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27화 (27/146)

〈 27화 〉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 * *

“Ahoy! Ahoy! Ahoy! Ahoy!”

내게 업힌 채로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대는 아이리스.

공주님 안기 자세로 숙소까지 가기에는 그녀에게 불편할 것 같아서 업힌 자세로 바꿨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진 것 같았다.

“야, 야! 흔들거리지 마..!”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바람에 쏠리는 내 몸의 중심을 겨우겨우 잡아가며 숙소로 향하던 중, 툭. 하며 무언가가 내 어깨에 올려졌다.

“후우~”

“으악!”

갑작스럽게 귀에 불어넣어진 바람에 나는 움찔. 몸을 떨며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헤벌레하며 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아이리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헤헤... 귀여워...”

“...”

...말을 말자.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쏴아아.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저 비를 그대로 맞고 왔어야 했겠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는 아이리스를 업은 체로 2층으로 올라가 그녀의 방 침대에 그녀를 앉혔다.

“그럼, 잘...”

아이리스에게 잘 자라는 말을 건네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우르릉! 쾅!

천둥이 쳤다.

“꺄악!”

“괜찮아?!”

“혀, 현성님...”

부들부들 떨면서 귀를 막으며 자기 좀 진정시켜 달라는 듯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리스.

나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후, 겨우 진정이 된 아이리스를 침대에 눕히며 이불을 덮어준 뒤에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서려던 찰나.

“가, 같이 자면 안돼요..?”

아이리스가 덜덜 떨며 애원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 * *

아이리스는 왜인지 어렸을 때부터 천둥소리를 무서워했다. 내가 그녀의 전속 기사로 있던 시절에 천둥이 칠 때면 항상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녀가 잠들 때 까지 옆에 있어주곤 했으니까. 그때는 그저 어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까지 이러는 걸 보니 무언가 일이 있던 게 확실했다.

하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도 있으니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침대 안, 더 나아가서 한 이불의 안에서 나는 내 품에 안긴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비 그치고 아이리스가 잠들면 몰래 빠져나가야겠다.

더 있다가는 본성이 이성을 이길 것 같으니까.

나도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 내 이상의 미소녀가 나를 의지하면서 내 품에 안겨 있는데 나쁜 마음을 안 품을 리가 없었다.

자꾸 무언가를 만지겠다는 듯 밑으로 내려가려는 다른 손을 이성으로 붙잡으며 그녀가 잠들기까지 버티던 중, 아이리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현성님. 기억나세요? 6년 전에도 천둥이 치는 날이면 이렇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죠.”

“그래.”

내게 착 달라붙어서 울기 직전의 얼굴로 달래달라는 듯 애원하던 어린 시절의 아이리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 순간 화제가 나와 아이리스가 만났던 때로 이어졌다.

내가 모종의 이유로 그녀에게 ‘교육’을 받게 된 시절부터 시작해 그녀의 전속기사로 지내면서 보낸 나날들.

그때를 떠올리며 나와 아이리스는 킥킥대며 웃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나온 얘기는 내가 왕궁을 떠나던 시점이었다.

“현성님이 떠나시던 날에 제가 현성님께 드린 말과 현성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

기억이 안 날 리가.

전속 기사로 계약한 날짜가 지나 왕궁을 떠나기 전에 약혼이라도 해 달라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보던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동경일 뿐이라며 나중에 커서 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나는 잊어버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거절했었지.

“6년 전엔 그저 어린 시절의 동경일 뿐이라면서 거절하셨죠?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성님이 제 곁을 떠난 뒤에 몇 년 동안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동경 같은 게 아니었어요.”

“...”

“저, 6년 동안 노력했다고요? 현성님께서 말씀하신 현성님의 이상의 여인이 되기 위해서요.”

“...”

“물론 현성님께 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성분이 많은 것도 잘 알아요. 하지만 첫 번째가 아니라도 좋아요. 몇 번 째던 상관없으니까...”

아이리스의 얼굴이 점점 내게 다가왔다.

“현성님의 마음 한 편에 제가 있는 걸 허락해주세요.”

어느 샌가 비는 그쳐있었다.

* * *

번쩍.

아이리스의 눈이 뜨였다.

낯선 느낌에 서서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비몽사몽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맞다. 나 현성님이랑 다른 분들이랑 같이 이곳에 놀러 왔었지... 어제는 진짜 재밌었어...”

아이리스는 전날에 현성과 다녔던 곳곳들을 생각하며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윽?!”

침대에서 내려와 간단하게 세안을 하려고 화장실로 향하던 중, 갑작스런 두통에 그녀는 이마를 짚었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을 곰곰이 되뇌어 보았다.

현성과 다녔던 곳들. 현성과 즐겼던 놀이들.

‘그리고 현성님과 주점에 가서 현성님의 지인 분들을 만나고... 만나고...’

다른 것들은 다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데 왜인지 주점에서 있었던 일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머리가 아픈 이유를 찾으라면 필시 그때에 있을 것이라 생각해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가던 중, 이불 속에서 꿈틀대는 미지의 물체가 눈에 들어온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이불을 살짝 들쳐보았다.

“꺄..!”

비명을 지르려던 그녀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이불 속에 있던 물체의 정체는 한때 그녀의 전속기사였던 사람이자 6년 동안 아이리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는 그 남자, 진현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왜 현성님께서 내 침대에 계시는 거지..? 설마..?’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혹시나 자기도 모르는 세에 첫 경험을 한 건 아닌가, 확인해 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시 재빠르게 관자놀이를 누르며 전날의 기억을 뒤지는 아이리스.

“아..?”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장면들이 촤르륵, 지나갔다.

술에 취해 모험가들과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놀던 것부터 시작해 술에 취한 그녀를 현성이 공주님 안기로 안아 올렸을 때 분위기에 취해 그에게 입을 맞춘 일.

그녀를 업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귀에 바람을 불어넣은 뒤에 그의 반응을 보며 귀엽다고 말하던 일.

천둥소리에 예전의 일이 떠올라 덜덜 떨면서 그에게 같이 자달라고 한 일.

그의 품 안에서 얼굴을 비비며 6년 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그에게 속삭인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몇 번 째던 상관없으니 자신이 그의 마음 한 편에 있는 것을 허락해 달라며 고백 아닌 고백을 한 일까지.

“아... 아...”

그 모든 것이 기억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마치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붉어져 있었다.

“하암...”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현성이 잠에서 깨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리스가 처음 일어났을 때와 똑같이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이 아이리스와 마주쳤다,

“좋은 아침.”

“꺄...”

“꺄?”

“꺄아아아악!”

* * *

터지기 직전의 화산마냥 몸을 부들대던 아이리스는 이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리스님! 괜찮으세요?!”

벌컥. 아이리스의 비명이 들렸는지 문이 강하게 열리며 세레나를 필두로 레이를 제외한 녀석들이 쳐들어왔다.

“조용히 해. 그렇게 크게 아이리스의 이름을 외치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다 들리겠다.”

내 목소리에 그녀들은 내가 왜 여기에 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이내 휙휙거리며 그녀들의 고개가 나와 아이리스를 번갈아가며 움직였고, 곧 멈추더니 결론에 도달한 듯 했다.

“서, 설마... 선생님...”

“손 댄 거야? 오~”

“역시 선생님...”

“서, 선생님..! 와, 왕녀님하고 하, 하신 거예요?!”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 한 번에 알 것 같이 세레나와 루아의 얼굴은 붉어졌고, 라네즈와 라헨느는 제법이라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뭘 해?”

내가 그녀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응큼한 녀석들.

아니, 잠깐만. 세레나나 루아는 그렇다 쳐도 라네즈랑 라헨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저... 밤에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죠?”

“어디까지 기억나는데?”

아이리스는 부끄러운 듯 잠시 망설이더니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현성님의 마음 한 편에 제가 있는 걸 허락해달라고 말한 곳까지요...”

거의 다 기억하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글쎄다?”

“네?!”

진짜로 놀라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하하하, 농담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

닿기 직전에 네가 뻗었거든.

나는 ‘정말이죠? 진짜죠?’ 라며 확답을 원하는 아이리스를 보며 어깨를 으쓱. 하며 긍정적인 답도 부정적인 답도 하지 않았다.

번쩍!

그때, 갑작스러운 빛이 우리들의 눈앞에 번쩍였다.

나를 비롯한 방 안에 있던 모두는 갑작스러운 빛에 얼굴을 찡그렸고, 이내 빛이 사라지며 한 여성이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순백의 갑옷을 입은, 등에는 갑옷과 맞춘 듯 하얀 날개를 지니고 있었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내가 왕성 귀족인 프리무스 일행을 못 믿어서가 아닌 항상 다음 수까지 대비하는 내 특성 상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에 남겨두고 온 발키리 자매 중 맏언니인, 내가 언데드 사태의 주범을 상대할 때 합일을 해 마력을 빌렸던 ‘앨렌’이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 시선을 옮기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급히 달려와 내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 휴가 중에 죄송합니다.”

“아니야. 무슨 일인데?”

“마스터께서 총괄을 맡고 계신 학교에 현재 적이 출현, 왕성 귀족의 장남 장녀가 교전 중입니다. 상대하기 꽤나 버거워 보여 저희 자매들도 참전했습니다만, 그래도 밀리기에 마스터께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뭐? 상대가 누군데?”

그 녀석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상상이 가질 않았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놈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순간, 앨렌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다크 나이트. 마스터께서 인마 전쟁 때 상대하셨던 그 자가 돌아왔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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