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55화 (55/146)

〈 55화 〉 정보 수집.

* * *

* * *

사람들은 도서관에 왜 가는 것일까.

누군가는 모르는 것을 책을 통해 찾기 위해. 누군가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워서. 누군가는 도서관의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서. 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도서관에 온 이유 또한 많은 이유 중 하나에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만월제. 서큐버스 퀸의 마력을 물려받은 레이가 폭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큐버스 퀸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기 위해 도서관에 온 것이다.

물론 1급 기밀문서나 심오한 도감 같은 건 없겠지만 조그마한 정보라도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도서관의 내부는 양만으로 따지면 왕국의 국립도서관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책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정보의 질로 따졌을 때 국립도서관의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금서 구역이 훨씬 높겠지만, 그래도 왠지 기대하지 않았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저쪽에 있을 때나 이쪽에 있을 때나 도서관이라고는 딱 한 번 가 봤는데.

물론 내가 가 본 도서관하고 이곳의 도서관은 차이가 명확했다.

귀하게 자란 귀족 소녀를 위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되 독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오르골을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책을 직접 꽂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 꽂히기도 했다.

대충 빈자리를 찾아 앉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이 매력적인 푸른 눈의 자동인형 메이드 자매 중 맏언니인 ‘아인’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몇 권의 책을 든 체로.

“그게 서큐버스에 관한 거야?”

“네. 금서고에 있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주인님께 도움이 될 법한 것들로 선정해 왔습니다.”

“그래, 고마워. 어떻게 또 알고 준비했어?”

나는 아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의 쓰다듬에 강아지처럼 머리를 맡기던 아인은 맏언니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흐, 흠! 그럼 전 일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도서관을 나갔다. 귀여운 녀석.

그렇게 아인이 표시해 둔 곳을 따라 책을 펼치며 서큐버스 퀸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뭐 하세요?”

요즘 들어 자주 듣는 것 같은 익숙한 목소리가 내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자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가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하긴.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밥을 먹으리?”

“평소에는 도서관 근처에도 오지 않으시는 분이 그러시니까 그렇죠. 세뇌라도 당하신 거예요?”

...이 녀석의 안에서 나는 대체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있는 걸까.

세레나는 내 옆에 펼쳐져 있던 책들 중 하나를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녀가 집어 든 것은 마족들의 상세가 적혀 있는 도감인 것으로 보였다.

펼쳐져 있는 서큐버스에 관한 페이지를 봤는지 세레나가 내게 물었다.

“서큐버스?”

“아, 그게...”

순간, 레이의 일에 대해 말하려던 입이 본능적으로 닫혔다.

그러고 보니 세레나나 다른 왕성 귀족의 딸들은 레이의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레이의 성격상 말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말해도 되는 건가?

괜히 모르는데 말했다가 그 정도 비밀도 못 지켜 주는 거냐며 경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진 않을까?

레이가 경멸의 눈으로 쳐다봐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지도.

...잠깐, 마지막은 뭐야?

“어... 그게 말이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말을 안 한다면 어떻게 얼버무려야 할까 생각하고 있던 와중, 뜻밖에 세레나 쪽에서 먼저 다가와 주었다.

“레이 언니의 상태를 고쳐주기 위해서인가요?”

“알고 있었어?”

“레이 언니가 서큐버스 퀸과 인간의 딸이라는 거요? 아니면 이번에 레이 언니께서 억제제를 복용하지 못하셨다는 거요?”

“둘 다.”

“네. 레이 언니께서 양녀인 건 옛날에 알고 있었고요, 억제제를 못 드신 거라는 건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그게 뭐 어쨌냐는 듯 무덤덤하게 말하는 세레나. 그녀의 말로 보아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알고 있었으면 미리 좀 말할 것이지. 레이에 대해 숨기기 위해 노력하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처럼 보이잖아.

“다른 애들도 알고 있는 거야?”

세레나는 더 말하지 않고 입고 있던 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뭐 해?”

“기다려보세요~ 이상한 거 아니니까.”

두 개정도 단추를 풀은 그녀는 옷을 살짝 내려가슴 부근을 보여주었다.

다행이 근처에 다른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치녀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보라색의 브래지어와 가슴골을 향하는 시선을 바로잡아가며, 나는 그녀가 무엇을 보여 주고자 하는지 찾았다.

이내 오른쪽 가슴 부근에 마치 타투를 새긴 듯 보라색의 꽃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꽃잎의 모양으로 보아 백합인 것 같았다.

“그게 뭔데?”

나 타투했어요~ 하고 말하기 위해 보여 준 건 아닌 것 같은데.

“음~ 이걸 보여드렸는데도 모르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방금 공부를 시작했는데 더 할 게 뭐가 있다고.”

세레나는 흐응~ 하며 무언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그러면 힌트를 드릴게요. 레이 언니께서 성녀의 억제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건, 르니아 가문의 양녀로 들어온 지 일 년이 넘은 시점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일 년 동안은 어떻게 버티셨게요~?”

"...설마?"

세레나는 딩동댕~ 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그 설마가 맞아요. 제가 정기를 제공했던 거랍니다. 물론 반강제로 드리긴 했지만 기분이 좋았기도 했고, 그 언니의 다른 면을 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좋더라구요.이건 저희 둘만의 비밀이었지만... 이젠 셋 만의 비밀이 되었네요?”

그 말을 듣자 나는 왜인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

“...뭔데?”

갑자기 탐욕이 그득해 보이는 얼굴을 내게 가까이하는 세레나.

“제가 이렇게 비밀을 공유해 드렸는데~ 뭐, 없나요~?”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군.

어느 순간 그녀의 술수에 걸려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만월제가 끝나면 바로 해 줄게. 그때까지만 참아.”

소원 종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마법. 이라고 빼곡하게 적힌 글자로 보아 고대룡급의 마법을 또 원하는 것 같았다.

스카지나꺼 몇 개 배웠으면 됐지 참 욕심이 많은 녀석이다.

“어쩔 수 없네요~ 언니를 위해서니 이번은 제가 양보해드리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갑임을 강조하는 듯한 세레나의 말.

“...퍽이나 고맙다.”

나는 한숨을 쉰 다음에 다시 책을 펼치며 조그마한 정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 왜?”

무슨 일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엔 꽤 많은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게 말이죠, 오늘 아침에 레이 언니를 뵈러 갔는데 상태가 조금 이상해서요.”

“상태가 이상하다고?”

서큐버스 퀸의 마력이 다시 넘치기 시작한 건가? 분명 밤에 풀어 줘서 만월까지는 어찌저찌 반지로 버틸 수 있을 텐데.

“네. 심상치 않은 분위기길래 밖에서 문틈 사이로 본 게 전부긴 하지만요.”

“레이가 뭐 어쩌고 있었는데?”

세레나는 그녀가 본 레이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누군가 레이로 변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소의 레이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불을 막 차거나 베개에 얼굴을 파묻거나 새우마냥 허리가 굽더니 몸을 움찔거리거나 했다는 말이지?”

대충 간추려서 말하자,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기다 마지막으로 한 번 크게 움찔거리시더니 붉게 상기된 얼굴로 천장을 보며 가쁜 숨을 내쉬고 계셨어요. 제가 노크하자 ”

몸을 움찔대다가 마지막에 크게 한 번 움찔거렸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천장을 보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달콤한 향기가 풍겨 왔다.

아무리 봐도 그건데..?

뭔지 대충 알겠지만 왠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세레나가 이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헉! 하는 소리를 내며 자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설마... 제가 봤을 때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쭉 달리신 거예요?!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레이언니는 욕구가 풀리지 않은 채로 방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읍?!”

나는 황급히 손으로 세레나의 입을 막았다.

그때문인지 도서관에 있던 소녀의 시선이 나와 세레나에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한 뒤에 손을 뗐고, 손을 떼자 니히히. 거리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레나를 볼 수가 있었다.

...소 악마 같으니라고.

* * *

정보 수집이 끝난 뒤에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별거 안한 것 같은데 왜인지 몸이 피곤한 느낌이었다.

“차를 타드릴까요?”

“...마음이 안정될 만한 거로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선택한 건 허브의 종류 중 하나인 로즈마리인 것으로 보였다. 숲이나 풀을 형상화 한 것 같은 싱그러운 향기가 세레나라는 마수로 인해 흐트러진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 같았다.

역시 아스모 씨. 아주 좋은 선택이다.

내 옆에서 가만히 내가 차를 마시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시계를 향했다. 이어서 찻주전자를 내려놓은 그녀가 내개 말을 걸어왔다.

“현성님?”

“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자고로 대화할 땐 눈을 쳐다보라고 했다.

“저... 읏..?”

그러자 왜인지 내 시선을 피하는 그녀. 아무래도 너무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느라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아무리 전속 메이드라도 지켜야할 선이라는 게 있는 법. 나는 이내 눈에 힘을 풀고, 무슨 일이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 아... 그게, 들렀다 올 곳이 있는데 갔다 와도 될까요? 아마 저녁 식사 전까지는 돌아올 것 같습니다만...”

굳이 그런 것까지 내게 허락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 감옥도 아니고.

아무래도 전속 메이드라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큰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다음부터는 그냥 어디간다. 라고 말만 해 달라고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다. 무슨 일 있으시다면 바로 불러 주시길.”

꾸벅. 인사를 한 그녀는 등을 돌려 방문을 열고 나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인형메이드인 아인과 비슷할 정도로 유능한 메이드니까 알아서 잘하시겠지.

나는 다시 찻잔을 들며, 차의 향을 만끽했다. 은은한 로즈마리의 향기가 내 코를 간질였다.

그나저나 정보 수집이라고는 했지만 건진 게 그다지 없었다.

기껏 해야 남들도 다 알고 있는 서큐버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뿐이었다. 역시 양보다는 질이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왕국의 국립도서관에, 그것도 금서고에 들어가기에는 시간상 무리가 있었다. 바로 만월제의 1일차가 내일이었으니까.

“...”

그렇다면 알 만한 녀석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지.

한 모금 차를 홀짝인 뒤에,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거 아니까, 나와라.”

침대 방향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그러자 쿵. 하고 침대가 크게 움직였다. 동시에 악! 하는 비명 소리도 들렸다. 아무래도 급하게 일어나려다 보니 침대에 머리를 박은 것 같았다.

어우, 아프겠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의 밑에서 보랏빛 머리칼의 여인이 후두부 쪽을 문지르며 기어 나왔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아팠나보다.

메이드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낸 그녀는 나를 보더니,

“아하하~ 서프라이즈~”

누가 봐도 어색한 얼굴로 양팔을 활짝 펼쳤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자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꼼지락거리는 앨리아.

요즘 들어 자주 나 몰래 나오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뭔가를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 달라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동향을 살피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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