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32화 (32/146)

〈 32화 〉 싸움의 끝. (1)

* * *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가 대검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쿠구구구...

대검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마력이 모여들었고, 주변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취한 행동. 검에서 느껴지는 마력. 과거에 그와 싸웠던 기억. 이 셋으로 봤을 때 지금 그가 행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우리 백야와의 전투 막바지에 사용했던 마법. 우리 중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법. 자신의 모든 마력을 검에 담아 날리는, 최후이자 최강의 참격을 준비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온몸이 검은 불꽃으로 둘러진 다크 나이트의 말, 나이트메어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낸 최후의 불꽃을 뿜어낼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내가 진심을 보였으니 자기들도 바로 진심으로 들어가겠다, 이건가.

바뀐 나를 파악하느라 잔기술만 날려대면 어쩌나 했는데, 역시 기사 중의 기사.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드네. 안 그래도 곧 있으면 리리에가 깰 시간이라 급했는데.

나는 다크 나이트와 나이트메어의 합동공격을 어떤 마법으로 상대할지 고민했다.

혼자 싸웠던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는 뒤에 지킬 녀석들이 있었다. 너무 강한 마법을 사용하면 뒤에 있는 녀석들이 마법의 여파에 의해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좋아, 이걸로 가자. 무영창으로는 못 날리는 마법이지만 부끄러움은 잠깐일 뿐이니까.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이 몸은 파괴의 마신.”

내 손 앞에 보랏빛의 원이 생겨났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지닌 자.”

원이 점점 커졌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원의 가운데에서 정교한 문양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하나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천지만물 모든 것은 내 발밑에 있으니.”

똑같은 문양의 마법진이 방금 생성된 마법진의 앞에 생성되었다.

“내게 거역하는 어리석은 자여, 심연의 어둠 속에서 영원히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거라!”

퍼엉!

마법진에서 보랏빛의 빛줄기가 검은 갑옷을 향해 쏘아졌다.

동시에 검은 갑옷이 대검을 휘둘렀다. 대검에서 검은빛의 빛줄기가 방출되었고, 그에 맞춰 나이트메어도 코에서 검은 불을 내뿜었다. 불꽃은 소용돌이치며 검은 빛줄기를 휘감았다.

콰과과과!

불꽃의 소용돌이를 머금은 검은 빛줄기와 내 보랏빛 빛줄기가 격돌했다.

처음에는 비등비등하게 밀고 밀리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내 검은빛줄기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아예 보랏빛줄기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세를 탄 빛줄기가 갑옷과 말을 포함한 경로상에 위치한 모든 것을 휩쓸며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마법진을 거둬들였다.

* * *

움찔.

‘연결이 끊겼다.’

책들로 가득 찬 공간. 독서를 하고 있던 검은 머리의 여인, 실비아. 그녀는 그녀가 되살린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에게 연결되어 있던 그녀의 마력이 끊겼음을 느꼈다.

쾅!

문이 강하게 열리고 갈색머리의 소녀, 리리스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언니! 언니! 그를 움직이던 실이 끊겼어!”

“그래, 나도 방금 느꼈단다.”

“그가 진 거야?”

리리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정보를 넘겨준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부하인 ‘알트’가 다크 나이트라 불리는 검은 갑옷을 데리고 습격한 ‘학교’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었을 터.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알려진 왕성 귀족의 장남들과 장녀가 있다고는 했지만 고작 넷이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처리한 후에 예언에 따라 19세 미만의 귀족 소녀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던가, 학교를 점령해 그들의 목적인 ‘마왕 부활’을 실현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의문의 강자에 의해 다크 나이트가 패배했고,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곳에 있는 건 왕성 귀족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구나.”

“이제 어떡해? 간부들 모아서 다시 회의를 열어야 할까?”

“그럴 필요 없단다. 만에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가 질 경우 다음 수도 생각해뒀었으니까.”

“다음 수..?”

탁. 책을 덮으며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그리고 다음 수가 뭔데?”

실비아는 여전히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리리스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치사하다는 표정을 짓는 리리스를 뒤로 하고, 실비아는 문을 나섰다.

* * *

...쪽팔려. 잠깐일 줄 알았는데 잠깐이 아니잖아. 엄청나게 부끄러워. 주문을 말하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게 해놓은 스승이 원망스러워. 제발 이 마법의 화려함에 신경 쓰느라 아무도 듣지 못했기를.

그렇게 빌면서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흑마, 나이트메어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를 보더니 쓰다듬어달라는 듯 머리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의 왼쪽으로 다가가 목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고생했다. 그만 편히 쉬어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을 뗐다. 그는 하늘을 향해 히히힝! 거리며 소리를 질렀고, 이내 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여긴..?”

“응?”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싶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대검을 땅에 꽂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검은 갑옷이 있었다. 내 마법에 의해 갑옷은 여기저기 깨져 있었고, 반즈음 깨져있는 투구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군가..?”

“뭐야, 살아있었냐?”

“그 목소리는... 현성인가?”

내 목소리로 나를 알아본 듯, 그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아니, 그보다 어떻게 말을 하는 건데? 너 시체 아니었냐?”

보통 부활한 언데드들은 우워워. 그워워. 같은 좀비들이 낼 법한 소리를 내던가, 아예 인형처럼 말을 안 하던가, 둘 중 한 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은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군...

“그러면 나랑 싸웠던 것은 기억나?”

“방금 정신을 차리면서 기억이 흘러들어왔네.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자네가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에 당했을 때 나를 부활시킨 자와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인 것 같군.”

뭐야, 그러면 미련이고 나발이고 처음부터 원래 힘을 썼으면 되는 거였잖아?

...그나저나 내 너머에 있는 그녀에게 한쪽 무릎을 꿇은 것부터 내가 진심을 발휘하자마자 필살기를 날린 것을 포함해 경례를 올린 것까지가 전부 기사로서의 본능에 의한 것이었다는 말이지? 도대체 얼마나 충성심이 강한 거야?

“그렇다면 얼마 안 가서 네 말처럼 사라지겠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지.”

“미련은 풀렸냐?”

“미련... 미련이라...”

그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풀린 것 같군. 이렇게 시원한 기분은 자네와 처음 싸웠을 때 말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

“지금을 제외하면 처음 싸운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잖아.”

“하하하.”

슈우우...

갑옷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되었나보군. 앨리아님께 그때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전해주게나. 자네도 잘 있고.”

“뭐래? 너 아직 못 가거든?”

“뭐..?”

나는 하늘을 향해 오른팔을 들었다.

파칭!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그를 중심으로 결계가 펼쳐졌다.

“이건...”

“네가 이곳에 쳐들어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꾸 꺼내달라고 징징대더라. 네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다행이네.”

나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검은색의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검은빛과 함께 한 여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숨기고 있는 한 쌍의 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보라색과 연보라색이 섞인 머리칼. 입고 있는 건 메이드복.

“주인, 괜찮겠어?”

그녀가 걱정된다는 듯 안절부절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아까 전의 앨렌처럼 그녀를 소환했기 때문에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거겠지.

“그래서 결계를 친 거잖아.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고, 대화도 다 차단되니까, 여기서의 일이 밖에 새어나갈 일은 없어.”

저기 저 한쪽 뿔밖에 남지 않은 녀석도 알게 되겠지만 말로 잘 타이르면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는 않겠지.

“아, 그리고 이 결계는 시간을 늦출 수만 있을 뿐, 멈출 수는 없어. 저 녀석의 상태를 보아하니 최대는 5분정도겠네. 그럼, 대화 잘 나누라고. 나도 대화를 나눌 녀석이 있으니까.”

그녀와 검은 갑옷을 뒤로 하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알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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