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31화 (31/146)

〈 31화 〉 마력 해방.

* * *

나는 엘린을 안아 든 체로 바람을 조종해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땅을 밟은 나는 엘린은 안아 들고 있던 팔을 풀었고, 엘린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목을 잡고 있던 팔을 풀며 내 품에서 내려갔다.

여전히 나를 보며 무릎을 꿇고 있는 발키리들에게 일어나라고 말한 뒤에 몸을 돌려 방금까지 그녀들이 상대하고 있던 적을 똑바로 응시했다.

‘다크 나이트’라는 이명이 붙은 결정적인 원인인 검은 갑옷으로 중무장한 모습. 손에 들고 있는 건 조그만 빛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어둡고 흉흉한 마력을 내뿜고 있는 대검이었고, 그런 그의 옆을 온몸을 검은 불꽃으로 두른 말, ‘나이트메어’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의 옆을 지키던 붉은 갑옷들이 없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인마 전쟁 때 상대했던 그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다.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상대한다?

무작정 싸움을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나라도 결국은 인간이니까. 언제까지고 싸우다가는 발키리들이나 프리무스 애들처럼 지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없었다.

조금 있으면 리리에가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눈앞의 저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나를 찾으면서 칭얼대기 전에 빨리 가서 준비해둬야 했다.

그렇다면 방법이 두 가지 중 하나인데...

다크 나이트를 부활시킨 자가 저 마족 녀석은 아닐 것 같으니 부활시킨 자를 무력화 시켜서 연결된 마력을 끊어 부활한 자를 다시 돌려보낸다. 작전은 안 되겠고...

그러면 남은 방법은 부활한 자의 미련을 풀어줘서 성불시킨다. 인가.

그런데, 저 녀석의 미련이 도대체 뭐지?

과거의 기억을 뒤져봐도 그에게 있어 미련이 남을 만한 것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굳이 미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주군인 마왕을 끝까지 지키지 못 했다는 것?

나는 일단 그를 상대하면서 알아가 보기로 했다.

나는 발키리들을 뒤로 물리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거나 몸을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 마법을 영창해 바람으로 몸을 감싸 날아올 그, 혹은 그의 말의 공격에 대비하기로 했다.

바람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것을 느끼면서 날아올 공격에 대비했지만 왜인지 그들에게서는 공격의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뭐해! 어서 공격하라고!”

그런 그들의 옆에서 알트가 펜던트로 보이는 것을 흔들며 다급하게 그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저 내게 시선을 보내며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쪽에서 안 오겠다면 이쪽에서 간다.

나는 바람을 몸에 두르며 그들에게 돌진하려 했다. 다음 순간 그들이 보인 행동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

그들이 보인 행동은 나를 포함한 그 싸움의 현장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는 들고 있던 대검, 칠흑검을 땅에 꽂으며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고, 그의 말. 나이트메어는 마치 인사를 하듯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서 싸우지 못해?”

알트가 다시 그를 다그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가 쩔그럭거리며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몸을 일으킨 그는 방금 전 땅에 박아 넣었던 대검을 뽑아들더니 그대로 대검으로 나를 가리켰다.

덤비라는 뜻인 것 같았기에 나는 마법을 영창해 손에 작은 회오리바람을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그를 향해 던졌고, 작았던 회오리바람이 점점 커지며 그를 덮치려 했다.

그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젔더니, 대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점점 커지던 회오리바람이 마치 두부가 잘리듯 부드럽게 반으로 갈라져 하늘로 흩어졌다.

다시 한 번 대검을 들어 나를 가리키는 그.

“...”

...그런 거였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게 보인 행동들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기사답게 우리들과 싸우다가 죽은 녀석이 어째서 돌아온 건지, 왜 그런 행동들을 한 건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나 때문이었다. 저 녀석이 돌아온 이유.

전쟁시절, 나는 우리 ‘백야’를 맞이하는 그를 보며 싸우기 전에 내 소환수가 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한눈에 봐도 그의 강함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왕을 향상 충성심이 나를 향한 발키리들의 충성심만큼 깊었던 그는 거절했다.

그렇기에 그는 내가 마왕에게도 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할 것이며 자신과는 다르게 그녀는 내 소환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었다.

그의 미련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 하나를 잡는데도 40명이나 달려들었어야 했는데 나 혼자서 그녀를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자 한쪽 무릎을 꿇은 건 내 너머에 있는 그녀, 그가 모시던 주군인 마왕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었고, 나를 대검으로 겨누던 행위는 그의 미련이었던 어떤 위협이 와도 그녀를 지키는 게 가능한가. 그것을 보기 위해 나를 시험할 테니 전력으로 덤벼오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내가 바람을 그에게 날렸을 때, 그것이 ‘빌린 힘’ 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고개를 저었던 것이었다.

빌린 힘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내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자들의 힘이었으니까.

시험을 볼 때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보고 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강한 소환수도 그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소환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왼 손, 검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흘낏, 바라보았다.

원래 힘쓰면 이거 분명히 깨질 텐데...

깨지면 다시 만들면 되지 않느냐 할 텐데, 반지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지금 끼고 있는 것도 시중에 파는 값싼 반지였으니까. 문제는 반지 안에 들어 있는 마력인데, 이 마력의 주인이 주인이니만큼 다시 마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러 가기가 껄끄러웠다.

그냥 원래 힘쓰지 말고 확 다른 녀석 소환해서 강제로 없애버려?

솔직히 강제적으로 없애버리는 방법도 많았다. 언데드들이 무조건 위에서 말한 방법대로만 없앨 수 있다면 프리스트나 성기사는 왜 있겠어.

하지만 나도 한 때 아이리스의 전속 ‘기사’였던 자. 기사로서의 예의는 지켜줘야 했기에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래, 나중에 몇 시간이고 설교 들어주지 뭐. 어차피 고생하는 건 미래의 나지, 지금의 내가 아니잖아?

“앨렌.”

내 부름에 앨렌이 내게 날아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네, 마스터.”

“저 녀석을 상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미안해. 혹시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뭐든지 말씀만 해주시길.”

나는 엄지로 내 뒤, 프리무스 일행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 좀 지켜줘라. 힘을 조절하긴 할 텐데, 너도 알다시피 조절한다고 해도 위력들이 너무 세서 말이지.”

“설마, 마스터...”

앨렌은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험관께서 커닝을 허용하지 않으시니, 내 힘으로 풀어야하지 않겠어? 이 일이 끝나면 상은 확실히 줄 테니, 부탁해.”

"괜찮으시겠어요?"

앨렌은 흘낏, 뒤쪽을 보며 말했다. 뭐가 있나 하고 보니.

"선생님! 힘내세요!"

창문 사이로 나를 응원하고 있는 귀족 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걱정하는 건 내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힘을 사용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힘을 사용하고 난 뒤에 귀족 소녀들의 무수한 질문에 시달릴 것을 걱정하는 것이 더 컸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차피 고생은 다 미래의 내가 할 것이었다. 힘내라, 미래의 나.

앨렌은 무어라 더 말을 하려하는 듯 보였지만 이미 결심을 한 내 얼굴을 보더니 더 말을 하지 않고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매들에게 날아갔다.

여전히 나를 향해 대검을 겨누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마법을 영창했다.

“마력 해방.”

* * *

일당백의 강력한 소환수. 그런 소환수의 힘을 아무런 제약없이 휘두를 수 있게 해주는 합일.

이 둘만 있어도 세간에서는 괴물이라고 평가받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랬다.

하지만 이 둘은 현성에게 있어서는 그저 본래의 마력을 숨기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마력 해방.”

파캉! 하며 반지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현성을 중심으로 강력한 마력이 방출되었다. 세간에서 ‘마력 폭풍’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분명 저 마력의 폭풍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을 터. 하지만 현성의 소환수인 발키리 자매들이 펼쳐준 결계 덕분에 프리무스를 포함한 일행은 마력 폭풍의 여파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었다.

한차례 마력의 폭풍이 지나간 후, 그들의 눈앞에 현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었던 눈동자는 보라색으로 물들었고, 입고 있던 옷은 검은색과 하얀색이 섞인 제복으로 바뀌었으며 검은색의 마력이 아우라처럼 몸을 감싸고 있었다.

“쓰읍~ 후~”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과 만족감에 그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딱 하나, 그에게 불만인 것이 있었다.

“...4년 만이지만 이 옷은 익숙해지지 않는다니까.”

자신의 복장을 살펴보며 툴툴대는 현성. 언제나 가벼운 옷차림만 입어오던 현성에게 이런 제복차림은 불편했다.

“하여간 스승도 참 취향 고약해. 내가 그렇게 제복은 싫다고 말했는데.”

“마스터! 멋있어요!”

“최고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입어주세요!”

하지만 발키리들은 그런 현성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치 아이돌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소녀팬들처럼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못 당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현성은 문득 자신이 싸움 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검은 갑옷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때,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 이제 시험 칠 수 있지?”

현성의 물음에 대답할 필요가 있냐는 듯 검은 갑옷은 대검을 고쳐들며 자세를 잡았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온몸이 검은 불로 덮여있는 말 또한 콧김을 내뿜으며 발로 땅을 긁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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