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방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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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침대 위에서의 소란이 지나간 후, 나는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지는 않고 그대로 그냥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앨리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너무했다는 듯 내게서 등을 돌린 자세로 삐졌다는 것을 어필하듯 이불이 들썩이고 있었다.
“앨리아.”
“왜!”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앨리아. 역시나 삐진 것 같았다.
너무 심하게 했나? 생각해 보면 그다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녀의 모습에서 아주 살짝 죄책감을 느낀 나는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뒤에서 그녀를 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해. 하지만 소환수와 소환사의 관계상 너무 무르게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흥... 말은 잘해요.”
싫은 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기분이 풀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여전히 달래기 쉬운 녀석이다.
그대로 그녀의 몸을 돌려 내 품에 안기게 한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앨리아. 혹시...”
“성교를 제외하고 서큐버스 퀸의 마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레이라는 아이를 구할 방법을 아냐고?”
“...어떻게 알았어?”
“주인이 그 강낭콩인가, 그걸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그게 들렸다고? 레이에게 집중하느라 못 들은 줄 알았는데.
“말을 질질 끄는 걸 싫어하는 주인을 위해 말해주자면, 있어.”
“있어?”
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에 가까워서 문제지만.”
“아예 불가능하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뭔데?”
“그릇을 다시 만드는 거야.”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도자기나 그런 걸 뜻하는 그릇이 아니지?”
앨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담는 본질을 뜻하는 의미의 그릇이 맞아.”
앨리아는 부가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레이라는 아이가 저런 상태가 된 건, 그녀의 그릇이 서큐버스 퀸의 마력을 온전히 담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야. 그릇은 대야인데 마력이 바다니 전부 담을 수 있겠어? 그러니 마력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흘러넘치는 마력으로 인해 그릇이 망가지는 거지.”
“그게 마력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거고?”
“응. 저대로 계속 가면 이내 그릇이 깨질 거고 그러면...”
앨리아는 그다음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그릇이 깨진다는 뜻은 누구라도 알 만한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릇을 다시 만드는 것 외에는... 주인이 아는 그 방법밖에 없지.”
“레이를 안는 건가...”
앨리아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원하지 않으므로 제외하기로 한 상태다. 그렇다면 남는 건 그릇을 재구축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방법을 알기는 하지만 근원을 건드리는 거라 잘못하면 그대로 그릇이 깨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실패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하고.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레이의 나이 대에 그릇의 재구축을 성공한 사례는 딱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알겠어. 말해 줘서 고마워.”
나는 앨리아를 끌어안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어느 쪽도 쉬운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방법은 찾지 못한 채 생각만 깊어져 갈 뿐이었다.
앨리아 또한 내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라는 것을 안다는 듯 아무 말없이 내게 안겨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폭주하면’ 이라는 레이의 말은 폭주를 해서 주변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명도 위험하다는 뜻이었나.
그렇게 침묵의 포옹이 계속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문득 앨리아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주인. 괜찮은 거야?”
“뭐가?”
앨리아가 흘낏. 곁눈질로 방문을 쳐다 봤다. 저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이.
“주인의 전속 메이드 말이야.”
“아스모 씨? 아스모 씨가 왜?”
뜬금없이 앨리아의 입에서 아스모 씨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짓자 앨리아가 부가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주인이 중간에 끊어서 마지막을 말 못 했는데, 네피아와 그녀의 남편은 인큐버스한테 죽었어.”
그렇게 말하는 앨리아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이내 한숨을 내쉰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나누는 등급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린세스나 퀸. 이런 거 말하는 거잖아?”
인큐버스 쪽은 내가 남자 몽마한테는 관심이 아예 없어서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서큐버스 쪽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람.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네. 아무튼, 옛날에 조사해 본 결과 네피아와 남편을 죽인 인큐버스는 등급으로 치면 킹인, 로드 바로 밑 등급이었어. 아마 네피아를 노린 이유는...”
“로드라는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겠지.”
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인큐버스인 그 녀석이다음에 노리는 건 누구겠어?”
“레이겠지.”
서큐버스 퀸의 마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닌, 100퍼센트의 마력을 지닌 레이는 인큐버스 로드 바로 밑 등급에서 멈춰있는 그에게 있어서는 억만금을 줘도 포기할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일 것이 분명했다.
나도 강함에 혈안이 되어 갈구한 적이 있었으니까. 더 강해질 수 있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눈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데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발을 안 올릴 멍청이가 있겠어?
“그러니까 네 말은, 아스모 씨가 인큐버스... 뭐였지. 킹? 로드? 아무튼, 그거라는 뜻이야? 하지만 그녀는 그가 아니라 그녀인걸?”
인큐버스란, 남자 몽마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스모 씨는 어딜 봐도 여자였다. 그것도 엄청난 미인.
차라리 서큐버스라면 납득이라도 하겠지만 인큐버스라니. 그녀에게 실례되는 발언이 아닌가.
그리고 여장으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탐스러운 과실을 달고 있는데 남자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앨리아에게 말하자,
“주인... 서큐버스를 소환수로 데리고 오고 싶다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면서?”
라며 답을 알고 있는데 왜 모르는 척 하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린세스 급까지는 만났지.”
내 정기를 탐하기에 서큐버스한테 정기를 빨리는 느낌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가만히 놔뒀더니 별 느낌도 안 받았는데 갑자기 혼자 부들대다가 뻗어 버렸지.
자는 상대랑 하는 취미는 없기에 그냥 그 자리에 놔두고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는 그들의 세계에서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가끔 호기심에 찾아온 것 같은 몇 마리 말고는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그 호기심에 찾아온 몇 마리도 처음의 서큐버스와 똑같이 별거 안 하고 뻗어 버린 다음 왜인지 황홀한 듯한 얼굴로 돌아갔지만.
“그런 사람이 서큐버스나 인큐버스의 특성에 대해서 몰라? 그런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어떻게 찾아다녔어?”
서큐버스나 인큐버스의 특성이라. 알 것도 같긴 한데... 음...
역시 모르겠다.
“몰라!”
내가 어깨를 펴며 당당하게 말하자, 앨리아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본래 하나야.”
“하나라고? 그러면 자아는? 자아도 하나야? 아니면 남자인 자아랑 여자인 자아랑 싸우는 건가?”
“자아는 둘이지만 서로 싸우지는 않아. 기억은 공유하되 한쪽의 자아가 나와 있을 때면 다른 쪽은 잠드니까.”
기억은 공유하지만 한쪽이 나오면 다른 쪽은 잠든다고?
루아와 루나의 상태와 비슷한데? 그러면 루아도 사실은 서큐버스인 건가? 확실히 생긴 걸 보면 그럴지도. 가슴이라던가. 가슴이라던가.
“그래서 인큐버스의 등급은... 주인? 듣고 있어?”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앨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마치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에게 문제의 답을 맞춰 보라는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 아, 안 듣고 있었어.”
“...안 듣고 있었다는 말을 그렇게 당당하게 해도 되는 거야?”
앨리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한숨을 내쉬며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정기를 흡수하는 과정을 거쳐 그 과정에 따라 서큐버스나 인큐버스로서의 자아정체성이 확립된다던가, 일정 등급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급에 맞는 정기를 흡수할 필요가 있다던가. 등등.
“그래서, 아스모 씨가 레이를 노리고 잠입한 인큐버스다? 현재는 서큐버스 상태고?”
뭐라 뭐라 길게 설명을 하긴 했지만 결국 한 줄로 정리가 가능했다.
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증은 없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없어. 지금 시기에 전속 메이드라며 온 것도 그렇고.”
“하지만 그건 확실한 증거도 있잖아.”
그녀가 내게 건네준 르니아 가문의 인장이 찍힌 편지 봉투. 그것이 그녀의 신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편지 봉투에 담긴 마력은 확실히 아이테르 데 르니아의 마력이었으니까.
편지 봉투 안에 편지야 어차피 아스모 씨가 이곳에 온 날 아침에 읽었던 편지 내용과 같을 테니까 구태여 읽지는 않았지만.
“그거야 그쪽 가문에서 보냈다라고 말하는 것만 확실하지 종족이나 그런 건 하나도 안 확실하잖아. 막말로, 중간에서 가로챈 뒤에 변장한 거라면? 상대가 내가 아는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앨리아는 심각한 듯 얘기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뭐랄까, 몽마는 대체로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단 말이지.
게다가 앨리아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의 나라면 스승정도의 강함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흥... 어차피 주인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겠지.”
“응? 뭐라고?”
뭐라고 덧붙인 것 같은데 인큐버스에 대해 생각하느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소리를 빼액! 지르는 앨리아. 내게서 휙! 하며 등을 돌리더니 이내 검은빛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방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갑작스러운 고음 공격으로 얼얼해진 귀를 손으로 감싸 쥔 상태였다.
노처녀 히스테리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아니, 노처녀는 아니니까 노처녀 히스테리는 아니려나? 그러면 왜 저러는 거야?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는 앨리아였지만 나는 그러려니 하며 대충 넘긴 뒤에 찻주전자를 기울여 남은 차를 찻잔에 담았다.
아스모 씨가 돌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차의 향이나 즐기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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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모 씨가 방으로 돌아온 건 찻잔이 다 비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마셔 비어 버린 찻잔과 찻주전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앨리아의 말이 내심 마음에 걸려 최대한 그녀가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게 흘끔거리며 그녀의 행동을 관찰했지만 아무리 봐도 보통의 메이드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앨리아의 말대로라면 저게 다 연기라는 뜻인데... 아무리 봐도 연기로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말로서 넌지시 떠봐볼까.
“아스모 씨.”
“네?”
그녀가 무슨 일이냐는 듯 찻잔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하나만 여쭤 봐도 되나요.”
매혹적인 붉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 걸로 보아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물어보려는 건지 궁금한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오케이 사인으로 간주하며 입을 열었다.
“아스모 씨는 인간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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