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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68화 (68/146)

〈 68화 〉 만월제.(8)

* * *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현성의 보랏빛 눈동자를 보며, 아스모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남자가 맞는 건가?’

완벽하게 레이의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서큐버스인 자신으로 지내오면서 봐오고 조사해왔던 진현성이라는 남자는 매사에 귀찮아하지만 또 부탁은 잘 들어 주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인간 남성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목적을 이루는데 방해될 만한 요소는 그가 데리고 있는 미지의 강함을 지닌 소환수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현성의 자동인형 메이드인 ‘아인’과 대화를 주고받음으로서 대부분의 소환수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방해될 만한 요소에서 제거했다.

덤으로 소환수의 마력을 빌려오는 마법인 ‘합일’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만 그것 역시 빌려오는 대상이 ‘여성’인 이상 그로서는 무효화할 수 있었기에 요소에서 제거했다.

‘그게 전부였을 텐데. 지금은 어째서 그녀와 같은 마력이 느껴지는 거지?’

* * *

과거, 그의 목숨에는 2번의 위기가 있었다. 한 번은 서큐버스 퀸, 네피아의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그녀가 사는 집을 습격했을 때.

이때는 네피아가 설치해 둔 성녀의 마력이 담긴 폭발함정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떨어져 만전이 아닌 상태의 서큐버스 퀸을 상대로 고전했다. 네피아의 상태가 만전이었다면 필시 그가 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300년 전, 인간들이 인큐버스 킹이라고 명명한 등급으로 올라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층 더 강해진 느낌에 이제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시작은 근처에 있던 작은 농촌 마을부터였으나, 시작이 곧 끝이게 되었다.

그곳에 머물고 있던 한 명의 소녀 때문이었다.

이곳의 음식이 맛있으니 건들지 말라는 둥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하며 그를 막아섰던 흑발의 소녀.

당연히 깔끔하게 무시한 그는 그녀를 덮쳤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피투성이가 되어 모래로 가득한 사막의 한가운데에 큰 대자로 뻗어 있는 상태였다.

기억나는 것은 반짝이던 보랏빛의 눈동자와 커다란 입을 벌리며 자신을 덮친 검은 뱀의 형상뿐.

순간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몰려온 온몸의 비명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대로 가면 필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어린아이 정도의 마력만 있으면 회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 넓은 모래벌판에 사람이 지나다닐 리가 없었다.

“푸헉!”

그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온몸의 격통은 여전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를 태워 버릴 듯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뿐.

‘평생 태양을 등지고 살아왔던 내가 태양 빛을 받으며 죽는 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럴 수는 없지.’

갈 땐 가더라도 태양을 보며 가진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태양에게서 고개를 돌렸을 때, 모래 속에서 검게 반짝이는 물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마력을 결정화시켜 깨뜨리면 그 안의 마력을 취할 수 있는 물건인 ‘마력 결정’이었다.

어째서 그것이 바로 자기 옆에 놓여져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걸 취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결정을 잡아 깨뜨렸고, 그렇게 목숨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혹여나 같은 일이 일어날까 숨어다니면서 힘을 비축했고, 오늘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 * *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뻔했던 소녀, 그런 소녀와 똑같은 마력의 느낌을 지닌 자가 눈앞에 있다.

다시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에 공포 또한 스멀스멀 그의 안에서 기어 올라왔다.

몸이 당장 도망치라며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세상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에 꿇릴 수 있게 되기까지 단 한 걸음.

이 한 걸음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버텨 왔는가.

100년이었다. 그가 살아온 생까지 합치면 도합 500년.

현재 그의 눈앞의 쓰러져 있거나 서 있는 하찮은 인간들은 이미 죽어 없어졌을 정도뿐만 아니라 환생했다고 해도 4번이나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 동안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는데, 공포 따위가 대수랴.

게다가 그날 봤던 그 힘은 한낱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느끼고 있는 공포라는 감정은 거짓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몸은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다.

“참... 타이밍 맞춰서 잘 오셨네요.”

혀를 차며, 땅에 쓰러져 있는 레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흑발의 남성에게 비꼬듯 말했다.

“그래. 다행이 늦지는 않은 모양이야.”

안정화 된 레이의 상태를 확인한 현성이 몸을 일으키며 아스모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아쉬워. 서큐버스인 당신과는 꽤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서큐버스인 저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제 정체를 알고 계신가 보군요?”

“소환사다 보니 인맥이 좀 두터워서. 목적은 레이겠지?”

“알고 계시면 그냥 넘겨 주시면 안 될까요?”

“미안 하지만, 그녀를 고쳐주기로 약속했거든. 그러니 거절할게.”

“그렇군요. 그러면 저희 사이에 더 말은 필요가 없겠죠?”

“그래.”

서로 자세를 잡는 현성과 아스모.

한쪽은 소녀를 지키기 위해. 다른 쪽은 소녀를 탐하기 위해. 목적은 다르지만 목적이 향하는 대상은 똑같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 말은 필요 없었다.

“아, 맞다. 시작하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할게. 당신이 세레나를 문지기로 세워준 덕분에 그녀에게 댈 핑계가 생겼으니까.”

“그녀라니 그게 무슨...”

아스모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 했다.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온 현성의 주먹 때문이었다.

‘기습을 위한 속임수였나!’

찰나의 시간 속에서, 아스모는 막아야 하나 피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리 신체 강화를 했어도 기껏 해야 인간의 주먹이다. 500년 동안 마력을 흡수해 강화된 그의 몸이 버티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 막으려 했으나.

“!!”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몸을 크게 틀었다.

­콰과과과과광!!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피하는 판단은 옳았다. 피하지 않았다면 그의 주먹에서 내뿜어진 충격파로 인해 초토화되어 버린 아스모의 뒤편의 장면처럼 그 또한 그대로 터져 버렸을 것이다.

다만 이것도 현성으로서는 힘을 조절한 것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결계를 깨버리기라도 하면 아무리 불꽃놀이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도 중앙에 들리게 될 거고, 그러다가 싸움에 휘말리는 인원이라도 생기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 미친 남자가! 이러다가 결계가 깨져서 누가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건 아스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목적은 레이의 마력을 완벽히 흡수하는 것.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이 싸움에 가세하기라도 하면 그로서는 상당히 불리해질 것이었다.

바로 다음 공격을 날리려는 듯 자세를 다잡는 현성. 이내 폭발하듯 굉장한 속도로 그의 몸이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단련해온 아스모는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 조금의 정보로 주먹이 향하는 곳을 예상한 아스모는 뒤로 크게 도약하며 회피했고, 그대로 신체 강화 마법을 몸에 두르며 반격하려 했다.

“삼켜라!”

하지만 주먹은 페이크였다. 진짜는 주먹의 끝에서 펼쳐진 마법진에서 나온 거대한 검은 뱀들이었다.

‘저 뱀들은..!’

­콰과과과광!

뱀들이 경로를 휩쓸고 지나가며 꽃과 나무들을 포함한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실로 놀라운 파괴력이었다.

직격했다면 무사하지 못 할 만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공중에 있어서 피할 수가 없었을 아스모는 사지멀쩡하게 바닥으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 현성이 다음 공격을 행하려 했지만, 아스모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싸움 도중에 죄송한데,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됩니까?”

갑자기? 라고 현성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고 기습을 하기도 했고, 땅에 내려온 뒤 그의 분위기가 심각해진 것도 느껴졌으므로 그의 질문을 받아주기로 했다.

“나도 물어보면서 기습했으니, 해 봐.”

“조금 전 당신이 썼던 마법. 그거 누구한테 배운 겁니까?”

“마력으로 만들어진 뱀들? 그건...”

“보랏빛 눈동자에 흑발의 소녀였습니까?”

보랏빛 눈동자에 흑발의 소녀라는 말을 듣자 현성의 몸이 우뚝. 멈췄다. 세상에 흑발의 소녀는 많았지만 ‘보랏빛 눈동자’가 가리키는 건 단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내 스승을 알아?”

“스승... 이라.... 그렇군요... 당신의 스승이 그녀란 말이죠..? 흐흐... 하하... 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하는 아스모. 현성은 그가 파놓은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아스모의 시야에는 현성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샌가 그의 감정은 평온에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쳐 죽일 년!! 이럴 줄 알고 날 보낸 거구나!!”

여기에 없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실비아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는 아스모.

‘분명 붉은 달의 정보력으로 조사를 끝마쳤을 터! 그런데도 저 남자의 본질을 몰랐다? 말도 안 돼! 필시 나를 함정에 빠뜨려 없앨 생각으로 보낸 거다! 내가 살아 있다면 그들의 앞으로 계획에 방해가 되니까!’

그렇게 얼마간 분노를 표출하던 아스모.

‘...진정하자. 화를 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심호흡하며 자신을 진정시키는 아스모였다.

“다 했냐? 다 끝났으면 이제 다시 가도 되지? 이쪽은 흑맥주와 닭꼬치라는 극상의 조합을 놔두고 왔단 말이야.”

­까드득.

그를 기다려주고 있는 현성을 보면서, 아스모는 떠오른 과거의 기억에 이를 갈았다.

똑같다. 그녀와 너무나도 똑같다. 자신을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저 오만한 눈동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뭐?”

“죽일 생각까진 없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죽은 다음에도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마력은 몸에 남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스모는 땅을 박찼다. 마치 등에 날개가 달린 듯,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어 팔을 높게 쳐들었다.

­파지지직!

마치 검을 잡기라도 한 듯, 자세를 잡으며 마법을 영창 하자 한 자루의 검이 생성되며 검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 모든 마력을 쏟아 낸 이 공격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자들을 쓸어 버리겠습니다!!”

­쿠구구구구!

아스모가 들고 있는 검을 향해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웃다가 갑자기 화내다가 갑자기 필살기?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닌가, 생각하는 현성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이상해도 그가 들고 있는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위험했다. 게다가 마력이 그대로가 아니라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저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

그의 말대로 저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방출되는 마력이라면 이 학교 전체를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정도일 것이라고 현성은 생각했다.

‘물론 그대로 맞아줄 생각은 없지만.’

“야, 세레나.”

“네, 네?”

레이의 곁에서 그녀를 보고 있던 세레나가 갑작스럽게 그녀를 부르는 현성의 소리에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왜요?”

“지금부터 마법을 하나 쓸 건데, 누구한테도 말 안 할 수 있지? 특히 먼 미래에 만날 내 스승에게는.”

현성의 스승에 대해 나이가 몇 살인지 성별은 남잔지 여잔지 등 세레나는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현성의 말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선생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 안 하긴 할 건데요... 이유는요?”

공중에서 점점 커지며 파직 거리고 있는, 달빛을 받아 그 검은빛을 여지없이 내뿜고 있는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을 올려다보며.

“지금부터 쓸 건 스승이 사용하지 말라며 금지했던 마법 중 하나거든. 그녀가 알았다가는... 어우 상상하기도 싫다.”

라고 말하는 현성이었다.

“금지마법..!”

“...알려달라고 해도 못 배우는 거니까 배울 생각은 접어.”

“체...”

금지마법이라는 말에 탐구열이 발동해 눈을 반짝이던 세레나였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현성에 의해 금세 그 반짝임을 잃었다.

“그런데 넌 걱정 안 되냐?”

“걱정이요? 왜요?”

현성은 하늘에서 계속 커지고 있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을 가리켰다.

“저거 말이야, 저거. 맞으면 우리 다 끝장일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세레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선생님께서 막아주실 거잖아요? 금지 마법이라고 하시기도 했고, 고대룡을 친구로 두실 정도의 선생님이라면 분명 막아 내실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당연히 막을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는 세레나. 그런 그녀를 보며 현성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사랑스러운 학생이 그리 말하니 선생님도 힘을 내야겠지.”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가르치는 과목이 없긴 하지만요.”

“넌 항상 뒤에 붙는 말이 많아.”

“헤헤.”

“칭찬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현성은 세레나와 레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얇은 검은막이 그녀들에게 둘러졌다.

"이건?"

“휘말리면 안 되니까.”

앞으로 사용할 마법에 의해 그녀들이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한 마력 보호막이었다.

이어, 그는 하늘을 향해 팔을 들며 마치 달을 가리려는 듯 손을 쫙. 폈다.

“스승의 금지 마법 제 칠 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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