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축제 준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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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군요.’
흑발의 메이드복을 입은 여인, 아스모는 학교의 정문 앞에 서서 곧 마중을 나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눈으로 보이는 범위 내에서 학교를 살펴보았다.
길게 늘어선 꽃들로 이루어진 정원. 정원의 가운데에는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 같은 둥근 분수대. 시야가 미치는 곳까지 전부 각양각색의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이 귀족들이 있는 곳이 맞구나. 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 왔다.
‘정원이 저 정도 크기니 나머지들까지 따져 보면 거의 작은 마을 하나를 옮겨놨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누가 귀족들 아니랄까. 쓸데없이 크게 짓는 건 여전하군요.’
“당신이 아스모님이신가요?”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학교의 메이드들을 총괄하는 메이드장인 리엘이 서 있었다.
분명 메이드복을 입고 있지만 왜인지 메이드 같지 않은 고풍스러운 리엘의 분위기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며 메이드답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네, 이곳을 총괄하는 분을 모시게 된 아스모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걸.”
아스모는 실비아에게 받았던 르니아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는 편지봉투를 리엘에게 건네주었다. 신분확인용이었다.
리엘은 아스모가 건넨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혹시나 하는 위조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봉투를 열어 안의 편지를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아닌 이곳의 제일 높은 사람만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확인을 마친 리엘은.
“네, 확인되셨습니다. 그럼, 현성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침 저기 지나가시네요.”
라고 말하며 그녀를 데리고 때마침 세레나와 함께 정원을 지나가고 있는 현성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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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와 함께하는 가게들의 확인 작업이 중반 즈음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현성님.”
뒤에서 들려오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리엘 씨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아이테르님께서 보내신 분이 도착하셨습니다.”
리엘 씨의 손을 따라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리엘 씨의 옆에 서 있던 그녀에게 향했다.
인형 같은 새하얀 피부에 등의 중간까지 내려올 법한 흑발을 세 갈래로 땋아 뒤로 묶은 머리.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붉은 눈동자. 메이드복을 입고 있음에도 몸에서 풍겨 오는 고혹적인 향기에 취할 것만 같은, 왜 메이드를 하는 건지 의문이 들 만큼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엄청 예쁘신 분이에요! 메이드하기에는 아까운 분인 것 같은데,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요?”
세레나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듯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현성님.”
그녀는 배에 손을 올리며 인사를 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자태에선 우아함마저 느껴졌다.
“현성님을 모시게 된 메이드, 아스모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 저분이 아이테르가 말했던 내 일을 도와줄 전속 메이드구나. 점심때쯤 온다더니, 정확하군.
“선생님, 선생님.”
세레나가 나한테만 들릴 법한 작은 목소리로 내 팔을 툭툭 쳤다.
“또 왜.”
귀를 대보라는 그녀의 신호에 나는 자세를 낮췄다. 내가 그녀에게 귀를 가져다 대자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저분, 뭔가 레이언니랑 닮지 않았어요?”
세레나의 말에 나는 다시 찬찬히 그녀를 살펴보았다. 물론 계속 몸을 쳐다본다면 실례니까 신속하게 눈대중으로만.
“글쎄? 비슷하게 보이지는 않는데.”
대충 눈대중으로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스모 씨와 레이의 닮은 점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굳이 비슷한 점을 찾아보라면 같은 흑발이라는 것뿐이었다.
풍기는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레이가 얼음공주라는 느낌이라면 아스모씨는 서큐버스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메이드한테 서큐버스같은 분위기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것 같지만 그녀를 딱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었다. 어딘가의 달 토끼 마냥 까딱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저 붉은 눈동자에 홀려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줄 것만 같았다.
몸의 중간에 달린 과실도 이쪽이 더 컸다. 눈대중으로만 봤으니 정확한 크기는 모르겠지만 몸에 남은 감각으로 봤을 때 루아보다 살짝 작은 정도?
그러니 세레나가 그녀를 레이와 닮은 것 같다고 말하는 거에 동감할 수가 없었다. 아스모 씨의 뭘 보고 레이와 닮았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 죄송하지만 아스모 님의 학교 안내는 현성님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원래대로라면 제가 하는 게 맞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리엘 씨의 얼굴에서 나는 피곤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하품을 억지로 참고 있는지 가끔가다 부들거리는 것도 볼 수가 있었다. 지나가다 메이드 분들이 축제 때문에 바쁘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메이드들을 통솔하는 직책인 리엘 씨는 오죽할까.
“괜찮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가게들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제게 맡기세요.”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리엘 씨는 꾸벅. 인사하고 등을 돌려 떠나갔다.
나는 다시 일로 돌아가 세레나와 아스모 씨와 함께 가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학교 안내라는 목적도 있었기에 그녀에게는 아무런 일을 맡기지 않았다.
양옆에 미소녀와 미인을 달고 다니는 바람에 들리는 가게마다 양손에 꽃을 끼고 다닌다고 놀림 받았지만.
잠시 후, 그 많던 가게의 확인 작업이 끝났다. 해는 어느샌가 절반 정도 넘어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세레나의 ‘제가 도와드렸다는 거 잊지 마세요!’ 라는 당부에 대충 대답하며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의 푹신함이 나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고생하셨어요. 차를 타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과자는 필요하신가요?”
“아뇨...”
“알겠습니다.”
아스모 씨는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찬장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차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냥 이대로 뻗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곧 올 시간이 됐으니까.
“후...”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해 피로를 조금 떨쳐 낸 뒤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를 탈 준비를 하는 아스모 씨를 지나쳐 문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포수마냥 쭈그려 앉았다.
“현성님?”
“아스모 씨. 문 근처에 있다가 제가 신호하면 문을 열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내 말이 의문이었는지 아스모 씨가 뭘 하는 거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곧 내가 농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문 옆에 가서 문고리를 잡았다.
다시 자세를 잡은 나는 문을 응시하며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다다다닷!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는 뜻은 복도의 끝에서 달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아직이다... 조금만 더...
지금!
“아스모 씨!”
내 신호에 아스모 씨가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슈아악!
그와 동시에, 푸른빛의 섬광이 열린 문을 지나서 정확히 직선거리에 있던 나와 부딪쳤다.
쾅! 굉음의 여파로 방 안이 흔들렸다.
“큭..!”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나는 뒤로 밀려나지 않게 하체에 힘을 주며 버텼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휴...”
간신히 파란색 섬광을 멈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란색 섬광의 정체는 내 사랑스러운 딸, 리리에였다.
내 품 안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리리에는 헤헤거리며 흰 이를 드러냈다.
작고 귀여운 소녀의 외모였다. 하지만 머리에 있는 푸른 색의 뿔과 밑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가 그녀가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받아서 안아 올렸는데. 날 주저앉게 할 정도까지 성장했구나... 흑..! 이 아빠는 기쁘다!
그렇게 감격에 겨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괜찮으세요?!”
아스모 씨가 놀란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리리에를 안아 올렸다.
리리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헤. 웃으며 내 얼굴에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아까까지 내 몸을 지배하던 피곤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다시 가게들을 살피러 가야 한다고 해도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기분이라니까, 기분.
“재밌게 놀고 왔어?”
“응! 인형 놀이도 소꿉놀이도 재밌었어!”
리리에는 활짝 웃으며 어떻게 놀았는지 내게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팔을 붕붕 흔들며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다며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에 나는 아빠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빠. 저기 있는 예쁜 언니는 누구야?”
리리에가 아스모 씨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빠? 현성님은 결혼을 하셨던 건가요?”
아스모 씨가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 결혼이라고 해야 하나... 사정이 좀 있어서... 제대로 말해봤자 안 믿으실 걸요?”
“그런가요? 그러면 더 묻지 않겠습니다.”
뜻밖에 순순히 물러나준 아스모 씨.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것저것 물어봤을 텐데, 역시나 귀족가문의 메이드다.
“아빠아~!”
리리에가 대답을 재촉하는 듯 꼬리를 흔들거렸다. 궁금한 걸 못 참는 게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아빠 일 도와주는 언니야. 아스모 언니라고 부르면 돼.”
아스모 언니, 아스모 언니. 중얼거리던 리리에는 내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아스모 언니! 우리 아빠, 잘 부탁드려요!”
라고 말하며 꾸벅. 허리를 숙이며 아스모 씨에게 인사하는 리리에. 푸른 색의 머리칼이 그녀를 따라 사락.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누구라도 아빠미소를 지을 법한 귀여운 모습이었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의 바른지 모르겠네.
귀여운 건 어디나 통한다는 듯 아스모 씨도 작게 웃으며 똑같이 고개를 숙여.
“아뇨.”
인사를 받아주며,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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