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도시 관광..?
* * *
아이리스를 포함한 애들한테는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보기 위해 가게를 나섰다.
밖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가볍든 무겁든, 무장한 모험가들이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무언가에 혈안이 된 눈이었다.
물어볼 만한 사람을 찾던 중, 익숙한 얼굴의 검은 머리의 청년이 내 눈앞을 지나갔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멈춰 세웠다.
“저기...”
“죄송한데 바쁘... 어? 현성씨?”
나를 알아본 그가 오랜만이라는 듯 반갑다는 얼굴을 했다.
“야! 뭐해! 빨리 안 오면 다른 녀석들이 가로챈다고!”
“금방 갈게! 먼저 가있어!”
그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를 재촉했지만 금방 간다고 말한 그는 빠르게 지금 일어난 일을 내게 설명해주었다.
그가 내게 말해준 건, 언데드의 군세가 도시의 관문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으며 원래 기사단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현재 기사단의 대부분은 수도 아벨로 올라가 있기에 병력이 부족해 길드에서 모험가들에게 보수를 줄 테니 언데드의 군세를 막아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혈안이 된 눈으로 달려간 거구나.
내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자,
“당신도 참가하시게요? 당신이 참가하면 저희들이 받을 돈이 줄어드는, 아니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는데...”
라며 그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전한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는 싶지만 아쉽게도 선약이 있어서.”
옛날 같았으면 좋다구나~ 하고 적당한 애들 소환해서 다 쓸어버렸을 텐데.
왜 내가 여유로울 땐 그런 일들이 안 일어나나 몰라.
...일어난다고 해도 안 갈 거지만.
“그럼 더 지체하다가는 동료들에게 질타 받을 것 같으니 전 빨리 가봐야겠네요.”
“그래. 잘 가.”
그를 배웅하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그녀들에게 나는 아까 그에게 들었던 것을 말해주었다.
“언데드?!”
“싫어...”
라네즈와 라헨느가 질색이라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항상 거의 졸린 표정으로 있던 라헨느조차 얼굴을 찡그리게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저희 대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세레나가 왜 가만히 있느냐는 듯 물었지만 나는 별 거 아니라고 말하며 커피잔을 비웠다.
“괜찮아, 괜찮아. 기껏해야 언데드들이잖아? 모험가 길드 사람들이 다 처리해줄 텐데 대피를 왜 해? 우리는 여유롭게 오후를 보내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서 푹 자면 돼.”
“그런가요...”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B랭크 이상. 게다가 아까 그 남자는 A랭크 모험가다. 실력들도 실력들일뿐더러 아무리 ‘군세’라고 이름 붙여도 돈에 눈이 돌아간 모험가들의 상대는 되지 못하지.
세레나는 ‘선생님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죠...’라며 다시 찻잔을 입으로 가져다댔다.
그런데 아까부터 뭔가 걸린단 말이지. 뭘까? 이 위화감은?
언데드들이 ‘군세’라고 불릴 만한 양이 모일 정도면 누군가 일부러 일으켜 세웠단 말인데...
왜?
네크로맨서 클래스와 작당을 해서 길드의 돈을 뜯으려고? 아니다. 아무리 돈과 보물이 좋은 모험가들이라고는 하지만 긍지는 높은 놈들이니 그럴 리가 없어.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일이 예전에 있던 것 같은데... 뭐였지?
등등의 생각을 하며 머리를 감싸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커피 잔의 내용물이 빈 것을 깨닫고는 맥이 빠졌다.
...그래, 참여하지도 않을 건데 생각해서 뭐하냐. 그냥 커피나 한 잔 더 마시자.
내가 커피를 한 잔 더 시키려고 종업원을 부르자 다른 애들도 나를 따라 추가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바깥이 좀 소란스럽죠?”
그녀들의 주문을 받아 적던 종업원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깥에서는 쾅! 쾅! 대며 모험가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뭘요, 오히려 활기차서 좋은데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네요. 그때도 모험가 분들이 해결하셨는데.”
“예전에요?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종업원은 옛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들고 있는 펜을 턱에 대었다.
“그게... 한 6년 전이었나? 제가 어렸을 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백야가 아닌 다른 기사단이었지만요.”
“6년 전?”
“네, 그때도 아마 언데드들이었을걸요? 어라? 말하고 보니 신기하네요.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은 정도인데요?”
“다 주문했어!”
“아, 네!”
종업원은 꾸벅. 인사를 한 뒤 주문을 전달하러 돌아갔다.
“신기한 우연도 다 있네. 안 그... 어?”
“그러게요. 어떻게 그렇게 똑같... 아?”
나와 아이리스는 동시에 휙, 하고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또 뒤로 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그때랑 비슷, 아니. 똑같을 정도니까요.”
아마도 우리 둘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찜찜함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아이리스 왕녀의 전속기사로 있을 시절에 벌어졌던 ‘왕녀 납치 미수 사건’과 이상하리만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분명 나를 포함한 다른 녀석들이 한 쪽 관문을 막으러 간 사이에 다른 쪽 관문으로 돌아 들어온 마족들이 아이리스를 납치해가려고 했었지.
하지만 아이리스의 옆에 붙여둔 내 소환수 덕분에 그 녀석이 버티는 동안 내가 재빨리 돌아와 한 녀석만 빼고 몰살시켜 실패로 돌아갔지만.
살아남은 녀석이 강했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나타나서 인질로 잡혔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내준 거였고.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녀석은 아마 내가 살려 보냈던 그 녀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와 같은 맥락이라면 분명 이번에도 뒤를 칠 터.
나가서 모험가들에게 말해줘야 되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다들 앞의 언데드들에게만 신경쓰느라 뒤쪽엔 아무도 없지 않은가.
그 말인 즉슨 내 정체를 들킬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이곳에서의 나는 마왕 토벌단인 '백야' 가 아닌 그저 ‘적당히 강한 모험가’ 였으니까.
“맛있게 드세요~”
때마침 추가로 주문한 게 나왔다. 그녀들이 음식에 시선이 쏠려있을 때 나는 스리슬쩍 자리를 빠져나왔다.
루아만이 ‘어, 어디 가세요?’ 라고 물었고 나는 화장실. 하고 짧게 대답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아이리스가 걱정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걱정 마. 그때 그 녀석이 맞는다면 말로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안 통한다면 그대로 물리력을 행사할 뿐이고.
이 녀석들만 여기에 놔두고 가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마력과 실력을 따지자면 A랭크는 우습게 올라갈 녀석들이니 걱정할 건 없겠지. 여차하면 또 다른? 루아도 있고. 게다가 S랭크까지 노려볼 수 있는 레이도 있...
“...응?”
...어디 갔어?
어느 샌가 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지만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엔 아무도 없다고 했다.
...설마.
나는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황급히 모험가들이 달려가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 * *
“역시 텅텅 비었군.”
중후한 목소리, 외견으로 봤을 때 중년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남성은 휑한 관문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 백야의 단장과 부단장은 왜인지 휴가를 내고 사라졌고 그 둘의 부재에 기사단의 대부분은 수도로 올라갔지. 병력이 부족한 기사단은 모험가 길드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돈에 눈이 먼 모험가들은 득달같이 달려들겠지.”
남성은 너무나 잘 풀리는 작전에 시시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바뀌는 게 없... 윽!”
6년이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느껴지는 고통에 그는 한 쪽만 남은 뿔을 움켜잡았다.
한 남자의 얼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6년 전, 아이리스 왕녀가 이 도시에 와 있다는 소식을 내부자로부터 들은 그와 그의 동료 마족들은 도시에 있던 모험가들과 아이리스 왕녀의 옆에 있던 호위들을 유인한 다음 혼자 남은 그녀를 납치하는데 ‘거의’ 성공할 뻔했다.
갑자기 왕녀의 곁에 소환된 눈부시게 흰 날개를 지닌 여자와 그 여자가 그들을 상대할 동안 어느 샌가 뒤에서 나타난 한 남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지?
네. 반경 일정 거리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그 남자의 손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그를 제외한 그의 동료들이 전부 사라져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뿔 또한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가 아니었다면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깔끔한 절단면으로 잘려 있었다.
패닉에 빠진 그였지만 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는지 본능적으로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을 인질로 삼았고, 그 남자는 그를 한심한 눈으로 가라며 손짓했다.
겨우 빠져나온 그는 한동안 검은색이 들어간 것만 봐도 부들부들 떨 만큼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렸었다.
6년이 지났음에도 마지막에 봤던 그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아직도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고개를 휙휙 저으며 과거의 기억을 떨쳐낸 그는 ‘그녀’가 말해준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녀가 말했던 작전이란, 모험가와 기사단의 잔존 병력들이 무수한 언데드의 군세를 상대하는 동안 그가 정예 병력을 이끌고 뒤에서 그들을 덮쳐 전멸시키는 양동 작전이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양 옆에 서 있는, 그의 키를 훨씬 넘기는 붉은 갑옷들을 쳐다봤다.
느껴지는 흉흉한 마력과 인간이 휘두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하고도 무거운 무기들을 들고 있는 갑옷들.
그녀의 말로는 이 붉은 갑옷들은 영혼 없는 껍데기뿐이라 명령을 내리는 자가 죽지 않는 이상 부숴져도 몇 번이고 재생하는, 인마 전쟁시절에 ‘다크 나이트’라고 불리던 기사의 부하들이라고 했다.
현재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그에게 넘어온 상태.
그가 명령만 내린다면 갑옷들은 즉시 돌격해 숫자만 많은 언데드의 군세를 처리하고 받을 돈에 눈이 먼 모험가들은 그쪽에만 신경을 쓰다 뒤에서 달려드는 붉은 갑옷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 뻔했다.
“이것만 성공하면 나도 한 자리 받을 수 있어... 그러면 그녀의 힘을 더 얻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힘을 받으면 그 남자가 어디에 있든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며 주먹을 쥐는 그.
그는 그의 명령 만을 기다리고 있는 붉은 갑옷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
하지만 그 명령은 갑작스럽게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한 소녀가 휘두른 일곱 색깔로 빛나는 일곱 개의 검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