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그 날의 기억.
* * *
* * *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응...”
어느 날, 저택에 놀러 온 흑발의 여인, 네피아가 그녀의 오랜 친구인 보랏빛 머리의 여인, 앨리아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를 했다.
“상대는?”
“인간 남성이야.”
“...인간?”
“응.”
“...”
네피아는 서큐버스이다. 서큐버스로서 이상의 이성에 끌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상대가 수명도 짧고 특출난 몇몇 자들을 제외하면 마력도 하찮을 정도의 종족인 인간이라는 게 문제였다.
보통의 서큐버스들은 인간을 ‘좋아한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맛있음’ 이라는 음식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만 있을 뿐.
하지만 네피아는 ‘좋아한다.’라는 확실한 감정을 가지고 얘기를 했다.
앨리아는 일단 그녀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오랜 친구기도 했고,
‘어차피 얼마 못 가겠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앨리아는 네피아의 연애 얘기를 경청하며 이따금,
“그래서 그이가 멋지게 나를~” 하며 황홀한 얼굴로 그의 행동을 치켜세우는 말에 “그래? 멋진 남자네.” 라던가,
“우리 둘, 잘 될 수 있겠지?” 라며 혹여나 사랑이 이뤄지지 못할까 걱정하는 말에 “둘은 꼭 잘 될 거야!” 라던가,
“잘되면 그이와 함께 다시 찾아올게!” 라며 벌써 자식 셋 정도는 계획해 둔 것 같은 말에는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라고 말하는 등 대부분의 말에 긍정적으로 반응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네피아의 일에 대해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즈음이었다.
“앨리아~”
다시 네피아가 앨리아의 저택을 찾아왔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장신의, 정장을 입은 금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상견례를 할 때 무섭게 생긴 아버지의 앞에서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해야 하는 사위마냥 이상한 게 없는지 자기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계속 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기에, 앨리아는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의 안, 간단한 다과를 내온 앨리아가 네피아와 금발의 남성의 맞은편에 앉자, 네피아는 금발의 남성에게 팔짱을 끼며 앨리아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발언했다.
“우리, 결혼한다~”
콰광. 앨리아는 뇌에서 번개가 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서큐버스로서의 본능인 줄 알았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까지 골인에 성공한다는 얘기를 듣자 그녀는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잠깐 얘기 좀 해.”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금발의 남성에게는 잠시 둘이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한 뒤, 앨리아는 네피아의 손을 잡아 응접실의 밖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벽에 그녀를 밀착시키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진심이야..?”
“응!”
뭐가 문제냐는 듯 네피아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결혼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응... 내 모든 것을 그이를 위해 바친다는 뜻이잖아..?”
앨리아는 눈앞에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그녀의 친구인 네피아를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역시나가 된 것도 모자라 그 상대가 같은 마족도 아닌 인간이라니.
차라리 다른 강한 종족이면 이해라도 할 것 같았다.
생김새는 좀 그치만 힘이 세며 서큐버스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정력이 강한 오거라던가, 야성미가 살아 있어 밤일에 우위를 잡힐 수 있는 수인족이라던가.
하지만 그녀가 평생의 배우자로 선택한 것은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해서 그들의 결혼이 무마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혹여나 네피아가 그대로 인간의 남성과 끝까지 갔을 경우를 대비해 마음속에 담아놨던 질문을 하기로 했다.
“네가 서큐버스 퀸... 이랬나? 인간들이 정한 서큐버스의 등급 중 최상위 등급이라는 것을 네 반려자도 알고 있어?”
네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모든 것에 대해 다 말했어.”
“그런데도 받아들였다고?”
네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랬더니 그이가...”
“너희의 연애얘기는 관심 없어.”
연애얘기로 넘어가려는 네피아의 말을 끊은 앨리아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것들만 뇌에 가득 남은 체 네피아와 함께 응접실로 돌아온 앨리아.
깨가 쏟아질 것만 같은 그들의 애정행각을 보면서, 앨리아는 그저 한숨을 내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분명 그들이 함께 걷는 그 길은 순탄치 않은 길일 것이다.
최상위 마족인 네피아가 별 볼 일 없는 인간과 결혼을 한다. 그녀를 아는 자들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최악의 경우에는 순혈 마족들의 수치라며 그들을 처리하려는 자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괜찮은 거지..?”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 물음에 네피아는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 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분명 그 앞이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러고는 앨리아에게 그녀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서큐버스 퀸인 그녀의 마력을 노리는 적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막기 위해 성역으로 가서 몸을 숨길 것이라는 것 등 여러 가지를 말해 주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일부러 앨리아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너를 찾아온 건, 그이를 소개하기 위함과 앞으로 못 볼 경우를 대비해 미리 작별 인사하기 위해, 그리고 네게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부탁..?”
“알고 있지? 마력을 온전하게 옮기는 방법. 그거 좀 알려주라.”
“뭐..?”
* * *
“그래서, 그 마법이 성공확률도 낮은데다가 실패할 경우에는 상대방과 자신이 위험하다고 했는데...”
“됐어. 거기까지만 들으면 대충 알겠으니까.”
하마터면 잠들 뻔했네. 그냥 마지막 말만 해도 되는 걸 길게 끌고 있어. 비운의 부부얘기 같은 건 듣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는 과거 얘기를 계속하려는 앨리아의 말을 끊었다. 더 했다간 잠에 빠져들 것 같았... 아니, 아스모 씨가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말할 게 아직 많은데...‘ 라며 앨리아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녀가 다음에 할 말은 어찌저찌해서 마법을 알려 줬고, 네피아라는 서큐버스 퀸이 그것을 성공해 레이에게 완전히 마력을 물려 줬다, 이거겠지.
아이테르에게서 들은 정보와 합쳐보면, 성역으로 이동해 잘 살아가던 중, 그 인큐버스 킹이란 녀석의 습격으로 네피아 부부가 사망하고 레이가 르니아 가문에 입양이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마력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아예 100퍼센트 넘겨받은 거라니. 그건 나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그래서, 실속이 없는 대부분의 얘기를 제외하고 핵심만 보면, 레이가 저런 상태가 된 건 네가 알려 준 마법 때문이다. 이거지?”
앨리아는 그렇게 많이 얘기했는데 실속이 없는 게 대부분이냐며 항의하는 얼굴이었지만 금방 풀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에 그녀를 봤을 때 당황했던 거야. 설마 진짜로 성공할 줄은 몰랐으니까. 주인이라는 예시가 없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겠지. 그리고 주인 몰래 나오거나 한 건, 레이라는 얘가 저런 상태가 된 게 내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나 몰래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할까 봐?”
앨리아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앨리아에게 걸어가 그녀의 앞에 섰다.
내게서 불안한 낌새를 느꼈는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이그!! 이 순둥아~!”
나는 그녀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뭐 하는 거야..!”
앨리아가 반항의 기색을 표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잠시 후,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앨리아가 울상을 지으며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머리 다듬느라 얼마나..!”
“야.”
하지만 내가 목소리를 낮게 깔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눈빛이 싹 사라졌다. 이어 히끅! 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불안’이라는 글자가 눈동자에 비치는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내가 고작 그 정도의 잘못. 아니, 잘못도 아니지. 너는 그저 네 친구가 부탁한 걸 들어 준 것뿐이니까. 여하튼, 그런 거로 내가 너한테 뭐라 할 거로 생각했어?”
“어..?”
내 입에서 그녀를 혼내는 소리가 아닌 오히려 두둔해주는 소리가 나오자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앨리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넌 사 년 동안 내 옆에서 지냈는데도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냐?”
“어... 그게...”
“좋아. 그러면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없으니까, 네가 지금까지 봐온 나에 대해 말해 봐.”
“게으르고... 술 좋아하고... 미소녀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그런 거 아니면 다 귀찮아하고...”
푹. 푹. 푹. 푹.
앨리아가 나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히는 느낌이었다.
이내 데미지가 허용치를 넘어서자 어디선가 K.O라는 소리와 함께 종소리가 땡땡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주, 주인..! 괜찮아..?”
솔직하게 말하라고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
“미, 미안..! 너무 사실대로 말했지..! 조금 좋은 말도 해줄 걸..!”
...그게 더 상처다 이것아.
잠시 후,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로즈마리의 싱그러운 향기로 치유한 나는 앨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쨌든, 숨기는 거 없이 말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 손길을 느끼며 황홀해하던 앨리아의 얼굴에 다시 불안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하지만..?”
“그래도 벌은 받아야겠지?”
움찔! 앨리아의 몸이 크게 떨리는 것이 내 손을 타고 느껴졌다.
파바박! 앨리아가 황급히 소파에서 일어나며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자, 잠깐! 숨기는 거 없이 말해 줘서 고맙다며..!”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
“그래, 그러니 하나 빼줬잖아. 나 몰래 나와서 돌아다닌 거. 그러면 나한테 거짓말 한 거 하나만 남네?”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앨리아에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 싫어..! 그거 당하면 뇌가 찌릿찌릿해서 당분간 못 움직인다고..!”
“그러라고 하는 거야.”
뚜벅. 뚜벅.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앨리아가 한 발짝 물러나는 아주 느릿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고, 곧 그 여자가 돌아오잖아..! 내가 침대에 뻗어 있는 모습을 보여 줘도 괜찮은 거야?”
“그 전에 소환해제하면 되지.”
이내 침대라는 벽에 막힌 앨리아는 침대 위로 풀썩. 주저앉게 되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위로 올라타 형벌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옷 벗기지 마..! 으읏..! 거, 거기는 안..! 흐아아앙!“
곧 방안에는 앨리아의 교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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