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48화 (48/146)

〈 48화 〉 레이.(5)

* * *

어디를 둘러봐도 어둠뿐인 공간에 레이가 서 있었다.

‘여긴..?’

분명 붉은 갑옷들을 상대하다가 마력 과다로 쓰러졌을 터였다. 그랬던 자신이 어째서 이런 어둠뿐인 공간에 있는 걸까? 레이는 생각했다.

그녀가 이곳이 꿈속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두운 공간에 덩그러니 서 있는 꿈이라니. 별 이상한 꿈도 있네. 라고 레이는 생각했다.

그때, 뒤에서 엣 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이 목소린?’

레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앞에 흑발의 여인이 그녀와 똑 닮은 흑발의 소녀를 안아 들고 장롱으로 가는 장면이 보여 지고 있었다.

‘설마...’

레이는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이곳이 꿈속 세계가 아니라 악몽 속 세계라고.

“여기 꼭꼭 숨어 있어야 한다?”

“숨바꼭질이야?”

‘막아야 해!’

레이는 그녀들의 사이로 들어가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레이를 눈앞에서 비극을 향해 가고 있는 모녀의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방해했다.

“응. 숨바꼭질이야. 그러니 못 찾겠다고 할 때까지 숨어 있어야 한다?”

“엄마는?”

‘가지 말라고 해!’

“엄마는 다른 곳에 숨을 거야. 자, 이제 조용히 하렴. 시작하자마자 들키긴 싫지?”

흑발의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 쓰다듬은 흑발의 여인은 장롱 문을 천천히 닫았고 장롱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장롱 문이 완전히 닫히고 성녀의 마력이 담긴 갖가지 마법들을 걸고 나서야 흑발의 여인은

“미안해, 레이. 엄마랑 아빠가 더 이상 놀아주지 못해서.”

장롱에 머리를 대고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 돼..! 안 돼..!’

쿵. 쿵.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드리며 어떻게든 흑발의 여인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당연하다는 듯 벽의 너머의 여인에겐 닿지 않았다.

장롱 문을 닫은 흑발의 여인은 재빨리 밖으로 달려나가 기사들로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는 자들에게 곧 올 누군가를 대비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집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깨졌다.

결계를 깨뜨린 건 백발의 청년이었다. 그를 보자 기사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청년이 손짓 할 때마다 기사들이 나가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덤벼드는 기사들을 전부 처리한 백발의 청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청년이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흑발의 여인은 재빨리 문으로 향해 문에 손을 대고 마법을 영창했다.

촤르르륵. 나무 문에 하얀빛을 내뿜는 사슬이 X자로 쳐지며 그 가운데에 자물쇠가 생겨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서 하얀빛이 번쩍였다.

곧이어 폭발로 인해 반쯤 날아간 통나무집에서 백발의 청년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기어 나왔다.

백발의 청년과 흑발의 여인은 잠시 서로를 응시하더니 그대로 격돌했다.

‘제발... 도망쳐요...’

애절한 목소리로 애원해 봐도 닿지 않는다.

레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못 하고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보는 것뿐이었다.

‘아... 아...‘

싸움은 백발의 청년의 승리였다. 가쁜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던 그는 흑발의 여인에게 다가가...

“안 돼!!”

장면의 재생은 거기서 멈췄다.

* * *

그나저나 얘는 언제 일어난담?

아이테르에게서 얘기도 다 들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나를 배려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아스모 씨도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레이는 여전히 깨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얘, 오늘 안에 깨어나기는 해?”

나는 아스모 씨가 돌아오기 전에 소환을 해제시켜 놓아 현재는 시야 공유를 통해 레이를 보고 있을 앨리아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레이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력이 꽤 안정 됐으니 곧 깨어날 거야.]

20분 정도 전에 한 소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앨리아.

마력이 안정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발키리의 마력이 담긴 반지를 낀 순간부터 가빴던 숨은 안정되었고, 불덩이 같던 몸은 정상체온으로 돌아와 있었으니까.

가끔가다 식은땀을 흘리긴 했지만 몸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너 아까도 그 소리 했던 거 같은데?”

[주인의 착각이야.]

“...”

말을 말아야지.

시계를 보니 조금만 더 있으면 저녁 시간이었다. 만약 레이가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면 밥시간을 놓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밥과 아픈 학생을 저울질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 아픈 학생이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터지면 남녀를 불문하고 덮치고 다닌다는 폭탄을 지닌 상태라면 더더욱.

나는 이곳에 그녀들을 돌보는 선생으로 온 거니까.

하지만 밥을 거르기도 싫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음식들이 삼시새끼 나왔으니까. 하루하루가 산해진미, 진수성찬, 만한전석 부럽지 않을 만큼 호화로운 메뉴로 가득했으니까.

여차하면 메이드 분께 방으로 배달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레이가 깨어났다.

“안 돼!!”

그것도 아주 요란하게.

악몽을 꾼 것일까? 벌떡. 상체를 일으킨 레이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래, 악몽을 꿨으면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일어날 수도 있지.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런 생각을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놀란 내가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가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후두부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기절하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은 뒤에 넘어져 있던 자세로 했다는 것이었지만.

“괜찮으세요?!”

아스모 씨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왼쪽으로 살짝 구른 다음, 아스모 씨에게 의자를 다시 세워달라고 말했다.

아스모 씨가 의자를 세워주자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레이와 대화를 해 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어라..?”

후두부에 강해진 충격이 좀 컸던 탓인지 몸이 풀썩, 주저앉았다.

아스모 씨의 부축을 받아 다시 일어난 나는 의자에 앉았다.

“...레이?”

하지만 레이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아... 아... 아... 아...”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야! 괜찮아?!”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그녀의 패닉 상태는 여전했다. 그러다가 이내,

“아아악!!!”

폭발했다.

“큭..!”

강대한 마력의 방출로 인해 마력의 폭풍이 방 안에 몰아쳤다. 방금 꾼 꿈이 정신에 막대한 충격을 끼친 것 같았다.

계속 저 상태로 뒀다간 방 안의 물건들이 남아나질 않을 뿐 더러 레이의 정신도 파괴되어 진짜 폐인이 되어 버릴 것이었다.

나는 일단 반지가 깨지지 않는 선에서 마력을 개방해 아스모 씨에게 보호막을 씌웠고, 방 밖까지 여파가 미치지 않게 방 전체에 결계를 펼쳤다.

분명 옛날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 어떻게 해결했더라..?

아, 기억났다!

나는 이 방법이 제발 먹히기를 빌며 레이를 껴안았다.

“아..?”

우뚝. 방 안에 몰아치던 마력의 폭풍이 멈췄다. 다행이 먹혀든 모양이었다.

나는 복구마법으로 방 안을 되돌려 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몸은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아... 아아..!”

“괜찮아.”

“어, 어머니가... 엄마가..!”

내 생각대로 레이는 그녀의 가족을 잃는 악몽을 꾼 것 같았다.

아니, 그녀에게 있어서는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 그래.”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우는 아이를 달래듯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녀를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지내오면서 본 그녀는 언제나 도도하고 고귀하며, 아름답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면이 있는, 흠잡을 데 없는 만능 맏언니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내 품에 안겨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우는 아이를 달래 듯 등을 토닥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간 방에는 내가 레이의 등을 토닥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 *

“...죄송합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네요.”

잠시 후, 정신을 차렸는지 오들거리던 레이의 몸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지는 것과 함께 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품 안에 껴안고 있던 터라 얼굴을 보진 못 하고 있지만 조금 전까지 패닉에 빠져 어버버대던 레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내 토닥임이 먹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쉽기도 했다. 방금까지 내게 보여 준 약한 모습이 평소에 봐 왔던 그녀와 너무 달라서 계속 감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걸 반전매력, 갭 모에라고 하던가?

나중에 내 품 안에서 아기처럼 떨던 거 기억 안 나냐며 두고두고 놀려 줘야지.

“저... 슬슬 놓아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 아! 그래.”

아무래도 너무 오래 껴안고 있었나 보다.

언제까지 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안았던 팔을 풀려고 했다.

그때,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방문자에 깜짝 놀란 나는 재빠르게 일어나려던 나머지 스텝이 꼬여 버렸고,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간신히 두 팔로 침대를 짚어 레이의 위로 쓰러지는 것은 막았다.

하마터면 그대로 레이를 깔아뭉갤 뻔했네...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레이 언니~ 저녁 식사 시간이...”

목소리로 보아 세레나인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항상 같이하는지 레이를 데리러 온 것 같았다.

“아..?”

왜인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응시하는 세레나.

“왜?”

내 질문에 대답해 준 것은 세레나의 손가락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렸고 그제야 세레나가 왜 저러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레이를 덮치고 있는 것 같은 자세가 아닌가.

세레나는 자기 눈으로 보고 있는 게 현실인지 헷갈린다는 듯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녀의 똑똑한 뇌로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데 로딩이 걸리는 것 같았다.

“자, 잠...”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좋은 시간 보내세요!”

라는 말과 함께 쾅! 하고 문이 급하게 닫혔다.

하지만 곧 문이 다시 살짝 열리더니, 두더지기계 안의 두더지마냥 문이 열려 있는 틈으로 세레나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밥은 거르시면 안 돼요!”

다시 쾅. 하고 문이 닫혔다.

“...”

“...”

아무래도 성대하게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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