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66화 (66/146)

〈 66화 〉 만월제.(6)

* * *

부모님을 죽인 원수가 눈앞에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레이는 검을 소환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보통의 소녀라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다가 선수를 뺏겼을 텐데. 결단력이 좋군. 역시 그녀의 딸인가.’

아스모의 머릿속에 과거,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서큐버스 퀸, 네피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결단력이 좋은 건 필시 그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리라.

레이의 손에 들린 검이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내 불꽃이 일어나며 검을 덮었고, 그대로 아스모를 향해 휘둘러졌다.

콰아아아!

검에서 쏘아진 불꽃은 이내 용의 형상이 되었고, 입을 크게 벌리며 아스모를 향해 날아갔다.

맞는다면 그을리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열기를 증명한다는 듯 마법이 날아가는 경로에 있던 꽃들은 벌써 재가 되어 사그라진 상태였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아스모는 피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어디, 한 번 맞아볼까요?’

인큐버스 킹인 그의 특성상 ‘여성’의 마력이 담긴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그와 동급이거나 그보다 강한 상대라면 예외였다. 그렇기에 그는 첫 한 방을 맞아보기로 한 것이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스모는 자기 눈앞까지 들이닥친 화룡의 입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콰아아아!

한 차례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정원.

정원에 있던 꽃들의 반이 재가 되어 사그라졌다.

나무의 여기저기 새까맣게 그을린 자국들이 레이가 사용했던 마법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꽤 강력한 마법을 썼지만 레이는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만월로 인해 그녀의 마력이 상승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윽..!”

지끈거리는 머리에 그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만월로 인해 강해진 만큼 몸에 부담도 빨리 오게 된 것이었다.

그녀가 검을 한 자루만 쓰고 있는 이유였다. 이 상태에서 2자루 이상 다루다가는 폭주의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다.

“흠... 꽤 실망스러운데요?”

불꽃 속에서 혀를 차며 실망스럽다는 듯 말하는 아스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불꽃 속의 사람의 형체가 손을 가볍게 휘둘렀고, 바람에 촛불이 꺼지듯 방금까지 그를 휘감고 있던 거대한 불꽃이 픽. 하며 꺼져 버렸다.

불꽃이 꺼짐과 함께 드러난 아스모의 모습은 방금까지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듯 처음과 다를 게 없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첫 공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던 레이는 당황하지 않고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그녀의 검이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그녀의 주위에 물방울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가라..!”

그녀가 검을 들어 아스모를 가리키자 그녀의 주위에 떠 있던 물방울들이 창, 검, 화살 등 각각 무기가 되어 아스모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건 통과시켜볼까요? 통하진 않겠지만 옷이 젖는 건 싫으니까요.’

레이는 물로 만들어진 무기들이 아스모에게 닿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닿긴 했다. 하지만 그대로 그의 몸을 통과해 그의 뒤에 있는 나무들에게 수분을 공급해주었다.

‘어째서?’

첫 번째 공격은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두 번째 마법을 날린 거니까.

분명 마법은 직격한 느낌이 있었기에, 레이는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당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지 궁금하신가요?”

듣기 싫다는 듯 레이는 검을 고쳐 쥐며 다음 공격을 시작했다.

아스모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인큐버스 로드 정도가 되려면 말이죠. 지녀야 하는 게 참 많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초록빛으로 빛난 레이의 검에서 나온 바람이 살을 찢을 듯한 회오리바람이 되어 아스모를 강타했다.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최상의 외모도 있어야 하죠.”

아스모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후우. 하며 한숨을 내쉬자 방금까지 매섭게 몰아치던 회오리바람이 삽시간에 산들바람이 되어 그들의 머리를 살랑였다.

‘다음!’

레이의 검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교회의 팔라딘에게서 배운 악을 멸하는 빛의 광선이 아스모를 향해 쏘아졌다.

“이별에 슬퍼하고 있거나 높으신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예의범절과 말솜씨도 연습해야 했죠.”

‘다음..!’

이번 공격까지 막히자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무효화 되는 거라고 생각한 레이는 아스모에게 직접 검을 꽂아버리기 위해 땅을 박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강한 여성을 사로잡기 위한 최강의 무력이 필요했죠. 뭐, 이건 남성에게도 통용되는 말입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이것에 대해서는 딱히 연습할 필요가 없었네요.”

턱.

정확히 그의 목을 노리고 공기를 베어 가르는 레이의 검을 우습다는 듯한 손으로 잡은 아스모.

“그저 먹기만 해도 이 정도는 되니까요.”

“큭..!”

검을 빼내려 힘을 줘봤지만 고작 10년 남짓을 수련한 레이가 몇백 년을 살아오면서 힘을 길러 온 아스모를 완력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레이는 검을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마력으로 만들어진 마력 덩어리. 그렇다면 한발 물러나서 다시 만들면 된다.

그녀가 다시 손에 검을 생성하자, 아스모가 의외라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흠? 이렇게 설명드렸는데도 아직도 덤비시려고요?”

“...뭘 설명해주셨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지금까지 말씀하신 건 다 자기 자랑 아닌가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스모.

“흠.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

“사죄의 의미로 말씀드리자면, 제게 ‘여성’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무효화가 된다는 거죠.”

“여성..?”

“네~ 방금 태어난 아기이든, 다 늙어 죽어 가는 할머니든, 여성이기만 하면 말이죠!”

‘그래서 공격이 맞은 느낌이 있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던 거였나.’

아스모는 아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뭐, 통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저와 동급이거나 저보다 강한 자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긴 합니다만... 서큐버스 퀸의 마력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꽤 긴장했는데 다행히 아직 저보단 약한 것 같네요.”

‘저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게는 승산이 없어.’

아스모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레이에겐 승산이 없었다. 복수하는 건 좋지만 복수하기도 전에 죽어 버리면 끝 아닌가. 그것도 복수의 대상에게 말이다.

‘그렇다면...’

레이는 복수에 눈이 멀어 승산이 없는 싸움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 있다면, 살아남는다면, 언젠간 기회는 다시 반드시 오게 될 테니까.

‘선생님을 모셔오자.’

승산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그것이 지금 레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다음은 현성이 말한 대로 그녀를 치료해 줄 때까지 믿고 기다리며 최대한 버티는 것.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그녀는 마법을 날렸다.

바람을 불게 해 태워 버린 꽃들로 인해 쌓인 잿더미를 날려 시야를 차단했다.

검을 통하지 않아 위력은 떨어지지만, 애초에 공격용으로 사용한 마법이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엇?”

아스모는 갑자기 그의 눈을 강타한 잿가루에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고, 레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으며 땅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실망이네요. 적어도 당신의 부모님은 도망치지 않았는데.”

“..!”

우뚝. 레이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

그것이 아스모가 노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그녀의 모친 얘기를 꺼내며 도발을 한 것이니까.

“어린 당신을 지키겠다며 마력도 거의 안 남은 몸으로 저에게 덤벼들었죠. 아아, 얼마나 숭고한 희생이었는지요!

“...”

레이의 몸이 부들대며 떨리기 시작했다.

‘참아... 도발하는 거야...’

“하아... 하아...”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분노를 억지로 잠재우느라 주먹을 너무 꽉 쥔 나머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서서 덤벼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요. 당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도망치면 됩니다.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그저 자신을 위해서.”

뚝. 레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

“주?”

“죽여 버리겠어!!!”

콰과광!!

파캉!

반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레이를 중심으로 강한 마력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릴 정도의 충격파였으나, 아스모는 여유로운 얼굴로 충격파를 흘려보냈다.

잠시 후, 충격파의 여파가 내려앉자, 한층 달라진 레이의 모습이 아스모의 눈앞에 드러났다.

혼혈임을 증명하듯 마족을 상징하는 뿔은 한쪽으로만 나 있었다. 검었던 눈동자는 붉게 빛나며 분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야 좀 재밌어지겠네요!’

“죽어!!”

평소에 휘두르며 마음을 안정시키던 검은 어디 갔는지, 이성을 잃은 짐승마냥 몸을 무기 삼아 마구잡이로 마력을 발산해댔다.

“그래요! 그겁니다! 좀 더! 좀 더 힘을 끌어내는 겁니다! 물고기도 가만히 떠 있는 것보다는 살아서 힘차게 꼬리를 치는 게 더 맛이 좋으니까요!”

“닥쳐!!”

콰광! 퍼버버벙! 콰과광!! 퍼버벙!

레이가 공격할 때마다 내질러진 곳에서 충격파가 일며 주변을 부수기 시작했다.

불꽃놀이 소리와 아스모가 쳐둔 결계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누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소란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서큐버스 퀸의 힘인가..!’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분노에 몸을 맡긴 터라 마력을 이용한 공격은 하고 있지 않지만 신체 능력만으로 아스모와 비비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 조금이지만 아스모 쪽이 밀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분노로 인해 레이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로 인해 공격은 번번이 빗나갔다.

하지만 그런데도 위협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몇 번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방금까지 어떤 공격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던 그의 몸은 현재 여기저기에 긁힌 상처들이 생겨나 있었다.

‘더 날뛰기 전에 제압해야겠군요!’

내질러지는 레이의 주먹을 피하며, 그대로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커흑!”

레이가 무릎을 꿇었다. 숨이 안 쉬어졌다. 그때문에 뇌에 맴돌던 분노로 인한 엔도르핀이 끊겼고, 그로 인해 몸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꽤 재밌었습니다만, 그저 재미로 끝났네요.”

그녀의 패배가 확실시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레이의 눈에 투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혹여나 누군가 도우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하지 말아 주시길. 저와 동급이거나 강한 사람이 아니면 못 알아차리도록 사람물리기의 결계도 쳐놨고, 당신의 근처에서 당신을 주시하던 메이드는 현성님... 아니, 그 남자가 찾는다는 제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떠나갔으니까요. 그리고...”

아스모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밀회를 엿보려던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는 이 결계를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인 ‘그’를 견제하기 위한 인형으로서 보냈으니, 지금은 저희 둘 뿐이라는 거죠.”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

자신으로 인해 아끼는 동생까지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알아챈 레이가 다시 한번 힘을 내려 했지만 부들대기만 할 뿐,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아스모는 기쁨에 몸을 떨었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그것도 밥상을 그의 앞에 바로 차려 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녀의 마력을 취하면 필시 완전한 인큐버스 로드가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이렇게 숨어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 느긋하게 즐겨볼... 응?”

“~!!!”

레이를 향해 손을 뻗던 아스모는 멀리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손을 멈췄다.

‘무슨 소리죠?’

불꽃놀이를 보면서 꺅꺅대는 소녀의 목소리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은 결계의 안이다.

그렇다면 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는, 누군가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결계의 반경은 뒤뜰정원 전체를 덮는 크기였다.

“~아!!!”

감탄사? 아니다. 감탄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의문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목소리의 방향을 유추해낼 수 있었고, 그 방향은...

‘위..?’

아스모는 고개를 높이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꺄아아아악!!”

쾅!!

“으악?!”

그의 바로 앞에 의문의 물체가 비명과 함께 추락해 굉음을 내며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보아 사람인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일으킨 충격파의 여파로 아스모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 사이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괜찮으세요?!”

“세..레나?”

레이가 힘겹게 눈을 뜨며 눈앞의 소녀를 응시했다.

“네! 저예요, 언니!”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 너야말로 괜찮... 쿨럭!”

기침과 함께 레이의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하아... 하아...”

“전혀 안 괜찮잖아요..! 어, 어떡하죠? 아, 맞다! 반지!”

세레나는 손에 쥐고 있던 반지를 레이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반지가 하얀빛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가빴던 레이의 숨소리가 점차 안정되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세레나를 보며 아스모는 예상치 못한 방해꾼에 기분이 언짢아짐을 느꼈다.

‘저 소녀는...’

그는 레이를 만나기 전에 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세레나를 기절시켜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인형으로 삼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에게 있어 유일한 방해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를 견제하려 보냈을 터.

‘그랬을 그녀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뜻은...’

“그나저나, 아무리 아프지 않는다고는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높이 던지시면 어떡해요!”

“알았어, 알았어. 마법 알려주면 되잖아.”

“히힛! 역시 선생님!"

세레나의 뒤에서 자기가 졌다는 듯한숨을 내쉬며 흑발의 남성, 진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고.”

달빛을 받아, 그의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한층 더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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