?”

그 말에 세레나와 루이네는 동시에 경멸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너희들 바보야?”

“루이네 언니께서 실수로 말을 꺼냈다고 퍽이나 믿으시겠네요.”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마...”

바로 항복을 외치는 그들을 보며 그녀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말해 달라고 졸라대는 라네즈 자매, 어떻게 이 상황을 넘겨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루이네를 뒤로 하고 세레나는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궁금하긴 하네요.’

고대룡을 2마리나 소환수로 데리고 있는데다가 ‘합일’이라는 소환수의 마력을 그대로 다루게 해주는 마법까지.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궁금해지는 것만 더 많아졌다.

‘아! 그러고 보니 소원권이 있었죠?’

얼음 여왕 글라시아와의 대련에서 무승부를 기록해 서로 한 번씩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되는 소원권을 나눠가진 그들.

세레나는 그것을 쓸 때가 왔다는 생각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 *

“에취!”

아벨 왕국의 제 2의 수도라 불리는 도시 미드나.

관광을 위해 그곳으로 향하는 마차의 안에서 나는 왜인지 모를 재채기가 나왔다.

누가 내 뒷담이라도 하는 건가?

“괜찮으세요?”

아이리스가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아, 고마워. 그런데 이거 콧물 닦는데 써도 되는 거야?”

고급 손수건 같은데. 엄청 부드러워.

내가 귀해 보이는 손수건을 고작 코를 닦는데 써도 되나 고민하고 있자 아이리스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좀 앞당겨지긴 했지만 현성님께 드릴 거였으니까요.”

“이걸? 나한테?”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렇게 곧 눈물이 글썽일 것 같은 눈으로 보면서 물어보는데 싫다고 하면 내가 쓰레기가 되잖아.

싫지도 않고.

이상한 걸 제외하고는 미소녀가 준다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 리가. 마음에 드는 걸?”

내가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짓자 아이리스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그거, 제가 직접 짠 거거든요.”

게다가 수제라고? 절하면서 받아야지.

“그런데 난 너한테 줄 게 없는데?”

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자 아이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현성님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저에겐 최고의 선물이랍니다.”

“그런 게 선물이 될 리가 없잖아.”

6년 전이랑 똑같은 소리하고 있네.

“진짠데...”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된다. 그건 내가 오랜 시간 지켜온 철칙 중 하나였다.

그녀에게 뭘 주면 좋을까.

돈...은 왕녀라 필요 없을 것 같고. 장신구는... 역시 왕녀라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을 것 같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과거에 써먹었던 방법이 떠올랐다.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있으면 하나만 말해봐. 이상한 거 빼고.”

그것은 바로 소원권.

선물을 준비하는 쪽에서 받는 쪽이 뭘 해도 마음에 들 것 같지 않으면 당사자에게 원하는 걸 말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아이리스에게 원하는 것을 하나 말해보라고 말했다.

“그럼..!”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리스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무릎베개 해주세요!”

“...그거면 돼?”

“네!”

안다면 누구라도 질투할 만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리스 왕녀의 수제 손수건을 받은 보답치고는 너무 짠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소원권을 준 건 나, 그 소원권을 사용해 무릎베개를 해달라는 소원을 빈 건 아이리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무릎을 툭툭 치며 이리 오라는 표시를 보냈다.

“자.”

“실례하겠습니다~”

내 무릎을 베고 눕는 아이리스. 그녀는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좋은 건가?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미소녀에게 받는 무릎베개가 얼마나 행복한 기분인지 떠올랐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리스에게서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확인해보니 아이리스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자고 있었다.

“...”

슬슬 저려오는 무릎에 깨울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왕녀라는 신분 때문에 실수라도 할까 평소에 바짝 긴장하면서 살았다는 것이 생각났기에 나는 도착하거나 그녀가 스스로 깰 때까지 가만히 놔두기로 했다.

그래,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풀어지게 행동할 수 있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아이리스에게 덮어주었다.

조금만 더 참아라 내 무릎.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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