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다크 나이트.(2)
* * *
검은 갑옷을 입고 있기에 붙여진 이명, 다크 나이트.
그와 싸워봤던 프리무스 일행은 그의 강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전쟁 당시에도 40명이서 덤벼들어서 겨우 이긴 상대였다. 그런 그를 고작 4명이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시간을 끌기로 결정했다.
곧 있으면 ‘이 학교의 총괄 선생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만 돌아온다면 승리는 확정된 것이라고 그들은 확신했다. 다크 나이트의 강함을 잘 아는 것처럼 ‘총괄 선생’의 강함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끄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모든 빛을 흡수하겠다는 듯 어두운 마력을 내뿜고 있는 대검, 칠흑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으며 다크 나이트가 타고 다니는 말, ‘나이트메어’가 영혼마저 태워버린다고 알려져 있는 검은 불꽃을 내뿜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합류한 일곱 명의 발키리 자매들이 아니었다면 프리무스 일행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당해버렸을 것이었다.
화려한 빛과 함께 프리무스 일행의 앞에 나타나 다크 나이트를 상대하기 시작한 그녀들. 그녀들 중 맏언니로 보이는 사람이 프리무스 일행에게 다가와 자신을 ‘앨렌’이라고 소개했고, 그녀들은 ‘총괄 선생’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자들로, 그들의 주인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녀들을 이곳에 남겨두었다고 말해주었다.
타이밍이 조금 늦은 이유는 주변을 순찰하다가 돌아와서 그랬던 거라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그녀는 자신과 자매들이 다크 나이트를 상대하는 동안 회복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에 다시 자매들에게 합류했다.
신의 권속이라고 불리는 발키리들답게 다크 나이트와 대등한 싸움이 이어졌다.
나이트메어에 올라탄 상태로는 일곱 명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다크 나이트는 대검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발키리들은 크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그 틈에 그는 말 위에서 뛰어 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다시 이어진 싸움. 일곱 명을 전부 상대하면서도 그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수히 많은 발키리들의 공격을 맞아가면서도 그는 몇 번이고 일어나 칠흑검을 휘둘렀다.
지금이야 발키리 자매들이 우세하다고 하지만 발키리 자매들은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언젠가 지칠 것이 분명했다.
“하이네... 정령의 문을 열 수 있어? 아직 그 정도 마력은 남았지?”
나무에 기대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프리무스가 힘겹게 입을 열어 그의 옆에 큰 대 자로 뻗어있는 하이네에게 물었다.
정령의 문. 정령술사만 가능한 마법으로, 정령의 마력을 탐지해 그곳으로 향하는 포탈을 여는 마법이다.
“무지개 정령...”
프리무스의 말에 하이네는 그와 같이 현성이 소환수로 데리고 있는 무지개 정령을 떠올렸다. 그것을 매개체로 포탈을 열면 현성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갈 수 있을 것이었다.
“해볼게...”
하이네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에 마법을 영창했다. 하지만 왜인지 파직거리기만 할 뿐, 현성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포탈은 생성되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해보던 하이네는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못 열어...”
“못 연다니?”
“위치는 알아냈어. 도시 미드나의 여관 2층이야. 하지만 그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 수가 없어. 아마 마력을 통해 위치를 특정하는 자들로부터 보호하려고 대비를 하신 것 같아... 추적이나 비슷한 것들을 못하도록. 항상 만일을 대비하시는 분이셨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방법이 없어? 오늘 돌아오신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몇 시에 돌아오시는지는...”
“현성님의 소환수라면 모를까, 지금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현성님의 소환수?”
“응. 굳게 닫힌 성문은 적에게는 절대 안 열리지만 아군에게는 활짝 열어주잖아? 무지개 정령의 마력을 탐지하는 것 까지는 같아. 다른 점은 여기서 현성님의 마력을 가진 소환수를 매개체로 현성님께 향하는 문을 연다는 건데. 아마 거부되지 않을 거야.”
“그럼 중요한 현성님의 소환수는 어디... 어?”
말을 하던 프리무스는 우뚝. 말하던 입을 멈췄다.
있었다. 몇 분 전, 자신을 현성을 모시고 있는 사람으로 현성이 만일을 대비해 소환해 놓고 갔다고 말한 그녀가, 지금 그들을 대신해 다크 나이트를 상대하고 있는 그녀들이.
“읏..!”
타이밍 좋게 다크 나이트의 공격에 밀려난 앨렌이 프리무스와 하이네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다크 나이트에게 달려드려는 앨렌을 프리무스가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다크 나이트와 그의 명령권자인 알트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지 않게 조심히, 프리무스는 앨렌에게 그들의 작전을 설명해주었다.
* * *
“그렇게 정령의 문을 통해 제가 여기로 오게 된 것입니다.”
다크 나이트.
그는 마왕이 있는 곳까지 단 하나의 관문만 넘으면 되는 우리 ‘백야’의 앞을 가로막은 최후의 마왕군 간부였다.
거대한 대검을 빼들어 우리들을 가리키면서 자신이 모시는 왕께는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던 그.
마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답게 그의 실력은 지금까지 상대해온 마왕군 간부들보다 현저히 뛰어났다.
내가 마왕을 잡기 위해 아껴뒀던 것들을 꺼내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몇 분후, 부하인 붉은 갑옷들도 모두 쓰러졌다.
몇 십분 후, 휘두르던 대검, 칠흑검도 무수한 격돌 끝에 파괴 되었다.
몇 시간 후, 영혼을 불태운다고 알려진 흑염(??)을 내뿜는 그의 말, 나이트메어마저 마지막 숨을 내뱉고 쓰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우리를 막던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으로 문 앞을 지키던 그는 결국 선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 중 10명을 길동무로 삼은 채.
그랬던 그가 되살아나 프리무스일행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내 소환수인 ‘앨렌’으로부터 전해들은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당연하다는 듯 앨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검과 흑염마(??馬) 나이트메어까지 확인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묻어주려고 생각해 돌아가 보니 원래 없던 것 마냥 전부 사라져있다 했더니만.
그때는 주인이 사라졌으니 게임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 마냥 가루가 돼서 사라졌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곳에 있던 누군가가 우리가 지나간 뒤에 그들의 시체를 가져가서 장난질을 친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상대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누구?”
“중년의 남성으로 보이는 마족이었습니다. 그자가 다크 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그를 깨운 자로 확인됩니다.”
중년의 남성으로 보이는 마족... 설마?
“혹시 뿔이 한 쪽밖에 없었어?”
“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역시 그 녀석이었다. 바로 어제 언데드들을 일으켜 모험가들의 시선을 끈 다음에 뒤에서 ‘다크 나이트’ 녀석의 부하였던 붉은 갑옷들을 이용해 모험가들을 몰살시킬 작전을 실행하려 했던 녀석.
하지만 레이의 시간벌이에 막히던 중 내가 도착했고, 과거에 나 때문에 트라우마가 심어져 있었던 탓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게다가 내 계략에 의해 그의 계획을 전부 말한 것도 모자라 붉은 갑옷들마저 전부 뺏기고 터덜터덜 돌아간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또 일을 저지르다니, 어찌 보면 대단한 녀석이었다.
하긴, 나라도 다크 나이트 같은 녀석이 내 동료로서 싸워준다면 상대가 누구든 막 나갔을 거다.
그만큼 강한 녀석은 세상에 몇 없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되살린 거고 통제는 어떻게 한 거지?
되살리려는 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되살리는데 들어가는 마력이 점점 늘어난다.
내가 그쪽 관련 지식은 거의 없어서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다크 나이트 정도의 마력을 지닌 자를 부활시키려면 적어도 드래곤 같은 고위 종족 정도의 마력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떻게든 부활시키면 끝이냐, 그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과분한 녀석을 어떻게든 부활시켜도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활한 자에게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한테도 쫄아서 도망치던 그 녀석이 다크 나이트를 부활시켰을 리는 없었다. 통제할 리는 더더욱 없었고.
아마 그가 끝까지 내게 말하지 않았던 배후의 세력 중 누군가가 다크 나이트를 부활시켜 붉은 갑옷들처럼 그에게 명령권한을 넘겨준 거겠지.
“세레나. 레이 어디 있어?”
시간이 없었기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아이리스의 비명소동에도 오지 않았던 레이의 행방을 그녀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세레나에게 물어봤다.
“여기 있습니다.”
어딘가 나갔다 온 건지, 그녀는 어느 샌가 루아의 옆에 서 있었다.
“좋아, 없는 놈 없지? 가자.”
여전히 하얀 빛을 내뿜고 있는 정령의 문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정령의 문이 갑자기 팟. 하며 소멸했다.
“어라?”
“이건...”
잘 열려있던 정령의 문이 갑자기 닫혔다는 건, 시전자가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어떡해요? 나가서 마차를 잡아볼까요?”
“아니,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나는 뇌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방법을 찾아보았다.
앨렌과 합일을 해서 빠르게 날아가는 방법도 있었고, 수도에 있는 왕성 귀족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몇 분 이상 걸리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뇌를 스쳐지나간 기억이 있었다.
나는 재빨리 공간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내 소환수 중 하나와 합일을 했다. 학교로 바로 향하는 포탈을 열기 위해서였다. 이러면 굳이 마차를 빌리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한 번 포탈이 열렸던 곳으로만 갈 수 있는 마법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학교 안에서 딱 한 번 이 마법을 쓴 적이 있었다.
“가자!”
포탈 너머로 보이는 장소는 학교의 회복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