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만월제.(9)
* * *
“스승의 금지 마법 제 칠 번...”
현성이 하늘 위로 손을 들며 마법을 영창 하자, 보랏빛의 마법진이 공중에 생성되었다.
‘저건?’
공중에서 최후이자 최강의 공격을 위해 마력으로 만들은 검에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 넣고 있던 아스모의 눈에 현성의 손 위에서 점점 커져가는 마법진이 들어왔다.
“태양을 삼킨 어둠의 용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칠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의 크기가 뒤뜰 정원을 덮은 결계의 끝과 끝에 닿을 만큼 커졌다.
‘저 마법진에서 뭐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기 모든 마력을 쏟은 공격에는 안 될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세상은 어둠에 잠길 지니...”
마법진이 2개, 3개가 되더니 마지막에는 6개로 분열이 되었다. 6개로 나누어진 마법진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마법진을 향해 보라색 빛을 쏘았고, 그 빛이 모여 가운데에 마지막 7번째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하아아아압!!!”
마력검에 모든 마력을 모은 아스모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아스모가 휘두른 검에서 방출된 마력이 검은 빛의 광선이 되어 현성을 향해 쏘아졌다.
“비상하라, 암룡(??)!”
동시에 현성도 영창을 끝마쳤다.
마법진에서 보랏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거대한 용의 형상이 나와 그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솟구쳤다.
아스모의 모든 마력이 담겨 있는 검은 빛줄기에 닿자 가소롭다는 듯 그대로 빛줄기를 뚫고 아스모에게로 향하는 보랏빛 용.
‘뭣..?!’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삼킬 듯 벌려지는 거대한 용의 입이었다.
* * *
펑! 퍼벙! 퍼버버벙!!
여러 색상의 불꽃들이 한 번에 하늘을 수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깊었던 만월제의 밤이 끝을 맺었다.
만월제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는 소녀들이 있었고, 마지막까지 먹을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소녀도 있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로 돌아가야 된다며 한숨을 내쉬는 메이드도 있었고, 가게의 수익을 계산하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상인도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술친구를 아쉬워하며 혼자서 흑맥주를 들이키고 있던 중년의 남성은 그의 맞은편에 놓아두었던 흑맥주가 가득 찬 맥주잔을 그대로 놔둔 채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저길 보세요!”
그때, 한 소녀가 뒤뜰 정원을 가리키며 외치는 소리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가 가리킨 곳을 향했다.
쐐애애액!!
마치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하는 걸로 보이는 보랏빛 불꽃이었다.
펑!!!
보는 사람들의 고개가 완전히 젖힐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간 보랏빛 불꽃은 이내 폭발음을 내며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지금까지 터졌던 어느 불꽃보다 거대하며 화려한 불꽃이었다.
“봐, 봤어요, 방금?”
“네..! 마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마지막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폭발까지..! 지금까지 봐온 만월제의 불꽃 중 최고로 화려한 것 같았어요!”
불꽃이 사라진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불꽃이 터지는 것을 본 모두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만이 계속 이어졌고.
“우리가 저런 불꽃을 준비했던가?”
불꽃들을 준비했던 상인회의 사람들만이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 * *
화려한 보랏빛 불꽃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왕궁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그중 한 곳이었던 르니아 가문의 본가.
만월제를 맞이하여 만월제를 열리게 한 주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왕성 귀족의 가주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들만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축제였다. 응접실에서 메이드가 내온 홍차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던 때까지는.
금발의 중년. 아이테르 드 르니아를 제외한 다른 가주들의 찻잔을 들고 있는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가운데에 놓여 있는 테이블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아 있는 보라색 머리의 중년이자 크리샤 가문의 가주인 오스틴 크리샤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가 또 힘을 사용하나보군.”
“그런가 보네요. 덕분에 그때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걸요?”
오스틴의 말에 동조하며 찻잔을 들지 않은 손으로 등을 가리키는 갈색 머리의 남성, 레인 아르테미아.
“하하하! 다들 아직도 몇 년 전의 일을 가지고 그러는 겁니까!”
호탕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백발의 남성 로이드 아리아.
“자네가 제일 떨고 있네만.”
“크흠흠! 그나저나, 우리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면 그때와 같은 위력의 마법을 쓴 거 아닙니까? 그 자신은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아이테르는 어깨를 으쓱한 뒤 찻잔을 들었다.
“글쎄. 내 생각이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을걸세. 다만 지금쯤 한창...”
“한창?”
“부끄러워하고 있겠지.”
영창식을 외울 때마다 어딘가 불편하다는 기색을 보이던 현성이라는 것을 알기에, 현재 학교에 있을 그의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껄껄거리며 웃은 아이테르는 잔에 남아 있는 홍차를 마저 비우기 위해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 * *
...쪽팔려!
싸움이 끝나자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이 달빛밖에 없는 밤이 아니었다면 태양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붉게 물든 내 얼굴을 모두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를 상대했을 때 썼던 보랏빛 광선을 쏘는 마법도 그렇고, 그냥 전부 다 무영창으로 하게 했으면 안 되는 거야?
다른 건 다 존경할 만한 사람인데, 영창식을 지정하는 것만 이상한 사람이다.
어떤 건 ‘삼켜라.’ 라든가 ‘나와라.’ 정도로만 해도 발동되게 해 뒀으면서 주요 마법들만 영창식을 정해 놓을 게 뭐람.
그런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선생님. 진짜 인간 맞아요?”
라며 세레나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거로 봐서 방금 쓴 마법을 보고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방금 쓴 건 금지 마법 중에 최약체인데 말이지. 첫 번째로 금지시켰던 마법을 보면 기절하겠네. 기절하겠어.
“그럼 뭐로 보이는데?”
“어... 마족?”
“좋아. 마법을 가르쳐 주기로 한 일은 없는걸로.”
“아니예요! 죄송해요!! 인간! 인간 맞아요! 누가 봐도 인간이예요!! 인간 중의 인간! 그,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그건 뭔가요?”
황급히 말을 바꾸던 세레나가 내 오른손에 올려져 있는 검은 구슬을 가리켰다.
말 돌리긴. 이번엔 넘어가 준다.
“아, 이거? 이건...”
쿵!
그때, 무언가가 땅에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시간에 어디서 운석이 떨어질 리도 없었으므로 방금까지 공중에 떠 있던 아스모인 것으로 보였다.
꽤 공중에 오래 떠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추락한 건가.
설마 여기서 또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라면서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방심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건 사양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쓰러져 있는 방향을 계속 응시했다.
“그, 그 정도의 마법을 맞았는데, 살아 있진 않겠죠..?”
세레나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뒤에 숨어서 얼굴만 내민 상태였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죽진 않았을 걸? 죽이려 했다면 조금 전의 마법은 쓰지 않았겠지. 아마 마법의 여파로 인해 잠시 기절한 걸 거다. 그런 마법이니까.”
“그런데 말이예요 선생님. 왜 금지 마법이예요? 기절만 시키는 마법은 널렸지 않아요?”
세레나의 고개가 기울었다.
“기절만 시키는 마법이 아니니까 그러지. 그리고 이 마법을 쓰게 되면...”
말을 하던 도중이라 푸헙 소리와 함께 피가 입에서 뿜어졌다.
“...이렇게 몸이 살짝 망가지기 때문이지.”
“꺄, 꺄악!! 피. 피!!”
당황해하며 우왕좌왕 거리는 세레나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다른 금지 마법들도 마찬가지야. 스승이 금지마법들로 정한 이유가 상대와 나 둘 다 망가지기 때문이었지.”
“괘, 괜찮으신 거예요?! 다치신 거 아니예요?!”
“별거 아니니까 가만히 있어. 정신 사납다.”
입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았다.
“피가 나오는데 왜 별거 아니예요! 다, 당장에라도 치료실에..!”
“괜찮으니까. 힐 한 번 쓰면 싹 나아.”
심장 부근에 손을 대며 치유 마법을 영창했다. 하얀빛이 내 몸을 감싸자, 조금 편안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괜찮으신 거 맞아요?”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보는 세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그나 제대로 보고 있어. 깨어나면 할 얘기가 있으니까.”
금지 마법 한 번 쓴 걸로 죽을 정도였으면 이미 몇십번은 죽었겠다.
낙하의 충격으로 인해 일어난 흙먼지가 가라앉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쿨럭..!”
슬슬 깨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하자,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진원지는 당연히 아스모가 있는 방향이었다.
천천히 그에게로 걸어가, 그를 내려다 봤다. 세레나는 내 등 뒤에 꼭 붙은 채로 나를 따라왔다.
“제가... 진 겁니까?”
“어.”
단호한 내 말에 그는 허탈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오 백 년이... 쿨럭! 다 소용없었군요... 하아...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인가요... 쿨럭! 쿨럭! 이번에도... 닿지 못하다니...”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저를... 죽이실 겁니까?”
“그거야 그녀에게 달렸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의 여파에 휘말릴 때를 대비해 레이에게 쳐뒀던 검은 막이 기절한 상태라 축 늘어져 있는 레이를 자기 안에 든 채로 마치 비눗방울처럼 내 옆으로 천천히 날아왔다.
이어, 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막이 터지며 레이의 몸이 낙하했고, 그런 그녀를 두 팔로 받는데 성공했다.
평소의 그녀와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마족임을 상징하는 둥근 뿔이 나 있어, 양의 수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허리부근에는 박쥐모양의 날개가 돋아 있었다. 다행이 등 부분이 아니라서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고 있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선택하게 해야 했으니, 그녀를 깨우기로 했다.
치료 마법은 소용이 없을 테니, 여기서는 마력을 조금 주입시켜 기력을 회복시키기로 했다.
그녀에게 서큐버스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지금 상태의 내 마력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
슈우우...
내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주입하지 않아, 레이가 눈을 떴다.
“선... 생님..?”
“몸은 괜찮냐?”
“아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제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
아무래도 자기가 나한테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겨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것을 알아챈 것은 조금 지난 뒤였다.
눈치채자마자 내려달라고 말할 것 같았는데, 내 팔에서 내려와 땅에 바로 선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실례했다는 말만을 할 뿐이었다.
얘가 웬일이래?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그런데 그는..?”
“아스모라면 저기.”
나는 그가 쓰러져 있는 곳을 가리켰다.
“선생님이 쓰러뜨리신 건가요? 죽이신 건가요?”
“아니. 죽이지는 않았어. 할 일이 남았거든. 세레나. 아까 전에 이 구슬이 뭔지 물었지?”
“네? 아, 네!”
“레이, 받아.”
나는 레이를 향해 구슬을 던졌다.
“이건..?”
두 손으로 구슬을 받아 든 레이가 이게 뭐냐는 듯 구슬을 응시하고 있었다.
“니가 정해.”
“정하다뇨..?”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스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준 그 구슬은, 저기 누워 있는 저 사람... 아니. 인큐버스의 자아를 형상화한 거야.”
“자아..?”
“내가 방금 사용한 마법은 상대의 자아를 먹는 마법이거든.”
원래라면 보랏빛 용한테 삼켜지자마자 자아를 잃고 빈껍데기만 남게 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의 기회를 주자고 스승에게 건의했고, 스승의 동의를 얻어 재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영창식은 그대로인 채로 말이지.
이것만은 스승이 도저히 양보할 수가 없다고 말해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가게 되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어차피 나중에 금지시킬 거 영창식을 간단하게 하자고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네 부모님의 원수라며? 그러면 네 손으로 복수하고 싶을 거 아니야?”
“그건...”
“네가 그 구슬에 마력을 흘려보내 깨뜨리게 된다면 그는 자아를 잃고 빈껍데기만 남게 될 거야. 어찌 보면 주체가 사라지니까 복수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겠지? 죽이지는 않았으니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고.”
상대에게 있어서는 죽는 것보다 더 하겠지만.
“뭐, 또 다른 아스모 씨의 말대로라면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완전히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까지 자아가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고 했으니 인큐버스인 아스모 씨만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
여전히 구슬을 응시한 채로 가만히 있는 레이를 보며.
“자, 어떻게 할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