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43화 (43/146)

〈 43화 〉 레이.(1)

* * *

잠시 후, 대충 복구 작업이 끝났다. 말끔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연무장을 보며 나는 만족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시간을 돌린 것처럼 깔끔한 복구. 역시 나다.

정확히는 내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 덕분이지만, 소환수를 데려온 게 나이기 때문에 내가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거다. 반론은 받지 않겠다.

그나저나, 갑자기 저것들이 왜 움직인 거지?

분명 부서졌다가 복구가 되면 다시 건들기 전까지는 쭉 그 자리에 멈춘 그대로 서 있게 설정해 놨을 것이었다.

아스모 씨가 실수로 건들인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연무장을 점검하는 동안 계속 내 옆에 있었고, 우리와 붉은 갑옷들의 거리는 적어도 인간의 팔 길이로 닿지는 않았다.

레이도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여기저기 점검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쌀쌀맞은 성격이라지만 나를 위험에 빠뜨릴 녀석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내 마력에 반응한 건가? 도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아무도 없을 때 내가 이 근처를 지나다닐 때마다 깨어나서 돌아다니게 되는 거니 내가 못 발견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가지의 가설을 더 세워 보며 추리해봤지만 어느 것 하나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게 없었다. 결국 찝찝한 기분만 남은 채로 생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다시 설정해 놔야겠다.

나는 갑옷들에게로 걸어갔다. 하나하나 다시 건들며 설정을 재조정한 뒤, 확인차 다시 한번 깨웠다가 부숴보았다.

그렇게 몇 번을 부쉈을까, 복구된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갑옷들을 부수는 것을 멈췄다.

확실하게 하려면 몇십번은 해야 하는데, 계속 부서졌다가 복구 되도 가만히 있는 갑옷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하면 안 될 걸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래서 지성이 없는 애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니까.

손을 탁탁 털며, 나는 이 정도면 됐겠지 라고 생각해

“쉬엄쉬엄해. 무리하다가는 아무리 나무라도 골로 간다?”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레이는 다시 붉은 갑옷들을 상대하려는 듯 갑옷들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쌀쌀맞은 녀석이다. 저러고 나중에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몰라.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는 건가요?”

“그래야죠, 여기는 끝났으니... 어?”

레이가 상대하려는 붉은 갑옷들의 숫자를 본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철그럭.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붉은 갑옷들의 숫자가 10체였기 때문이었다.

미드나에서도 6체를 상대하면서 거의 탈진했는데, 10체를 상대하겠다고? 내가 쉽게 한 방에 보내버리니까 자기도 할 수 있겠다 싶은 건가?

무모한 것 같았다. 말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여기서 나 다음으로 강한 녀석이다. 게다가 다른 소녀들에게 들어서 오늘까지 오면서 밥과 잠과 루아나 다른 소녀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수련에만 몰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얼마나 성장했을지는 미지수였다.

여차하면 내가 끼어들면 되니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만약 저 붉은 갑옷들을 전부 처리한다면 다음엔 도대체 뭘 훈련 교재로 원할지...

* * *

10체의 갑옷이 일제히 레이에게 달려들었다. 레이도 그에 맞춰 7자루의 검을 소환했다. 6자루에게 6체의 갑옷을 맡기고 나머지 4체는 자신이 맡으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이 검에게 맡긴다는 거지, 실제로는 6자루의 검을 직접 조종해야 했다. 게다가 6자루의 검을 조종하면서 나머지 4체의 갑옷을 상대해야 하는, 극한의 컨트롤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대단하네...”

그걸 그녀는 해내고 있었다. 정말 가공할 만한 실력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도시 미드나에서 6체의 갑옷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던 그때의 레이가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대련하면 내가 0.1프로의 확률로 질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잠깐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의 상태가 눈에 띌 정도로 나빠졌다. 지금 저 녀석의 검의 움직임을 보면 초심자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아스모 씨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지금 레이의 상태를 보면 누구라도 아스모 씨 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검들은 허공을 베어 가르거나 갑옷에 튕겨 나가기도 했다. 활성화된 원소 마법이 꺼지기도 했으며, 가끔가다 자기들끼리도 부딪치기도 했다. 마력 운용이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4체를 상대하는 레이 본인의 상태도 이상했다. 목표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은 듯 가끔가다 허공을 가르기도 했다. 아까 4자루의 검으로 상대하던 때의 레이가 훨씬 강해 보였다.

맞지 않던 갑옷들의 공격도 점점 그녀의 몸을 스치기 시작했다. 저게 나무재질이라 스쳐도 살짝 까지는 정도에서 끝나는 거지, 원래 갑옷들의 무기였으면 여기저기 베여서 과다출혈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을 텐데, 왜인지 계속 무모하게 갑옷들의 상대를 계속했다.

저기서 더 했다간 진짜로 다치겠네.

나는 다시 반지가 깨지지 않는 선에서 마력을 개방했다. 오늘만 두 번째로 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격돌하려는 그들 사이에 껴들었다. 검을 휘두르려는 듯한 자세인 레이와 날아오는 검들을 향해서 왼손을 뻗었고, 돌진해 오는 붉은 갑옷들을 향해선 가볍게 내치는 듯한 손짓했다.

끼익! 콰아아아!

날이 내 몸을 향해 있는 6자루의 검은 기기긱­ 대며 부들부들 떨리며 내 손 앞에서 멈춰 있었다, 레이도 또한 베어 가르려는 자세 그대로 부들대며 강제로 멈춰 있었다. 내 손짓에 하늘로 날려 보내진 붉은 갑옷들은 하나둘씩 쿵. 쿵. 거리며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왼손을 거뒀다. 6자루의 검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고, 베어 가르려던 자세였던 레이는 바닥에 검을 꽂아 지팡이 삼아 그녀의 몸을 지탱했다.

나는 땅에 박혀 있는 붉은 갑옷들을 뒤로하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레이에게로 향했다. 그녀를 다그치기 위해서였다.

“여긴 마법을 연습하는 곳이지,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 아니야. 뭔 놈의 연습을 이렇게 살벌하게 해?! 네가 다치면 어쩌려고!”

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력을 끝까지 끌어쓴 건지 숨을 가쁘게 내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검으로 지탱하며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정도 숫자는... 처리할 수 있지 않으면... 이길 수 없으니까요...”

“뭐?”

그 말을 끝으로, 레이의 몸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야, 야!”

나는 간신히 그녀의 허리를 잡아 무너져 내리는 몸을 멈출 수 있었다. 그때문에 바지가 조금 찢어졌지만 지금 바지가 대수인가.

레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앗 뜨거!”

완전 불덩이였다. 몸살 수준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열이 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병이 있으면 아프다고 얘기를 할 것이지! 왜 다들 병이 죄인 것처럼 심각해질 때까지 숨기는 거야?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발키리들 중 맏언니인 앨렌과 합일했다. 치료마법을 쓰기 위해서였다.

나는 왼손으로 그녀를 받쳤고, 오른손은 그녀의 이마에 대며 치료 마법을 영창했다.

“큐어.(CURE)."

손에서 하얀빛이 번쩍였다.

파직­

“어..?”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한다는 듯 내 손과 레이의 이마 사이에서 작게 스파크가 일며 내 손이 퉁겨져 나왔다. 대비하지 못 했던 충격을 받은 내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자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은 손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

발키리의 치료마법은 일반 힐러 관련 클래스가 사용하는 단순한 치료마법과 같은 영창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이미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죽기 직전의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강력한 신성 마법이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법이 퉁겨져 나왔다는 건, 발키리와 동급의 마력을 지닌 자가 레이에게 건 저주거나 태어날 때부터 몸에 달고 살은 병이라는 소리였다.

“어쩌죠?”

“일단 회복실로 옮겨야겠어요.”

내가 그녀의 ‘저 상태’를 아는 것도 아니고, 발키리의 회복마법도 안 먹힌다. 지금 머리를 써봤자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일단 그녀를 회복실에 옮겨 놓고 그녀의 ‘저런 상태’를 알법한 인물, 레이의 아버지인 아이테르 데 르니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를 옮기고자 안아 올렸을 때.

“안... 돼요...”

레이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상태가 나아진 건가 싶어 확인해 봤지만 여전히 얼굴은 붉었고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옷깃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 것으로 보아 모든 힘을 쏟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쉬면 나을 거예요...”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레이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여기서...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된다는 듯,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말하는 레이. 움직이지 말아 달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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