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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70화 (70/146)

〈 70화 〉 만월제.(10)

* * *

현성에게서 구슬을 건네받은 레이는 잠깐 아무런 말 없이 구슬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에 마력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현성의 말대로라면, 구슬이 깨지면서 ‘아스모’라는 인큐버스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아스모’라는 서큐버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녀의 부모를 죽인 건 서큐버스인 아스모가 아닌 인큐버스인 아스모였기에, 인큐버스인 아스모가 사라진다면 그녀가 원해 오던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 일이 될 것이었다.

‘엄마... 아빠...’

다시 떠올려지는 그날의 기억에 구슬을 쥔 그녀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후...”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자 심호흡했다.

그때는 어떠한 힘도 없어 무력하게 부모가 죽는 것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복수를 위한 도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까.

그녀는 근처에 쓰러져 있는 아스모에게로 천천히 걸어가 그의 근처에 섰다.

“무슨... 일이죠..? 쿨럭!”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고개만 겨우 돌린 아스모의 눈동자가 레이를 향했다.

그녀를 상대할 때의 여유만만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허탈함. 그의 얼굴에 있는 건 허탈함이었다. 목적을 이루기까지 단 한 걸음이었지만 현성이라는 벽에 막혀 이제는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자신에 대한 허탈함.

“하아... 하아... 이제 와서 동정심이라도 든 겁니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스모가 말을 이어갔다.

“끝낼 거면... 빨리 끝내주시길... 쿨럭..!”

이어, 어쩔 수 없다는 듯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된 얼굴까지.

그의 그런 얼굴을 본 레이는 저 상태의 그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과연 진정한 복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로 마지막 발악이라도 했다면 그녀 또한 미련 없이 구슬을 깨뜨릴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을 마친 아스모가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를 가만히 응시하던 레이는.

“선생님.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되나요.”

라며 근처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응? 뭔데?”

“이 구슬을 깨뜨리지 않고 가지고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구슬을 깨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네.”

그녀의 질문을 들은 현성은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구슬을 반은 사람들은 대부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깨뜨려 버렸다. 몇몇 사람들은 고민하는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은 구슬의 파괴였다.

그렇다면 레이는 어떤가.

그녀는 한창 자랄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그녀에게서 부모를 앗아간 건 근처에 쓰러져 있는 백발의 인큐버스.

복수를 위해 1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서큐버스’ 라는 특성을 성녀의 마력이 담긴 억제제로 억눌러 오며, 오로지 그에게 복수할 때만을 노린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온 복수의 기회.

현재, 아스모는 자아를 뺏긴 상태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그저 자아를 뺏기고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장롱 속에 숨어 부모의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10년 전의 레이처럼 말이다.

완전히 반대의 입장이 된 상황. 게다가 복수의 방법은 그저 그녀의 손에 있는 구슬에 마력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아주 간단했다.

그녀와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누구라도 즉시 구슬을 깼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구슬을 깨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현성에게 물은 것이다.

구슬을 깨지 않겠다고 반쯤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레이의 질문을 받은 현성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글쎄... 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부 구슬을 깨는 선택지를 골라서 안 깼을 때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 계속 저대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현성의 대답을 들은 레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 구슬을 응시하다가.

“...그런가요. 그러면, 이 구슬에서 마력만 추출한 채로 다시 넣는 건 가능한 건가요?”

라며 그에게 다른 질문했다.

이대로 구슬을 깨뜨려 그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일이었다. 그런 게 복수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현성에게 구슬을 깨뜨리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현성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던 중 생각해낸 것이 마력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살게 만들어 그에게 살아가는 형벌의 형태로 복수하는 것.

그것이 레이가 생각한 또 다른 복수의 방법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던 아스모의 눈썹이 꿈틀했다. 레이의 말에 담긴 뜻을 눈치챈 것이었다.

현성 또한 레이의 말에 담긴 뜻을 눈치챘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긴 해. 다른 사람의 몸에서 마력을 빼낼 때처럼 하면 될 테니까.”

“..!!”

아스모에게 있어서 사형 선고보다 더 한 말이 그의 입에서 떨어졌다. 사형은 한 번에 끝나기라도 하지, 레이가 말하는 대로 됐다가는 평생 고통받을게 분명했다.

‘그, 그건 안 돼..!’

서큐버스인 자신을 인큐버스인 자기 성장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던 그였다. 원래대로라면 서큐버스인 ‘아스모 씨’로 지낼 때는 서큐버스의 자아가 나왔어야 했지만 압도적인 마력 차이로 강제로 자기 자아가 나오게 했으니까.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런 자신에게 서큐버스인 아스모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라니.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런 마력도 없는 평범한 몸이 된 인큐버스인 자신이 그보다는 마력이 많을 서큐버스인 자신에게 지금껏 그가 해왔던 대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저 서큐버스의 마력 상승을 위한 도구로서 지내다가 최후에는 자신이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완전히 없어져 버리게 되는, 그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한 일이었다.

차라리 여기서 깔끔하게 사라지는 게 훨씬 나았다. 현성이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한 그가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삶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끄... 으으..!!”

아스모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일어나기 위해 온 힘을 쥐어 짜낸다.

그 애처로운 광경을 보면서, 레이가 현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래.”

레이에게서 구슬을 받아 든 현성은 마력흡수의 마법을 영창 하기 시작했다. 검고 어두운 마력이 증기의 형태로 구슬에서 흘러나와 현성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만둬..!’

500년 동안 모아온 마력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뺏기고 있었다.

“끄... 아...아!!”

엎드린 자세까지 몸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그가 구슬을 뺏기 위해 크게 도약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네 단 한 번의 기회로 만드는 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손길을 내려주지 않았다.

­털썩.

그의 몸이 얼마 가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제, 제발..!’

마지막으로 간절한 얼굴로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의 손이 닿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좋아. 다 됐다.”

구슬에서 나온 마력을 전부 흡수한 현성이 레이에게 구슬을 돌려주었다.

“이제 다시 삼키게 하면 자아는 그대로지만 마력은 없는 상태가 될 거야.”

‘아... 아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잃고,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더한 상황에 치닫게 된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것이, 레이가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파캉!

구슬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아스모의 얼굴에서 절망감이 채 사라지기 전에 그의 몸이 연기가 되어 증발했다.

잠시 후, 연기가 사라지자 아스모가 있던 자리에는 흑발의 메이드가 쓰러져 있었다. 아스모가 사라짐으로써 나오게 된 ‘아스모 씨’였다.

가루가 된 구슬이었던 것을 보며, 현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거면 마력은 왜 빼달라고 한 거야?”

“없애버리기엔 아까운 마력이니까요.”

“뭐, 마력은 많을수록 좋긴 하다만...”

이미 넘칠 만큼 있으니까. 라며 나중을 위해 따로 빼두는 현성이었다.

“끝났어요?”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레나가 현성과 레이의 곁으로 왔다.

현성은 이제야. 라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찌저찌 끝은 났네. 덕분에 이쪽은 맥주도 못 마시게 됐고.”

“그런데 저분은 어떻게 해요?”

세레나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흑발의 메이드를 가리켰다.

그녀를 보며, 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으로 데려가야지, 별수 있겠어?”

* * *

“그나저나 엄청 무섭다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데? 난 그 자리에서 구슬을 깨는 걸로 복수를 끝냈다고 할 줄 알았는데.”

흑발의 여성으로 돌아온 아스모를 업은 채 방으로 향하던 현성은 그렇게 잔인한 걸 생각지도 못 했다는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

“복수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죠! ...솔직히 무섭긴 했지만요.”

현성의 옆에서 걷는 세레나 또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앞으로는 심기 건들지 말아야겠어. 잘못 건들었다가 나중에 큰 코 다칠라.”

“그러게 말이예요~ 뭐, 저야 항상 언니께 잘해드리니 걱정은 없지만요~”

“...레이?”

“...언니?”

보통, 이 정도 농담을 던졌으면 상대를 무시하기로 하지 않은 이상 뭐라도 말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대답하는 레이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어, 들려온 털썩. 하며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고, 이상함을 느낀 현성과 세레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 야!”

“어, 어, 언니!!”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땅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레이의 모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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