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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78화 (78/146)

〈 78화 〉 잔잔한 일상.

* * *

‘왜 저러지?’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는 것까지는 바라진 않았지만 적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는 등의 작은 인사는 할 줄 알았는데.

나를 보자마자 방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리는 레이를 보자 내 몸은 그 자리에 잠깐 동안 굳어 있게 되었다.

“마스터가 잘못했네.”

복도의 모퉁이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발키리 자매 중 셋째 엘로니. 약간 멍해 보이는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내가 잘못한 거야?”

이 상황에서 뭘 봐야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걸까.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엘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아본 바, 상대방보고 도망치는 경우는 7할이 상대방의 잘못. 그러니 마스터의 잘못.”

“...나머지 3할은 뭔데?”

“얼굴.”

“아.”

왠지 이해가 가는 대답이었다.

“그러면 나도 얼굴이 문제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나를 피할 만한 짓을 한 일이 생각나지 않기에 나머지 3할에 해당한다는 얼굴이 문제가 아닌지 묻자, 엘로니가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의 얼굴은 도내 최상위. 그러니 얼굴엔 문제가 없어.”

“칭찬해 줘서 고맙긴 한데...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여기 오기 전에 마스터가 지내던 저택의 서재에서 읽은 책에서.”

이세계에 방 째로 오면서 가져 왔던 것들을 다 서재에, 그것도 리리에의 눈에 닿지 않게 구석에 박아놨는데, 어느샌가 찾아서 읽은 모양이다.

‘그냥 내 방에 둘 걸 그랬나.’

발키리 자매 중 셋째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매 중 키가 제일 작은 그녀가 발견할 정도면 필시 리리에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어린 그녀로서는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책의 안에 그렇고 그런 그림들이 들어 있으니 아빠 된 마음으로서는 안 좋게 볼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생긴 여동생하고 서큐버스의 계약을 맺는다던지 하는 이상야릇한 그림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리리에가 자라더라도 보여 주지 않을 거긴 하지만.

“그래서.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

궁금하다는 듯 그녀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본 거 아니었어? 어제 날아가면서 성역까지 쳐 주고 갔잖아.”

“우리... 아니, 내가 아는 건. 마스터가 합일했다는 것뿐. 그 이상은 몰라. 그러니 알고 싶어. 들려 줘.”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서 다 말하려면 밥 시간을 놓칠 텐데? 그래도 들을래?”

어젯밤에 일어난 일 중 몇 가지만 골라도 말해주는데 한 시각은 족히 넘을 것이다.

세상에서 나 다음으로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 녀석이기에, 하루 3번 있는 고급스러운 음식들을 즐길 기회를 놓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터.

“음...”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흘리며 그녀의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역시 안 들을래.”

내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치?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차피 밥을 포기하고 들려달라고 했어도 안 들려 줬을 거다.

나 또한 그녀처럼 먹는 것을 좋아하니까.

“먹여줄 거야?”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을 내게 보내오는 엘로니.

“애냐? 그런 짓을 식당에서 했다가는 온 식당의 시선이 내게 향할뿐 더러 다른 자매들도 똑같이 해 달라며 난리 칠 게 뻔하잖아.”

단둘이 있을 때면 몰라도 귀족 소녀들로 가득 차 있을 식당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좀 그랬다.

“안 돼..?”

나를 올려다보며 애원하는 목소리를 흘리듯 말하는 엘로니.

“나... 마스터가 먹여주는 음식이 먹고 싶은데...”

누구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상대를 올려다 보면서 하는 부탁.

그녀를 안 지 얼마 안 됐을 시절의 나였다면 바로 넘어가서 알았다며 승낙했겠지만, 그녀와 꽤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서로에 대해 알 만큼 알았기에, 지금의 내게 있어서 그녀의 저런 모습은 내 심장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 했다.

“그... 아니. 안 돼.”

“치.”

단호하게 거절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원래의 멍한 눈으로 돌아오는 엘로니.

“난 사람들 눈 신경 안 쓰는데.”

“내가 신경을 쓴다. 내가.”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식당에 입장할 때나 대강당의 단상 위에 올라섰을 때로 족하단 말이지.

“좋아. 그러면 다른 방법을...”

“엘로니 언니~! 빨리 안 오시면 엘렌 언니가 두고 가신데요~!”

엘로니가 무언가 내 마음을 돌릴 방법이라도 있다는 듯 말하던 그때, 엘로니가 나왔던 복도의 모퉁이에서 엘린의 머리가 빼꼼. 튀어나오며 엘로니를 불렀다.

“그렇다고 하네. 어여 가 봐.”

그녀가 행하려던 ‘다른 방법’이 뭔진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게 아님은 분명했기에, 내심 안도했다.

“...방해꾼.”

혀를 찬 엘로니였지만 맏언니인 엘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숨을 내쉰 뒤에 모퉁이를 지나 사라졌다.

엘로니를 따라 식당으로 향하러 발걸음을 떼기 직전. 문의 안에서 레이의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레이? 어디 아파?”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안에 있을 그녀에게 물었다.

잠겨 있는 것 같지는 않기에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되긴 하지만 학생, 그리고 여성의 방에 동의도 없이 들어가는 건 총괄 선생으로서 할 짓이 못 되지.

...100대1로 술래잡기 할 때는 사정이 있었으니까 무효로 치자.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혹시나 아직 몸이 덜 나아서 문제가 생겼나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괘, 괜찮아요..! 그저 운동을 좀 열심히 해서 힘든 것뿐이니까요..!”

라며 레이의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몸 나았다고 신나게 날뛰고 왔나 보네.

마치 감기가 나은 이튿날엔 몸이 가볍듯이 레이 또한 그런 기분에 무리를 해서 갑옷들을 상대하고 온 것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숨을 몰아쉬지.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갔기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마력을 일정 수치 이상으로 사용하면 마력의 근원인 그릇이 붕괴되어 마력을 억누르는 삶을 살아온 그녀였다.

365일 24시간 동안 발에 무거운 족쇄를 단 채로 생활해온 거나 다름이 없는데, 이번에 그 족쇄를 부숴 버렸으니 흥분이 되지 않을 리가.

나라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걸 확인하자마자 날뛰고 싶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아무리 부수며 힘을 자랑해도 나보다 약한 이상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 샌드백인 붉은 갑옷들도 존재하니 마음껏 힘을 발산했을 것이다.

그녀의 상대에 어울렸을 붉은 갑옷들에게 애도의 기도를 올린다.

“진짜 괜찮은 거지? 괜히 숨기다가 또 심각할 때 들키지 말고 지금 말해.”

“네, 네! 괜찮은 거 맞아요..! 이제 막 샤워하러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목소리가 떨리는 걸로 봐선 뭔가 일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방 안에서 이질적인 마력의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녀의 말을 믿고 그냥 가기로 했다.

절대 복도의 모퉁이 너머에서 들려온 엘린의 ‘오늘 아침은 안심 스테이크래요!’ 라는 말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스테이크라고 해봤자 와인도 못 곁들어 먹을게 아닌가.

‘와인 생각하니까 어제 흑맥주 못 마신 것도 생각나네...’

자글자글한 기름이 흐르는 닭꼬치에 기름진 배를 달래줄 흑맥주까지.

극락이 바로 어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왔지만 모종의 일로 인해 저 하늘 높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아스모 씨의 일도 있었지.’

지금은 무슨 일이 있다며 어디론가 사라져 있는 상태인 아스모 씨.

어제 그런 일이 있었기에 말없이 학교를 나가지는 않을 것 같기에, 밥을 먹고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꼬르륵.

음식들을 생각하자 다시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알았다, 알았어. 지금 먹으러 간다.’

“일단 알겠어. 몸이 좋아져서 기쁜 건 알겠지만 무리는 하지 말고. 그럼 난 간다.”

“네, 네! 드, 들어가세요..!”

그렇게 레이의 방을 떠나 식당에 도착하자, 식당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하도 많이 봐서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그래서 말이죠~”

“정말요?”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는 주변에 추종자 같은걸로 보이는 몇 명의 소녀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허, 마시써..!”

“함... 냠... 햠..."

금발의 소녀 라네즈와 은발의 소녀 라헨느는 음식이 맛있었는지 끊임없이 입에 음식을 집어넣고 있었고 그 모습을 주변의 몇몇 소녀들이 귀엽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가다 입에 묻은 음식을 닦아주는 소녀도 있었다.

분홍 머리의 가슴이 큰 소녀, 루아는 역시 클래스가 암살자답게 나이프로 고기를 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은색의 빛이 번뜩일 때마다 고기가 고기 조각이 되어 등분되었으며 어느샌가 다른 손에 들려 있는 포크에는 고깃덩이가 찍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소녀들이 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작 본인은 음식을 입에 넣고 황홀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느라 주변을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발키리 자매들은 다른 소녀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리를 잡았는지 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입고 있는 순백의 갑옷과 투구를 쓰지 않아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그녀들의 외모 때문에 흘낏거리며 그녀들을 곁눈질 하는 소녀들이 있어 전혀 소용이 없는 것 같았지만.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 식당의 모든 시선이 내게 향했다.

처음에는 꽤 부담스러웠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음식을 받아들고, 자리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웅성대던 소녀의 소리가 가라앉았다. 마치 내가 어디에 앉을지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먼저, 발키리 자매들이 앉아 있는 자리가 있었다.

소환수인 발키리 자매 옆에 앉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겠지만, 남아 있는 자리는 엘로니의 옆자리뿐.

분명 저기 앉았다가는 아까 못 했던 내가 그녀에게 고기를 먹여줄 ‘다른 방법’을 실행해 올 것이 분명했다.

다음으로 빈 자리는 세레나의 앞자리.

세레나의 앞자리에 앉으면 마법을 가르쳐 주는 일은 어떻게 됐나며 끊임없이 물어올 것이기에 고기의 맛에 집중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다음은 라네즈와 라헨느.

사실상 저기가 제일 무난하겠지만...

‘저긴 안 되지.’

쌍둥이의 자리에 앉는다면 내 고기를 뺏길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신기하게도 내 음식을 뺏을 때만큼은 나보다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녀석들이다.

처음 뺏겼을 때는 라헨느 너마저! 라면서 울부짖고 싶은 기분이었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방금 비워진 루아의 옆자리뿐이었다.

‘그래, 역시 루아밖에 없지.’

무언가를 행하는 자리에서 루아의 옆자리만큼 안심이 되는 자리도 없을 것이다.

누구처럼 쉴 새 없이 떠들지 않고 내 것을 빼앗지도 않으며 나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 아이.

다른 왕성 귀족 녀석들도 보고 배우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루아의 옆자리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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