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73화 (73/146)

〈 73화 〉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낫게 해줄 테니까.(3)

* * *

“찾았습니다, 그릇.”

마력의 회로를 읽어 레이의 그릇의 위치를 특정한 현성은 그의 눈에 보이는 그릇의 윤곽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릇’으로 보이는 검은 구슬이 여기저기 금이 간 상태로 지금도 파편이 조금씩 튀어나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완전 만신창이네.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손도 못 쓰고 그릇이 깨지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될 수도 있었군.’

“역시 그곳이었군요.”

레이의 아랫배에 위치해 있는 현성의 손을 본 아스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이 넘겨 주었던 인큐버스의 마력이 담긴 구슬을 반으로 쪼갰다.

하나는 자기 손에 든 채로, 나머지 하나는 쾌락을 몸에 잘 받아들이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서큐버스의 특성 때문에 몸의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쾌락에 정신을 못 차리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레이의 입속에 넣었다.

갑작스럽게 입으로 들어온 구슬에 그녀는 그대로 구슬을 삼킬 뻔했지만, 아스모가 레이의 고개를 들어 목구멍으로 넘어가려는 구슬을 억지로 그녀의 입안에서 맴돌게 했다.

“서큐버스의 특성으로 인해 느껴지는 쾌락에 어지러우시겠지만, 잘 물고 계세요. 그리고 제가 신호를 드리면, 그때 구슬을 목 안으로 넘기시는 겁니다. 사탕처럼요. 아시겠어요?”

가쁜 숨을 내쉬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 아스모가 손을 놓자 레이의 고개가 힘없이 떨궈졌다.

기절한 건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들고 있을 힘이 없어서 그런 것뿐.

‘차라리 기절을 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그릇을 찾는 과정에 있어서 그녀가 느낀 쾌락은 그릇을 재구축 하는 과정에서 서큐버스의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는 특성에 의해 느껴질 쾌락에 비하면 세발의 피에 불과할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아는 현성은 레이가 그릇을 찾을 때 정도의 쾌락으로 기절을 했으면 하는바람이 있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나머지 반쪽의 구슬을 입에 넣으며, 아스모가 말했다.

* * *

그릇을 찾았으면 다음으로 할 일은 한 가지였다.

그릇으로 향하는 마력 회로에 마력을 쏟아 부어 우리 쪽에서 그릇을 깨뜨리는 것.

그릇을 깨뜨리면 죽는 거라면서 우리 쪽에서 그릇을 깬다니.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릇을 깨야 그릇의 재구축이 가능해진다.

그릇이 깨진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기에, 그릇이 깨지는 순간을 노리는 거다.

마력을 쏟아 부어 그릇이 깨지는 순간, 쏟아 붓던 마력의 양을 늘려 깨진 그릇의 파편들을 한 곳에 몰아넣어 그대로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찰흙으로 만든 것에 찰흙을 덧붙여 크기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말만 들으면 쉬운 일이라 누구든 그릇을 재구축해서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세계 전부를 뒤져 봐도 이런 생각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고? 그거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타인이 강해지는 걸 돕겠답시고 자기 마력을 희생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구한다고 해도 쉽사리 행동에 옮기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

그릇을 건든다는 건 결국 마력의 근원을 건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그렇기에 까딱 실수했다가는 그대로 골로 가버리고만다.

물론 그릇의 주인만 골로 가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레이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가 있음에도 강해지기 위해 본인이 선택한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릇을 재구축하기 위해 마력을 쏟아 붓던 사람까지 골로 간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그릇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력 회로에 간섭을 할 필요가 있기에, 어찌 보면 상대와 연결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니 재구축에 실패해 상대의 그릇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면 연결되어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레이 녀석은 내게 두고두고 감사해야 한다. 그것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짓을 하는 거니까.

...생각은 이렇게 해도 이걸 가지고 빚이니 뭐니 할 생각은 없지만.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스모 씨가 그렇게 말한 뒤에 반쪽으로 나누었던 구슬을 자기 입에 넣었다.

그것을 신호로, 다시 눈을 감은 체 레이의 그릇으로 통하는 마력 회로를 따라 합일을 한 소환수들의 마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도꼭지를 살짝 돌린 정도의 세기로 한다. 처음부터 막 쏟아넣다가는 순식간에 그릇이 깨져 버려 재구축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흐으으...”

레이가 옅게 신음을 낸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흘려보낸다.

­틱.

검은 구슬에 새로운 금이 생기자, 흘려 넣는 마력의 세기를 조금 강하게 했다.

­틱. 티틱.

“아... 아악..! 아아악..!”

구슬에 금이 계속 생길 때마다, 레이의 고통스럽다는 소리가 귀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힘내라, 레이. 나도 힘낼 테니까.

마음속으로 응원을 해준다.

­틱. 티틱. 티티틱.

금이 계속해서 생겨 갔고, 구슬의 사이에서 하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곧 깨질 거라는 징조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마력을 부으면...

­두근!

“크헉..!”

그때, 갑작스럽게 몸의 안쪽에서 무언가 깨지는 느낌을 받으며 크게 격통이 일었다.

­풀썩.

이어 다리가 풀리며 한쪽 무릎을 꿇게 되었다.

“어..?”

갑자기 몸이 왜 이러지?

“현성님! 괜찮으십니까?!”

아스모 씨가 갑작스럽게 악화된 내 상태를 보며 놀란 얼굴로 내 상태를 살폈다.

괜찮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몸은 괜찮지 않았으니까.

푸헉. 하는 소리와 함께 왈칵. 핏물이 쏟아진다. 이어 비릿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하아... 하아...”

레이와 마찬가지로 가쁜 숨을 내쉬며, 갑작스러운 격통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 마력을 개방하거나 합일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모든 소환수와 하는 합일이 두 번째라고 해도, 첫 번째 전 소환수 합일보다 소환수의 양이 늘었다고 해도, 내 몸이 버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금지 마법..!”

아스모 씨가 아닌 아스모와 싸울 때 마지막에 날렸던, 스승이 금지한 일곱 개의 마법 중 일곱 번째 마법인 암룡비상.

그 마법을 쓴 직후에 조금 망가진 몸을 치유 마법으로 회복시켰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금지 마법을 써서 그런가.

입술을 짓씹으며 몸을 일으킨다.

여기까지 와서 실패할 수는 없다.

가뜩이나 망가져 가는 몸과 부모님의 복수 때문에 제대로 된 나이에 맞은 삶을 살지도 못한 녀석이다.

복수는 이뤘고, 이제 몸만 고치면 된다.

거의 다 왔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을 못 걸어가서 꼴사납게 뒤져 버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 그때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괜찮...습니다. 계속... 하시죠...”

다시 한번 레이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마력을 붓는다.

“크학..!”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현성님!”

아스모 씨가 나를 부축해주며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 하하...”

허무함이 온몸에 감돈다. 눈에 힘이 풀리며 풀썩. 주저앉는다.

스승한테서 이런 힘을 받았음에도, 그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어서 강한 소환수들을 잔뜩 모았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그때와 다를 것 없이. 또 실패하는 건가.

그렇게 포기라는 사신의 낫이 내 목덜미까지 닿았을 때.

­파아앗!

“...어?”

갑작스럽게 하얀빛이 내 눈앞에 번쩍이더니 고통이 사라지며 몸에 힘이 돌아왔다.

“이건...”

아스모 씨 또한 의문이라는 듯 빛의 입자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뭐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갑작스러운 현상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저 멀리 나무 뒤에 숨어서 이쪽을 불안한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레나뿐이었다.

“마스터!!”

그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엘렌?’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발키리 자매들을 볼 수 있었다.

“힘내세요! 저희 발키리 자매들이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희망을 놓지 말라는 듯, 엘렌이 주먹을 높게 쳐들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이 성역을 펼쳐준 것 같았다. 정말 기특한 녀석들이다

스승이 원하던 게 이런 건가.

이 힘을 받았을 때는 어째서 소환사니 합일이니 하라고 했는지 의문이었지만, 그 말을 잘 들은 덕분에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동료들이자 소환수들이 있으니까.

씨익. 내 입에 미소가 그어졌다. 이어, 그녀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 진짜 사랑한다!!”

나중에 잔뜩 포상을 주마!

“저희도요~!”

“꺄~ 마스터한테 고백 받았어~!”

“자, 다들! 이제 돌아가자! 나머지는 마스터가 알아서 하실 거야!”

“”네~!!“”

“자, 잠깐만요! 저 마스터께 드릴 말이..!”

“힘든 일 하시는 거 안 보여? 눈치 없게 끼지 말고 빠지자구!”

둘째인 엘리나가 막내인 엘린을 잡아끄는 것을 신호로 발키리 자매들이 일사정련하게 날아갔다.

“좋은 분들을 두셨네요.”

정말로 그렇다는 뜻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예요. 교황이랑 한 판 붙어서 그녀들을 데려오길 잘했다니까요.”

“네..?”

당혹감이 섞여나오는 아스모 씨의 네? 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계속하시죠.”

“...네.”

다시 레이의 아랫배에 손을 올리며, 마력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한다.’

그녀들이 내게 새 기회를 줬듯이, 그걸 이은 나도 레이에게 자유로운 앞으로의 삶이라는 새 기회를 줄 차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