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도시 관광.(2)
* * *
‘고양이의 하루.’ 라고 간판에 적혀있는 가게의 안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커피향이 나를 반겨주었다.
카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후식과 함께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기 위해 나는 종업원에게 사람이 없는 2층의 자리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괜히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함이었다.
아이리스야 인식 저해의 반지덕분에 눈에 잘 안 띈다고는 해도 다른 녀석들은 백이면 백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번쯤은 뒤돌아볼만한 얼굴의 미소녀들이었으니까.
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안내받은 우리들은 4명과 3명으로 나뉘어 4명 쪽엔 나와 아이리스, 라네즈 라헨느 자매가 앉았고, 루아와 세레나. 레이는 반대편에 앉았다.
“맛있게 드세요~”
맡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은 커피의 향을 느끼며 나는 한 모금 홀짝였다.
그래, 이거지.
애들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 요 며칠간 서류뭉치의 산을 처리하느라 종이만 봐도 토가 나올 것 같았는데, 이 한 잔 커피에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내려가는 느낌이야.
그렇게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던 중,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나저나 암부 녀석들. 지금까지 소식하나 안 보내던데 제대로 찾고 있는 거 맞겠지?
아르테미아 가주가 내게 넘긴 뒷세계에 능통한 암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
그 권한을 이용해 사람을 한 명 찾고 있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먹튀를 한 건 아닌가. 하고 잠깐 생각을 했지만 이내 양지에서도 8년을 찾았는데도 못 찾았을 정도니 아무리 암부라도 일주일 만에 찾는 건 불가능하겠지. 라는 생각이
중간보고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응?”
무언가가 내 옷자락을 잡아끄는 느낌에 옆을 보니 라헨느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얘기... 듣고 싶어요...”
“응? 무슨 얘기?”
뭘 물어보려고 저렇게 반작이는 눈으로 나를 보는 걸까. 귀엽네.
“마왕 토벌단이었을 때... 얘기...”
“푸흡...!”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라헨느의 말에 입안에 있던 커피가 밖으로 뿜어져 나올 뻔 했으나 황급히 입을 막고 고개를 들어 억지로 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 덕에 사레가 들렸지만 그래도 뿜는 것 보다는 낫지.
“쿨럭! 쿨럭!”
“괘, 괜찮으세요?!”
아이리스가 황급히 내 등을 두드리며 사레들린 몸을 달래주었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라헨느에게 어떻게? 라고 묻는 의미의 눈빛을 보냈다.
“여기에 오기 전에... 금발 오빠가...”
여기에 오기 전. 금발 오빠.
그 말들이 뜻하는 인물은 한 명, 프리무스 데 르니아. 르니아 가문의 장남인 그 녀석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어디 가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라헨느. 혹시 너희들 말고 다른 애들도 알고 있는 거니?”
제발 아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지만 겉으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라헨느는 고개를 저었다.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질문으로 인한 귀찮음이 덜하겠구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렇게 숨길 일인가요?”
이번엔 세레나가 내게 물었다. 세레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글라시아 설원부터 고대염룡의 화산까지. 험난한 여정 끝에 그 마왕마저 무찌른 전설적인 업적이라고요? 그 징표인 펜던트만 보여주고 다녀도 여기저기서 찬양하며 받들어 모실 텐데...”
영웅서적을 얼마나 읽었는지 그 내용을 달달 외며 말을 이어가는 세레나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 덕분에 떠오른 과거의 기억에 나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찬양받으려고, 누가 알아주기를 원하고 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놈들도, 나도.”
“네?”
“아니다, 아무것도.”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 나는 잠시 편지 한 통 보내고 오겠다고 말한 뒤에 가게를 나섰다.
* * *
집무실의 안.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뭉치의 산을 치우면서 간간이 홍차를 마시던 프리무스는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네~”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메이드장인 리엘. 그녀는 프리무스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에게 편지를 한 통 건네주었다.
‘누가 보낸 거지?’
이 시간에 그에게 편지를 보낼 사람은 없을 터. 프리무스는 의아해하며 편지 봉투를 뜯어 편지의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편지에는
돌아가서 보자
라고 쓰인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의미의, 그에게 있어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말이 적혀있었다.
* * *
프리무스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자리로 돌아오자 라네즈와 라헨느가 내 양 무릎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왕 토벌단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내가 귀여운 것에 약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무서운 아이들.
나는 결국 두 손을 들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래.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니? 아, 참고로 마왕 토벌단에 있던 녀석들에 대해서는 말 못해 주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네즈와 라헨느, 세레나와 루아, 그리고 아이리스까지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말했다.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요!”
“다, 다크 나이트에 대해 궁금해요..!”
“다크 나이트에 대한 얘기를 해주세요!”
다크 나이트. 종족 불명에 이름도 없지만 항상 칠흑 같은 검은 갑옷을 입고 거대한 검은 대검을 휘두르며 타고 다니는 말마저 검었기에 생긴 이명으로 마왕을 지키는 간부 4명 중 하나였다.
생긴 것만 보면 듀라한 같았는데 의외로 목이 잘 달려있었단 말이지. 그렇다고 내가 베어본 건 아니고.
“어떤 게 궁금한 건데?”
“서적에서 읽기로 충의가 넘치며 충성하던 주군께 그 어떤 적도 가게하지 않는, 기사 중의 기사라고 들었어요! 진짜였나요? 그리고 강했나요?”
흥분하며 말하는 세레나. 라네즈와 라헨느도 거기에 동조했으며 루아도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강했을 거야! 그야 태양빛마저 삼켰다고 알려진 칠흑검을 가지고 있었는걸!”
“그리고... 말...”
“그래! 다크 나이트의 애마, 검은 불을 내뿜어 닿는 모든 것들을 영혼까지 태워버린다는 흑염마(??馬)인 ‘나이트메어’도 있었잖아!”
눈을 반짝이며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잠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강했지. 아니, 그냥 강한 것도 아니고 엄청 강했어. 40명의 마왕 토벌단 중 10명이 그 녀석을 상대하다 죽었을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내 것이 된 얼음 여왕 글라시아도, ‘폭룡(??)’이라고 불리던 고대 염룡(??) 이그니타도 강했다. 아니, 마왕성으로 향한 여정 중 강하지 않았던 녀석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그 녀석의 강함은 그들보다 훨씬 강했다. 외적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면 인간은 강해진다고 했던가. 그 말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포함되는 말이었다.
기사 중의 기사. 확실히 그를 표현하기에는 최적의 단어였다.
부하들을 모두 잃었음에도, 휘두르던 칠흑검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그의 애마인 ‘나이트메어’가 마지막 불꽃을 내뿜은 뒤에 소멸했음에도 끝까지 마왕을 위해 선 채로 죽을 때까지 우리들과 싸웠던 녀석.
적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녀석이었다.
* * *
“여기까지. 내가 겪은 다크 나이트에 대한 얘기다.”
내 얘기를 다 들은 그녀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세레나는 ‘역시 서적에 적힌 그대로였네요.’ 라며 여운에 잠긴 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멋있다..!”
“멋있어...”
라네즈, 라헨느 자매는 옛날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에 대해 들은 어린 아이들 마냥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아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아이리스는 ‘그렇게 된 거군요...’ 라며 방금 내가 했던 얘기를 곱씹는 듯 했다.
레이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그녀가 주문한 홍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없는 그녀를 보며 나는 의아함이 들었다.
신기하네.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오빠가 프리무스고 아버지가 아이테르잖아? 그들 특성상 허구한 날마다 영웅담을 들려줬을 텐데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저럴 지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기에 나는 혼자 큭큭대며 웃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포장했다고는 해도 결국 우리들이 싸웠던 ‘적’에 관한 얘기인데 이렇게 사실적으로 얘기해도 되는 걸까?
서적에 적혀 있는 다크 나이트의 얘기와 내가 그녀들에게 해준 얘기의 다른 점은 거의 없었지만 직접 겪어본 사람이 말하는 건 신빙성에서 차이가 난다.
자칫해서 동조되기라도 하면 나 큰일 나는 거잖아.
“아참! 펜던트도 보여주세요!”
“...”
“보고 싶어서요~”
굳이 꼭 봐야겠냐는 내 눈빛에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세레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항상 옷의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펜던트를 꺼내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백강(白?)이라는 언제나 하얀 빛을 유지하는 희귀한, 찾는다고 해도 가공하는 것도 어려운 광물로 만든 세상에 단 20개뿐인 둥근 원 모양의, 흰 태양을 의미하는 펜던트가 하얀 빛을 내며 우리들의 눈을 부시게 했다.
사람 없는 2층으로 온 게 정말 다행이었다. 이걸 다른 녀석들이 봤다가는 동물원의 동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모험가 녀석들과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까.
“다 봤지? 그럼 슬슬...”
얘기도 끝났겠다, 펜던트를 다시 집어넣고 슬슬 나가자고 얘기하려던 찰나.
쾅!!
하는 거대한 폭발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