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62화 (62/146)

〈 62화 〉 만월제.(2)

* * *

* * *

만월제는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왜냐하면 만월제의 기원이 되는 마왕과 마왕 토벌단인 백야의 싸움이 이틀에 걸쳐서 끝났기 때문이었다.

형식적인 걸 좋아하는 귀족들이 이런 걸 놓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간이 만월제라고 부를 수 있는 학교의 만월제도 똑같은 형식으로 치러진다. 가게는 며칠 전에 다 지어놓고 첫날과 둘째 날의 상인들만 바뀌는 식으로.

솔직히 말하면 쓸데없는 것 같다. 달라지는 건 없이 그저 전날에 하던걸 이어서 하는 것뿐인데, 굳이 이틀에 걸쳐서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절대로 내가 이틀이나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첫날에 끝내버릴 걸 그랬다. 괜히 몸매에 눈이 사로잡혀서 슬슬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맨얼굴까지 봐버려 가지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의 위에 턱을 괴었다.

아주 잠깐의 과거회상 끝에 오는 것은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의 마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날인 만월이 바로 내일 밤이었다.

이 학교에 머무는 소녀, 레이도 마력이 상승하는 대상에 포함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최상위 마족급인 서큐버스 퀸이었으니까.

물론 이것만 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력이 상승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강해진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내가 고민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그냥 만월만 넘기면 되니까.

문제는, 레이가 서큐버스 퀸과 인간의 혼혈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강대한 마력을 몸이 버티지 못 해 성녀의 마력이 담긴 억제제로 지금까지 버텨 온 거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오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의 마력은 점점 강해져 가고 있었기에 억제제로 버티는 거에도 한계가 오게 될 것이었다.

이 이상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똑같은 상황이 계속될 시에는 최악의 경우에 마력을 담고 있는, 근원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릇이 깨져 죽게 된다.

만약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고 해도 평생을 다른 사람이 돌봐주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인형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내 실수로 인해 억제제를 복용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이번 만월이 고비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거래’로 인해 그녀의 상태를 해결하고자 주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어 봤지만, 정보의 양만 늘어났을 뿐, 실질적으로는 비슷비슷한 정보들밖에 없었다.

나는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이튿날까지 어떻게든 정보를 더 수집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만월을 맞이해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신하지 못한 채로 연거푸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히히~ 나 잡아봐라~!”

“기, 기다려..!”

그때, 근처에서 라네즈와 라헨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옮기자, 지금은 주인이 없는 가게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그녀들을 볼 수가 있었다.

꺄르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달리고 있는 라네즈와 숨이 찬 듯 헉헉대면서도 라네즈를 쫓아가고 있는 라헨느.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수한 표정으로 즐겁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방금까지 하고 있던 고민이 전부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하, 하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난 작전을 짜서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그냥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게 더 맞는 것 같네.

만약에 폭주한 레이를 막아야 한다? 그러면 막으면 된다. 다만 무리가 가지 않게 신속하고 빠르게. 나라면 가능하다.

이세계에 처음 왔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겐 힘이 있으니까.

앨리아와 호각이라고 따진다면 내가 지지는 않겠지. 정 안 되면 최후하고도 최후의 방법으로 레이를 안는 방법도 있고.

그녀가 마력을 잃어 평범한 사람이 되겠지만 죽는 것과 평생을 인형처럼 살아가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머릿속에 들어 있던 내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짐들을 던져 버리고 그저 지금, 이 평화로운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시선을 라네즈와 라헨느 자매에게 고정한 채로, 어느샌가 내 양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를 응시하고 있어 내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왜 여기 있는 거냐.”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오~ 대단한데~? 애들이 뛰노는 모습에 신경 쓰느라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양옆에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눈치채지 않을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 옆의 방해꾼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왼쪽을 차지하는 소녀, 루아는 분홍색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로, 분홍색과 보라색이 적절하게 섞인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 옷이다 보니 탐스러운 과일이 여지없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른쪽을 차지하는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는 루아와 똑같은 교복으로 보이는 옷이었지만 옷의 색은 연보라색과 보라색이 섞여서 분홍 머리 소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원래 저 옷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옷 아니었나? 아마 왕실을 상징하는 색깔을 섞어 놓은 거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리 국왕 다음가는 권력인 왕성 귀족이라고 해도 저렇게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 거야?

정작 본인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다시 한번 그녀들에게 왜 축제에 가서 즐기지 않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냐고 물어보려고 생각했던 때, 루아에게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너, 루나냐?”

16살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은 고혹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루아.

그런 분위기를 포함해 평소처럼의 양 갈래 머리가 아닌 늘어뜨린 생머리인 것으로 보아 루아가 아닌 루아의 또 다른 자아, 루나인 것으로 보였다.

분홍 머리의 소녀 루아, 아니 루나는 어떻게 바뀐 걸 알았냐는 듯 오~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어떻게 나인걸 알았어?”

“나 알아봐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같이 머리를 풀고 왔으면서 모를 거로 생각한 거야?”

“흐응~ 연기를 할 때는 빨리 눈치채서 일부러 이 모습으로 왜,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눈치채지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

루나가 루아를 연기할 때도 눈치챘던 나다. 저렇게 알아봐 달라고 어필하는데 모르는 게 말이 안 된다.

아마 그녀가 나왔다는 건, 축제를 즐기라는 의미에서 루아가 루나를 배려해준 거겠지.

“그래서, 왜 모처럼의 축제를 즐기지 않고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냐고.”

나는 그녀들에게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그러자 루나가 멋쩍은 듯한 웃음을 흘리며 한 곳을 가리켰다.

“몇 개의 가게를 싹쓸이 했더니 출입 금지 당해 버려서~”

그녀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종이봉투들이 빼곡히 쌓여 있어 멀리서 보면 작은 언덕으로 보일 정도였다.

대부분이 경품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탁월한 신체 능력으로 관련 가게들을 싹쓸이 해온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런 류의 가게들이 꽤 있었지.

대부분 신체 능력 자체는 약한 귀족 소녀를 대상으로 한탕 크게 벌어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루나에 의해 저지당한 것이겠지.

“그래서 먹을 거를 먹던가. 장식품을 구경하던가. 하면서 적당히 즐기다가 문득 한 곳이 시끄럽길래 살펴보니, 오빠가 저 애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을 봐서 말이지~”

라헨느를 목마 태우고 라네즈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고 재밌는 일이 없을까, 따라왔다 이거군.

루나의 성격을 아는 나로서는 납득할 만한 대답이었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레나, 너는?”

“저도 루아랑 비슷하죠. 몸 쓰는 놀이에는 관심이 없고, 장식품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루아와 동행하게 된 거예요.”

“...혹시 내가 뭐 일이 생기면 도와주고서 생색낼 생각은 아니었고?”

“저 애들도 참~ 저렇게 뛰다간 넘어질 텐데요~”

“...”

내 말에 동문서답하며 시선을 회피하더니 이내 라네즈와 라헨느 자매에게로 걸음을 옮기는 세레나. 여전히 속이 잘 보이는 녀석이다.

그렇게 루나와 둘만 남게 되었다. 루나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지금은 이대로 조용함과 평온함을 만끽하자고 말했고, 루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다고 대답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노곤함에 그대로 잠들려던 찰나, 익숙한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흑발과 다른 소녀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분위기, 허리춤에 찬 검으로 볼 때, 레이인 것 같았다.

세레나와 루나랑은 달리 입고 있는 교복으로 보이는 옷은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처음과 동일한 상태였다.

걸음을 옮기고 있는 루트로 볼 때, 목적지는 연무장인 것 같았다.

축제 때도 연무장에서 단련이라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아니, 어쩌면 만월을 대비해서 미리 힘을 빼놓는 걸지도. 뭐가 됐든 대단한 녀석이다.

“레이~!”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고,

“...어라?”

그대로 걸음을 재촉하며 연무장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사가 돌아오는 건 기대하지 않긴 했는데 설마 무시할 줄이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