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낫게 해줄 테니까.(4)
* * *
레이의 그릇의 재구축을 위해 계속 마력을 쏟아 붓자, 그녀의 몸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꽈득. 꽈드드득.
레이의 골반 부분에 나 있는 박쥐 모양 날개가 점점 커지며 검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양 같이 말려 있던 레이의 뿔 또한 점점 커져갔다. 동시에 뿔 여기저기에 금이 가며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는 건 뿔이 자라나지 않은 오른쪽 관자놀이도 마찬가지였다.
파캉!
이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난 뿔은 검은빛의 입자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양 관자놀이에서 새로이 검은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끝부분이 스페이드(♠) 모양의 검은 꼬리는 보랏빛으로 빛나며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아... 아악..!”
이 모든 현상을 겪고 있는 레이는 현재,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고통을 쾌락으로 바꿀 수 있는 서큐버스의 특성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이 특성은 온 오프가 가능해 순간순간에 맞출 수 있는 편리한 특성이었을 터.
하지만 그릇의 파괴라는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의 고통이 몸에 닥치자 고통으로 쇼크사하지 않도록 자동으로 켜진 상태가 지속되게 되었고, 넘치는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 덕에 물밀듯이 몰려오는 쾌락.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미 뇌가 과부화 되어서 정신이 망가졌을 양이었다.
물려받은 서큐버스로서의 여러 특성들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정신 또한 진즉에 붕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였다. 흘러넘치는 쾌락의 파도에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파직. 거리며 스파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동공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벌려진 입에서는 빠져나온 혀와 함께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렇게 입안에 머무르던 아스모의 마력이 담긴 구슬이 빠져나오기 직전.
“지금입니다, 레이님! 삼키세요!”
“..!”
들려오는 아스모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는 레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필시 레이의 정신은 쾌락의 파도에 삼켜져 버려 구슬 또한 놓쳐 버렸을 것이다.
“끄..!”
그대로 혀를 집어넣으며 그 반동으로 구슬을 목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힘이 모자랐는지 목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에서 부들거리게 되었다.
“으으..!”
입술을 짓이기며 구슬을 삼키기 위해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네 턱을 들어 올리는 레이. 그러자.
꿀꺽.
레이의 목이 크게 움직이며 구슬이 그녀의 목으로 넘어갔다.
파캉!!
구슬을 삼킴과 동시에 자기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느낌을 받는 레이.
뚝. 하고 무언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정신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후우... 후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당장에라도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겨우겨우 숨을 내뱉으며 계속 집중한다.
곧 있으면 고비다. 구슬이 깨지는 직후. 바로 그때가 말이다.
레이의 괴로운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지만 계속해서 마력을 집어넣는다.
레이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이 내 몸까지 전해졌다.
그릇인 검은 구슬 또한 금방이라도 깨지려는 듯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
완벽한 타이밍을 잡기 위해 기다리던 중, 지금이라는 듯 번뜩이는 느낌이 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입니다, 아스모 씨!”
내 신호에 맞춰 아스모 씨의 입에서 파캉! 하고 구슬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입니다, 레이님! 삼키세요!”
그렇게 말하며 아스모 씨 또한 나처럼 레이의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끄... 으으..!”
안간힘을 쓰는 듯한 소리가 나며 레이의 몸의 떨림이 한층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그릇의 붕괴로 인한 고통으로 진이 다 빠져 마지막으로 온 힘을 쥐어짜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의 목이 한 차례 크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이어 레이의 고개가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구슬을 삼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장하다, 레이!’
파캉!
동시에 레이의 그릇이 깨지는 이미지가 마력 회로를 통해 내 눈으로 전해져 왔다.
‘지금..!’
콰아아아!
깨져서 흩어지기 시작한 구슬을 향해 수도꼭지를 최대로 개방, 온 마력을 쏟아부었다.
나와 합일된 모든 소환수의 마력이 깨지며 흩어지기 시작한 구슬의 파편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며 구슬이 빛의 입자로 사라지기 전에 감싸며 붙들어 놓는데 성공했다.
“흐으읏..!”
레이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연결된 마력 회로를 통해 레이가 삼킨 구슬에서 나온 아스모의 마력 반쪽과 아스모 씨의 몸에서 흘려보내는 나머지 반이 내가 보낸 마력과 섞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찰흙을 반죽하듯 이리저리 꾸물대는 마력의 덩어리들.
계속되는 마력의 방출로 서 있을 힘조차 없어지고 있었지만 입술을 짓이기며 억지로 버텼다.
완전한 그릇이 만들어질 때까지 버텨야 했다. 중간에 포기했다가는 그대로 끝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나를 도와 준 사랑스러운 발키리들의 얼굴을 볼 명목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레이에게 한 ‘반드시 낫게 해주겠다.’ 라는 약속도 못 지키게 되는 거니 내 자신이 그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아스모 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억지로 버티는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의 몸에 생긴 균열 여기저기에서 검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얀빛이 새어 나와서 몸의 붕괴를 표현했다면, 지금 새어 나오는 검은 빛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로운 탄생을 표현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빛의 색이 반대되어야 정상이지만, 레이는 반이 마족이고 그릇 재구축의 원인이 마족 쪽에서 나오는 것임으로 이쪽이 정상이었다.
반죽 덩어리였던 마력의 덩어리는 어느새 둥근 구체가 되어 단단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징조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눈을 부릅뜨며 온 정신을 집중한다. 완전히 굳을 때까지는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파아앗!
구슬이 검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검은빛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빛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 위치해 있는 건, 마치 흑진주처럼 영롱한 검은빛을 머금고 있는 구체였다.
크기로는 재구축 전의 그릇을 한참 능가할 정도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느껴지는 마력으로는 재구축 전의 그릇을 한참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끝났다...’
그릇이 완전히 재구축 된 것을 확인하며 합일을 해제한다. 동시에 긴장이 풀리며 몸에 힘이 빠졌고, 풀썩. 주저앉는다.
아스모 씨 또한 꽤 힘을 썼는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번쩍!
“큭?!”
레이의 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날아가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선생님..!”
저 멀리 나무의 뒤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고 있던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가 내 상황을 봤는지 내게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아, 언니! 언니는요! 언니는 어떻게 된 거예요? 성공하셨어요? 언니께 가 봐도 되는 거예요?!”
가뜩이나 마력을 너무 쏟아 부어서 힘들어 죽겠는데, 쉴 새 없이 물어 오는 세레나의 짹짹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웅웅 울렸다.
그만 말하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자, 세레나는 흡! 하며 입을 닫았다.
‘이제야 살 것 같네.’
“후...”
숨을 고르며 몸을 회복시키자 조금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읏차.”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대충 털었다.
여전히 입을 닫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세레나. 얼굴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훤히 들어나고 있기에,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성공했다.”
불안했는지 꾹 닫고 있던 세레나의 입이 점점 펴지며 호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역시 선생님!”
내 주위를 방방 뛰어다니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세레나. 누가 보면 자기가 그릇을 재구축한 줄 알겠다.
“자, 잠깐만요..? 그러면 저렇게 빛나고 있는 언니는 뭐예요?”
한참 방방 뛰어다니던 세레나가 레이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레이의 전신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각성신이라고 보면 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질 테니 걱정 하지마.”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빛은 사그라졌고, 눈에 들어온 건 확연히 달라진 레이의 모습이었다.
땅으로 사뿐히 내려앉은 그녀의 옷은 아까까지 입고 있던 옷 그대로였다.
허리선에 위치한 갈색이었던 한 쌍의 박쥐 모양 날개는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으로 바뀐데다가 두 쌍으로 늘었고, 한층 더 비대해져 그 위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한쪽만 나 있던 둥근 뿔은 말끔하게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전형적인 마족의 뿔인 곡선을 그리며 날카롭게 솟아오르는 모양의 뿔이 대체하고 있었다.
회색에 가까웠던 꼬리는 반은 검은색, 반은 연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길이 또한 길어져 있어 땅에 끌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느껴지는 마력 또한 평소 레이의 것이 아니었다.
아까까지 느껴지던 마력이 1이라면 지금은 100. 현저하게 차이가 날 정도의 강한 마력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서큐버스 퀸의 딸.’ 이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로서도 까딱 정신을 잘못 놓았다간 매혹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릴 것 같았다.
‘...진짜 많이 바뀌었네. 저런 힘을 억누르고 살아왔으니 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저런 힘을 억누르고 살고 계셨으니 몸이 망가지는 것도 이해가 가네요.”
어느샌가 내 곁으로 온 아스모 씨가 레이의 바뀐 모습을 보며 말했다.
메이드복의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 있는 것과 그녀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도 나처럼 땅을 구른 모양이었다.
“아스모 씨는 괜찮으세요?”
“저도 서큐버스인 거 잊으셨나요? 인큐버스 만큼의 힘은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매혹은 견딜 수 있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아스모 씨. 그러면서.
“그나저나 서로 꼴이 말이 아니군요.”
라면서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매혹적이면서도 퍽 귀엽게 느껴졌다. 누가 서큐버스 아니랄까.
“그러게 말입니다. 슬슬 돌아가서 씻고 자죠. 가자, 세레나.”
고개를 끄덕이는 아스모 씨와 세레나.
흑맥주와 닭꼬치는 즐기지 못 했지만 레이의 목숨하고 바꿨다고 치지 뭐...
“레이, 너도! 다 나았으면 슬슬 돌아와!”
달라진 모습으로 서 있는 레이에게 말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레이?”
다시 한번 불러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레이.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그릇의 재구축 과정 중에 무언가 실수를 한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그랬으면 저렇게 멀쩡하게 서 있지 못 했을 테니까.
“후후...”
그때, 레이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는 게 보이며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상쾌한 기분...”
“..!”
“읏..!”
낌새가 좋지 않음을 느낌과 동시에 아스모 씨가 자기 몸을 껴안으며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공포에 질린 듯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그릇의 재구축에만 신경 쓰다 보니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었다.
“후후후...”
내가 행한 건 그릇의 재구축. 그릇의 재구축으로 인해 그녀에게 주어진 건 인간의 몸이라는 제약 없이 휘두를 수 있는 서큐버스 퀸으로부터 물려받은 강대한 힘.
“아하하...”
오늘은 만월의 밤. 인간을 제외한 종족들의 마력이 월등히 오르는 날. 그중에서도 가장 변동이 큰 종족은...
마족.
“아하하하하하하!!”
아무래도, 아직 만월의 밤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