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79화 (79/146)

〈 79화 〉 소녀는 소녀가 되어간다.

* * *

“하아... 하아...”

현성을 피해 방으로 들어온 레이는 문에 기대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현성의 얼굴이 보기 흉하다든가 그가 미워서라든가 그가 그녀에게 무언가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현성이 그녀의 그릇을 재구축해 줌으로서 제약없이 마력을 휘두를 수 있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쾌재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본래의 마력의 30퍼센트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붉은 갑옷들을 상대로 얼마나 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실험해본 그녀로서는 만족 그 이상의 결과를 얻었기에 상쾌한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상쾌한 마음도 현성을 보자마자 흥분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그녀가 현성을 피한 이유는 갑작스럽게 흥분상태에 돌입한 것에 있다.

만약 거기서 현성을 멀리서가 아닌 가까이서 제대로 마주 봤다면 필시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덮쳐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성의 인사에 대꾸도 하지 않고 피한 것도 방으로 들어와 흥분상태에 돌입한 몸을 어떻게든 달래 현성에게 현재 그녀의 상태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릇을 재구축함으로서 강해져 버린 서큐버스의 특성이 문제였다.

그 증거 중 하나로, 레이가 나아진 몸 상태를 확인하고자 마구 날뛰었던 연무장에는 서큐버스가 흥분할 때 나온다는 미향(美?)이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일반 서큐버스 정도의 미향이라면 그저 얼굴이 조금 붉어지고 숨이 조금 가빠지는 정도에 그쳐 상대방에겐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에 한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큐버스 중의 정점인 서큐버스 퀸. 그리고 레이는 그녀의 마력을 물려받았다. 타고난 걸로 따지자면 프린세스 급에 필적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였는데, 이번에 그릇을 재구축함으로서 한 계단을 더 올라버린 것이다.

인간적인 강함으로서도, 서큐버스로서의 강함으로서도 한 계단 올라버린 그녀는 어찌 보면 서큐버스 퀸인 어머니에 필적할 정도의 서큐버스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그녀가 퍼뜨린 미향은 얼마나 위력적이겠는가.

레이보다 약한 사람이 마신다면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돌입해 그 자리에서 혼자 위로를 하든, 이 학교 유일한 남자인 현성을 찾든 하는 일로 소란스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학교 내에서 연무장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녀와 세레나뿐이고 세레나는 현재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가 있기에, 연무장에 들어갈 사람은 이 학교를 총괄하는 현성밖에 없다.

그리고 그 현성은 현재 레이의 방문 앞에서 그의 소환수 중 하나인 발키리 자매 중 셋째, 엘로니와 대화 중이었으므로 미향이 가라앉을 때까지 연무장에 들어갈 사람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그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레이? 어디 아파?”

똑똑.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현성의 묻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 들려왔다.

“히얏..!”

갑작스러운 소리에 순간적으로 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겨우겨우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소리를 억눌렀다.

“후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심호흡을 한 뒤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괘, 괜찮아요..! 그저 운동을 좀 열심히 해서 힘든 것뿐이니까요..!”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입을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냥 파르르 떨렸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다행이 현성은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둔 한 건지 아니면 그녀를 배려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방으로 들어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기에, 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방에 단둘이 있다가는 본능을 못 이기고 덮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괜찮은 거지? 괜히 숨기다가 또 심각할 때 들키지 말고 지금 말해.”

다시 들려오는 현성의 걱정이 담긴 말에 또다시 화들짝 놀라는 레이.

오늘만 몇 번째 놀라는 건지,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레이였다.

“네, 네! 괜찮은 거 맞아요..! 이제 막 샤워하러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당연히 이것은 거짓말이다. 샤워하러 들어가려던 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알몸이어야 했을 터.

하지만 그녀는 알몸은커녕 속옷 차림도 아닌 들어올 당시 그대로인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을 밖의 현성이 알 리가 없었다.

“일단 알겠어. 몸이 좋아져서 기쁜 건 알겠지만 무리는 하지 말고. 그럼 난 간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레이. 배웅하는 인사 또한 잊지 않는다.

“네, 네! 드, 들어가세요..!”

그 말을 끝으로 현성의 말은 더 들려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은 멀어져가는 현성으로 추정되는 발소리 뿐.

당장에라도 몸에 힘이 풀릴 듯 다리가 부들거리며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주저앉는다면 쿵. 하는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감각이 좋은 현성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리에 집중시켜 어떻게든 버티고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제야 레이는 힘을 주는 것을 풀 수가 있었다.

힘을 풀자마자 레이의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녀의 몸이 문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대로 앉아 있다가 누가 문이라도 열면 다치는 건 그녀였기에,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가 그대로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흥분 상태를 달래기 위함이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주변이 조용해짐으로 인해서 뇌에서는 자기 자신의 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 했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어젯밤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쳤나 봐..!’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부끄러운 말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이겼을 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느니, 악몽으로 인해 괴로워할 때 안아줬을 때 따뜻했다느니. 등등.

거의 사랑을 고백한 수준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성을 생각하며 자기 위로를 몇 번 했다느니, 실수로 덮쳤을 때 진도를 더 나갔으면 좋겠다는 등의 치녀로 보일 법한 말도 스스럼없이 하지 않았는가.

‘과거의 나를 죽이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 현성의 옆에서 자고 있는 자신을 보며 의아해하던 그녀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떠올랐을 때 그녀의 얼굴이 분화직전의 화산 같았다는 것은 옆에서 그녀가 기억을 되찾는데 도움을 준 아스모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애꿎은 베개를 두들겨 패면서 후회하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그렇게 한창 베개를 치던 중, 물을 따라 흘러가던 기억의 나룻배는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다.

‘선생님의 입술... 부드러웠지...’

마력의 해방감으로 인해 폭주한 그녀를 저지하기 위해 입술을 통해 마력을 빨아들었던 일.

그때를 생각하며 레이는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때 느꼈던 입술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자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읏..!”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베개 타임.

그렇게 한창 흑역사를 몇 번이고 갱신한 것을 후회하면서 애꿎은 베개만 두들겨 패던 중.

­꼬르륵.

하며 배꼽시계가 울렸다. 흑역사로 인한 부끄러움도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았다.

‘지금 식당으로 가면 선생님도 계시려나...’

베개에 흑역사를 묻어놓음으로써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긴 했지만 현성의 얼굴을 보면 금방이라도 되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굶을까 생각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반은 인간인 이상 굶는 건 좋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대비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밖에서 들려온 ‘오늘의 스테이크. 맛있었죠!’ 라며 즐거운 듯한 목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선생님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이 학교에서 지내는 이상 총괄 선생인 그를 매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가 식당으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서자.

“레이 언니!!!”

복도의 저편에서 그녀를 부르며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한 명의 소녀를 볼 수 있었다.

“헉..! 헉..!”

그녀의 앞에서 급정거한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는 꽤 먼 거리를 달렸는지 헥헥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레이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10년 동안 거의 친자매나 다름없이 생활해 왔기 때문이었다.

“세레나?”

무언가 급히 말할 것이라도 있는지, 여전히 헉헉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레, 레이 언니! 헉... 헉...”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 지나가던 몇몇 소녀의 시선이 그녀들에게로 향한다.

“크, 큰일이예요! 시, 식당에서..! 서, 선생님께서..!”

“선생님? 선생님께서 왜?”

헉헉대며 숨을 고르던 세레나가 이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 선생님께서 루아와 싸우고 계세요..!”

“...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