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56화 (56/146)

〈 56화 〉 각자의 행동.

* * *

* * *

현성의 방을 나온 아스모가 향한 곳은 레이의 방이었다.

다른 소녀들이나 메이드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해 본 결과, 이 시간이면 레이가 몸을 움직이기 위해 연무장에 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레이의 방 앞에서 아스모는 좌우를 번갈아 살피다가 방문에 귀를 대며 감각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좌우를 번갈아 살핀 것은 그녀가 레이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누가 볼 수도 있어서 경계를 한 것이었고, 방문에 귀를 댄 것은 혹여나 레이가 연무장에 가지 않고 방에 남아 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녀로서는 다행이게도 주변에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으며, 방 안에서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안(??)을 발동해 방 안의 마력을 탐지했다. 역시나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심한 그녀는 방문을 살그머니 열었고, 좌우를 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그녀가 목적을 이행하는 동안 중간에 방주인인 레이나 방을 청소하는 메이드 등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게 근처에 오면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라 발길을 돌린다는 ‘사람 물리기의 결계’를 레이의 방에 펼쳤다.

물론 그녀보다 강한 자라면 결계를 무시하고 들어올 수 있겠지만, 현재 이곳에 그녀보다 강한 자는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 명은 그녀의 계략에 따라 현재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고로, 그녀가 일을 끝마치기 까지 방해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읏..?!”

그녀가 방에 들어서자, 방 안에 자욱하게 깔린 분홍색의 안개가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서큐버스가 흥분할 때 나오는 향기이자 주변의 사람들까지 흥분상태로 만든다고 알려진 미향(美?)이었다.

점점 강해지는 서큐버스 퀸의 마력이 흥분을 참지 못한 레이가 자신을 위로하는 사이에 새어 나와 자욱하게 방에 깔려 버린 것이었다.

연무장에 갈 시간이 되어서야 이것을 눈치챈 레이가 황급히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남은 것이 이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지금의 아스모에겐 충분히 독이었다.

‘이 정도로 강한 미향이라니..!’

그런 미향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한 아스모는 황급히 코를 막았지만 이미 조금 들이 마셔버린 상태였다.

두근!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현성의 상반신을 봤을 때와 비슷한, 아니 똑같은 느낌이다. 자기 상태가 어떤지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스모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비틀거리는 몸을 근처의 서랍장에 기댐으로서 추스르는데 성공했다.

인큐버스 상태인 ‘그’라면 이 정도의 미향쯤은 향기로운 정도로 끝났겠지만 현재 ‘그녀’는 서큐버스 상태였다.

아스모에게 있어서 서큐버스 상태로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건 생화학 가스를 풀어놓은 곳에 맨몸으로 있는 것과 똑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로 강한 미향을 내뿜을 상태이니 필시 이것의 효과도 뛰어나겠지!’

겨우겨우 주변의 사물들로 몸을 지탱해가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침대 옆의 원형 테이블의 앞이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내 테이블의 위에 올려놓았다. 며칠에 걸쳐서 현성이 마시고 남은 찻잔에서 추출한 현성의 마력이 담긴 깃펜으로 써 현성이 보낸 것처럼 위장하는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만월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시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뒤뜰 정원에 와 달라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편지의 위조를 막기 위해 글씨를 쓰는 도구에 마력을 담아 쓴다.

그렇기에 그녀도 편지에 담긴 마력을 확인할 것이고, 현성의 마력이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필시 그녀의 의도대로 혼자서 으슥한 뒤뜰 정원으로 올 것이다.

그러고는 현성이 이변을 눈치채기 전에 마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그녀를 처리 후 흡수. 진정한 인큐버스 로드로 들어선다.

그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어..!’

더 있다가는 완전 흥분상태에 들어설 것 같아 아스모는 황급히 편지를 놔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사람 물리기의 결계’ 덕분에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후... 하...”

레이의 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다다른 그녀는 달아오른 몸을 심호흡을 통해진정시킨 다음, 현재 그녀가 맡은 소임인 ‘전속 메이드’를 위해 다시 현성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으, 응? 숨기는 거라니..?”

그런 거 없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회피하는 앨리아.

휘파람이 휘파람이 아니라 그냥 바람을 휘휘 부는 꼴이라 문제지만.

떨리는 목소리. 안절부절못하며 가끔가다 내 눈치를 보듯 힐끔힐끔 나를 향하는 시선. 그러다가 시선을 마주치면 회피.

이 모든 것이 그녀가 내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없어?”

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인형극의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그러면 왜 침대 밑에 숨어 있던 건데?”

“그, 그거야... 주인이 돌아왔을 때 놀래 줄려고...”

“내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어...”

제대로 된 대답하지 못하는 앨리아.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하아...”

내 한숨 소리에 그녀의 목이 움직였다.

그녀가 내 소환수가 된 지가 4년이 넘었다.

처음에 데려왔을 직후에 어색할 때를 제외하고는 내게 뭔가를 숨긴 적이 없는 그녀가 지금에 와서 내게 말을 못할 정도로 숨길 게 있다?

그렇다면 답은 뻔했다. 과거에는 숨길 게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숨길 게 생겼다는 뜻이었으니까.

내가 아무런 말하지 않자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앨리아.

내가 찻잔을 잣잔 접시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자, 앨리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너, 서큐버스 퀸과 관련해서 뭐 잘못한 거 있지?”

헉. 하는 앨리아의 얼굴을 보며, 내 직구가 스트라이크로 꽂힌 것을 확신했다.

“어, 어떻게 알... 아, 아니! 없어!”

실언을 한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고개를 젓는 앨리아.

이미 늦었다 이 녀석아.

순간적인 실언. 거기서 승기를 잡은 나는 더 밀어붙이기로 했다. 어차피 주도권은 내게 있으니까.

“다시 한번 묻는다. 진짜 없어?”

다시 한번 묻자, 앨리아는 쉽사리 고개를 젓지 못했다. 4년 넘게 같이 생활해 왔기에, 그녀의 작은 실언도 놓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말해야 하는지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내면의 싸움에서 이긴 쪽이 입을 열 것이다.

“사, 사실은...”

내 예상대로, 앨리아는 시험 성적이 안 좋게 나온 날의 아이가 부모님에게 이실직고 하듯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라는 걸로 보아 말을 하기로 한쪽이 이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들으면 재미가 없지.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대가를 치러 주셔야겠어.

“됐다.”

“어, 어?”

앨리아가 당황한 듯한 소리를 흘렸다.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내가 끊자 의문인 얼굴이었다.

“네가 없다고 말하는 거라면 없다는 거겠지. 미안해, 의심해서.”

나는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차를 따랐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를 간질이며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윽..!”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는지 심장부근을 움켜쥐며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앨리아.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믿는다.’ 라는 무한한 신뢰를 보냄으로서 상대가 무언가 숨기고 있을 경우에 죄책감을 크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노린 것이었다.

앨리아 같은 타입에게는 특히 잘 먹히기에, 나는 이야기는 끝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보이기 위해 차를 홀짝였다.

물론 이따금 곁눈질로 앨리아를 흘낏거리며 그녀의 동태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안절부절못하며 손가락끼리 부딪치거나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앨리아를 볼 수 있었다.

“으... 으... 어쩌지...”

생각이 말로 새어 나오는 걸로 봐서 앞으로 5초 정도인가.

4... 3... 2... 1...

내 마음속의 스톱워치가 1을 넘어서 0이 되자마자, 앨리아가 졌다는 듯 항복 선언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말해 주면 되잖아!”

빼액. 소리를 지르는 앨리아.

그래, 이거지.

나는 완벽한 승리를 만끽하며 찻잔을 비웠고,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승리를 뜻하는 미소를.

내 미소를 본 그녀는 그제야 내가 일부러 관심을 끊은 척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너무해!’ 라면서 볼을 부풀렸다.

그래도 한 번 한 말을 집어삼키지는 않는다는 듯 이내 한숨을 크게 내쉰 앨리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서큐버스 퀸이라고 불리는 ‘네피아’는 내 오랜 친구였어.”

라고 시작하며 과거의 얘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

갑자기 과거 얘기를 꺼낸다고? 나는 그냥 그녀가 내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내게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건지 궁금했을 뿐인데...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끊기에는 이쪽도 양심에 좀 찔리는 짓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들어 주기로 했다.

아스모 씨가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중간에 졸지 않기를 바라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