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먹을 건 양보 못 하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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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돼서 스테이크는 루이네의 손에 들어가게 됐고, 현성님과 루아는 루이네에게 혼나고 있었고, 프리무스는 저런 상태가 됐다는 거지.”
“맛있다는 듯 먹는 루이네의 얼굴은 덤이었지.”
그렇게 하이네의 덧붙이는 말과 어깨를 으쓱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리안의 얘기가 끝났다.
리안의 얘기가 끝났을 때는 구경거리가 사라진 학생들이 자신들의 방으로 향해 쉬거나 정원으로 향해 꽃을 구경하는 등 뿔뿔이 흩어져 식당의 앞에는 어느새 그들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얘기를 다 들은 세레나는 작은 틈이었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루나와 현성의 싸움에 끼어들어 둘을 저지한 루이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어 그들 중 유일한 탱커였기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희생한 프리무스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하이네?”
“후... 어쩔 수 없지.”
얘기를 마친 리안은 하이네에게 여전히 배식대의 뒤에서 뻗어 있는 프리무스를 데리고 나오자는 신호를 보냈고, 하이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어깨를 으쓱이며 리안을 따라갔다.
배식대의 뒤에 도착하자 몸이 직각으로 기울어져 있는 프리무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이제 왔어...”
그가 배식대의 뒤로 넘어간지 시간이 꽤 지나서 온 도움의 손길에 반가우면서도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프리무스.
꽤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에 리안과 하이네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간신히 참는데 성공했다.
“웃지 마... 난 아프니까...”
물론 표정에서까지는 숨길 수가 없어 히죽대는 모습이 프리무스에게 전부 보였지만.
“아직도 못 일어나겠어?”
“응...”
아무리 기본적인 맷집이나 크루세이더 클래스로서 단련해온 방어력이 있다고는 하나 학교에서 한 손에 드는 강자인 루나와 현성의 공격을 직접 맞았으니 금방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그 프리무스를 저 정도까지 만들다니. 역시 현성님이라고 해야 하나.”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옴짝달싹 못 하는 프리무스의 모습을 보며 리안은 대단하다는 얼굴로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게. 아무리 프리무스가 마력을 몸에 안 둘렀다고 해도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어. 그런데도 기사단 내에서 맨몸이 갑옷 같다고 소문이 난 프리무스를 이 정도까지 만들다니.”
하이네 또한 흐음~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프리무스의 상태를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히 하이네나 리안 둘 다 실제로 감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친한 친구를 놀릴 때처럼 장난을 치고 있는 것뿐.
“그런 소리를 할 시간이 있으면 나 좀 회복실로 옮겨다줄래?”
당연히 프리무스도 그들의 대화가 장난에서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볼멘소리를 냈다.
“아, 미안.”
그제야 그를 도와주는 리안과 하이네. 서로 그의 다리를 하나씩 잡으며 그대로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중간에 힘에 부친 그들은 목표물을 그의 팔로 옮겼고, 한층 편해짐을 느끼며 식당의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여전히 레이와 세레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린 가 볼게. 가자, 하이네.”
“조금만 더 쉬면 안 돼..?”
배식대에서 식당 밖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하지만 리안과 루이네, 프리무스처럼 육체를 쓰는 타입이 아니었던 하이네로서는 그 거리를 프리무스를 끌고 온 것으로 지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해 놓으라니까. 정 힘들면 정령들에게 강화 마법이라도 걸어달라고 부탁하던가.”
정령의 강화 마법을 받는다면 일의 효율이 꽤 올라갈 터. 하지만 하이네는 고개를 저었다.
“다크 나이트와 싸우고 정령의 문을 여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녀들도 쉬고 있는 중이라 안 돼...”
“에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끌고 갈 테니까 넌 뒤에서 따라와.”
“사람을 짐짝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그렇게 그들, 아니 리안은 프리무스를 질질 끌어 모퉁이를 돌아 그녀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짐짝마냥 질질 끌려가는 프리무스를 본 세레나는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프리무스 오라버니는 여기 오신 후부터 고생만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안 그래요, 언니?”
저런 프리무스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세레나의 말에 동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레이의 동조하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언니?”
들려오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에 옆을 쳐다보자,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향하는 레이를 볼 수가 있었다.
“뭘 보시고 계신 거예요?”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그렇게 몇 번을 더 말을 걸어 봤지만 망부석마냥 가만히 한 자리에 서서 한 곳만을 바라보는 레이의 모습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의문만 커져가는 세리나였지만, 레이로써는 세레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현재,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루이네에게 혼나던 현성의 모습부터 시작해 모퉁이를 돌아 끌려가던 현성의 모습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지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기에,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모르는 세레나는 뭐가 그렇게 눈에 들어오기에 자기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궁금해 레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시선을 옮겼다.
레이의 시선을 따라 도착한 곳은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복도의 모퉁이였다.
모퉁이를 돌아서 걷다 보면 기숙사 건물의 입구가 나오는 곳을 레이는 계속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혹시나 자신이 레이의 시선을 잘못 따라간 걸까 의심하며 근처를 더 살폈지만 간혹가다 지나가는 학생들만 보일 뿐, 레이의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계신걸까. 궁금해하던 세레나는 이내 맨 처음 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다.
루이네에게 저항하다 속절없이 막히고 마지막에는 기절까지 당해 끌려간 비운의 사나이. 현성과 또 다른 루아의 인격이라고 알려진 루나였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루이네 언니께 속절없이 끌려가신 게 충격이 크셨나보네요.’
지금껏 그의 강함만을 봐 왔던 레이였기에 현성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것에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 세레나.
당연히 정답이 아니었지만, 뭐가 됐든 정신이 돌아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에 자신이 직접 레이를 깨워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
“선생님... 뜻밖에 아이 같은 면도 있으셨구나...”
항상 믿음직한 모습만 보여주던 현성의 새로운 일면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 들은 레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시시 웃는 미소와 함께 기쁨의 말을 흘렸다.
“..?”
그것을 보고 들은 세레나는 벙 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동공이 크게 확장됐고, 입도 크게 벌려지게 되었다.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는 걸까. 자기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는 배시시한 미소를 짓고 있는 상태였다. 볼 또한 홍조를 띠고 있었기에,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자기 귀를 의심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같이 밥을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보아 잘못 들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레이의 발언은 객관적으로 보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현재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현성이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현성의 일면을 알게 된 것이 기쁜 소녀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같이 먹는 것도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세레나의 주관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지게 된다.
그녀의 주관적으로 본 문제란, 그 발언이 레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10년을 넘게 친자매처럼 지낸 그녀들이었다. 그에 따라 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저렇게 감정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얼굴은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도한 얼음공주라는 이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세레나로서는 희대의 대 사건임이 틀림없었던 것이었다.
‘항상 도도한 얼굴로 지내와 설산의 얼음꽃이나 도도한 얼음공주라고 불리던 레이 언니께서 저렇게 녹아내린 듯한 표정을 지으실 줄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17살의 세레나는 생각했다.
“세레나?”
그때, 정신이 돌아온 레이가 그녀를 보며 새로운 그녀의 일면을 발견한 충격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세레나를 보며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언니..? 방금 혼잣말로 무어라 말 하신 거, 못 들으신 건가요?”
“아니. 왜? 내가 무슨 말 했니?”
그렇게 묻는 레이의 얼굴은 어느샌가 도도함이 가득 담긴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아뇨... 자각 못 하셨으면 됐어요...”
의도된 발언일지 실언일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발설해 상기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식당이 저런 상태면 점심은 못 드시겠네요.”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식기들을 보며 세레나가 레이에게 말했다.
학생들 중에서는 복구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복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현성이나 발키리자매, 프리무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됐든 레이로써는 아침을 거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돌아갈 수밖에.”
그렇게 말하며 레이는 기숙사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세레나도 레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설마 저녁때까지 복구가 안 되는 건 아니겠죠?”
점심은 걸러도 어찌저찌 버틸 수 있었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저녁까지 굶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레나는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겠지.”
그렇게 일상의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레이의 방 앞에 도착했다.
“그럼, 점심때 봬요!”
인사하고 레이의 방을 지나쳐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세레나는.
“저기... 세레나.”
자신을 부르는 레이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네?”
무언가 할 말이 있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 하는 듯 우물쭈물하는 레이. 그런 그녀를 보며 세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그... 상담할 게 있는데, 방으로 들어와 줄 수 있을까..? 다른 사람한테는 안 들렸으면 좋은 이야기라...”
심각한 일이라도 있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레이의 모습에 세레나는 의문이 들면서도 레이가 그녀를 의지해준다는 생각에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든지요!”
레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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