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달밤의 체조.(2)
* * *
학교 안의 모든 것이 잠든 야심한 밤이었다.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야심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하지만 단 한 곳, 남들이 다 잠에 드는 이 시간에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건물이 있었다.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합을 겨루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돔 형태의 건물, 투기장이 그 대상이었다.
투기장이 이런 야심한 시간에도 일하고 있는 건 그 안에서 격돌하는 검은 머리의 남성과 보랏빛 머리의 여성 때문이었다.
한쪽은 이 학교의 총괄 선생인 진현성이었다.
소환수와 합일이란 소환수의 마력을 빌려오는 마법으로 숨기고 있던 본래의 마력을 꺼낸 여파로 검은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제복을 강제로 입고 있었으며, 검었던 그의 눈동자는 자줏빛으로 빛나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한쪽은 그런 현성의 소환수이자 그의 소환수에서 강함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보랏빛 머리의 신비로운 여인 앨리아였다.
관자놀이에서 나온 솟아오른 붉은색의 뿔이 그녀가 인간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투쾅! 투쾅!
주먹과 주먹, 발과 발이 맞붙을 때마다 충격파가 일어났다.
퍼버버벙! 콰과과광!
마법과 마법이 격돌할 때마다 화려한 빛이 투기장의 안을 감쌌다.
저렇게 소란스럽게 싸우면 소리나 빛이 외부로 새어 나가 귀족 소녀의 단잠을 방해할 터였다. 하지만 투기장의 밖은 가끔가다 밤잠을 설친 소녀들이 정원의 꽃을 구경하다 들어가는 발소리만이 들릴 뿐, 투기장의 안에서 저렇게 화려하게 싸우고 있다는 소리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현성의 소환수인 발키리 자매의 마력이 담긴 결계석에 의해 투기장 전역에 펼쳐진 결계 덕분이었다.
원래는 파괴불능의 마법이 걸린 결계석으로 투기장에서 일어나는 싸움의 여파가 관중석까지 도달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얼음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글라시아와 고대빙룡(?) 스카지나에게서 마법을 배운 세레나의 격돌로 인해 파괴되었고, 그 파편들에 발키리들이 복구마법이나 소리차단 등의 마법을 걸어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된 것이었다.
잠시 후, 몇 번의 격돌이 더 오간 뒤에 그들은 잠시 떨어졌고, 소강상태에 돌입했다.
“그새 실력 좀 길렀나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앨리아의 늘어난 실력을 칭찬하는 현성.
“주인에게 이기기 위해 비밀 특훈을 좀 하고 있지!”
미소를 지어 주며 대답하는 앨리아.
둘 다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앞선 몇 번의 대련으로 몸이 풀린 현성과 달리 지금이 처음 하는 대련인 앨리아는 몸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팔을 빙빙 돌리거나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주인이야말로 움직이기 어렵지 않아? 그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서 말이야.”
현성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는...”
“블랙 라이트닝!(Black Lighting)"
앨리아의 손에서 생성된 검은 번개가 현성을 향해 쏘아졌다.
“치사하게 말을 걸어 놓고..!”
가까스로 옆으로 굴러 검은빛의 번개를 피하는 현성. 그는 바로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으며,
“번개는 이쪽도 쓸 수 있다고!”
자줏빛의 번개를 쏘아 보냈다.
거기에 지지 않고 앨리아가 다시 검은빛의 번개를 쏘아 보냈다.
파지지직!!
번개들이 맞물려 상쇄되어 공중으로 흩어졌고, 공기 중에 스파크가 튀었다.
이어지는 현성의 공격.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간 현성은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신체 강화 마법 덕분에 붙은 가속도와 늘어난 근력으로 날린 발차기. 앨리아로서도 전부 막아 낼 수 없었다.
“큭..!”
그대로 날려져 벽에 부딪친 앨리아.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바로 회복한 앨리아는 바로 반격에 나서며 주먹을 내질렀고, 역시 전부 막아 낼 수 없었던 현성 또한 지지직거리며 땅을 끌며 몸이 밀려났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맞부딪치는 격돌이 계속되었다.
저렇게 보면 심하게 싸우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도 들 법했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지는 등 난리가 났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힘을 100으로 따져 봤을 때 10도 안 내는 상태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의 마력으로 하는 싸움은 나뭇가지로 하는 칼싸움에 불과할 정도였다.
당연히 그들도 그 이상의 힘을 내며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100여명의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공간의 제약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들이 그런 공간의 제약을 무시하고 마음껏 날뛰었다가는 투기장을 포함한 학교 전체가 날아가 버릴 수 있었기에 그들은 현재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소한에서 최대한을 뽑아내며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공방이 이어지던 중, 앨리아의 공세에 뒤로 한 발 물러나던 현성의 몸이 턱. 하며 어딘가에 막혔다.
‘벽..?’
앨리아의 마력으로 생성된, 상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검은 벽의 감옥이었다. 그 검은 벽은 현성의 뒤를 막고 있었다.
‘이 패턴대로라면...’
현성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퇴로를 막았다는 것은, 빗나가면 안 되는 공격이자 확실히 상대를 끝낼 수 있는 공격을 날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끝을 내는 데 선택한 마법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사신이 들고 다닐 법한 낫이 뒤를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공격하는 마법인 ‘데스 사이드(Death's Scythe)’였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낫은 하나하나가 강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기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그 마법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낫은 방향을 따라 정직하게 공격을 하기에 단 한순간이지만 비는 곳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파고들어 사신의 낫을 돌파한 현성은 그대로 속도를 실어 순식간에 앨리아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맞으면 그냥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마력이 듬뿍 담긴 주먹을 내지르려는 자세를 취한 상태로.
그 자세에서 주먹이 그녀에게 닿기까지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앨리아는 방금 강한 마법을 사용한 터라 곧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체크 메이트. 외통수였다. 누가 봐도 그녀의 패배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가 밝게 빛나기 시작한 것을 신호로, 그들을 둘러싸듯 현성과 앨리아의 주위에 무수히 많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설마..?’
현성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마지막에 큰 마법을 사용한 이유는 그녀가 큰 마법을 사용한 직후라 대응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자기 생각을 역으로 이용 한 것이라고.
언뜻 보면 자폭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앨리아가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었다. 자폭하면 무승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승리’였다.
앨리아가 전개한 마법진에서 나오는 마법들은 하나같이 앨리아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마법들이었다. 오로지 그녀가 적으로 인식한 자에게만 통하는 마법들이었다.
퍼버버버버벙!!
마법이 터지는 타이밍에 맞춰 앨리아는 뒤로 도약했다. 마법 자체는 그녀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마법으로 인한 여파인 바람 같은 건 직접 피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마법진에서 쏘아진 마법들로 인해 폭발의 향연이 펼쳐졌고, 각양각색의 마법들이 아름다운 색의 선율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어서 마법의 여파로 인해 흙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를 보며 앨리아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겼다...”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강력한 마법들. 아무리 현성이라도 그것을 다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힘의 제약이 없던 시절의 그녀를 이긴 ‘진현성’이었다. 게다가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가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많이 봐 왔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흙먼지의 안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기쁨에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4년 전, 그와 대련을 시작하고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4년 만에, 단 4년 만에 그녀는 그녀의 주인으로부터 승리를 쟁취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겼다고...! 내가 이겼... 어?”
펄쩍펄쩍 뛰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앨리아.
하지만 그녀가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앨리아는 재빨리 마안을 발동해 흙먼지의 안을 탐지했다.
분명 흙먼지 안에서 보여야 할 쓰러져 있는 현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흠칫.
그녀의 모든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감각이 가리키는 방향은...
그녀의 바로 뒤.
앨리아는 재빨리 반응하며 마법을 영창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현성의 주먹은, 이미 그녀의 코앞까지 와 있었으므로.
* * *
“아~ 졌다, 졌어! 진짜 못 이기겠네!”
투기장의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는 앨리아. 분하다는 듯 말은 하고 있지만 묵은 게 싹 내려간 듯 후련한 얼굴이었다.
“설마 그 짧은 틈 사이에 내가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 마법들로만 해놨다는 것을 눈치채고 같은 마법으로 상쇄시킬 줄이야... 아무리 주인이라도 너무한 거 아니야?”
“그것이 전투 경험이라는 거지.”
마지막 순간, 내 시각은 체감상 1초를 100개로 쪼개놨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흘러 갔다.
그 깨어진 시간의 틈 사이에서 내가 행한 일은 마법진에서 마법들이 쏘아지기 전에 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녀를 상대해 오면서, 그녀가 무승부같은 애매한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자폭을 하려고 이런 마법진들을 펼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와 앨리아를 덮은 마법진에서 나오는 마법들은 그녀에게만 피해가 가지 않는 마법들이라고.
그렇다면 다음은 간단했다. 그녀를 소환수로 삼으면서 그녀에 대한 정보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무영창으로 그녀가 사용한 마법과 똑같은 마법들을 전개해 상쇄시킨 것이다.
그런 다음 마법들의 충돌의 여파로 흙먼지가 일어난 틈에 땅을 박차며 속도를 올려 앨리아의 뒤로 이동, 그대로 게임 끝.
싸움이 끝나고서야 드는 생각인데, 마지막 상황에서 앨리아와 합일을 했으면 됐지 않았나 싶었다. 합일의 특성상 합일하는 대상의 특성까지 빌려오기 때문에 나 또한 공격에 면역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한 건 그런 위기 상황에서도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본능인 게 아닐까 싶다.
‘본래의 마력을 썼는데 합일까지 곁들이면 뭔가 비겁해 보이잖아.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라면 몰라도 그냥 대련일 뿐인데.’ 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겼으니 됐잖아?
쿠구구구.
나와 앨리아의 격돌로 인해 이곳저곳이 심하게 부서진 투기장이 복구되는 소리가 들렸다.
날아가 벽 여기저기에 박혀 있던 관중석의 의자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했고, 퍼즐을 맞추듯 부서진 곳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밤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전투로 인한 긴장이 풀렸는지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흐아암... 그럼 난 자러 가 볼 테니까 너도 그만 들어가 봐.”
“응! 잘 자, 주인! ...아! 다음 만월에는 더 강해진 슈퍼 앨리아를 보여 줄 테니까 각오해 두라고!”
“어련하시겠어.”
다음 만월 때는 너랑 안 싸워줄 거다, 이것아.
검은빛과 함께 앨리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잘 수 있겠구나~
이 긴 밤이 드디어 끝났다. 그렇게 생각한 덕인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빨리 가서 뜨끈한 물로 몸의 피로를 푼 다음에 푹신한 침대에 누워 꿈의 나라로 다이빙해야지!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온 나를 맞이해 준 건 수고했다면서 수건을 건네는 은발의 여인, 아인과 그녀의 뒤를 비춰주고 있는, 떠오르고 있던 아침태양의 빛이었다.
...씨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