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정보 수집.(2)
* * *
“...”
“...”
방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자세로, 아스모 씨는 찻잔을 치우던 자세 그대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한 ‘아스모 씨. 인간 맞습니까?’ 라는 질문. 그것이 이 방안에 고요함을 가져다주었다.
...넌지시 말을 꺼내 본다는 게 그만 직설적으로 나와 버렸네. 하여간 이놈의 입이 문제야.
내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나, 엄청 당황하고 있다.
상대방이 이해하기에 따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내가 모르는 그녀의 과거의 아픔을 건드린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묵이 계속되던 가운데, 그 침묵을 깬 건 아스모 씨가 찻주전자와 찻잔을 마저 치우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찻잔 세트를 다 치우고, 아스모 씨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루비처럼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동자를 보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사과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죄송...”
“왜 제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나요?”
“네..?”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대답에 나는 벙 찌며 당황한 말을 흘렸다.
이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뇌가 회전을 시작했다.
사실을 말하되 내가 모르고 있는 걸 수도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아스모 씨가 제 전속 메이드가 된 지도 좀 지났는데 전 아스모 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생각해서 도출된 답안이 이것이었다.
변명이 통했는지, 아스모 씨의 붉은 눈동자가 발하는 빛이 조금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만약 제가 인간이 아니라면, 제 원래 주인께 말씀드려서 해고하실 건가요?”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하지만 첫 번째 질문과 달리 뇌를 거치지 않아도 바로 대답이 나올 수 있었다.
“아뇨? 아스모 씨 같은 미인분이 잠시지만 제 전속 메이드로 계셔주시는데, 종족이 무슨 상관입니까?”
물론 오크나 오거는 내 쪽에서 사양하겠지만, 애초에 그 종족들이 저런 미모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내 진심이 통했는지 후후, 작게 웃으며 아스모 씨가 입을 열었다.
“현성님의 말씀대로,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 분들이 정리해 둔 용어로 말씀드리자면... 서큐버스 프린세스겠군요.”
“서큐버스 프린세스요?!”
탕! 하며 나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내 몸은 어느샌가 테이블을 넘어 아스모 씨에게 근접해 있었다.
물론 아스모 씨의 놀란 얼굴을 보자마자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지며 사과했지만.
“아,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 서큐버스 프린세스라는 말에 혹시나 더 정보를 얻을 수 있나 싶어서 그만...
나는 심호흡을 하며 흥분한 몸을 진정시킨 후에 다시 소파에 앉았다.
“현성님도 꽤 놀라시네요? 현성님 같은 분은 웬만한 건 겪으셨을 것 같은데.”
놀리듯 작게 웃는 아스모 씨. 다행이 오해를 사거나 과거의 아픔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당연히 놀라죠. 서큐버스 프린세스가 뭐 쉽게 볼 수 있는 존잽니까? 저도 서큐버스는 소환수로 없는데, 하물며 서큐버스 프린세스라뇨.”
물론 난 쉽게 몇 마리 보긴 했지만, 예의상 놀란 척해주기로 했다. 내가 놀란 듯 행동했던 건, 그녀의 정체가 서큐버스 프린세스여서가 아니라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식욕으로 인한 흥분 때문이었으니까.
“아, 혹시 실례되는 반응이었다면 죄송합니다.”
혹시나 하는 사과도 잊지 않았다.
이해한다는 듯 아스모 씨가 말했다.
“아니에요. 다른 분들도 제 정체를 밝히면 현성님 같은 반응을 보이시니까요. 현성님은 의외였지만요.”
“하하...”
나는 웃음을 흘린 다음, 조금 편안해진 분위기이기에 이 기회에 궁금증을 몇 개 풀기로 했다.
“그런데 서큐버스 프린세스나 되는 분이 어째서 메이드 같은 걸..?”
이건 정보와 상관없는 내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온 질문이다. 하급 마족급인 일반 서큐버스들이라면 이해는 가지만 모험가 A랭크 급인 프린세스급이 어째서 메이드를 하는 거지?
뭐... 어딘가에서는 드래곤이 메이드를 하고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아...”
아스모 씨의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탄식의 소리. 그녀도 탄식음을 흘렸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이내 당혹감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저건 건들지 않는 게 낫겠네.
“아, 아픈 과거나 그런 거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해요...”
당혹감의 미소가 씁쓸함의 미소로 바뀌었다. 확실히 더 건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침묵과 함께 어색한 기류가 우리 둘 사이에서 흘렀다.
음... 이러면 서큐버스 프린세스인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가 그런 분위기가 되는데...
분위기상 질문을 할 여건이 아니었기에, 나는 힐끔 거리며 그녀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성님.”
“예?”
“제게 더 물어보실 것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다행이 구원의 빛이 아스모 씨를 통해 내게 내려왔다.
역시 메이드장인 리엘 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메이드력을 지닌 아스모 씨. 내 얼굴에서 질문이 있다는 것을 읽은 것 같다.
“아, 그게 말이죠...”
* * *
“서큐버스와 인간의 혼혈이요?”
“네.”
나는 그녀에게 레이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었다. 물론 주체가 레이가 아니라 아는 사람이라고 바꿨지만.
물론 앞의 말들은 거짓말이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스모 씨를 의심하는 앨리아의 말을 잊지는 않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저와 같은 서큐버스 프린세스 급의 마력을 물려받은 인간의 아이가 마력을 버티지 못해 아파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뜻에서 제게 이런 말씀들을 하신 건가요?”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그 아이는 여기의 학생인가요?”
나는 거짓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 아뇨.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성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면 방법을 말해드려도 어떻게...”
“제가 소환사지 않습니까? 그래서 방법을 알아내면 바로 소환수를 보내 말해주려고 했죠. 그래서, 방법은 있습니까?”
아스모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뿐이긴 하지만 있어요. 간단하지만 어찌 보면 위험한.”
간단하다와 하나뿐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라는 말에 나는 바로 답을 알 수가 있었다.
“성교죠?”
아스모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외에는 없는 건가요?”
“적어도 제가 아는 바는 없어요.”
역시 그런가...
아이테르에게서 들었던 방법과 똑같았다. 같은 서큐버스라면 뭔가 정보가 더 있을 것만 같았는데 역시는 역시였나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남자 쪽이 마력을 아예 잃게 될 수가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다다. 많이 도움이 됐어요.”
아스모 씨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음에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침대 정리를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바뀐 게 없는 정보에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기댔다.
결국 더 얻은 건 없는 건가.
얻은 정보들은 많지만 정보의 양만 늘어났을 뿐 정보의 질은 그대로인 상태로, 어쩔 수 없이 정보 수집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 * *
아스모는 현성에게 몇 가지 거짓말했다.
그중 가장 큰 거짓말은 그녀가 서큐버스 프린세스 등급이라고 말한 것.
당연하지만 서큐버스로서의 그녀는 프린세스가 아닌 일반 하급 마족급에 불과했다.
현성이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인큐버스인 ‘그’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도 있었지만, 왜인지 현성은 서큐버스 프린세스라는 단어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기에 그녀로서는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방심할 수 없는 상대네요.’
큰 거짓말을 한 이유, 그 이유는 아스모는 현성의 그런 행동들이 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현성에 대한 것을 조사하는 것을 눈치채고 붉은 갑옷들의 설정을 바꿔 놓은 남자다. 그 정도로 치밀한 남자가 아무런 증거 없이 자신을 의심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음 거짓말은 성교밖에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방법은 하나 더 있지요.’
그것은 마력을 그릇을 다시 만드는 것. 300년 전, 자기 그릇을 다시 만들어내 한층 더 강해지는데 성공한 ‘그’였다. 그렇기에 그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현성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미쳤다고 자신이 아닌 다른 상대에게 그것을 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마지막 거짓말은 아픈 과거가 있는 척, 말한 것이었다.
이건 현성이 그녀에 대한 정보를 더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미 정체를 들킨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그가 그녀의 정체를 궁금해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조금 전 그와 대화하면서, 그를 자세히 관할해 보니 무언가를 행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의심단계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의심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단 이틀. 이틀만 지나면 당신이 날고 기어도 제 발끝에도 닿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현성의 시선의 사각에 서서 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인 미소를 짓는 아스모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