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만월제.(5)
* * *
학교의 뒤편에 위치한 뒤뜰 정원.
꽃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중앙 정원과는 다르게 나무와 꽃들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중앙 정원에 밀리지 않는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경관 한가운데에는 꽉 찬 만월의 달빛을 받는 흑발의 소녀, 레이가 있었다.
현성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 따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뒤뜰 정원으로 온 그녀는 편지를 보냈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왜인지 쿵쾅쿵쾅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항상 만월이 가까워짐을 두려워하고 있던 그녀였다. 억제제가 없다면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몸이기에, 만월이 다가올 때면 제발 무사히 넘어가게 해 달라고 남몰래 빌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악화되었다. 마력을 억제하던 억제제를 복용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여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믿고 기다리라는 현성의 말. 그 말이 그녀에게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 오시려나...”
너무 빨리 온 걸까.
기대감에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진 것만 같았다.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그녀는 좁은 반경을 빙글빙글 돌거나 근처의 꽃을 감상하는 등, 평소의 그녀가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후후. 언니도 참. 귀여우셔라.’
그런 그녀를 몰래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나무들의 사이, 어둠 속에 숨어 고개만 살짝 내민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였다.
혹시나 감각이 좋은 레이가 알아챌 수도 있기에 기척을 숨기는 마법까지 사용한 상태였다.
항상 도도하면서 차가운 행동거지를 보이기에, 저런 레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마 지금의 세레나가 유일할 것이다.
‘사진기라도 가져올걸 그랬어...’
앞으로 감정이 한층 더 진화하면 모를까, 저렇게 처음 겪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얼굴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버튼을 누르며 마력을 보내면 저장된 빛의 마법을 종이에 투과시켜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 둘 수 있게 해주는 ‘사진기’가 있다면 평생 간직하고 있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세레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레이의 모습을 눈과 기억에 가득 담아두기로 했다.
‘자... 어서 오세요, 선생님..!’
앞으로 일어날 일은 더 재밌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세레나는 곧 올 밀회의 시간의 주인공을 기다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런, 먼저 온 손님이 있었네요?”
“?!”
세레나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
목덜미 쪽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상대가 누구인지도 확인 못하고 그래도 세레나의 정신은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털썩.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지탱한 건 흑발의 여인, 아스모였다. 달빛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 밀회는 누가 봐서는 안 되거든요. 당신도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응?”
기절한 세레나를 놔두고 레이에게로 향하려던 아스모는 세레나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력의 느낌에 발걸음을 멈췄다.
느낌을 따라 세레나의 옷을 살짝 풀어 해쳐보았다. 이내 그녀는 윗가슴 부근에서 백합모양의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서큐버스인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바로 알았다.
“호오... 이건 이것대로 이용할 수 있겠군요.”
오늘은 만월이었다. 그렇다면 필시 아스모처럼 서큐버스 퀸의 마력을 물려받은 레이도 마력이 상승했을 터.
그런 그녀가 얼마나 강할지는 미지수였기에 하나라도 많은 패가 있는 쪽이 좋았다.
“이쪽으로 마력을 쓰는 건 좀 서툴지만...”
우웅. 아스모의 손끝에서 보랏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시, 저의 인형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 * *
현성을 기다리며, 레이는 자기 몸이 낫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았다.
‘일단, 훈련을 적당히 해야겠어.’
한시라도 빨리 복수를 이루고자 몸이 더 망가지기 전에 최대한 강해지는데 중점을 두었던 그녀의 하루일과.
하지만 그것도 몸의 상태가 낫게 된다면 급하게 강해질 필요는 없게 될 것이다. 복수를 위한 시간이 넉넉해질 테니까.
‘그리고 선생님께 감사드리는 것도 잊지 말자.’
그녀의 상태를 해결한다면, 그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레이는 현성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스럭.
그녀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선생님이신가?’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나무들의 사이에서 나온 건 흑발의 메이드 복을 입은 여성, 아스모였다.
현성이 아님을 확인하자, 들떴던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다시 돌아온 싸늘한 얼굴이 아스모를 응시하자, 아스모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하지만 상관없었다. 레이의 기분이 좋건 나쁘건, 그녀가 앞으로 할 일에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전속 메이드...셨나요?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다른 메이드들이라면 지금 시간에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중앙 정원의 근처에 모여 있을 터였다.
물론 그녀는 다른 메이드와는 달리 현성 하나만을 위한 전속 메이드였으나,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건 현성도 이곳에 있어야 된다는 말인데 레이가 느끼기에 주변에 마력을 가진 생물체라고 느낄 만 한 것은 눈앞의 그녀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눈치가 빠른 그녀는 알아챌 수가 있었다.
현성이 보냈다고 생각한 편지는 사실 눈앞의 그녀가 보낸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이 시간에 이곳에 있는 것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라? 어디 가세요?”
“편지가 장난인 것을 안 이상 더는 볼일이 없습니다.”
싸늘하게 말하며 아스모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레이. 어딘가에 있을 현성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정말요? 당신도 제게 볼 일이 있을 텐데요? 안 그래요?”
그녀가 다음에 한 말은 레이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서큐버스 퀸의 딸.”
“그걸 어떻게...”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는 레이의 확장된 동공을 보며 아스모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맞다. 지금의 전 여성인 상태였죠?”
레이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레이를 향해 고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아스모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어갔다.
기다랬던 흑발은 짧아지며 백발로 바뀌었다. 입고 있던 메이드복은 가벼운 정장 차림으로 바뀌었고, ‘여자’일 때보다 키가 조금 더 커졌다.
“이러면 알아보려나요?”
두근! 두근! 두근!
레이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10년이나 지났지만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과거의 흉터. 그녀가 강함에 집착하게 된 원인.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간 악몽이,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 * *
평소에도 연무장에서 훈련하는 레이나 시설들을 관리하는 나를 제외하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지만 축제기간이라 더더욱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인들의 눈길을 전혀 받지 않아 자리 경쟁이 하나도 없는 그런 길목에 가게를 낸 남자가 있었다.
“오! 현성! 왔구만!”
삐죽삐죽한 머리에다가 근육질이라 육체파처럼 보이지만 육체와 지성을 두루 겸비한 왕도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 베드로가 바로 그 남자였다.
가게에 다가온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드는 베드로.
불판에 꼬치구이가 구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슬슬 내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바로 마실 텐가? 나는 불꽃놀이가 시작 되고 나서 마셔도 상관없긴 하네만.”
얼음 마법으로 음식을 냉장시켜 신선도를 유지해주는 네모난 마도구에서 흑맥주를 꺼내며 테이블에 올려놓으려 하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 구워져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꼬치 중 하나를 가리켰다.
“아니, 지금은 그냥 꼬치 하나만 먹으려고 온 거야. 저기 저걸로 줘.”
내가 가리킨 닭고기꼬치를 꺼내 내게 건네며, 그가 물었다.
“응? 무슨 일 있는가? 이제 곧 불꽃놀이가 시작될 텐데?”
“대접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금방 찾아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줘.”
“어제와 오늘 자네 옆에 딱 붙어 다니던 흑발의 메이드를 말하는 건가?”
“어떻게 알았어?”
“오다가다 봤다네. 축제에 열중하는 모습이 꽤 매력적인 아가씨더군.”
아스모 씨가 매력적이라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애초에 서큐버스가 매력이 없으면 남자를 매혹하고 다닐 수 있겠어?
“그 아가씨라면 봤다네.”
“어? 어디서?”
그가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학교의 뒤편으로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저 길을 똑바로 따라간다면 뒤뜰 정원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더군.”
“뭐가?”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는 듯 턱에 손을 올렸다.
“들고 있던 종이봉투들을 저쪽에 내팽개치더니, 다급하게 가더군.”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시 시선을 옮기자, 여기저기 널브러진 종이봉투들과 상품들이 보였다.
“화장실이 급했던 거 아니야?”
나오기 바로 직전이면 그럴 수도 있지. 앞뒤 안 가리게 되니까.
“그런 거라면 십 분이나 지난 지금도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그러네.”
일단 정리해둘까. 저렇게 계속 두면 나중에 치우는 건 메이드 분들이 될 테니까.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널브러져 있던 종이봉투들과 경품들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경품들은 봉투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정리가 끝난 봉투들부터 하나씩 땅으로 내려앉았다.
“내 가게 옆에 두는 건가..?”
“어차피 손님도 나 혼자 밖에 없을 텐데. 뭐 어때? 나중에 치울게.”
“그건 그렇다만...”
“어쨌든, 이것만 먹고 찾아서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닭꼬치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음식과 맥주를 같이 못 먹는다는 게 조금 원통했지만, 그런 것들이 극한에 달한 후에 먹으면 더 맛있을 거라며 자신을 위로 했다.
그렇게 닭꼬치를 한 점 베어 물려던 찰나, 찌릿. 하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만 느낀 건가 싶어서 베드로를 쳐다 보니, 그는 왜 자신을 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 뭐 못 느꼈어?”
“뭘 말인가?”
“방금 뭔가 찌릿하고 왔는데. 아, 지금도 온다.”
희미하게 찌릿거리는 느낌이 계속 몸을 간질였다. 어딘가에서 신호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베드로는 느끼지 못 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네야 워낙 감각이 좋으니 내가 모르는 걸 알아차린 게 아닌가?”
“그런가...”
그 ‘모르는 게’ 뭔지 모르겠으니 문제지. 신호가 계속 오는 곳은 저기 뒤편인 것 같은데...
“흠...”
아무래도 가 봐야겠네. 겸사겸사 아스모 씨도 찾아서 올 겸.
나는 닭꼬치를 다시 진열대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이 필요한가?”
내가 일이 생긴 건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지 말만 하라는 신호였다.
왕도의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를 맡은 만큼, 그의 실력은 출중했다. 대륙에 단 100명뿐인 S랭크 모험가 중 상위권이니까.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분명 마왕이나 다크 나이트급을 제외하고는 전부 해결할 수 있겠지.
싸움이 일어났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있으면 일 처리가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기로 했다.
이곳은 내가 총괄로 있는 학교다. 비즈니스 관계긴 하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게 맞지.
그 다크 나이트도 혼자서 이겼는데, 별일 있겠어?
“됐어. 당신이 강한 건 알지만, 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내가 처리하는 게 맞으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자네로군. 알았네.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네! 불꽃놀이가 끝나기 전엔 돌아오게나!”
나는 대충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한 후, 땅을 박차며 뒤뜰 정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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