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귀환과 등장.
* * *
며칠 전, 세레나가 나에게 합일을 가르쳐 달라고 찾아 왔었다.
합일은 가르쳐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합일에 필요한 대상은 어디서 구할 거냐고 묻자 내가 가진 소환수중에서 하나만 달라고 하기에 거절했다.
내 소환수는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데 어떻게 남에게 쉽게 넘겨줄 수 있겠어?
그러자 그녀는 비겁하게 미인계로 날 꼬시려들었다. 순간 혹해서 걸려들 뻔했지만 다행이 합일 대신 강력한 마법을 알려줄 교사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해 그녀와 협상하는데 성공했다.
내가 그녀에게 소개시켜준 교사는 최상위 종족중 하나인 고대룡에서 얼음을 맡고 있는 고대빙룡 스카지나였다.
스카지나의 마법을 배운 그녀는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처럼 나와 싸워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내가 직접 싸우는 대신에 내 소환수 중 하나인 ‘얼음 여왕 글라시아’를 소환해 그녀와 대련을 시켰다.
대련의 결과는 의외로 무승부였다.
대련이 끝나고 기절한 그녀들을 회복실로 옮기자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는데, 스카지나의 아내이자 글라시아의 딸인 ‘글리아’였다. 스카지나가 이곳에서 세레나를 가르치는 동안 그녀에게 소홀했기에 애정을 다시 채우고자 직접 찾아온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지금처럼 공간계열마법을 쓰는 소환수와 합일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포탈을 열어주었다.
그 덕에 학교 안 회복실이라는 장소가 기억되어 포탈을 열 수 있었고, 도시 미드나에서 학교로 빠르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회복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회복실의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내 소환수인 앨렌이 내게 학교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알려주려고 타고 온 하이네의 마법, 정령의 마력을 탐지해 정령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포탈을 여는 정령의 문이 우리가 돌아가려고 들어가기 직전에 닫혀버렸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술자인 하이네가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마법을 유지하고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모종의 이유의 대부분은 안 좋은 쪽이 많았기에 한시라도 빨리 가봐야 했다.
그런데, 어디지? 앨렌의 말대로라면 발키리 자매들과 프리무스 일행이 다수로 싸우고 있다는 뜻인데...
다크 나이트 녀석과 싸우고 있었던 앨렌이라면 위치를 알 텐데, 너무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그녀를 포함한 다른 애들을 회복실에 놔둔 상태였다.
앨렌은 싸움을 하다가 내게 왔으니 장소를 알고 있었겠지. 조금 기다렸다가 따라갈걸 그랬나.
너무 의욕만 앞선 내 실수였다.
아, 그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면 소리가 들려올 거 아니야?
나는 온 몸의 감각을 귀로 집중시켰다.
귀족 소녀들이 뭐라뭐라 떠드는 소리가 방해했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익숙한 목소리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조금만 버텨! 마스터께서 곧 돌아오실 거야!’
오, 들린다, 들려. 둘째인 ‘앨리나’의 목소리다.
‘언니!’ ‘마스터는요?’
이건 셋째인 ‘앨룬’의 목소리고.
‘먼저 뛰어나가셨는데... 안 오셨어?’
‘위치 말 안 해드렸어요?!’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뛰어가셔서 아시는 줄 알았... 뒤에!’
몇 차례 더 들어봤지만 ‘앨룬’하고 ‘앨렌’의 목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은 말할 틈도 없이 싸우고 있다는 뜻이겠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위치는 정문 쪽이었다.
젠장, 반대잖아?
다시 뛰어가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최단거리로 가려면 날아가는 방법뿐인데...
나는 정문으로 향하는 직선거리에 있는 유리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유리창 정도는 깨도 괜찮겠지? 여기를 짓는데 아무리 적어도 창문 하나 정도는 내 돈이 들어갔겠지. 그리고 안 들어갔다고 해도 애들 목숨이 걸렸는데 이거 깼다고 뭐라고 하겠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합일을 위한 마법을 영창했다.
“합일. 고대풍룡, 실레스틴.”
바람이 나를 감싸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날아가려는 자세를 잡았다.
* * *
“저깁니다!”
라네즈와 라헨느. 아이리스 왕녀에게는 위험하니 회복실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고, 루아에게는 혹시나 일이 생기면 그녀들을 지켜달라는 말을 남긴 뒤에 현성의 소환수이자 발키리 자매 중 맏언니, 앨렌의 인도에 따라 프리무스일행과 발키리 자매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인 정문에 도착한 레이와 세레나.
여전히 다크 나이트라 불리는 검은 갑옷과 ‘나이트메어’라 불리는 온몸에 검은 불꽃을 두르고 있는 말과 발키리 자매들, 그리고 프리무스 일행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몰아붙이던 초반과 달리 발키리 자매들과 프리무스 일행은 지친 기색이었다.
그들이 갑옷과 말을 몇 번이나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지친 몸으로 인해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었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싸우고 있었다. 이 사태를 해결할 누군가가 곧 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꺅!”
그때, 검은 갑옷이 휘두른 대검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발키리 자매 중 셋째인 앨로니가 공격의 여파로 인해 앨렌의 쪽으로 날려졌다.
“앨로니!”
앨렌은 황급히 날개를 펴며 날아가 앨로니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괜찮아?”
“언니!”
셋째인 엘로니는 돌아온 앨렌을 보며 ‘드디어 왔구나.’ 라는 듯 반색하는 얼굴을 보였다.
그녀가 왔다는 소식은 현성이 돌아왔다는 소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는요?”
“먼저 뛰어나가셨는데... 안 오셨어?”
“위치 말 안 해드렸어요?!”
“말해드리기 전에 먼저 뛰어가셔서 아시는 줄 알았... 뒤에!”
앨렌의 다급한 외침에 엘로니는 재빨리 위로 날아올랐고, 앨렌은 재빠르게 빛의 창을 만들어내 빙글빙글 돌리면서 다크 나이트의 말, '나이트메어' 가 내뿜어낸 검은 불꽃을 막았다.
현성이 봤다면 만화에 나오는 게 실제로 되는 구나. 라고 감탄했을 장면이었다.
* * *
싸우고 있는 자들의 모습에서 하이네가 보이지 않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세레나는 이내 싸움의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나무 아래에서 큰 대 자로 뻗어 있는 하이네를 발견했다.
화들짝 놀라며 ‘설마’ 하는 마음에 그에게 달려간 세레나는 작지만 확실하게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를 듣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령의 문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기절하셨기 때문이었구나.’
하이네의 안위를 확인한 세레나는 발키리들과 프리무스 일행을 도우러 가야되나 생각했지만 레이가 팔을 내밀며 그녀를 저지했다.
“우리가 끼어들 수준의 싸움이 아니야.”
레이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수준으로 저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도움은커녕 짐만 될 뿐이라고. 심할 경우 죽을 수도 있다고.
분했다. 그렇게 열심히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저런 강자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한 만큼 기쁜 마음도 있었다.
기쁜 마음만큼 의문도 있었다. 저렇게 강한 발키리들이 마스터라고 부르며 따르는 현성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가. 자기들과의 대련 때 보여준 것이 전부가 아니었었던 건가.
생각을 하면 끝이 없었기에 레이는 일단 눈앞의 싸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먼저 뛰쳐나간 현성이 제일 늦게 도착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혹시나 저들이 당할 경우에 시간 벌이라도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싸우고 있던 그들 사이에 떨어졌다.
쾅!
굉음을 내며 땅에 내려온 그것 때문인지 강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솟구쳤다.
그로 인해 싸움 중이던 그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바람에 너무 가까이 있던 탓인지 발키리 중 하나가 그것에 휩쓸려 공중으로 치솟았고, 이내 바람이 약해지자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날개를 필 여력이 없었는지 그녀는 빠르게 땅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발키리 자매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가려 했지만 떨어지던 그녀의 몸이 공중에서 마치 무언가가 그녀를 받아낸 듯 그대로 멈췄다.
그녀를 받치고 있는 자가 누군지 확인한 발키리들이 동시에 일제히 그것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바람이 완전히 사라지자 바람을 몰고 온 그것의 정체가 레이의 눈에 들어왔다.
현재 그녀들이 있는 학교를 총괄하고 있는 선생이자 왕성 귀족인 레이, 세레나. 루아, 라네즈와 라헨느 자매를 동시에 상대해서 이겼던, 진현성이었다.
* * *
“언니, 죄송해요! 더는 못 버티겠어요!”
다리가 풀렸는지 막내 발키리인 ‘앨린’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우는 소리를 하자 둘째인 ‘앨리나’와 셋째인 ‘엘로니’가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조금만 더 버텨! 금방 마스터께서 오실 거야!”
“그래! 이 싸움만 끝나면 마스터께 말씀드려서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힘내!”
그녀들의 격려에 힘을 얻은 듯, 엘린이 다시 일어섰다.
창을 고쳐든 그녀는 다시 검은 갑옷에게 달려들었고.
쾅!
다음 순간, 갑옷과 발키리들, 프리무스 일행의 사이에 무언가가 굉음을 내며 바람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다.
휘이이이잉!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중앙에서 강한 바람이 솟구쳤고, 양측은 크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꺄아악!”
대부분은 어쩌저찌 바람에 날려지지 않고 버티는데 성공했지만 돌진하던 앨린은 바람에 가장 가까이 있던 탓에 솟구치는 바람에 그대로 공중으로 띄워졌다.
날개로 균형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강한 바람 탓에 날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이내 하늘이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며 곧 이어올 충격에 대비하는 듯 두 눈을 꽉 감았다.
턱.
하지만 그녀가 상상하던 아픔은 오지 않았고, 땅에 부딪칠 때 들리는 굉음도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기가 부모님의 품에 안겨있을 때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어라..?”
“괜찮아?”
그런 느낌에 의아해하던 그녀에게 들려온 건 익숙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엘린은 살짝 한 쪽 눈을 뜨며 상대를 확인했다.
익숙하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단정한 흑발. 매를 연상하는 날카로운 눈매.
“마, 마스터~!”
그녀들이 마음속으로부터 모시고 있는 주인이자 현재,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진현성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