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먹을 건 양보 못 하지.(2)
* * *
“그래서 바로 사람들을 내보내고, 언니께 도움을 청하러 간 거였어요. 소환수 분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몰랐고, 저희로서는 루아와 선생님의 사이에 끼어들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오라버니들과 언니께서 이미 해결하셨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끝까지 구경하는 건데.’ 라며 아쉬워하는 말을 끝으로 세레나의 상황 설명이 끝을 맺었다.
“정확히는 나와 하이네는 빼고 루이네와 프리무스가 막은 거지만.”
세레나의 말에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리안. 그의 말에 세레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는 기억의 장면을 되돌려 조금 전 루이네에게 혼나고 있던 현성과 루나의 떠올렸고, 이내 위화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 당시의 기억에서 프리무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같이 막았다면 분명 프리무스도 그들의 근처에 있었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프리무스 오라버니는요?”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 리안에게 묻는 세레나.
“프리무스? 저기 있잖아?”
못 찾았냐고 묻는 얼굴과 함께 리안의 손가락이 식당의 안을 가리켰다.
“어디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음식을 받는 배식대 뿐, 프리무스라고 부를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리안을 바라보자.
“저기. 안 보여? 밥 받는 곳 뒤에 튀어나와 있는 거 있잖아.”
자세히 보라는 말과 함께 리안은 좀 더 손을 뻗어 주었다.
세레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눈을 가늘게 뜨며 초점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고, 그제야 하얀색의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지?’
‘하얀색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의 초점을 조절한 세레나는 이내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발..?”
배식대의 위로 살짝 솟아올라 있는 그것은 사람의 발이었다.
뒤로 넘어간 듯한 모양을 하는 발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프리무스 드 르니아라는 것을 똑똑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현성과 루나의 싸움이라도 식당의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진 싸움이니만큼 싸움의 여파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 증거로, 식당의 상태는 거의 전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는 식기들과 의자들, 무언가가 벽을 긁고 지나간 자국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도 학교 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들이 싸운 것치고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 격한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건지, 아니면 음식을 두고 싸우는 과정에서도 학교에 너무 큰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손대중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피해가 크지 않으니 안심이었다.
그런데 클래스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마스터 크루세이더였음에도, 방어 마법에 한에서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임에도 현재 뒤로 넘어간 듯한 꼴사나운 모습을 하는 것이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발의 주인이 프리무스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얼굴을 하는 세레나를 보며 리안과 하이네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못 봤으면 믿지 못 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지.”
“동감. 아직도 충격에서 못 빠져나온 애들도 있으니까.”
하이네의 말대로, 식당 밖 소녀들 중에는 현성과 루나가 루이네에게 끌려갔음에도 아직도 멍하니 식당의 안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들이 있었다.
그녀들의 입에서는 ‘사람이 그렇게 날아가는 것을 처음 봤다.’는 등 충격에 휩싸인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제가 레이 언니를 부르러 간 동안 무슨 일이 있던걸예요..?”
“그게 말이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되감으며, 리안이 입을 열었다.
* * *
“아~ 이제야 좀 살겠네~!”
회복실의 안에서 요양 중이던 리안이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며칠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서 몸이 굳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에게 당한 것이 꽤 중상으로 이어졌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암... 몸이 회복되자마자 체조라니, 너희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 리안.”
그의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크리샤 가문의 장남, 하이네가 귀찮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하품하며 말했다.
“응? 너희들이라니?”
회복실의 안에서 체조를 하는 사람은 그 한명뿐이었는데, 하이네가 둘이상을 지칭하는 말을 하니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가 같이 체조를 하고 있나 싶어 리안은 고개를 돌리며 회복실의 안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있는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의 리안을 보며, 하이네는 말없이 회복실의 문을 가리켰다.
덜컥.
동시에 회복실의 문이 열리며 백발의 여성과 금발의 청년이 회복실의 안으로 들어왔다.
루이네 아리아와 프리무스 드 르니아였다.
“너희들? 어디 갔다 온 거야?”
방금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침대를 확인하지 못했던 리안이었기에, 그들이 일찌감치 일어나 굳은 몸을 풀기 위한 조깅에 나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리안의 질문에 대답해준 것은 하이네였다.
“네가 일어나기 한참 전에 일어나서 나가더라고. 도대체 운동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들 하는 건지...”
그렇게 말하는 하이네의 얼굴에는 귀찮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하하, 다 나았더니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야. 가볍게 몇 바퀴 뛰고 왔어.”
“하이네. 너도 운동을 좀 해 두는 게 좋아. 넌 몸이 너무 약해.”
“몰라... 귀찮아...”
루이네의 진심 어린 말을 잔소리로 들으며 듣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이불을 머리까지 덮는 하이네. 그런 그를 보며 ‘원래 저런 녀석이었지’ 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는 프리무스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루이네였다.
어느새 체조를 끝마친 리안이 하이네의 침대로 다가와.
“그러면 귀찮으니 밥은 안 먹으러 가는 거지?”
라고 말했다.
“밥..?”
밥이라는 소리에 덮고 있던 이불을 살며시 얼굴까지 내리는 하이네.
“오늘 메뉴가 아마... 스테이크였을 걸?”
“빨리 가자.
* * *
“혹시나 하는 건데, 우리가 나을 줄 몰라서 우리의 음식을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식당으로 향하며, 혹시나 남아 있는 음식이 없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하이네.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있지 않을까? 남는 음식들을 루아가 전부 먹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리안이 병문안을 빙자한 팬 미팅을 온 소녀들에게 들은 정보를 들려주자, 하이네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그렇게 음식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식당에 도착한 그들이 본 것은 식당의 밖에서 바글거리는 학생들의 인파였다.
“무슨 일 있나?”
무언가 흥미로운 것이 식당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기라도 한 듯 학생들의 시선은 식당의 안을 향해 있었으며, 개 중에는 폴짝폴짝 뛰는 소녀도 있었다.
그녀의 부모가 봤다면 예의없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냈겠지.
“구경거리라도 있나 본데?”
“식당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지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뭐 들리는 거 있어?”
그들 중에서 감각이 제일 밝은 루이네가 귀를 기울여 봤지만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너무 컸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확인하려면 학생들의 인파를 뚫고 지나가 식당에 도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잠시, 지나가도 될까?”
프리무스의 목소리에 그와 가까이 있던 소녀의 고개가 그들을 향해 돌려졌다.
“프, 프리무스님?!”
“리안님과 하이네님도 계셔..!”
“꺄아~ 루이네님~!!”
우연히 아이돌을 만난 소녀 팬처럼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던 소녀들.
“자, 잠깐! 이럴 때가 아니잖아요!”
“그, 그래요! 빨리 말려달라고 말씀을 드려야죠!”
이내 식당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루나와 현성의 고기 쟁탈전을 떠올리고는 그들에게 그들이 오기 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해준 다음 막아달라고 부탁하며 길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손쉽게 식당 입구에 도착한 그들이 본 것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의자들과 긁힌 자국들이 있는 벽. 그리고.
“야! 아무리 그래도 양손으로 나이프랑 포크를 다루는 건 반칙이지!”
고기 조각들과 야채가 담겨 있는 접시를 한 손에 든 채로 고기용 나이프를 휘두르며 이리저리 피하듯 움직이고 있는 현성과.
“그러면 오빠도 접시를 놓고 양손을 쓰던가!”
양손에 나이프와 포크를 든 채로 그런 현성을 추격하는 루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네가 어느 순간에 고기를 날름 먹어 버릴 줄 누가 알고!”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포크로 고기 조각을 찌르려는 행동을 하는 현성.
하지만 그와 루나의 속도는 동격이었기에, 번번이 제지당했다.
““...”“
그렇게 포크와 나이프의 공방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본 프리무스 일행은 말을 잃은 체 서로를 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고기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이 어이가 없음도 있었지만 포크와 나이프로만 이루어진 싸움이 그려내는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것도 있었다.
은빛의 실선이 오선지를 그려 냈고, 맞부딪치는 금속음이 음표가 되어 한 장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넋이 나가 있었을까.
팟. 하며 정신이 돌아온 그들은 이내 어떻게 루나와 현성의 싸움을 막을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좋아. 프리무스가 저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서 희생하면 틈이 생길 테니까 루이네가 그 틈을 향해 쇄도해서 무장 해제 시키는 거야.”
“요즘 들어내 취급이 너무해지는 것 같은데, 착각이야..?”
어째서 자신이 희생해야 하냐는 듯 프리무스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우리 중에서 제일 단단하니까.”
“...”
묘하게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프리무스는 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진형을 갖췄다고 했을 때, 리안과 루이네는 스피드를 살린 빠른 어태커였고 하이네는 지원형이었기에, 결국 돌진은 탱커인 프리무스가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 한 것이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식당의 입구에 선 프리무스는.
“진짜 가..?”
이제는 거의 울 지경인 얼굴이 되어 지옥의 입구에 들어서는 망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정했다.
“틈 사이가 비어 있잖아. 빨리 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네가 틈을 비집고 틈을 만들어야 루이네가 그 틈을 이용해 둘을 막지.”
“그건 그렇지만...”
“아니면 이거 말고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 봐.”
“대화로 해결하면...”
“저 둘에게 대화를 건다고 들릴 것처럼 보여? 그러니...”
“으아아아!!”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없었기에 결국 프리무스는 기합과 함께, 흩날리는 눈물과 함께 루나와 현성에게로 달려들었고.
하필이면 그때가 현성의 돌려차기와 루아의 주먹이 내질러지는 순간이었다.
뻐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고.
“아.”
“아?”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몸은 배식대의 뒤에서 고꾸라진 상태였다.
"지금이야!"
그의 숭고한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게 리안의 신호와 함께 루이네가 곧바로 현성과 루나의 사이로 쇄도했고, 그들의 손을 치며 나이프와 포크를 떨어뜨리게 했다.
“그만하세요.”
마지막으로 카리스마 있는 말과 함께 고기의 쟁탈전은 난입한 루이네의 승리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