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64화 (64/146)

〈 64화 〉 만월제.(4)

* * *

만월제의 둘째 날도 첫째 날과 다름없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오늘은 루아. 아니, 루나가 없어서 뽑기라든지, 사격이라든지 등 피지컬을 요구하는 가게들의 매출이 수직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려나.

저렇게 많은 수의 귀족 소녀들이 바글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들이 저렇게 많이 모인 것도 얼추 이해가 갔다.

어제는 루나와 나로 인해 대부분의 가게들이 장사를 일찍 접고 돌아갔으니까. 즐기지 못한 애들이 수두룩하겠지.

솔직히 저런 건 장난질을 쳐둔 경우가 많으니까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나나 루나니까 장난질을 넘어설 수 있기에 상품을 싹쓸이 해 올 수 있던 거지, 다른 애들이 저런 거에 쉽사리 손을 댔다가는...

“아! 아까워요..!”

“조금만 더 힘내 봐요!”

“여기 총알 열 발만 더 주세요!”

“예~!”

저렇게 한틱 차이로 총알들이 빗나가 실패하게 되고, 자존심이 강한 귀족의 특성상 돈을 엄청 뜯기겠지.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설탕과자를 선을 따라 정해진 문양을 따는 것도 힘 조절이 서툰 소녀들이 제대로 해낼 리가 전무했다.

그나마 몇 명의 소녀들이 경품을 따가는 정도가 끝이었다.

경품을 얻고 얻지 못하고가 정해지면서, 소녀의 희비도 엇갈렸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라며 훈수를 두고 싶었지만 지금 나는 어제 했던 것처럼 가게들을 순찰 중이었기에, 훈수를 두는 것은 순찰을 끝마치고 난 뒤에 하자고 생각했다.

어제는 아마 정오가 조금 지나서 끝났었지? 아마 오늘도 비슷하게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순간 귀찮음이 몰려왔다. 잠시 근처의 벤치에 앉아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가게들도 비슷한 부류가 대다수인데 그냥 대충 넘어가? 발키리나 자동인형 애들한테 애들 좀 주시하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나서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하.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람. 그러다가 그녀들이 모르는 곳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게다가 걔들도 모처럼의 축제고 하니 쉬라고 해 뒀는데, 내 편함을 위해 시간을 희생해 달라고 말할 수 있겠어?

물론 그녀들은 군말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하며 받아들이겠지만, 내가 편하자고 애들을 이용할 순 없지.

게다가 자동인형 자매 중 첫째인 아인은 지금 레이를 그녀 모르게 감시하고 있다가 이상이 생기면 내게 보고하는 중책을 맡고 있기도하고.

나는 한숨을 쉬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순찰 가시나요?”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검은 머리의 여성이 서 있었다. 영롱한 붉음을 머금고 있는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내 전속 메이드로 만월제 기간 동안 나를 돕기 위해 왕국에서 보내준 사람인 아스모 씨였다.

“네, 오늘도 가야죠...”

가기 싫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자, 아스모 씨가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오늘까지만이니 조금만 힘내세요.”

그녀의 미소와 함께 응원을 듣자, 나도 모르게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서큐버스의 매혹을 적당히 조절해서 걸리면 버프처럼 힘이 나게 해준다던데, 사실인 것 같다.

저렇게 매력적인 분을 사람을 몇백이나 해친 인큐버스니 뭐니라고 말한 앨리아는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그녀에게 응원도 받았겠다, 힘을 내서 순찰을 시작하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아스모 씨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스모 씨는 왜 여기에 계시는 거지? 다른 메이드 분들은 삼삼오오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을 텐데.

배웅을 했던 내가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가자, 그녀가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스모 씨는 축제를 안 즐기시나요?”

“그게...”

내 질문에 아스모 씨의 얼굴이 의문에서 난처로 바뀌었다.

“제가 축제 같은걸 처음 경험해 봐서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는 건들면 안 되는 과거 같은 게 있었지. 과거를 묻자 얼굴이 꽤 어두워지기에 묻는 걸 관뒀는데,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두운 과거를 지닌 것 같았다.

“다른 메이드 분들은 잘 즐기시고 계시긴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멋쩍게 웃는 아스모 씨. 그런 그녀를 보자 내 입은 어느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 같이 다니실래요? 순찰이 끝난 뒤지만.”

“...네?”

아스모 씨의 의문이 섞인 얼굴을 보면서, 나는 작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 * *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아스모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상황에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현재, 그녀는 나무로 만들어진 기다란 총을 손에 들고서 가판에 올려져 있는 경품을 조준하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왼쪽으로 움직여요.”

그녀의 옆에서 이 가게까지 같이 온 검은 머리의 남성, 진현성의 말대로 총구를 살짝 왼쪽으로 돌렸다.

그녀가 현성이 있던 벤치의 근처에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축제를 즐겨본 적이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곧 다가올 만월의 시간을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적당한 곳에 숨어있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될 때까지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뒤뜰 정원으로 향할 생각이었는데, 벤치에 앉는 현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같이 보이던 현성에게 그녀는 먼저 말을 걸어 전속 메이드를 연기해 의심을 조금이라도 지우려고 노력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녀의 거짓된 행동에 의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 현성에 의해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게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현성과 붙어 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는 안 돼!’

그녀. 아니, 그가 오랜 세월을 찾아다닌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을 밟기까지가 코앞이었다. 이런 축제를 즐길 시간 따위는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이젠 즐길 거 다 즐겼다고 말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녀의 뇌리에 순간 어쩌면 이것이 현성이 파놓은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자. 중간에 빠지려하면 의심할 수 있어. 장단에 맞춰서 즐기는 척을 하다가 적당히 시간 봐서 빠져나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다시 경품을 맞추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좋아요! 이제 숨 좀 참고...”

“흡...”

현성의 말에 그녀는 숨을 참으며 목표물을 조준했다. 숨을 쉼으로 인해 조금씩 떨리며 흔들리던 조준점이 안정화되었다.

“쏴요!”

땅! 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으로 만들어진 작은 구체가 총구에서 나오며 목표물이었던 작은 곰 인형에 명중했다.

툭. 곰 인형이 가판대를 넘어 뒤로 넘어졌다.

“넘어갔다!”

“대단하시네요!”

“역시 왕궁의 메이드..!”

소녀의 감탄사를 받으며, 아스모에게 곰 인형이 주어졌다.

“자, 다음은 설탕과자로 가죠.”

* * *

“조금만 더..!”

처음의 ‘장단에 맞춰주자.’라는 생각은 어디 갔는지, 아스모는 설탕과자에 그려진 문양을 따라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른 것은 우산이었다. 동그라미나 세모, 네모도 있었지만 너무 애들 용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됐다..!”

그녀는 완성된 우산 모양의 설탕과자를 들어 올리며, 진심으로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몇 가지를 더 즐기며 처음의 생각은 완전히 잊어 버린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15분 뒤면 불꽃놀이가 시작하니 즐길 거 다 즐겨 놓으라는 상인의 외침이 울려 퍼질 때였다.

‘이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어..!’

양손에 경품을 한 가득 안고 있던 아스모는 순간 욱해서 경품들을 내팽개칠 뻔했으나, 현성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겨우 이성을 붙잡았다.

더 늦었다가는 100년 만에 찾은 기회를 날리게 될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 오면, 그녀는 이곳을 떠나야 했으니까.

어떻게 현성을 속여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되나, 생각하며 현성의 동태를 살피던 그녀는 현성이 잠시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빠른 발걸음으로 현성의 신경이 다시 그녀에게로 향하기 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온 아스모.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다다르자 들고 있던 경품들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사칭 편지에 따라 레이가 기다리고 있을 뒤뜰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희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응..?"

곧 올 누군가를 위해 꼬치구이와 흑맥주를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 것도 모르는 채로.

* * *

어라?

아스모 씨에게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같이 맥주나 마시자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아스모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급했나?

“그래도 말은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긴, 감옥도 아니고 화장실을 간다고 나한테 말할 필요는 없긴 하지.

나는 고민이 들었다.

이대로 아스모 씨를 기다릴지. 아니면 혼자 베드로 씨가 운영하는 흑맥주와 꼬치구이 가게에 갈지.

그래도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 시중을 드느라 고생하셨으니 같이 가는 게 맞겠지? 대접도 할 겸.

대접이라고 해봤자 맥주와 꼬치구이가 전부지만.

돈은 뭐... 달아 놓으라고 하던가 해야겠네. 이곳에서 돈 쓸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안 가져 왔으니까.

“일단 이것들 좀 놓고 찾아보던가 해야겠다.”

나는 양손에 가득 안고 있는 아스모 씨가 딴 경품들을 내 방으로 가져다 놓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 기숙사 건물로 향했다.

"..."

아스모 씨를 찾기 전에 꼬치구이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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