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도시 관광..?(3)
* * *
“오랜만이다?”
그는 나를 보자 얼굴이 사색이 되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왜, 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왜’ 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째서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건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어, 어제 정찰하러 왔을 땐 분명히 없었는데...”
“애들 데리고 오늘 아침에 소풍왔다.”
왜 하필 오늘인건데. 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
덜덜 떨면서도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아직 살만한가보다.
“일단 거기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잠시 그에게서 레이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 갑옷들이 휘두른 무기 중 하나에 베인 허벅지 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였다.
“아프냐?”
내가 장난식으로 히죽거리면서 묻자 ‘보면 모르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듯 쏘아보는 레이.
“농담이다 농담.”
나는 농담이라는 말과 함께 두 손을 들며 한 걸음 물러났다.
하여간 재미없는 녀석이라니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은 다음에 그녀의 상처 부위 근처에 손을 대고 마법을 영창했다.
하얀 빛이 상처 부위를 감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내가 합일로 마력을 빌린 발키리 자매 중 맏언니인 ‘앨렌’의 마법인, 성직자들은 ‘힐’이라고 부르는 ‘상처 치유’였다.
상처가 사라지자 레이는 검으로 바닥을 지탱하며 일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력을 거의 다 사용해 탈진 직전일 텐데, 부들부들 떨면서도 일어서겠다는 듯 오기를 부리고 있기에 나는 그녀를 말렸다.
“야야, 보는 사람 나밖에 없으니까 바닥에 주저앉아도 돼. 나는 귀족의 예의 같은 것 신경 안 쓰니까.”
레이는 그런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긴 개뿔. 잠자코 앉아서 마력이나 회복하고 있어. 이 마법이 상처는 회복시킬 수 있어도 마력까지 회복시키진 못 하니까.”
“하지만...”
붉은 갑옷들이 다시 움직이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지 레이가 갑옷들이 있는 쪽을 불안한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것들 한방에 보내버린 사람이 네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여차하면 아예 저것들 하나하나 사지를 분리시켜서 따로따로 묶어둘 테니 잠자코 앉아서 쉬고 있어. 나는 저놈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 응?”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지만 아까까지 덜덜 떨고 있던 그는 원래의 자리에 없었다.
살고 싶다는 본능이 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일까, 풀린 다리를 겨우 겨우 진정시켜가며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측은한 마음은 마음으로 놔두기로 했다.
나는 저 녀석에게 들어야 할 얘기가 있으니까.
나는 다시 빛의 창을 만들어내 손에 든 다음 그의 살짝 옆을 조준해 날렸다.
슈아악!!
빛의 창이 그의 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근처의 나무에 박혔다.
잘 도망가던 그는 우뚝 멈춰서더니 다시 몸을 덜덜 떨며 나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에게 손가락을 까딱 까딱. 하며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내게 돌아가야 할지 이대로 다시 도망을 택해야 할 지 갈등하는 듯 보였다.
그런 그를 위해서 최후의 통보를 날려주기로 했다.
“야~! 니가 올래, 내가 갈까? 니가 오면 한 대로 끝내줄 거거든? 하지만 내가 가면...”
“가, 갈게!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되잖아..!”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며 터덜터덜 내 쪽으로 걸어오는 그였다.
* * *
“설명.”
“으, 응?”
“이번엔 왜 왔는지 설명하라고.”
벌 받는 어린애들처럼 무릎을 꿇고 손을 들며 나를 올려다보는 그에게 나는 그가 왜 6년 전과 똑같은 일을 벌인 것인지 설명해보라고 말했다.
“그, 그게...”
하지만 입막음을 잘 당한 건지 그는 쭈뼛쭈뼛 하면서 쉽사리 입을 열지 못 하고 있었다.
뒤에 꽤나 큰 놈들이 있나 보네.
보통 저러면 죽인다고 협박을 해도 안 통할 텐데...
그렇다면 협박이 아닌 회유로 가야겠군.
큰 거는 포기하고 작은 거만 노리는 식으로.
어차피 배후 세력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소중한 사람의 원수도 아닌데 배후 세력같은 걸 알아서 어디다 써?
나는 그에게 팔을 내리라고 말하며 그의 옆으로 가 쪼그려 앉은 다음에 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는 내가 또 무슨 짓을 하려나 불안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 그렇다면 네 뒤에 있는, 그러니까 너에게 이런 짓을 시킨 녀석들에 대해서는 안 물어볼게.”
이런 녀석들은 자신의 목숨만 보장된다면 웬만한 건 말해주는 타입일 터. 그러니 일단 목숨에 직결되는 질문은 피한다.
“그리고 기사단에 널 넘기지도 않고 그냥 보내줄게. 물론 추적마법도 안 걸 거야. 한 가지 질문에만 대답해준다면 말이지.”
만약에 기사단이 이 일을 알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백야’의 펜던트 한 번 짤랑. 흔들어 주면 만사 오케이니까.
“지, 진짜?”
파격적인 제안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는 그에게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그럼~ 아, 하지만 언데드들에 대해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그, 그건 괜찮아. 어차피 하급들이라 이번 일이 끝나면 다 처분할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는 그의 뒤에 있는 배후 세력들에 대해서만 묻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둥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 질문이 뭔데?”
어차피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거, 나는 이런 일을 벌인 의도라도 물어보기로 했다.
“아이리스가 여기에 와 있다는 건 몰랐지?”
“어? 왕녀가 여기에 와 있었어?”
처음 듣는다는 듯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대답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이번엔 뭘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 건데?”
그는 행여나 말실수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 더듬지 말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슴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튀고 있는, 전력이 떨어진 로봇처럼 무릎을 굽힌 체 움직이지 않고 있는 붉은 갑옷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응. 그게 말이지. 언데드들에게 정신이 팔린 모험가들을 네가 무력화 시킨 저것들로 뒤를 쳐서 전멸시키기 위해서야.”
“모험가들을 전멸시켜서 뭐하게?”
그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말실수 할 뻔 했는지 흠칫, 몸을 떤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글쎄... 나는 그저 그들의 시체가 필요하다는 말밖에 못 들어서... 여하튼, 그래서 저것들에게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저기.”
그는 레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저 소녀가 나타나더니 우리 앞을 막아섰고, 그녀를 거의 끝내려는 찰나에...”
“내가 나타났다, 이거지?”
“응.”
“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녀석을 뒤로 하고, 나는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았다.
6년 전, 아이리스 왕녀 납치미수사건과 같이 이곳을 지키는 병력이 모종의 이유로 부족해져 그것을 노리는 적들에게 수적으로 밀리자 부득이하게 모험가길드의 모험가들이 그 병력의 자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저 녀석. 아니, 저 녀석의 배후 세력이 노린 바였다.
그것을 노리고 그들의 뒤를 쳐 그들을 전멸시켜 그들의 시체를 그의 배후 세력에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가 저 녀석이 내게 말해준 사건의 진상이었다.
아마 레이나 내가 없었으면 저 붉은 갑옷들에게 기습을 당한 모험가들은 전멸 당했을 것이었다.
‘백야’ 출신들은 대부분이 S랭크 이상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우리도 상대하기 버거웠던 녀석들이었으니 최고 랭크가 A랭크일 이곳의 모험가 녀석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시체로 무엇을 하려 했는가. 가 다음 의문이다.
시체로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생각해보자.
배후 세력이 ‘네크로필리아’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가장 신빙성이 있는 건 쓸만한 모험가들을 언데드 병사로 부리는 것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배후 세력이 몇 명이든 간에 하나 정도는 시체를 부활시켜 언데드 병사로 부릴 수 있다는 녀석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이 녀석이 붉은 갑옷들과 함께 온 걸로 봐서는 인마 전쟁 때 현역으로 뛰던 녀석일 가능성이 크다.
붉은 갑옷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정도면 적어도 마왕군 간부급은 된다는 얘긴데...
...그런 놈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마왕군 간부라고 밝힌 녀석들 중에 시체박이 놈은 없었다.
보통 그런 놈들은 막 흉측하게 생겨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텐데도 말이다.
아이씨. 배후 세력에 대해 물어보지 않기로 약속해서 더 물어볼 수도 없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너무 오래 쪼그려 앉아 있었는지 저리기 시작한 다리를 천천히 폈다.
그의 시선 또한 나를 따라 위로 올라왔고,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 어?”
“뭘 어? 야. 잡고 일어나라고. 계속 무릎 꿇고 있으면 다리 저린다?”
그는 내밀어진 내 손을 잡아도 되나. 생각하는 듯 멀뚱멀뚱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나는 아무런 짓도 안 하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그는 내 손을 맞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그가 여전히 쭈뼛쭈뼛 망설이고 있기에 나는 휙휙 손짓하며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뒤에서 공격하는 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아, 맞다. 까먹을 뻔했네.
“야! 잠깐 멈춰 봐.”
나는 천천히 걸어가던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히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또 무슨 말을 하려나 불안한 듯 돌아보는 그에게 나는 붉은 갑옷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 명령권자, 너지?”
다음에 내가 할 말이 무엇인지 눈치챈 듯 그는 울상을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