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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38화 (38/146)

〈 38화 〉 소원 들어주기.(2)

* * *

* * *

소원 종이에 적혀져 있는 정원을 같이 산책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루아의 요청에 따라 그녀와 정원을 거닐던 중이었다.

“서, 선생님께서는 꽃을 좋아하시나요..?”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벚꽃색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 루아가 내게 물었다.

“꽃? 글쎄, 싫어하지는 않는데.”

루아는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잘 어울리는데?”

“네, 네? 뭐가요?”

“메이드복.”

“...”

루아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루아?”

“네, 네!”

귀까지 빨개진 걸로 봐서 많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솔직히, 저와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니 기쁘지만 한 편으로는 부끄러워서...”

“그럴 리가. 아까도 말했듯이 엄청 잘 어울려.”

다른 귀족소녀들도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보는 것만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커다란 과실과 메이드복의 조합은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실수투성이에 챙겨 주고 싶은 메이드의 느낌. 딱 그것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정원을 거닐었다.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루아에게 말을 걸었다. 관심사라던가 요즘 생활 어떤가. 라던가.

처음에는 내 계속된 질문에 어버버하며 말을 더듬던 루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더듬지 않고 술술 잘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소원을 들어 줘야 되는 게 사십 개도 넘게 남았다니까.”

“고생하시네요...”

그렇게 계속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나는 그녀의 행동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말을 더듬지 않기 시작했을 때부터 머리끈을 계속 만져대던 루아의 모습. 나는 그것이 머리끈을 제대로 고정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잠깐.”

“네?”

내가 발걸음을 멈추자 루아도 따라 멈췄다.

“너, 루아 아니지?”

“네, 네?”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얼굴을 하며 루아가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너, 또 다른 루아잖아.”

“...”

내 확신에 찬 미소에 루아는 입을 다물었다. 이내 루아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묶은 끈을 풀었다.

사라락. 양 갈래로 묶여 있던 머리카락이 밑으로 흘러내렸다.

“아~ 연기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언제부터 바뀌었던 건지는 몰라도 정원을 같이 산책하는 중에 바뀐 건 확실해 보였다.

“어떻게 알았어?”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라고 말하는 애들을 많이 만나 봐서 사소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에 익숙해졌거든.”

“뭐야, 그게~”

루아가 짧게 웃었다. 아무래도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잠시 우리는 아무 말없이 정원을 거닐었다. 분수대 근처에 온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기로 했다.

이럴 때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라던가 비슷한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정원을 같이 걸어달라는 소원은 네가 쓴 거야?”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루아가 쓴 게 맞아.”

“그래? 의외네. 루아라면 메이드복을 입지 않게 해 달라고 소원을 썼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원이 나오길래 네가 쓴 건 줄 알았어.”

움찔! 루아의 몸이 크게 떨렸다.

“아무래도 그 방법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

루아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다시 정원을 거닐던 중.

“넌 뭐 소원 같은 거 없어?”

“소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이번 내기의 일등 공신이잖아? 그래서 다른 애들 소원 다 처리하고 난 뒤에 루아에게 가서 네가 뭘 원하는 지 물어보려 했거든.”

“어... 나한테도?”

루아는 의외라는 듯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응.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거 있어?”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왜인지 루아는 어... 만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어... 만 반복하던 루아는.

“아하하...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까지 기회를 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서 나도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멋쩍은 듯 웃었다.

“굳이 지금 말 못 하겠으면 안 해도 괜찮아. 여차하면 원래의 루아랑 상의라도 해 보던가.”

“원래의 루아...”

내 말에 왜인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루아.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건지 사과하려고 할 때,

“그래! 이거야!”

루아가 소리치며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루아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 좀 정해주라!”

“...이름?”

“응! 이름!”

갑자기 웬 이름이람?

“원래의 루아도 루아. 나도 루아. 그러면 부를 때 헷갈리잖아? 루아와 나의 성격은 정반대인데 말이야!”

“그건 그렇지.”

“그래서! 나랑 루아를 구별할 수 있는 이름을 오빠가 지어 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 중인격은 쌍둥이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이쪽의 루아에게 이름이 있는 편이 혹시나 그녀의 힘이 필요할 때가 올 경우에 부르기 편할 것 같고.

또 다른 루아야 도와줘! 보다는 OO아 도와줘! 하는 편이 더 빠르고 쉬울 테니까.

“그런데 내가 정해 줘도 되는 거야? 보통 이름은 부모가 정하는 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모가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내 말을 듣자 루아는 씁쓸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 사람들한테 나는 그저 루아의 또 다른 루아일 뿐이니까.”

“그, 그래...”

무언가 말하기 껄끄러운 것을 말하게 한 기분이다.

그렇게 루아의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받으며, 내 머릿속에는 루로 시작하는 두글자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일단 루아랑 구분하되 루아의 또 다른 인격이니 시작은 ‘루’로 하는 게 좋겠네.

루이... 아니고, 루루... 이건 더 아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루아가 들어가야만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루아.

마치 태양이 져야 나오는 달 같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한 가지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루나..! 루나 어때?”

“루나? 무슨 뜻이야?”

“내 고향에서는 달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어. 루아와 너니까 같은 ‘루’가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서 생각해 본 이름이야.”

“달... 달이라...”

“왜?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이름으로 해 줄까?”

잠시 고민하는 듯 루나... 루나... 거리며 곱씹던 그녀는.

“아니야! 생각해 보니 나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아!”

활짝 웃었다.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라, 나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모든 소환수를 동원해서 루로 시작하는 알맞은 이름을 생각해 보게 했을 텐데.

“고마워! 이건 선물!”

“어?”

갑자기 루아가 내게 안겨들었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루아를 껴안은 채 꽃밭으로 쓰러졌다.

“야... 위험하잖아...”

“헤헤, 미안!”

혹시나 꽃들을 뭉개버렸을까 싶어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내 등에 깔린 건 푹신한 흙밖에 없었다. 주변을 보니 꽃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마냥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내 소환수들이 정원을 복구할 때 특별한 조치를 취해놨다고 말했는데, 아마 그 조치가 이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잠깐 푹신한 흙바닥에서 꽃들 사이에 파묻혀 맑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잠시나마 모든 걸 잊고 그저 멍하니, 멍하니 하늘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루아. 아니, 루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좀 실례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 괜찮아?”

“쓰리 사이즈?”

“아니야!”

세레나고 그렇고 왜 자기들 쓰리 사이즈가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궁금하긴 하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쓰리 사이즈를 묻는 게 아니잖아.

“후훗, 농담이야. 그래서 뭔데?”

“네 정체가 뭐야?”

“어..?”

루나는 당황한 듯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루아의 아버지, 레인 아르테미아는 루아가 죽이고 사는 감정들이 모여서 그녀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거기다 감정들을 일부러 뺐다 꼈다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질 않았다. 감정이란 것이 배터리마냥 뺐다 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참에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미안~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모르겠다고?”

“응. 루아가 어렸을 때부터 내면의 한구석에 있었으니까. 언제부터 생겨났고 왜 이 중인격인데 기억을 공유하는지, 내 정체는 뭔지. 오히려 내가 궁금한 걸?”

“그런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의문이 오히려 깊어진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이 모르겠다는데 어쩌겠어? 나중에 레인한테 제대로 물어보든가 해야지.

나는 다시 하늘을 보며 흘러가는 구름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응? 부끄러우니까 그만하라고? 싫은데~”

갑작스럽게 들려온 루나의 목소리. 내면의 루아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루나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얼굴을 내 가슴팍에 부비적거렸다. 루아의 부끄러워하는 듯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난 기분이 좋으니 상관없지만.

“뭐~? 난 그래도 상관없는데, 지금 나오면 부끄러움을 감당 가능하겠어~? 적어도 내가 오빠의 품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 바꾸는 게 낫지 않아~?”

움찔! 루나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 여파로 내 몸까지 움찔. 하며 떨렸다. 아마도 거절당한 듯했다.

“재미없긴~ 알았어, 알았어~ 넘겨 주면 되잖아~ 그럼 오빠. 다음에 또 봐~”

그 말을 끝으로 루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루아인지 루나인지 모를 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머리끈으로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다.

루아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흙바닥에서 일어났다. 흙이 묻은 옷을 툭툭 털며, 루아에게 물었다.

“괜찮아?”

내가 그녀에게 물은 괜찮아?는 루나가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는데 괜찮아?를 줄인 말이었다.

아까까지 루나가 내게 했던 행동들이 생각났는지 부들부들 떨던 루아는.

“죄, 죄송해요!”

그대로 뒤로 돌아 도망쳤다. 부끄러움이 극에 달한 듯 귀가 빨개져 있는 상태였다. 속도로 먹고사는 암살자 클래스답게 엄청 빠른 속도로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루아를 뒤로하고,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소녀의 소원이 적혀 있는 종이를 꺼내 펼쳤다. 리리에가 깨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하나라도 더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은...”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 *

“그래서, 저더러 그 학교에 잠입해 진현성인가 하는 남자를 조사하거나 처리해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백발의 남성이 실비아가 그에게 해준 얘기를 정리해서 말하자,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 같은 강한 분만이 가능한 일이랍니다.”

“뭐, 그건 상관없는데 말이죠. 보수는요?”

실비아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성공만 하신다면, 왕성귀족의 딸들을 제외한 다른 귀족 소녀의 처분권한을 드리지요. 귀족소녀의 마력정도면 괜찮은 보수겠지요? 그 정도면 당신도 진정한 ‘인큐버스 로드’로 거듭날 수 있으실 것 같은데요?”

실비아의 말대로, 그는 인큐버스였다. 여성의 마력을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그의 특성상, 순도 높은 90명 이상의 귀족 소녀의 마력은 최고의 보상임이 틀림없었다.

“괜찮은 건가요? 당신들의 목적은...”

“괜찮답니다. 최근에, 다른 분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거든요.”

후훗.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실비아. 더는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뭐죠?”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메이드가 백발의 남성에게 편지처럼 보이는 것을 건넸다.

“이건?”

“제 가문에서 보내는 당신의 추천서랍니다. 당신은 그 남자의 전속 메이드로 들어가시게 될 거예요. 그래서...”

백발의 남성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자가 돼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질 좋은 마력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치죠.”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눈 깜짝할 새 백발의 단발머리는 등의 중간까지 내려오는 장발이 되었다. 가슴은 빠르게 무르익어 튼실한 열매를 맺었고, 튼실하던 다리와 허벅지는 줄어들어 가느다랗고 매끄럽게 되었다.

그가 그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대충 이 정도면 되려나요?”

입고 있던 옷도 어느샌가 메이드복으로 바뀌어 있었고, 낮고 굵었던 목소리마저 높고 가늘어진 상태였다.

실비아는 그의 그녀로의 변화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것이 상대의 성별에 따라 성별, 모습, 상식, 인격마저 바뀐다던,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의 트랜스 체인지(Trans Change)인가요? 보는 건 처음이네요.”

“다 알고 계셨으면서 말씀은...”

분위기와 말투마저 완전히 여성적으로 바뀐 그. 아니, 그녀의 모습에 실비아는 작게 웃었다.

“미안해요.”

예의상 하는 사과임을 아는 그녀 또한 피식. 웃으며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 전해드리지요.”

그녀가 떠날 기미를 보이자, 실비아의 옆에 서 있던 메이드가 문을 열어 주었다.

“아 참, 한 가지 말씀을 안 드린 게 있네요. 만만치 않은 상대일 거예요. 그 백야 출신이거든요.”

“백야? 아~ 그 마왕의 뒤를 쳐 전쟁을 끝냈다는 자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요. 하나하나가 강자들이니 필시 그 남자도 강할 거랍니다.”

실비아의 말에 그녀는.

“글쎄요. 고작 앨리아 한 명을 잡는데 40명 중 절반이나 희생될 정도면 그리 걱정은 되지 않네요.”

짧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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