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도시 관광..?(2)
* * *
모험가들이 언데드들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과거 인마전쟁 시절에 ‘다크 나이트’ 라 불리던 기사의 부하들인 붉은 갑옷들을 이끌고 모험가들의 뒤를 치려던 그.
하지만 그들은 갑작스러운 형형색색의 공격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누구냐!”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일렁이는 흙먼지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흙먼지가 걷히자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소녀의 모습에 불쾌감을 내비치던 그의 얼굴은 의문으로 바뀌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올 법한 검은 머리칼을 머리색과 대조되는 흰색의 나비모양 리본으로 묶은, 사이드 포니테일이라 불리는 머리.
귀족임을 증명하듯 고급스런 흰 옷을 입은 그녀는 빨려들 것만 같은 검은 눈동자로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를 떠다니는 각각의 속성을 상징하는 빛으로 반짝이는 일곱 개의 검과 그녀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내뿜는 적의로 볼 때 누가 봐도 그들과 싸우러 온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정신인 건가?’
그녀는 혼자이고 이쪽은 여덟. 그것도 그냥 여덟이 아닌 인마 전쟁 때 현역으로 뛰던 일곱에 특별한 마력을 받은 마족이 하나, 해서 여덟인 것이다.
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던 ‘그 남자’나 인마 전쟁 승리의 주역인 ‘백야’ 출신이라면 몰라도 아무리 S랭크 모험가라도 이 정도의 병력차를 혼자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
그에게 힘을 나눠준 ‘그녀’가 말하기를 ‘마왕 부활의 열쇠’는 19세 미만의 귀족 소녀.
그의 눈으로 봤을 때 그녀의 나이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스물을 넘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은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이었다. 귀족임이 분명했다.
그런 그녀를 사로잡아 ‘그녀’에게 데려간다면 힘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데드들의 저장량은 충분하다. 저런 소녀 하나쯤은 금방 처리하고 작전을 진행하면 돼.’
그렇게 생각한 그는 붉은 갑옷들에게 그녀를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 * *
“...저것들은?”
도시의 후문에 도착한 내 눈에 레이와 싸우고 있는 붉은 갑옷들이 들어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저것들은 인마 전쟁 때 우리들이 상대했던 ‘다크 나이트’란 녀석의 부하들일 것이다.
그나저나 저 붉은 갑옷들, 그때 분명 다 죽였을 텐데. 도망간 녀석들이 있었던 건가?
하지만 레이를 상대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는 듯 목표가 어떻게 움직일지 하나도 예상하지 않는 단조로운 공격. 전쟁 때 우리가 상대했던 붉은 갑옷들과 비교하자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공격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협적인 공격인 건 마찬가지였다. 인간 정도는 두부 자르듯 자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무기들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성도 불리했다. 저 붉은 갑옷들은 조종하는 녀석이 죽거나 의식불명이 되지 않는 한 부셔져도 계속 부활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공격이 단조로우니 피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레이의 체력이 무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맞게 되어있었다.
“빨리 끝내란 말이다! 고작 한 명을 상대로 언제까지 시간을 끌 거냐!”
중후한 목소리의 외침이 붉은 갑옷들을 향해 내질러졌다.
그 소리에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중년적인 외모. 헝클어진 머리. 가벼운 차림의 옷.
6년 전의 그와 다른 모습을 찾으라면 내게 잘려 한쪽밖에 남지 않은 뿔밖에 없었다.
내가 온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붉은 갑옷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전황을 자세히 보니 레이는 그저 막무가내로 갑옷들을 부수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겠다는 듯 그들의 발을 묶고 있었다.
그들의 상대법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는지 그녀는 뒤로 크게 물러나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좋아!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아차. 너무 보고만 있었구나.
나는 황급히 합일을 위한 마법을 영창했다.
이번 합일의 대상은 6년 전 아이리스 왕녀 납치 미수사건 때 내가 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줬던, ‘신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발키리 자매 중 맏언니인 앨렌이었다.
저 남자의 뇌 속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앨렌에 대한 기억도 박혀져 있을 게 분명했기에 그녀의 힘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를 직접 소환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녀를 소환하면 엄청나게 화려한 빛이 그녀를 감싸기에 저쪽이 이쪽을 눈치챌 수도 있으니 합일을 택한 것이다.
슈우우...
그녀의 마력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어떤 기술들이 있고 그 기술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나와라.빛의 창.”
내가 손을 뻗으며 마법을 영창하자 내 손에 하얗게 빛나는 빛의 창이 생성되었고, 나는 그것을 던지려는 자세를 취했다.
목표는 레이를 향해 달려드는 붉은 갑옷들.
나는 그들을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 * *
“빨리 끝내란 말이다! 고작 한 명을 상대로 언제까지 시간을 끌 거냐!”
그는 초조한 목소리로 붉은 갑옷들에게 외쳤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언데드들이 먼저 전멸할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초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옷들은 계속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영혼 없이 움직이는 자들의 한계였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생각 없이 그저 목표만 보고 움직이니 움직임이 단조로워 질 수밖에 없고, 비슷한 강함을 지닌 자들은 그것을 간파해 패턴에 맞춰 피하기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레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이었다.
그녀를 향해 휘둘러지는 무기들을 막지 않고 흘려보내며 그녀 주위를 도는 검들로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는 일.
하지만 아무리 유효타를 계속 넣어봤자 부셔졌던 갑옷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부활해 다시 그녀를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정도 공방을 펼치던 그녀는 갑옷들을 파괴하는 걸 멈추고 발을 묶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 시간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리스 왕녀 납치 미수 사건.’
대부분은 갑작스런 언데드들의 도시 습격. 이라고만 알고 있는 그 사건이 사실 마족들이 언데드들로 시선을 끈 다음에 비어있는 뒤쪽 관문을 노려 아이리스 왕녀를 납치하려던 사건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오빠인 프리무스로부터 전해 들은 레이는 종업원이 지금 상황이 6년 전과 같다고 말할 때 바로 그 사건이 떠올랐다.
그 사건대로라면 분명 이번에도 그들을 뒤를 칠 터.
레이는 종업원이 주문을 전달하러 간 뒤에 현성에게 적들이 뒤에서 쳐들어 올 수도 있다고 말해주려고 했으나 현성과 아이리스가 심각한 얼굴로 무어라 대화를 하고 있었기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 레이는 옆자리의 세레나에게 현성과 아이리스의 대화가 끝나면 방금 그녀가 해준 얘기를 전해 달라고 말하고는 가게를 나와 텅 비어버린 관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상대하려는 적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미지수였기에 상대가 누구든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얼음의 검으로 얼려도 금세 갑옷이 부셔져 내린 다음에 부활했고 땅의 검으로 그들을 땅 아래로 끌고 들어가도 몸이 전부 들어가기 전에 힘으로 밀고 올라와버렸으며 물의 검으로 물의 감옥에 가둬도 무기를 휘둘러 감옥을 부숴버렸다.
“하아... 하아...”
한 발 크게 물러난 레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력이 거의 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주위를 돌며 사용하기만을 기다리는 검들이 하나 둘 땅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레이가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갑옷들을 더 재촉하기 시작했다.
“좋아!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부웅!
“읏..!”
제대로 피하지 못했는지 그녀의 허벅지 부근에서 피가 튀었다. 레이는 짧은 신음을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일격을 날리겠다는 듯 붉은 갑옷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레이는 여기까진가, 하고 생각했지만.
슈아악!
그녀의 뒤에서 날아온 눈부시게 빛나는 창으로 보이는 것이 붉은 갑옷들을 꿰뚫는 것을 보며 화들짝 놀란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맨 앞의 갑옷을 꿰뚫은 빛의 창은 여러 갈래로 퍼지며 나머지 갑옷들도 전부 꿰뚫었고, 창에 꿰뚫린 붉은 갑옷들은 꿰뚫린 부분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마치 전력이 끊긴 로봇마냥 무릎을 꿇으며 동작을 멈추었다.
“뭣..?!”
놀란 건 그녀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놀랐다고 하기보다는 공포에 질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해 보였다.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 넌..!”
대체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기에 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덜덜 떨기 시작한 걸까.
“오랜만이다?”
그런 그녀의 의문에 답해준 건 뒤에서 들려온 그녀가 시간을 끌며 기다리던 ‘상대가 누구든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