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낫게 해줄 테니까.
* * *
“야, 야!”
현성은 그의 등에서 잠들어 있는 아스모를 부유 마법으로 공중에 띄워두고 땅을 박차며 레이에게 달려갔다.
“괜찮... 윽..!”
엎어져 있는 그녀의 몸을 돌려 똑바로 눕게 한 현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을 제외한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긴 상태였으며, 균열의 사이로 하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릇의 붕괴..!”
마력을 담는 본질인 ‘그릇’이 깨져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몸이 완전히 붕괴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릇이란, 모든 생명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마력을 담고 있는 근원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심장과도 같은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릇이 깨진다는 건, 심장이 몸 안에서 폭발한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었다.
만월로 인해 상승된 마력과 억제제를 제때 복용하지 못한 것, 좋지 않은 몸으로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 등 여러 가지가 맞물려 그릇의 붕괴라는 형태로 작용해 현성이 우려하던 상황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어, 언니!! 괜찮... 힉..!”
현성과 마찬가지로 레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세레나가 충격적인 레이의 모습을 보며 숨을 삼켰다.
“서, 선생님..! 언니 왜 이래요?!”
“...그릇이 깨지려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몸이 완전히 터져 버릴 거야.”
“그, 그럼 큰일이잖아요..!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거예요?!”
세레나 또한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다급한 목소리였다.
“있어. 있기는 한데, 나 혼자는 힘들어.”
“그, 그러면 제가 도울게요..! 언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간절한 눈으로 현성을 보며 자신을 이용하라고 말하는 세레나였지만 현성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네 마력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아. 적어도... 아니, 아니다.”
현성은 레이의 복수로 인해 소멸해 버린 아스모 정도의 마력을 가진 자 정도는 돼야 그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을 구태여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해서 그녀의 희망을 더 깎아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언니가..!”
울기 직전의 얼굴인 세레나를 보며, 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한 적은 없다.”
그렇게 말하며, 현성은 레이를 안아 올렸다.
“혼자 하면 실패할 위험이 높아지긴 하겠지만, 실패하지 않게 최선을 다 할 거니까...”
“그러면 저와 같이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현성과 세레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스모 씨?”
그곳에는 현성의 마법에 의해 인큐버스인 아스모가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완전히 자기 몸을 돌려받게 된 흑발의 메이드복의 여성, ‘아스모 씨’가 서 있었다.
* * *
레이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 든 채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긴 흑발에 붉은 눈, 그리고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아스모 씨가 서 있었다.
“...같이 하자고요?”
아스모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큐버스인 그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의 기억은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 기억 중에는 그가 자기 그릇을 재구축하는데 성공했을 적의 기억도 들어 있고요. 그러니 그에게서 추출한 마력을 제게 넘겨 주시면 레이 님의 그릇을 재구축하는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뭔가 전형적인 사기꾼 말투인 것 같은데. 악마의 속삭임을 직접 듣는 게 이런 기분인가.
하지만 확실히, 그녀가 그릇을 다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이,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보단둘이 나았다. 실패 위험도 적고 성공 확률도 높일 수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받은 마력은 그대로 레이 님의 그릇의 재구축에 쓰일 거니까요.”
“...그 말을 어떻게 믿죠?”
하지만 세상에 대가가 없는 호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여지없이 배웠던 나였기에, 그녀의 걱정 말라는 말에도 의심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라진 인큐버스의 기억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세상에서 사라졌는지도 기억에 남아 있을 터.
그녀의 말을 덜컥 믿고 마력을 건넸다가 또 다른 자신을 없앤 것에 대한 복수라며 그 마력을 우리를 향한 공격으로 돌리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를 막느라 레이의 상태를 치료할 때를 놓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 준다고요?
“대가는 이미 받았으니까요.”
대가를 이미 받았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그녀에게 한 짓이라고는 인큐버스인 그를 소멸시킨 것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큐버스인 그를 소멸시킨 게 대가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내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원하신다면 그것에 대한 이야기해드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지 않으신가요?”
라며 어쩔 거냐는 듯 내게 선택을 강요해 오는 그녀.
남의 간절함을 약점으로 잡아 자기 이익으로 돌리려는 놈들을 수도 없이 봐 왔기에, 나는 쉽사리 알았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거절하기에도 여의치가 않았다. 지금도 레이의 몸에는 균열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 이상 지체했다가는 조치를 취할 때를 놓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거절했을 시에는 나 혼자서 레이의 그릇의 재구축을 담당해야 했다.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둘이서 할 때보다 성공 확률이 낮아진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성공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쪽이 좋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추출해 두었던 인큐버스의 마력을 고체화시켜 구슬로 만들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구슬이 둥둥 떠다니다가 그녀의 손에 안착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험은 들어두죠.”
“얼마든지요.”
혹시나 그녀가 허튼짓을 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으로 마력으로 만든 검은 뱀 한 마리를 풀어 그녀의 그림자에 집어넣었다.
“그러면 조속히 준비를 하죠.”
“세레나, 너는 뒤로 물러나 있어.”
“아, 네!”
자기가 있으면 방해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세레나가 멀찍이 물러났다.
“저는 여기에 서 있겠습니다. 시작하실 때 말씀해주시길.”
내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서는 아스모 씨.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확실히 그릇의 재구축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부유 마법을 영창하며 레이를 안고 있던 손을 놓았다.
둥실. 레이의 몸이 부유 마법에 의해 내게 안겨 있던 자세 그대로 둥둥 떠다니게 되었다.
이제 공중에 떠다니던 레이의 몸이 나와 아스모 씨의 중간에 위치하게 되면 일의 시작이다.
“합일...”
재구축을 위한 준비를 위해 합일의 주문을 영창하려던 그때.
“선... 생님...”
가쁘게 숨을 내쉬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레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여기 있어.”
그 모습이 마치 큰 수술을 앞둔 어린아이가 부모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 같았기에, 나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몸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악력이 내 손에 전해졌다. 그녀가 내 손을 강하게 잡은 것이었다.
“저... 저...”
이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그녀의 입술이 움찔거리며 말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고통으로 인해 말하기가 여의치 않아 보였다.
그 덕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지만, 무슨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을 타고 몸이 붕괴되어감으로 인한 고통스러움과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에 대한 불안감과 죽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말할 필요 없어. 그러니...”
그런 그녀에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믿고 기다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낫게 해 줄 테니까.”
며칠 전, 자기 마력을 잃을 각오까지 하고 내 방에 와 나에게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했던 그녀를 거절하며 내가 해줬던 말.
“아...”
악력이 약해지면서 그녀의 숨이 안정되어갔다. 괴롭게 찡그리던 얼굴 또한 평온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어,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엄청 아프긴 하겠지만.”
“그... 그래도...”
“응?”
내가 해준 말로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 말을 할 수 있게 됐는지, 레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요...”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대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기껏 입을 열어 힘겹게 뱉어낸 말이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투정이라니.
어린아이가 주사맞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것같이 말하는 레이. 평소에 도도한 맏언니니, 얼음 공주니 하던 레이와는 180도 다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노력해볼게.”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레이의 손을 놓자 그녀의 몸이 둥둥 떠가더니 나와 아스모 씨의 중간에서 멈췄다.
“후...”
이제 시작인가.
“긴장하셨나요?”
큰 일하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심호흡을 하자, 아스모 씨의 매혹적인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언제 봐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다.
“실패하면 그걸로 끝인데 긴장을 안 하겠습니까?”
긴장을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지.
“실패하지 않으실 거잖아요?”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 기회는 단 한 번뿐.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실패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정도까지 가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성공 시켜야 한다.
약속했으니까.
...조금 먼 옛날의 내가 봤다면 물러졌다면서 얼마 보지도 않은 여자애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며 물러 터졌다고 한 소리 하겠네.
“가시죠.”
아스모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군가와 합을 맞추는 건 처음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 말로."
마음을 다잡은 나는 합일의 주문을 영창했다.
“합일.”
대상은.
“내가 데리고 있는 모든 소환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