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만월의 밤이 지나간다.
* * *
“아하하하하하!!”
하늘을 올려다본 채로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한 레이.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와 함께 지낸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봐온 바로는 그녀가 저렇게 크게 웃은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저게 본 모습이고 지금까지의 모습들은 마력을 억누르면서 살아온 작용으로 인해 억눌러진 모습일지도.
“선생님..? 언니, 왜 저래요..? 뭐 잘못된 거 아니예요?”
레이의 돌발 행동을 보고 있던 세레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게 물어왔다.
그릇의 재구축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만약 그릇의 재구축 과정에서 뭔가가 틀어졌다면 저렇게 웃고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것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문제가 생겼다면 나도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지 못 했을 것이다.
“잘못된 건 없어. 다만, 한 가지 짐작 가는 건 있지.”
“뭔데요?”
“그건...”
“마력의 폭주...입니다...”
어느샌가 우리의 옆으로 와 내가 할 말을 대신해주는 아스모 씨. 내가 할 말을 대신해 준 건 좋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어딘가 좋지 않아 보였다.
“괘, 괜찮으세요?”
세레나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아스모 씨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게, 현재 그녀는 자기 양팔로 자기 몸을 껴안은 체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워서 떠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늦봄이라 날씨는 항상 따뜻했으며 얼음 마법 등의 기온을 내리는 마법도 사용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위에 떠는 거였다면 저렇게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할 리가 없었다.
“서큐버스로서의 본능... 같은 거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후.. 후후... 역시 서큐버스 퀸의... 딸이군요...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무릎을 꿇고 싶어질 줄은...”
일반 서큐버스 급인 자신보다 상위 개체에게서 오는 위압감에 본능적으로 오는 두려움을 정신력으로 겨우겨우 막고 있는 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대로 계속 두다간 언제정신이 무너질지 몰랐기에, 그녀에게 외부의 마력을 차단하는 보호마법을 걸어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몸을 추스르며 감사 인사를 하는 아스모 씨. 나는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뭘요. 아무튼, 세레나. 아까 아스모 씨가 한 말에서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스모 씨는 마력의 폭주라고 말했지만, 마력을 제어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힘을 흩뿌리는 것인 마력의 폭주와는 조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레이가 레이가 아닌 것같이 행동하는 저 상황은,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게 한꺼번에 터져 나옴으로서 생기는 현상이었으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큐버스 퀸에게서 물려받은 마력이 그릇의 재구축으로 인해 억누를 필요가 없어짐과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 특히 마족의 마력이 급상승하는 만월의 영향이 한데 어우러져 생긴 현상이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채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저렇게 웃고 있는 레이를 보면 필름이 끊긴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할 텐데, 목숨에 지장은 가지 않으니 걱정할 건 없다. 다만...
“...그래서, 우리가 멈춰줘야 하는 거지. 기절을 시키던가 해서 말이야.”
당연하게도 저 상태의 레이는 레이 자기 의지로는 멈출 수가 없기에, 그녀를 기절시키거나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힘을 빼던가 해서 이쪽에서 멈춰줘야 한다.
“저 상태의 언니를 기절시켜요..? 딱 봐도 예전까지의 언니보다 몇 배는 강해 보이는데요..?”
겁먹은 눈동자로 나를 보는 세레나.
“누가 너더러 하래? 넌 그냥 뒤에서 가만히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레이의 시선을 잠깐만 끌어 주면 돼. 광 속성 마법으로 강한 빛을 쏘는 것 정도면 될 것 같다.”
“그걸로 어쩌시게요..? 선생님 몸 상태, 정상은 아니지 않아요?”
세레나의 말이 맞다. 금지 마법을 쓴 영향은 발키리들이 펼쳐준 성역으로 어쩌저찌 커버를 쳤다고 해도, 레이의 그릇을 재구축하느라 방대한 마력을 사용한 여파로 몰려온 피로감은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제대로 싸우면 지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몸이 피곤한 일을 늘리기는 싫다.
싸우지 않고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싸워야 할 필요는 없잖아?
“걱정 하지마. 괜찮을 테니까. 그러니 너는 내 신호만 잘 기다리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불안하긴 하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는 본인도 모르니까. 그러니 마력의 뽕에 취해 마구 날뛰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개를 갸웃하는 세레나를 뒤로하고, 레이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창 웃던 웃음을 그친 그녀는 현재,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건물이 가득한 도심 속에서 매연을 들이마시며 살던 사람이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피톤치드를 가득 들이마실 때 보이는 상쾌한 얼굴하면서.
너무나도 상쾌한 얼굴이라 새장 속에서 꺼내 날아다니게 한 새를 다시 새장으로 집어넣는 것 같아 차마 말을 걸기가 좀 그랬다.
하지만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 밤을 새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에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한 뒤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레이?”
내 목소리에 반응한 듯 그녀의 고개가 나를 향해 돌려졌다.
“...”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아스모 씨를 처음 봤을 때처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매혹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과연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후, 화사한 미소와 함께 레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와아~ 선생님이다아~”
“..?”
진짜로 술에 취한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말을 길게 늘이는 레이를 보며, 순간 벙 찌개 되었다.
그 덕에 레이가 내게 돌진하는 것에 미처 반응하지 못 했고, 그대로 복부에 충격과 함께 몸이 뒤로 넘어가게 되었다.
쿵!
“억!”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뒷머리를 세게 박은 탓이었다.
“뭐 하는 거...”
후두부 부근을 문지르며 레이에게 항의하려고 찡그려진 얼굴을 들었을 때.
“하아~ 선생님... 아파하는 얼굴도 멋있어...”
어느샌가 내 배에 올라탄 채로 눈을 가늘게 뜨며 황홀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
눈앞의 그녀의 모습을 보자 항의하려던 말이 다시 목 안으로 들어갔다.
붉게 반짝이고 있는 루비 같이 붉고 매혹적인 눈동자.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검은빛을 내는 긴 흑발.
평소에 보던 레이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달라진 건 머리에 난 뿔과 날개 뿐.
하지만 왜인지 그녀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평소의 그녀를 볼 때와 전혀 달랐다.
매혹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교복으로 보이는 옷과 치마를 입은 앳된 모습이 그녀의 매력을 한층 더 독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매혹, 고혹, 미혹. 세상의 모든 유혹적임을 의미하는 말들이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의 도도한 맏언니인 레이도 좋긴 했지만 매혹적인 서큐버스인 레이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후훗. 바뀐 제 모습을 보고 반하신 건가요. 선생님?”
요염한 미소를 흘린 레이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뺨에 닿았다.
“그거 아세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를 낫게 해주신다고 하셨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요.”
뺨을 쓸어내리는 부드러운 손길. 턱을 지나 목으로 향한다.
“사실, 선생님이 신경 쓰인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예요. 저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 주신 날... 그때부터 선생님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그게 최고조에 달한 건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를 일격에 보냈을 때였답니다.”
얘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 숨겨 왔던 말들을 다 꺼내는 걸 알고 있을까.
분명 내일 아침돼서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불을 찰 것 같은 말들을 하는 그녀를 말릴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내 몸을 훑는 레이의 부드러운 손길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기에 그냥 들어 주기로 했다.
이불을 차는 건 내가 아니니까.
그녀의 손은 어느새 배의 중간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부모님을 또다시 잃는 악몽을 꿨을 때, 선생님께서 저를 안아주셨었죠. 그때 얼마나 따뜻했는지...”
다시금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는 레이.
레이의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를 안아줘서 달랜 다음에 실수로 그녀를 덮칠 뻔했을 때, 더 진도를 나갔다면 좋았을 거였다던가.
자신을 성적으로 안아달라고 했을 때 부드럽게 거절하며 자신을 애무해줬을 때 너무나도 황홀했다는 거라던가.
그 이후에 방으로 돌아와서 그때의 느낌을 되뇌이며 몇 번이나 혼자서 위로 했다던 가 하는 등의 얘기를 계속해주었다.
뭔가 조금 부끄러운 일면을 들은 것 같긴 했지만 괜히 지적했다가 뭔 짓을 당할지 두려웠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세레나한테 신호를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배를 훑고 지나간 그녀의 손길이 내 바지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필시 내 아들을 훑고 지나갈 터. 아니, 어쩌면 지나가지 않고 머무르다가 내 바지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후후후...”
붉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물론 먹힌다는 게 성적인 의미로 먹힌다는 거겠지만.
야외 플레이에 거부감은 없긴 했지만, 술에 취해서 한 원나잇 같은 형태로 그녀의 처음을 뺏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세레나!”
세레나에게 신호를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곧 올 섬광탄 같은 빛으로부터 시력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라, 라이트!(Light)”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앞이 하얗게 보일 정도의 강한 빛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내가 이 정도인데 빛을 직접 맞은 레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어, 어?”
빛이 사라지는 걸 보며 눈을 뜨자, 여전히 내 배에 올라탄 채로 시야를 뺏겼는지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레이가 보였다.
‘지금이다!’
복부에 힘을 줘 상체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오른팔로 레이의 목을 휘감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슨 일이... 웁?!”
입술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감촉을 느낄 새도 없이 마력 흡수 마법인 ‘에너지 드레인’을 무영창으로 발동시켜 레이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웁? 으부붑!”
마력을 뺏기는 걸 눈치챘는지 레이가 버둥거리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왼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버텼다.
“으븝..! 으브븝..!”
파캉!
머리에 난 뿔이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레이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읍... 우읍...”
파스스스.
허리선에 난 두 쌍의 날개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레이의 손이 힘을 잃고 스러졌다.
“읍...”
꼬리가 힘없이 떨어지더니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이내 완전히 등의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푸하!”
그녀의 변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본 후에야 그녀의 입술을 놔주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보면 분명 서큐버스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까지 마력을 흡수한 게 분명했다.
혹시나 해서 레이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
고개가 뒤로 젖혀진 상태로 기절해 있는 레이. 그 모습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 더는 폭주할 일이 없겠지. 내일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자기가 알아서 마력을 조절할 수 있을 테니.
“휴...”
‘이제야 쉴 수 있겠네.’
참 더럽게도 긴 밤이었다. 지금까지 밤샘을 꽤 해 왔지만, 오늘의 밤이 제일 긴 것 같았다.
그래도 끝났으니 다행이라는 생각하며, 아스모 씨와 세레나의 도움을 받아 기절한 레이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올렸다.
“자, 돌아갑시다.”
* * *
세레나를 자기 방으로 보내고, 레이를 안아 들고 내 방으로 왔다.
마력의 폭주를 잠재우긴 했지만 레이가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지켜보는 게 어떠냐는 아스모 씨의 의견에 따라서였다.
발키리들에게 아침까지 교대로 방 앞을 지켜 줄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기뻐하는 얼굴로 받아들이기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보상을 확실히 줘야겠다.
레이나 나나 겉옷은 더러워졌기에, 레이의 옷은 아스모 씨가 벗겨서 샤워 후 입는 가운을 입혔고, 나 또한 레이와 같은 샤워용 가운을 입고 같은 침대에 들어갔다.
이것도 내 마력으로 인해 그릇을 재구축 했으니 아침까지는 같은 침대에서 마력의 파장을 맞게 하는 게 레이에게 좋지 않겠냐는 아스모 씨의 의견이었다.
레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그녀의 옆에 누웠다.
“고생 많았다.”
너도. 나도.
잠들어 있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행복하다는 듯 그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흐아암...”
긴장이 풀린 탓에 하품이 다 나왔다. 진짜로 잘 시간인 것 같았다.
“잘 자라.”
마지막 말과 함께, 앞으로는 무슨 일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운 하루가 계속되기를 원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