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63화 (63/146)

〈 63화 〉 만월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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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라..?”

나는 인사 겸 흔들려고 들었던 손을 든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인사의 대상이었던 레이가 내 인사를 상큼하게 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손을 흔들어 주는 것까지 바라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무시할 줄이야.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

“오빠. 레이 언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내 옆에 앉아 있던 분홍 머리의 소녀, 루나 또한 레이의 이상행동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게 물었다.

“글쎄..?”

“언니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나도 처음 보는데... 진짜 잘못한 거 없어?”

계속 들고 있었더니 팔이 저려 오기에, 나는 슬며시 손을 내리며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잘못한 거... 잘못한 거라...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 테이블에 앉아 기억을 더듬고 있는 순간까지. 마치 영화를 보되 빨리감기를 누른 듯 촤르륵거리며 눈앞을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답이라고 말할 만한 것을 찾은 건, 영화의 끝부분이었다.

잘못이라기에는 조금 그런 면이 있긴 했지만, 레이가 느끼기에는 어떨지 모르니까.

며칠 전, 물려받은 체질로 인해 소위 ‘흥분 상태’가 된 레이의 상태를 풀어 주고자 그녀의 몸을 애무해준 일이 있었다.

물론 중요 부위들은 건들지 않은, 맛보기에 가까운 애무였지만.

...생각해 보니 잘못이긴 한 것 같다.

장면의 재생 중 일시 정지가 눌린 곳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움찔대고 있던 레이의 모습이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니 잘못이 맞긴 한 것 같았다.

어머니가 서큐버스일 뿐이지 그녀 자신은 서큐버스와 관련된 것을 일체 하지 않았으니까.

성에 관련된 것들을 그 아재가 레이에게 알려 줬을 리가 없지.

하지만 반쯤 억지로 했다고는 해도 완강하게 거부하지도 않았고, 중간부터는 교성을 섞어가며 내게 몸을 맡겼으니까 잘못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얼굴을 보면 그날의 일이 떠올라서 부끄러워졌기 때문인가?

“하.”

그런 생각하자마자 망상도 정도껏 하라는 듯, 내 자신에게서 피식. 웃는 형태로 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그 레이가? 라면서 말이다.

물론 그날의 밤에는 조금 특별한 표정들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도 소녀인 이상, 아주 약간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상상해봤다.

대사는 ‘서, 선생님...’이 좋을 것 같다.

...괜찮은데?

“오빠. 얼굴이 이상해.”

내 망상이 얼굴까지 번졌는지, 루나가 변태를 보는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봐? 얼굴을 보니 꽤 즐거운 일인 것 같은데? 나도 알고 싶은데, 말해주면 안 돼~?”

루나의 물음같지 않은 물음에 나는 레이와 있었던 일을 말해 줘야 되나 잠깐 고민했다.

“...응?”

잠깐. 내가 왜 ‘고민’을 하고 있지? 말을 안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문득 느낀 위화감에 루나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

저 녀석 설마... 지금 나한테 최면을 걸고 있는 건가?

심장이 빨리 뛰거나 몸이 뜨거워지는 등 흥분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매료는 아닌 다른 정신 계열 마법인 것으로 보였다.

정신력을 미리 길러두지 않았다면 전부다 불어버릴 뻔했네.

계속 나를 응시하는 루나의 붉은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아얏!”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먹여 주었다.

“어..?”

머리 위에 물음표가 3개는 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루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나한테 최면 걸고 있었지.”

“어, 어떻게 알... 아, 아니..! 안 걸었어!”

“그 붉게 빛나는 눈동자나 어떻게 하고 말하시지 그래?”

그녀의 눈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내 붉게 빛나던 눈동자가 그 빛을 잃었다. 루나는 기지개를 피듯 몸을 뒤로 크게 당기며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걸리는 거야... 분명 야한 이야기일 거로 생각해서 듣는 걸 기대했는데...”

“나한테 위화감이라는 감정이 들게 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치... 마음에도 없는 말은.”

치사하다는 듯한 얼굴의 루나를 뒤로하고, 저 멀리 라네즈와 라헨느, 세레나에게 다시 시선을 옮기며 그녀들이 뛰놀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흘낏 옆을 보니 루나 또한 나처럼 테이블 위에 턱을 올려놓은 자세로 뛰놀고 있는 소녀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심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게? 지금쯤이면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그녀가 축제와는 거리가 먼 이곳으로 유배를 온 이유는 피지컬로 하는 축제의 즐길 거리들을 대부분 싹쓸이해서 가게들의 블랙리스트에 등제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돌아가면 그녀의 존재에 대해 까먹은 상인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에 있는 학생만 100명이다. 게다가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만월제. 100명의 메이드들 또한 잠시 일을 내려놓고 축제를 즐기고 있다.

머리를 묶는다던지, 가게에 구비되어 있는 가면을 산다던지, 메이드복을 입는다던지 등 방법은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루나에게 묻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즐길 수 있는 가게들은 출입 금지를 당해서 말이야.”

‘싹쓸이 할 수 있었는데.’ 라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는 루나.

“지금쯤이면 다들까먹지 않았을까? 머리를 묶는 방법을 다르게 해 본 다던가...”

“이미 할 수 있는 변장은 다 해봤지. 메이드복을 얻어서 메이드 사이에 들어가보기도 했고, 가면을 여러 개 사서 번갈아 가며 쓰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말하며 루나는 자기 가슴을 손으로 받쳤다. 그녀가 손에 살짝 힘을 주자 그 반동으로 그녀의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남자라면 누구든지 자동으로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정녕 16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것도 아닌데?

“이거 때문에 이젠 어딜 가도 들키게 되어 버려서.”

이런 게 뭐가 좋냐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루나.

그냥 지방 덩어리 아니냐는 말에 순간 거유에 대한 토론을 시작할 뻔했지만 다행이 금방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여기서 저녁까지 시간보내다가 방으로 돌아가려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루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나랑 같이 다니면 되겠네.”

“응?”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루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싫어?”

내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루나. 그러더니,

“뭐야~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랑의 도피다.”

슬슬 뛰노는 게 지쳤는지 저 멀리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세레나와 동생들을 피해서 말이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애들이 여기까지 오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알리미 같은 게 있었으면 ‘불안 감지.’라던가 ‘귀찮음 감지.’라고 눈앞에 화면으로 띄워졌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그녀들이 도착하기 전에 루나와의 축제구경이라는 명분으로 빠져나가야겠어.

“음~ 싫어~!”

“...왜?”

“루아가 나고 내가 루아인 건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루아가 귀족인 건 알지? 그것도 국왕 다음가는 권력인 왕성 귀족.”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귀족처럼 부탁해 달라고?”

“바로 그거지~”

...그래, 이왕 하기로 한 거. 맞춰주지 뭐.

나는 허리를 살짝 숙인 다음, 루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와 함께 동행해주시겠습니까? 루나 아가씨.”

“꺄하하~! 하나도 안 어울려~!”

내 귀족 흉내가 안 어울렸는지, 루나가 배를 잡으며 웃기 시작했다.

“...네가 해 달라며.”

기껏 해줬더니만, 웃어? 다음부터 해주나 봐라.

“하..! 하..! 하긴 했지만..! 이렇게 안 어울릴 줄이야..!”

잠시 후, 너무 웃었는지 루나는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닦았다.

“그래도 모처럼 해준 거니까~”

루나는 흠흠거리며 목을 다듬더니,

“에스코트, 부탁할게요~”

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으며 자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어 팔짱을 끼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루나의 팔이 내 팔을 감싸는 것을 느끼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앗! 선생님이 루아 언니랑 도망간다!"

"기다려..!"

"우리가 가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도망치는 거죠!"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 * *

“아, 안 돼요, 안 돼!”

루나를 본 상인들이 기겁하며 가게의 출입을 막았다.

“이게 뭔지 아시나요? 계약섭니다. 계약서. 그것도 원본. 만약에 제가 이것을 불태우거나 해서 없앤 다음, 불법 노점으로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 그건..!”

하지만 내가 총괄 선생의 힘을 사용하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권력이 최고인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반 이상의 가게가 일찍 장사를 접고 돌아가게 되었고, 나와 루나는 승리의 전리품을 낭낭하게 챙기며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서로의 희비가 갈린 만월제의 첫날이 막을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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