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만월제.
* * *
“여기 딸기 맛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저는 바닐라요!”
“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게 주인에게서 아이스크림을 건네받고 근처의 벤치에 앉아 맛을 즐기는 소녀들.
“음... 아! 저기, 저거요!”
“역시 귀족분이시네요! 보는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초승달 모양의 머리핀을 머리에 꽂으며 잘 어울리는지 다른 소녀에게 묻는 소녀.
“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동그란 설탕과자의 중간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정확히 따라 그려내면 상품을 주는 가게에서 제일 어려운 문양에 도전하며 끙끙대고 있는 소녀들.
등등 축제를 즐기는 소녀의 활기참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분위기가 학교 전역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축제의 활기참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있을 안전사고를 대비해 가게들을 순찰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가게들이 막 세워졌을 때도 순찰을 돌긴 했지만, 정지된 트럭을 살펴봤을 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움직일 때도 문제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 선생님이다! 라헨느!”
"으, 응!"
그렇게 순찰을 계속하던 중, 멀리서 나를 보고 쪼르르 달려오는 작은 두 개의 실루엣이 보였다.
땋은 금발 머리의 소녀이자 쌍둥이 자매 중 언니인 라네즈와 언니처럼 땋았지만 은발인,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라헨느였다.
“무슨 일 있어?”
내 물음에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젓고는,
“선생님! 선생님! 잠깐 뒤돌아봐!”
라며 라네즈가 무언가 재미난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말했다.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저러지?
나는 그녀들의 말에 따라 그녀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됐어~!”
라네즈의 목소리인 듯한 신호에 뒤를 돌아보자,
""누가 누구게요~!""
손을 맞잡고 팔을 활짝 벌리는 포즈를 취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쌍둥이를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진짜로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금발에 똑같은 얼굴,똑같은 말투까지.
“...”
그 소심한 성격의 라헨느까지 위화감이 없이 언니와 모든 것이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연습을 단단히 해온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녀들에게서 눈을 떼고 근처의 가게를 살펴보았다. 이내 나는 ‘재미난 마법 도구 상점! 위험하지 않아요!’ 라고 입간판에 써져 있는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녀석들, 아무래도 가게가 세워질 때부터 계획을 짜둔 것 같았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일 테니, 그렇다면 받아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흠...”
내가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 구경꾼 소녀들이 몰려들었다.
“왼쪽분이 라네즈님 아니실까?”
“내 생각엔 오른쪽 분인 것 같아!”
레이나 세레나, 루아같은 다른 왕성귀족의 딸들이 있다면 오랜 시간 봐 왔으니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그녀들을 제대로 인지하고 같이 생활한 지 얼마 안 되는 나로서는 난제였다.
"히히, 모르겠지?"
"누가 누구게~"
말투까지 똑같으니 진짜 모르겠네...
그렇게 몇십 초 정도 지났을까. 답이 보이지 않아 서렌을 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왜 이렇게 간단한 걸 생각하지 못 했지?저렇게 똑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결국 라헨느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거잖아? 아마 속으로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길 공략하면 되겠군.
나는 아무나 골라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아..!”
내 돌발 행동에 당황했는지 자매 중 한쪽이 짧은 탄식음을 흘렸다. 아주 작은 탄식음이었으나,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얘가 라헨느구나.
저 당황한 표정을 보니 확실히 라헨느가 맞는 것 같았다. 라네즈였다면 분명 꺄르르 웃으며 즐겼을 테니까.
그러면서 얼굴을 땅에 남아 있는 라네즈로 추정되는 소녀에게 향하며 입을 열었다.
“얘가 라헨느. 네가 라네즈.”
이어서 나는 라헨느로 추정되는 소녀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더 둥둥하고 있었다가는 얘가 울상을 지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를 내려 준 후, 자매의 채점을 기다렸다.
그녀들은 내 양옆으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정답입니다~!”
“정답입니다..!”
라고 말하며 내 양손을 들어 주었다.
키 차이가 있는 탓에 높이 들진 못했지만.
구경꾼 소녀들이 대단하다는 듯 오~ 하는 소리를 냈다.
“상품은 없어?”
퀴즈의 정답을 맞췄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퀴즈를 맞힐 생각이 드는 거니까.
그러자 라네즈가 히히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상품은~ 라헨느에게 목마를 태워 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누굴 소개할 때처럼 양손을 라헨느에게 향했다.
“언니..?”
라헨느가 라네즈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무슨 소리냐는 듯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이야기되지 않은 사항인 것 같았다.
“...상품 맞니?”
라네즈가 당연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 듯 주변의 소녀들이 녹아내린 얼굴로 바라봤다.
“응! 라네즈나 라헨느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그랬어!”
...너희의 허벅지를 느끼면서 좋아하면 바로 감옥행 아니냐.
도대체 누가 저런 걸 가르치는 건지 원.
그래도 상품은 상품이니 안 받으면 예의가 아니지. 게다가 주변의 소녀들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고.
나는 라헨느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올라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으...”
망설이는 듯 고민에 빠진 듯한 라헨느의 소리가 귀를 타고 전해졌다.
몇 초 정도 지났을까, 소녀의 ‘귀여우셔~’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무언가 내 등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어깨와 목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에 시선을 조금 내리니 새하얀 두 다리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결국 올라타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부드러운 허벅지의 감촉이 얼굴에 닿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리리에 덕분에 목마는 자주 태워 본 경험이 있어서 자세를 잡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이대로 다음 장소로 향하면 되겠네.
“오빠와 여동생 같아요~”
오빠보단 아빠가 어울리지 않나?
“부럽네요~ 저도 선생님께 목마 받고 싶어요~”
그렇게 소녀의 여러 가지 소리와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우리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 * *
라헨느를 목마 태우고 라네즈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긴 내가 도착한 곳은 연무장과 투기장의 사이에 위치하는 한 가게였다.
가게라기에는 제대로 구비된 상품들도 없이 야외에 나무 테이블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태였지만.
나는 라헨느를 목마에서 내리게 한 다음에 대충 아무 자리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여기도 가게가 있었구나~”
“여긴... 사람이 별로 안 올 텐데...”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며 가게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하는 쌍둥이들. 뽈뽈대며 움직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녹아내리는 느낌이려나.
“오, 현성!”
그때, 털털한 목소리가 반가운 듯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삐죽삐죽한 머리에 구릿빛의 피부인, 헬 창들이 보면 운동 좀 알려달라고 할 것 같은 근육질의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 강한 모험가들이 득실대는 왕도의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남자다.
나는 의외의 인물의 등장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뭐야. 아저씨는 이틀 째 아니었어? 일부러 불꽃놀이에 맞춰서 장사할 수 있게 힘 좀 써 줬더니만.”
“하하하! 축제지 않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즐겨보겠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양손에는 기념품들이 한가득 담긴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는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더니 봉투 안에서 맥주가 담겨 있는 듯한 병을 두 개 꺼내 테이블의 위에 올려놓았다.
...저걸 계속 들고 다닌 거야? 미지근해지지 않나?
하지만 내 그런 생각은 맥주병의 겉면에 서려 있는 서리를 보자 금방 사라졌다. 아무래도 얼음 마법을 조절해서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한 것 같았다. 아마 저기 가게 안에 있는 맥주들도 같은 원리로 내일까지 시원하게 얼려져 있겠지.
“마시지 않겠나?”
그가 내게 맥주병을 건넸다. 맥주병을 손으로 잡자 한기가 내 손을 타고 온몸에 퍼져 내 몸을 순간 움찔거리게 했다.
이대로 바로 마셔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맥주병을 다시 그에게 돌려보냈다.
“웬일인가? 자네가 술을 거절하고.”
나는 아무 말없이 턱짓으로 가게의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꺄르르거리며 가게 주위를 맴돌고 있는 라네즈와 그 뒤를 쫓아가고 있는 라헨느가 있었다.
애들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실수는 없다는 뜻을 눈치챘는지, 베드로 씨가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기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맥주병의 뚜껑을 따 벌컥대며 맥주를 마셨다.
“캬하~! 역시 최고급 흑맥주는 다르구만!”
“그나저나 대낮부터 마셔도 되는 거야?”
“상관없네. 어차피 지금 아니면 이렇게 즐기지도 못하니까.”
“하긴. 왕도에 돌아가면 무수한 업무에 시달릴 테니 지금 마셔두는 게 좋을 것 같네.”
킥킥대며 반쯤 놀리듯한 내 말에 방금까지 맥주가 가져다주는 기쁨에 으쓱대던 베드로 씨의 어깨가 축, 하고 처졌다.
모험가 길드 중 가장 빡세다고 알려진 왕도의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를 맡은 그이기에, 일이 얼마나 빡셀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래서 말인데, 현성. 혹시...”
“안 돼.”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지난번처럼 내 소환수에게 일 처리 좀 부탁하자. 뭐 이런 거잖아.”
“...자네는 너무 눈치가 빨라서 문제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삼 년 동안 그 정도 처리해줬으면 된 거 아니야? 지치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에 스무 시간을 일만 시키는 게 어디 있어? 그녀가 괜찮다고 말했고 당신이랑 친분이 있어서 아무 말하지 않고 넘어가 줬더니만...”
“그, 그건 미안 하네...”
“됐어. 당신이 사과할 게 아니야.”
일 처리 능력이 없는 길드 놈들 탓이지, 마스터인 그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둘의 사이에 잠시 불편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 분위기를 깬 건 들려오는 순수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었다.
“어! 베드로 아저씨다!”
“아저씨..!”
가게탐방을 끝마쳤는지, 내 쪽으로 돌아오던 라네즈와 라헨느가 내 앞에 있는 인물을 알아보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오, 아리아 가문의 아가씨들 아니십니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낮춰 눈높이를 그녀들과 비슷하게 맞추는 베드로 씨.
“학교는 재밌게 다니시고 계십니까?”
라네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건 없지만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아!”
“응..!”
가르쳐 주는 건 없지만 이라니... 사실이라 반박할 말이 없다.
라네즈의 말에 내 쪽을 흘낏 바라보더니 껄껄대며 웃기 시작하는 베드로 씨.
“그래도 저 친구가 여기에 있어서 좋지 않으십니까?”
“응! 선생님 강해서 좋아! 그 다크 나이트도 일격에 쓰러뜨렸어!”
“응..! 보랏빛이 막 이렇게... 저렇게...”
라며 내가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를 상대했을 때를 장황하게 말하는 쌍둥이들.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그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 위에 놔두었던 봉투들을 집어 들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내일 장사도 있고, 사 온 걸 옮겨야 하거든요! 아, 다크 나이트 건은 걱정 말게! 어디 가서 말하지 않을 테니! 그럼, 내일 저녁에 보세나!”
“안녕~!”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자매의 배웅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긴 베드로 씨의 모습이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신이 말 안 한다고 해서 안 퍼질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나라의 중추라고 볼 수 있는 귀족 소녀들이 전부 알고 있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휴식에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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