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39화 (39/146)

〈 39화 〉 축제 준비.(1)

* * *

* * *

집무실의 안, 책상에 앉아 있는 나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뭉치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분전, 루아가 루나의 장난에 부끄러운 짓을 많이 당해 도망치는 바람에 정원 산책이 강제로 끝나게 되었다.

원래는 리리에가 일어날 시간에 맞춰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중간에 끊겨 버린 탓에 남은 시간 동안 다른 애들의 소원이나 처리할 생각으로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메이드장인 리엘씨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서류 승인 작업은 다 하셨습니까?”

전혀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던 말을 꺼냈다.

“...승인 작업이요?”

급한 서류 작업들은 다 해놨을 터. 그런데 갑자기 승인 작업이라니? 나는 당황에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편지를 안 읽으신 건가요?”

“편지요?”

“제가 오늘 아침에 드린 르니아 가문에서 온 편지 말입니다.”

“...”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침... 아침... 아..!

기억났다. 발키리들하고 뒤엉켜 있을 때 리엘씨가 내게 건넸었지. 발키리들 때문에 까먹고 그냥 나왔네.

“죄송합니다... 아침에 일이 있다 보니 까먹고 있었네요.”

리엘씨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편지를 건네주었다. 르니아 가문의 인장이 찍힌 봉투였다. 꽤 고급스러운 재질인 것 같은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편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아이테르일세. 잘 지내는가?]

잘... 지내고 있긴 하죠. 가끔 귀찮은 일이 일어나는 거 빼면.

[다름이 아니라, 곧 만월제이지 않나?]

만월제가 뭐지? 이따가 리엘씨한테 여쭤봐야겠다.

[원래대로라면 왕도에 와서 축제를 즐겨야 되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가 있는 곳이 그럴 여건이 안 되는 곳이라 말일세.]

그거야 잘 알고 있지.

[자네가 하나하나 소환수를 배치해서 지켜준다면 왕도로 와도 되겠지만.]

날로 먹으려 들고 있네. 내 소환수가 무슨 경호원인 줄 알아. 우리 애들은 축제 안 즐겨?

[자네가 날로 먹으려 든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말일세. 자네의 소환수들도 축제를 즐겨야 되는데. 안 그런가?]

소름 돋네. 날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야?

[그리고 축제란 모름지기 즐겨야 하는 게 아니겠나. 누군가 습격할까 두려워하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할 바에야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게 훨씬 낫지.]

한 번도 뒹굴거려본 적 없는 인간이 말은 잘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길 테니, 자네 쪽도 자네대로 즐길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네.]

...뭐?

[왕도만큼은 아니겠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이쪽에서 인력들을 보낼 예정이네. 물론 자네가 승인해야겠지만.]

승인 서류라는 게 이런 거였나.

[설마 새장 속의 새처럼 부득이하게 갇혀 있는 그녀들을 위해 거절하지는 않겠지? 자네의 그릇이 그 정도로 작지는 않으리라고 믿네.]

갇혀 있기는 개뿔. 나한테 말만 하면 소환수를 붙여서 얼마든지 외출할 수 있는데.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외출하겠다고 말했던 애들은 없는 것 같은데?

하긴, 나라도 여기가 더 편할 거 같네. 원하는 게 있으면 대부분은 다 얻을 수 있지. 예법이니 뭐니 눈치도 안 봐도 되고. 간단한 규칙만 지키면 되니까.

다과회 때 들어 보니 여기에 있는 게 더 좋다고 말하는 애들도 여럿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월제를 맞아 일손이 부족할 것 같기에 자네의 비서겸 전속 메이드로 우리 쪽에서 사람을 한 명 보내네. 아마 이 편지가 도착한 날 점심 즈음에 도착할걸세.]

비서 겸 전속 메이드? 여차하면 소환수랑 같이하면 되는데, 굳이?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내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뭐, 이미 보냈다는데 어쩔 수 없지. 성의를 봐서 요긴하게 일을 맡겨볼까!

나는 다 읽은 편지를 리엘씨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하나도 안 하신 것 같으니 서둘러 주시길. 서류는 집무실에 있습니다. 집무실로 가는 길은 아시죠?”

“...네.”

“저는 차를 준비해 가겠습니다.”

리엘씨는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집무실로 향했다.

* * *

“그런데 만월제가 뭔가요?”

서류들을 읽고 사인하면서, 리엘씨에게 물었다.

리엘씨가 진짜로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진짜 모르시는 건가요?”

“네.”

만월. 그러니까 보름달이 뜨는 날 하는 축제인 건 알겠는데,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 성대하게 준비를 한다고?

“현성님, 다른 분들은 몰라도 현성님은 아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백야 출신이시잖아요.”

“네?”

“일주일 뒤가 무슨 날인지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일주일 뒤?”

일주일 뒤면 15일인데?

그때, 머릿속으로 앨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주인! 주인이 나 이긴 날!’

“아, 아..!”

앨리아의 어시스트 덕분에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 올릴 수 있었다.

고맙다, 앨리아!

“백야가 마왕을 쓰러뜨린 날이죠?”

리엘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왕이 쓰러진 날. 그로 인해 인마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할 수 있었던 날. 그날을 기념해서 축제를 벌이는 거죠.”

“그런데 왜 만월제죠?”

전쟁에 이긴 것을 기념하려고 했으면 달과 관련된 게 아니라 태양과 관련된 걸로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 마왕 토벌단도 백야로 바뀐 거라고 들었는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여러 가지 이름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백야제라던가, 토벌제라던가. 하는 식으로.”

네이밍 센스가 최악이군. 누가 생각한 건지. 백야제가 뭐야? 백야제가. 리리에가 더 잘 짓겠네.

‘주인... 백야제는 주인이 낸 의견이잖아...’

또다시 들려오는 앨리아의 목소리. 이번엔 어시스트가 아니라 슛이었다. 그리고 골.

‘조용히 해라잇. 쪽팔리게.’

“그러다가, 폐하께서 보름달이 떠서 상대의 마력이 몇 배로 강해진 날에 승리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뜻으로 만월제는 어떠냐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월제가 된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내가 이 시간에 이 짓거리를 하는 거군. 리리에가 깨기 전에 끝내야 되는데.

그래도 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가게를 놓을 장소와 가게의 종류들의 적힌 승인서였다.

아이스크림 가게. 솜사탕 가게. 기념품 가게. 음료수 가게. 등등.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하루의 축제를 위해서 가게를 내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게를 세울 만한 곳은 많이 있으니 숫자는 상관없다. 운동장도 있고 다른 공간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굳이 이런 걸 내 허락을 받고 해야 하는 거야?

속으로 한 생각이었지만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었나보다. 홍차를 타던 리엘씨가 내 표정을 읽은 듯 작게 웃었으니까.

“현성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학교는 특수한 학교니까요.”

그런 건 잘 알고 있다. 이 학교는 겉만 학교의 모습을 띠고 있지, 대예언자가 한 ‘마왕 부활의 열쇠는 만 19세 미만의 귀족 소녀들이다.’ 예언에 의해 그녀들을 한 곳에 모아 지키는 요새 같은 곳이니까.

그런 곳에 나는 왕성 귀족과 거래를 해서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자 이곳의 모든 걸 총괄하는 사람으로 오게 된 거고.

...암부 놈들. 제대로 된 정보를 안 가져다주기만 해 봐라. 전부다 꿀밤 한 대씩 때릴 거야.

나는 귀찮음에 한숨을 내쉬며 서류승인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어떻게 리엘씨가 내가 백야인 걸 알고 있는 거지?

“리엘씨. 혹시 제가...”

“현성님께서 본인의 입으로 백야 출신인 것을 말씀하셨냐고요?”

“네.”

프리무스의 말실수로 레이나 다른 왕성 귀족의 소녀들이 알아버린 것은 아는데. 어떻게 리엘씨까지 알고 있는 거지?

“현성님. 최근에 다른 아가씨들의 현성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신 것을 못 느끼셨나요?”

“대충 느끼긴 했죠.”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를 쓰러뜨렸을 때부터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걸 눈치 못 챘을 리가.

그래서 1대100으로 술래잡기를 했잖아. 그 눈빛들이 무언가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설마.”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보는 이유가 다크 나이트를 쓰러뜨린 게 전부가 아니었다면?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나는 사인질에 속도를 높였다. 어차피 대부분이 가게의 승인서. 그렇다면 문제될 건 없어보였다.

이 서류작업이 다 끝나면 잘 치료하고 있나 회복실로 병문안이나 가야겠군.

* * *

오싹!

회복실의 안에서 다크 나이트와의 전투로 인해 다친 몸을 치료하고 있던 금발의 청년, 프리무스 데 르니아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떨었다.

“괜찮아? 갑자기 몸을 왜 떨어?”

옆 침대에 누워 있는 붉은 머리의 청년, 리안 아르테미아가 물었다.

“뭔가 소름이 돋아서...”

앞 침대의 보라색 곱슬머리의 청년, 하이네 크리샤가 왠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현성님에 대해 말하고 다닌 거 들킨 거 아니야? 우리 동생들을 포함한 모두가 알게 됐으니까.”

“아니... 그랬으면 다크 나이트를 쓰러뜨린 바로 이튿날에 나를 찾아오셨지 않았을까?”

왜 지금? 하고 말하는 표정으로 프리무스는 제발 그가 느낀 게 착각이기를 빌었다.

“네가 현성님에 대해 말한 게 두 번째잖아. 첫 번째는 레이랑 다른 애들한테. 두 번째는 네 병문안을 온 귀족소녀들한테. 귀족 소녀의 특성 상 소문이 안 퍼졌을 리가.”

“...”

이마를 짚는 프리무스. 이대로 가면 필시 지옥코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려보기로 했다. 그는 하이네의 옆 침대에서 베개에 기대 책을 읽고 있는 백발의 여인, 루이네 아리아에게.

“루이네..! 현성님은 네 말은 잘 들어 주시니까 네가 말 좀 잘해주면 안 될까..?”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원했다.

하지만 루이네는 읽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업자득.”

이란 말만을 남길 뿐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