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82화 (82/146)

〈 82화 〉 먹을 건 양보 못 하지.

* * *

고기를 입안에 가득 집어넣은 채 우물거리고 있는 루아의 옆에 앉은 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족 소녀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각이 발달한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녀들 한 명 한 명으로서는 일순간의 곁눈질에 불과했지만 모든 소녀의 시선을 한 번에 받는 현성으로서는 온몸에 느껴지는 시선의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째서 자신을 보고 있는지까지 눈치채고 있던 현성이었기에, 이래서 머릿속에 꽃만 가득 찬 귀족 소녀들은 안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요전번에는 만월제를 준비할 때 세레나가 나와 많은 시간을 붙어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세레나 님과 선생님은 혹시..?’ 라면서 엮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지.‘

현성과 엮인 세레나가 그에게 붙어 있던 이유는 내게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마법을 그에게서 뜯어가려고 하는,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던 귀족 소녀들로서는 그저 다정하게 산책을 하며 축제의 준비에 대해 의논할 정도로 친분을 쌓은 학생과 선생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세레나 또한 그것에 대해 들어오는 질문들에 그다지 부정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만월제 전후로 여러 학생들의 입에 그들에 대해 오르내렸던 것이다.

“후우...”

현성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세레나와 아스모 씨 밖에 모르니 망정이지...’

현성은 그녀들이 레이의 그릇을 재구축하는 과정과 폭주한 레이를 막는 장면을 못 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 장면을 아스모 씨나 세레나가 아닌 다른 누가 봤다면 필시 오늘 아침 그의 방 앞은 기자들처럼 몰려든 학생들로 가득했을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들이 수군거린 소문들이 바람을 타고 왕성 귀족의 가주들에게까지 들어간다면...’

그다음은 안 봐도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누군가에 휘둘리는 것만큼 그가 싫어하는 일은 없었다.

연예인들이 어째서 기자들을 싫어하는지 잘 알 것 같은 현성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의 행동에 따라 술렁임의 한가운데에 있게 된 루아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 또한 암살자 클래스로서 감각이 예민해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녀를 향한 술렁임이 들릴 터. 혹시나 자신과 엮임으로서 귀찮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해서였다.

그 귀찮은 일이란 주로 다과회를 빙자한 소녀의 질문 세례일 터였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그녀는 고기에 온 신경을 쏟고 있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그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빨리 먹고 가야지...’

아침 메뉴가 스테이크만 아니었다면 학생들이 다 떠난 시각에 맞춰 밥을 먹으러 올 텐데. 라고 생각하며 눈앞의 고기로 눈을 돌리는 현성,

그렇게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으려던 찰나, 고기를 써는 루아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나이프에서 은빛의 실선이 그어질 때마다 고깃덩이가 말끔하게 잘리며 고기 조각이 됐고, 고기 조각은 어느새 다른 손에 들려져 있는 포크에 꽂혀 있었다.

현성에게 있어서는 식당에 들어설 때 잠깐 봤던 장면이었지만 신기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고기를 포크로 고정하고 썰어도 밀리는 살점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루아는 그냥 나이프를 가볍게 그은 것만으로도 깔끔한 단면을 자랑하는 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누가 암살자 클래스 아니랄까, 칼을 다루는 솜씨는 고기용 나이프에도 통용되는 것 같았다.

혹시 자신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 나이프를 휘둘렀다.

“윽.”

애석하게도 고기에 칼자국이 조금 남는 정도에 그쳤다. 아무래도 재능과 경험의 차이인 것 같았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포크로 고기를 고정한 체 천천히 자르는 현성이었다.

“음~ 맛있어~!”

“응..?”

그때, 옆에서 들려온 맛있는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 황홀함이 가득 채워진 목소리가 스테이크를 썰던 현성의 손을 멈추게 했다.

그가 알던 평소의 루아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커질 때는 그녀가 무언가 실수를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도망갈 때 뿐이었으며, 그 의외에는 우물쭈물하거나 낯을 가리는 모습들을 보여줬다.

맛이 좋을 수밖에 없는 고기에 황홀한 표정만이면 모를까, 음식이 맛있는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평소의 루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루나.”

“응?”

현성이 또 다른 루아에게 붙여 준 이름인 ‘루나’를 입에 올리자, 루아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루아라고 부르지 않고 루나라고 불렀는데 반응을 한 것을 보면 필시 그녀의 인격이 나와 있음이 틀림없었다.

“왜?”

인격이 바뀌었다는 것에 자각이 없는 건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 순수한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아니, 막 나와도 되는 건가 싶어서.”

왕성 귀족 중 하나인 아르테미아 가문의 차녀인 루아가 이중인격을 지니고 있다. 이런 사실이 다른 귀족들에게 알려진다면 가문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현성의 말에 ‘응?’ 하며 말의 의도를 못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루나.

그러면서도 입을 우물거리며 고기를 씹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현성이 한 말이 어떤 것을 묻기 위해 나온 것일까. 생각하며 입을 계속 우물거리던 루나는 곧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씹고 있던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아~ 루아가 아닌 내가 나와 있는 거 말하는 거였구나? 난 또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썰어놓은 고기 조각을 포크로 찍더니 그대로 입에 넣는 루나.

입을 우물거리며 고기의 맛을 음미하던 루나는 이내 고기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 둘, 기억이나 경험 등 대부분의 것들은 공유를 하지만 딱 한 가지. 공유하지 않는 게 있어.”

“미각이구나?”

정답이 눈앞에 있었기에, 현성은 어렵지 않게 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너무 쉬웠던 정답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은빛의 실선이 현성의 눈앞에서 번뜩였고, 남아 있던 고깃덩어리가 깔끔한 단면을 남긴 채 8등분 되었다.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만큼은 반 씩 나눠서 먹기로 한 거야. 여기 음식은 맛있으니까. 아무리 루아가 밥을 먹는 것으로 인해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보거나 냄새만 맡아야 하는 건 너무하잖아?”

“맞지. 미각이 있음에도 최고급 음식을 미각으로 못 느낀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서 보기만 하거나 냄새만 맡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현성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루나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잠깐. 미각을 공유하지 못 하는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음식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같아 잠시 질문의 본질을 잊고 있던 현성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루나에게 설명해주려고 했지만.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해서는 여기 있는 모든 애들이 알고 있어서 정체를 들킬까 불안에 떨고 있는 비밀결사처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미 현성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그에게 지어 주었다.

“그러니까 빨리 먹어. 안 그러면 식어서 맛이 떨어진다고?”

‘...못 당해내겠네.’

“알았다, 알았어.”

루나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은 현성은 작게 웃으며 고기가 담긴 접시로 눈을 돌렸다.

그때,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였다.

“선생님께서 루아님과 즐겁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고 계세요. 아쉽게도 무슨 얘기를 하신 건지는 듣지 못 했지만요.”

“이건 설마, 새로운 가능성의 등장인가요?!”

“세레나 님의 라이벌이 등장한 걸까요?!”

‘다 들린다 이것들아.’

그녀들 딴에는 소곤거리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현성의 귀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왔기에 머릿속이 꽃으로 가득 찬 소녀들은 귀찮다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내쉬며 잘라둔 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

* * *

현성이 마지막 고기를 입에 넣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대부분은 루나처럼 고깃덩이를 고기 조각으로 잘라서 한입에 넣었지만, 입에 넣고서 몇 번 씹기도 전에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고기의 질 때문에 감칠맛만 느낀 현성이 참지 못하고 남은 덩어리 채로 입에 넣었던 것이다.

그 덕에 식당에 제일 늦게 들어왔지만 제일 빨리 나가게 생긴 현성.

아쉽다는 생각으로 입맛을 다시며 입에 남아 있는 고기의 고소함을 최대한 만끽하는 그였다.

입맛을 다시고 있던 것은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로서는 먹은 양으로 따지면 반밖에 못 먹은 것이기 때문에,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었는데...”

“응...”

아쉬운 한숨과 함께 그릇을 반납하러 식기대로 온 그들에게 요리사 모자를 쓴 중년이 말을 걸었다.

“아, 총괄 선생님!”

누군가에게 총괄 선생이라고 들은 적은 처음이었기에, 순간 자신을 부르는 단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현성.

“오빠, 요리사 아저씨가 오빠 부르는데?”

“어? 나?”

“응. 총괄 선생님이래잖아.”

루나의 어시스트로 자신을 부르는 단어라는 것을 알아챈 현성이 고개를 돌려 중년의 남성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를 향해 내밀어 진 건 아까 현성과 루나가 먹었던 스테이크와 야채가 담겨 있는 접시였다.

“이건?”

“남은 요리입니다. 원래는 다른 분께서 드시기로 했던 겁니다만, 배탈이 나서 못 드시게 됐다고 메이드 분이 오셔서 알려주셨거든요. 하지만 이미 요리는 완성되었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료라...”

요컨대 그에게 한 번 더 스테이크의 맛을 음미할 기회가 왔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건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턱!

둘의 손이 동시에 나가며 그릇을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시작되는 신경전.

“그 손 놓지 그러니?”

“오빠야말로..!”

그들의 손아귀 힘에 애꿎은 그릇만 힘과 힘의 사이에서 부들거리게 되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귀여운 학생을 위해서 양보도 못 해주는 거야..?!”

그릇을 잡은 손에 힘을 더욱 주며 그릇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루나.

“그렇게 따지면 나는 그런 귀여운 학생의 편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너야말로 그런 선생님을 위해서 양보해 줄 수는 없는 거니?”

현성도 지지 않고 그릇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반박했다.

그렇게 입의 즐거움을 위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이 계속됐다.

그들의 신경전으로 인한 험악한 분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 불쌍한 요리사만이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경전을 보고 있던 세레나와 소녀들. 세레나를 제외한 소녀들은 당장에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같이 점점 격해지는 그들의 분위기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불안 함을 느꼈다.

“괜찮을까요..? 저 두 분이 맞붙는다면...”

현성과 루나의 강함은 그들의 첫 대련으로 여지없이 봤던 그녀들이었기에, 그들이 사소한 것으로라도 맞붙게 되면

“괜찮아요. 아까 선생님의 소환수인 발키리 분들이 구석에서 식사 중인 것을 봤거든요. 만약 싸움이 격해진다면 그분들이 막아주실 거예요.”

걱정말라며 소녀를 안심시키는 세레나.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세레나를 보며 소녀들은 안심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성의 소환수들인데 막을 정도는 되겠지.’ 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저기... 세레나 님..?”

“왜 그러세요?”

불안하다는 얼굴의 소녀를 보면서 세레나가 물었다.

“그분들, 몇 분 전에 다 드시고 가셨는데요...”

“...”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다음 순간, 챙! 하며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학생들의 귀를 강타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